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에서 “한국 사회의 변화 방향에 대한 청사진을 기본소득 의제를 중심으로”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기본소득 쟁점토론회”를 진행합니다. 이 쟁점토론회는 기본소득을 둘러싼 여러 이슈와 기본소득 실현을 위한 로드맵을 검토하는 자리이며, 2020년 2월부터 2021년 7월까지 진행될 예정입니다.
아래의 글은 2020년 8월 8일 <쟁점토론 7. 기본소득과 참여소득>에 대한 현장 질의와 답변입니다.

쟁점 토론 7. “기본소득과 참여소득” 질의-답변

“기본소득과 참여소득” 쟁점에 대한 질의와 답변

정리: 김수연 이사

질문 1. 참여소득은 기본소득의 무조건성에 가해지는 비판, 호혜성 담론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

참여소득의 찬성 근거 중 하나는 급여자격과 생산적 기여의 연결, 호혜성을 충족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유급 노동이 아닌 다른 사회적으로 유용한 활동에 참여하고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하는 활동의 인정 범위를 넓히고, 무조건적 기본소득에 가해지는 호혜성 비판에 대응해 나갈 수 있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잠이 부족한 사람에게 참여소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의 규정은 모호하기 마련이고, 호혜성을 깨면서 무조건적 권리 기반의 기본소득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낙관적일 수 있다. 반 파레이스(Parijs)는 참여소득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기본소득 뒷문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가이 스탠딩(Standing)은 높은 감시 비용과 관료주의를 들어 원천 반대한다.

질문 2. 참여소득은 탈노동사회로 진입하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을까?(자본주의적 노동윤리의 해체)

참여소득의 찬성 근거 중 하나는 사회적으로 유용하다고 인식되는 활동의 범위를 유급 노동에서 돌봄/사회적 참여 등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남경(2017)은 기본소득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 탈노동이라면, 탈노동을 실현할 수 있는 단계적 전략으로 참여소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참여소득은 호혜적 상식에 부합할 수 있고, 일과 노동윤리 관념의 단계적 변화를 꾀할 수 있으며, 직관적으로 권리 기반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스티글레(Bernard Stiegler)는 탈노동사회로의 전환, 기여경제 모델로의 혁명적 이행을 위해 프로그래머, 예술가 등 콘텐츠를 생산하여 긍정적 외부성을 창출하는 사람들에게 국가가 기여소득, 일종의 참여소득을 기본소득과 함께 지급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이것은 새로운 종의 완전 고용에 다름 아니며, 이런 방향으로 참여소득이 확대될 경우 일자리 보장의 변형태가 될 수 있다. 국가가 최저임금 일자리를 만들어서 개입하는 일종의 고용 정책, 최종 고용자 국가 시스템으로 변형될 우려이다. 참여소득은 보상 받지 못하고 있는 일을 보상 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일이라는 범주를 생성해야 했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참여소득은 희소성의 경제가 점점 사라지는 자동화 시대와 조응하는 제도인가? 노동으로 취급 받지 못하는 일의 복원은 중요한 작업이지만, 유급노동 외 일자리는 국가가 만들거나 사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실제로 사회적 활동이나 유용한 활동의 종류에 따라서 차별적으로 지급되는 (부분)참여소득들이 생성되고 확대되고 있다.

질문 3. 참여소득에 소요되는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참여소득이라는 제도에서 유용하다고 판단되는 지점, 검토하여 차용할 부분은 무엇인가?

참여소득을 도입 및 시행하는 과정에서 소요되는 제반 비용을 이유로 참여소득의 행정적 지속가능성(administrability)에 의문이 제기된다. 사회적으로 유용한 활동에 대한 감독 기제가 수반될 수밖에 없으므로, 행정비용이 과도하게 소요되어 결국 정치적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 참여소득을 제안한 앳킨슨(2015)은 참여소득이 좋은 일자리 창출 전략, 국가의 사회서비스 공공부문 투자 전략이라고 반론한다. 비용-효과성을 따지기보다 국가가 사회복지 전달체계 개선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 사회서비스에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사회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본소득 도입 논거로 제시되는 근거 중 하나는 불필요한 자산/소득 조사에 대한 비용 감소이다. 유의할 점은 기본소득의 도입으로 전체적인 (사회복지) 행정 비용이 감소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선의 사회복지사들/공무원들이 낙인효과를 일으키는 ‘자산 조사’에 투입해야 했던 시간과 비용이, 사례 관리(case study) 등으로 전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억압적이고 관료적인 자산/소득조사 때문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사례 관리에 시간과 노력을 집중하여 사회서비스 질을 높일 수 있다.

나아가 기본소득이나 참여소득 등 어떤 대안적인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할 때 비용 효율성 담론을 활용하는 방식도 고민해야 한다. 효용성/효율성 논리로 정당한 제도의 도입에 찬성 또는 반대하는 것이 기본소득 운동 전략으로 온당한가. 한편 효용성/효율성을 우파 논리라고 무조건 매도할 게 아니라, 행정비용의 추가 소모를 막을 수 있다는 대중적인 설득 전략으로 충분히 활용 가능한가.

질문 4. 참여소득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일의 범주를 확장할 수 있을까?

참여소득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을 촉진/인정하는, 기본소득과 별도의 제도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인가? 참여소득은 참여노동이라는 비시장재의 가치를 소득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접근이지, 사회구성원의 공동부로부터 나오는 수익의 소득배당인 기본소득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다만 충분한 기본소득이 지급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불평등한 처우와 시장경제에서 부당한 값을 받는 노동/일을 보상/보정해 주는 사회 정책으로서 참여소득은 의미 있을 것이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본소득과 참여소득 혼합 모델을 구상할 수 있다. 이때 사회적으로 유용한 활동에 대한 대가, 참여소득이 기본소득 금액 수준에서 거론되는 것이 정당한가? 활동의 가치를 측정하고 소득액을 책정하는 문제가 있다. 사회적으로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사회서비스 확대로 충족해야 하는 것이지, 최저임금에 가까운 액수로 기본소득보다 높지 않은 수준에서 참여소득을 지급한다면, 유용한 활동의 저임금화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참여소득으로 유용한 활동을 인정하려면 높은 수준으로 지급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활동들을 참여소득이라는 보상 체계로 끌어들여 경제적 가치를 따지는 인식을 강화할 수도 있다. 참여소득은 참여 인정 활동의 선정 과정에서 이미 기존 체제의 인식과 가치 기준을 완화하고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고착화할 수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참여소득은 탈노동을 넘어 탈경제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 오히려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이 새로운 일자리로 자리매김하고, 지금까지 인정받지 못하는 일을 보상하면서 이것도 ‘돈’을 받는 노동이라고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

질문 5. 돌봄 활동에 지급되는 참여소득은 성별 노동 분업을 고착화하고, 여성의 재가족화를 촉진하여, 기본소득 실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돌봄)참여소득이 가장 합의하기 쉬운 영역으로 간주되는데, 기본소득 실현에 있어서 대부분 종사하는 돌봄노동에에 참여소득을 지급하자는 논의 자체가 기본소득 도입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 젠더 중립적으로, 기본소득을 모두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것과 돌봄/가사노동의 유용성을 인정하여 ‘참여소득’으로 지급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돌봄이 참여 활동으로 규정되고, 돌봄에 종사함을 증명하여 참여소득을 지급받는 과정 전반에 걸쳐 기존의 성별 분업이 고착화될 수 있다. 돌봄참여소득은 돌봄노동에 일종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인데, 차라리 남성에게 강제 육아휴직을 권고하는 게 나을 수 있다(유급 육아휴직의 의무화).

모든 시민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과 달리 돌봄노동에 지급되는 참여소득의 경우 이미 돌봄노동은 여성의 일이라는 젠더화된 이데올로기로 고착화된 성별 분업 구조에 근거한 젠더화된 행동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남성이 무임승차해 왔던 가사/돌봄노동에 참여할 수 있게 하려면 공식 노동시장에서 받는 급여보다 높은 액수의 참여소득이 지급되어야 할 것인데, 현실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기타 참여소득 관련 제안/의견들.

♦ 기본소득이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 혹은 공공 서비스를 자동적으로 보장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에 대해서 참여소득은 정당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이에 고용보장제는 “federally funded and locally administered” 고용제를 제안합니다. 쉽게 말해 돈은 중앙정부가 제공하고, 그 구체적 일은 스스로 결정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소득 보장과 공공 서비스 제공이 동시에 충족되지 않을까? 알아서 활동을 선택하고 조직하기 때문에 진정한 참여가 되지 않을까? 참여와 관련 쟁점은 사회적 유용성을 국가가 정하느냐 스스로 정하게 하느냐 아닐까?

♦ 자전거를 타거나 폐플라스틱을 주우면 소액의 돈(암호토큰 등)을 지급하는 제도나 비즈니스가 부분적으로 제안 또는 실현되었다. 기술적으로 크게 어렵지 않다. 인간 활동에 대해서도 AI가 특정 활동을 돌봄 행위라고 판별하는 것도 기술적으로 곧 가능할 듯하다. 이런 방식으로 특정 활동과 행동을 촉진하는 데 유용한 기술의 도입과 모니터링 비용이 크지 않다면, 참여소득에 대한 논의 흐름도 달라지지 않을까? 기본소득과 별개이면서 상호 보완될 수 있는 정책으로?

♦ 완전기본소득 수준이 달성된다면 거시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가? 기본소득 공론장에서 거시경제 안정화장치, 인플레이션 문제가 진지하게 토론되어야 한다. (사고 실험 차원에서) 탈노동사회를 지향하면 기본소득의 재원은 마련될 것이며 기본소득으로 소비 가능한 실물은 어떻게 생산될 것인가? 그리고 사회 전체의 생산성의 질적/양적 향상에 참여소득은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참고 문헌

안숙영. (2018). 돌봄노동의 여성화에 대한 비판적 고찰. 한국여성학, 34(2), 1-32.

전윤정 (2014). 무상보육 정치의 공공성의 전유, (재)가족화, 성별화. 페미니즘 연구, 14(2), 11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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