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토론회 (1) 기본소득의 정의와 기본소득 논쟁, “발표 2. 기본소득 논쟁의 쟁점과 과제” 발표문 다운로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연속기획 토론회 “기본소득 쟁점과 설계”
연속기획 토론회 (1) 기본소득의 정의와 기본소득 논쟁

[발표 2]

기본소득 논쟁의 쟁점과 과제

백승호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서론

코로나로 인한 긴급재난 상황은 한국 복지국가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플랫폼 노동자, 특수형태고용종사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실업자, 여성, 청년, 일하는 노인 등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형태의 불안정 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사회적 안전망에서 배제되어 생존의 위기에 직면하였다. 중산층 이상의 안정적인 지위에 있던 사람들의 공포는 다소 덜했지만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의 경험은 대한민국 시민 모두에게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아주 작은 금액이고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고 있지도 않았지만, 국가가 1차적인 소득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민들은 실감하였다.

동시에 긴급재난지원금은 어떤 방식으로 미래 한국사회의 진화된 복지국가를 설계할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유발시켰다. 기본소득 관련 논쟁이 그것이다. 기본소득 논쟁이 긍정적으로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기본소득이 기존의 복지를 대체한다거나, 저소득층의 현금급여를 전체국민에게 1/n로 나누는 기획이라는 정치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가정들, 사실을 왜곡하는 주장, 소득재분배 효과가 없다는 근거 없는 주장 등이 무분별하게 개진되면서 다소 소모적인 논쟁이 이어졌다. 특히 다양한 방식의 실현가능한 기본소득 재정모델이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이 예산제약으로 불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은 ‘복지확대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논리로 활용되기에 충분했다.

이 글에서는 기본소득 논쟁의 쟁점과 과제를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쟁점1. 기본소득의 개념

일부 지자체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을 재난기본소득으로 명명하면서, 기본소득 개념에 대한 논쟁이 잠시 수면으로 부상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기본소득을 “공유부(common wealth)에 대한 정기적 현금배당”으로 정의한다. 여기서 공유부란 누가 얼마만큼 기여했는지를 따질 수 없고, 어떤 특정인의 성과로 귀속시킬 수 없는 수익이다(금민, 2020). 토지와 같은 자연적 공유자산, 지식과 같은 역사적 공유자산,[각주 1] 빅데이터와 같은 인공적 공유자산으로 부터의 수익이 대표적이다. 기본소득이 모두에게 돌려줄 모두의 몫이기 때문에, 무조건성, 보편성, 개별성이라는 특성을 기본소득 개념 자체에 내재하고 있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는 여기에 정기성과 현금배당을 추가하고있다. 충분성은 기본소득의 지급수준과 관련되는데,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는 충분성이 정책목표일수는 있지만, 기본소득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로 보고 있지는 않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는 2016년 총회를 통해 지급수준이 낮은 부분기본소득(Partial Basic Income: PBI)부터 출발하는 것에도 반대하지 않는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재난기본소득은 정기성을 위배하고 있어, 엄격한 의미에서 기본소득이라 볼 수 없다. 재난기본소득이 이후에 추가적으로 지급된다면 정기성 요건을 충족시켰다고 볼 수도 있다. 이외에 기본소득으로 명명되고 있는 청년기본소득, 농민기본소득, 예술인기본소득 등은 학술적 측면에서 보면 기본소득이라 볼 수 없다. 부의소득세(NIT)나, 안심소득제도 역시 자산조사를 하며, 가구단위 지급으로 설계되기 때문에 기본소득으로 볼 수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핀란드 기본소득과 같이 기본소득의 중요한 정신인 무조건성을 담고 있는 정책실험 또는 청년기본소득과 같이 인구학적 연령 범주를 제한하는 정도는 과도기적 형태의 기본소득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기본소득 개념 논쟁과 관련하여 ‘기본소득보다 복지국가 강화’, ‘기본소득보다 보편적 복지’ 등의 대립구도 설정은 잘못된 비교에 해당한다. 기본소득은 아래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복지국가나 소득보장의 하위 범주에 속한다. 비교는 동일한 범주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기본소득보다 복지국가”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렌지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오렌지보다 과일이 좋다”고 설명하는 것과 동일한 오류다. 이러한 대립구도 설정을 통한 기본소득 비판은 기본소득이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들을 모두 대체할 것이라는 잘못된 명제를 시민들에게 의도적으로 확산시킴으로써 기본소득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정당하지 못한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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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2. 복지의 원리: 욕구와 권리

욕구와 권리라는 두 가지 원리는 복지국가를 구성하는 양 날개에 해당한다. 욕구의 존재여부에 대한 판단은 주로 자산조사와 사회보험료 기여 수준에 기초하며, 자유주의 및 보수주의 복지체제에서 강조되는 복지국가의 원리에 해당한다. 반면에 권리는 욕구와 무관하게 모든 시민에게 부여되며, 사회민주주의 복지체제에서 강조되는 복지국가의 원리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 비판론에서는 사회적 위험에 직면하지도 않고 욕구도 증명되지 않은 모든 시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복지의 원리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양재진, 2020). 이러한 주장은 복지의 원리 중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복지체제의 관점에서만 복지의 원리를 해석하고 있다.

이미 Esping-Andersen(1990)에서 확인되었듯이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복지체제의 결과는 시민들을 수급자와 납세자로 나누는 강한 이중화, 사회보험료 기여 및 급여 수준의 차이에 따른 강한 계층화를 특징으로 한다. 반면에 복지제도들에서 욕구(선별주의)와 권리(보편주의)가 조화를 이룬 사민주의 복지체제는 높은 수준의 탈상품화와 낮은 수준의 계층화를 보여준다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 따라서 복지의 원리로서 욕구만을 강조하는 기본소득 비판론이 지향하는 세계는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결합된 강한 계층화 사회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복지국가를 피기뱅크(돼지저금통)에 비유하는 것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피기뱅크 사회는 노동시장에서의 소득수준에 따라 위험 대처능력의 차이를 유발하며 결과적으로 사회적 연대보다는 사회적 계층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욕구의 원리에 권리의 원리를 결합할 때 양극화와 불평등 해소에 훨씬 유리하며, 사회적 연대도 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재분배의 역설’(Korpi & Palme, 1998)론에서도 검증되었다.

쟁점 3. 정책 우선순위: 예산제약과 권리의 실현

그렇다면 기본소득은 어떤 권리를 실현하고자 하는가? 앞서 기본소득의 개념에서 설명했듯이 기본소득에서의 권리는 원래 모두의 몫이었던 공유부에 대한 권리다. 원래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공정하게 분배하는 것이 기본소득에서 추구하는 사회정의다. 기본소득의 도입으로 경제적 효과도 예상되고, 욕구 충족의 기능도 기대할 수 있지만, 기본소득이 추구하는 것의 본질이 사회정의, 분배정의 실현에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예산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이다혜, 2020). 국제인권법, 헌법상 기본권을 실현하는 데도 이미 많은 국가예산이 투입되고 있으며(이주영, 2016), 인종과 성별 등에 의한 차별금지, 집회와 결사의 자유, 노동3권을 실현하는 데 집행 비용이 많이 들고 효율적이지 않다고 해서 이러한 권리를 부정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권리이기 때문이다(이다혜, 2020).

그런데 모두의 몫이 어느 정도 수준이며, 어떻게 나눌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와 공론화가 필요하다. 공유부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에 따라 기본소득의 수준은 달라질 수 있다. 각주 1에서 설명했듯이, Simon은 모든 소득의 90%가 공유부이며, 최소한 70%를 과세하여 공공재정에 충당하고 나머지는 기본소득으로 나눠주자고 제안하였다(금민, 2017; Simon, 2000). 지금까지 기본소득 모델을 통해 제안되고 있는 수준은 OECD 평균 복지지출 수준을 목표로 한 GDP의 10%, 1인당 30만원(강남훈, 2019; 이원재 등, 2019)이며, 장기적으로 최저생계비 수준과 단계적 확대 모델도 제안되고 있다(김교성·백승호·서정희·이승윤, 2018).

정리하면, 현재 논쟁이 되고 있는 지점은 철저하게 욕구를 기반으로 복지국가를 강화할 것인지, 한국 복지국가가 한 단계 진화하기 위해서 권리를 기반으로 복지국가 프로그램을 한층 더 추가할 것인지에 있다. 기본소득론의 핵심은 현재 욕구의 원리라는 날개로만 불안하게 날고 있는 한국 복지국가에 권리라는 또 다른 날개를 달아 보는 논의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쟁점 4. 기본소득의 소득보장 기능

앞선 두 개의 쟁점은 어떤 복지국가를 만들 것인지의 차이에 관한 것이었다. 기본소득이 지향하는 복지국가는 욕구와 권리의 양 날개를 튼튼히 세우는 복지국가다. 그렇다면 소득보장과 측면에서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기본소득보다 나은가? 이러한 질문은 기본소득 비판론에서 제기하고 있는 핵심 질문이다. 기본소득 비판론에서 대표적으로 들고 있는 예는 다음과 같다(양재진, 2020; 최한수, 2020).

“한국의 모든 현금복지지출을 더하면 총 73.4조원이 된다. 이를 전 국민을 상대로 1/n로 기본소득화하면 월 11만 7천원이 된다.”

“2년치 공공부조 예산인 30조원으로 기본소득을 도입해도 5만원이 안 된다. 그러나 현재 기초생활보장제도의 1인 가구 수급자는 생계급여로 최대 월 52만원, 주거급여로 26만원을 받는다. 실업자도 최대 198만원을 받는다.”

그러나 이런 예들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 어떤 정치인도 현재 지급되고 있는 현금지출을 모두 환수하여 전체 국민에게 나눔으로써 개별적 수급액을 줄이는 입법을 할 수 없다. ‘정치인들은 복지를 가시적으로 축소하여 비난받을 가능성이 높은 입법은 하지 않는다’는 비난회피의 정치(Pierson, 2006) 개념을 가지고 설명하지 않아도 이러한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실업자도 최대 198만원을 받는다”라는 설명에는 그 198만원을 받기 위한 장황한 조건과 수급기간 제한 등은 애써 무시한다. 50세 미만의 실업자가 실업급여 상한액을 8개월 최대기간 동안 받기 위해서는 비자발적 실업이어야 하고, 10년 이상 가입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구직활동을 증명해야 한다. 현실은 더 열악하다. 2018년 기준 평균근속년수는 정규직이 7.5년(210일), 비정규직은 2.5년(150일)이다.

기본소득론에서 주장하는 모델은 기본소득+실업급여 모델이다. 아래의 표는 어떤 모델이 실업에 대한 소득보장에 더 효과적인지를 보여준다. 아래 표는 현재 명목적 증세 없이 실현 가능한 것으로 제안(이원재 등, 2019)되는 30만원 기본소득을 전제하였다. 실업급여만 받는 현행 모델은 최대 8개월 동안 약 1,600만원을 받는다. 하지만 기본소득+실업급여 모델은 1,960만원이며 이는 가구수가 증가할수록 더 커진다. 2년차 이후에 실업급여 모델은 더 이상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지만, 기본소득+실업급여 모델은 1인가구의 경우 5년간 3,400만원을 받는다. 현행 모델의 두 배가 넘는 소득보장이 가능하다.

물론 현행의 실업급여 제도를 확대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느 수준까지 가능할까? 현행 제도에 따르면, 실업급여 상한액은 월급 350만원 이상인 사람이 약 200만원이다. 이를 두 배 수준으로 증가시켜보자. 월급 350만원 이상인 사람이 실업 시에 약 400만원을 8개월 동안 받게 된다. 월급보다 실업급여가 높아진다. 이런 모델이 현실에서 가능할까? 실업급여는 그 자체적으로 확장성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은 뺄셈과 나눗셈이 아니라 덧셈이기 때문에, 소득보장 기능이 현행의 사회보장제도들보다 더 나을 수 있는 것은 다른 제도들에 대한 비교를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기본소득 30만원이 지급될 경우, 기초법의 생계급여는 1인 기준 52만원에서 82만원으로 증액된다. 기초연금은 25만원에서 55만원으로 증액된다. 국민취업지원제도의 구직촉진수당은 6개월 동안 50만원만 지급되지만, 기본소득이 더해진 모델에서는 6개월 동안 80만원과 그 이후에도 계속 30만원이 지급된다. 아동수당은 현행보다 네 배로 증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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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하면 기본소득+현행 모델보다 더 효과적으로 사회적 위험에 대응할 수 있을까? 쉽지 않다. 그 이유는 이론적으로는 재분배의 역설론을 통해서 검증되었다. 사회보장 시스템을 설계함에 있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형성하도록 제도가 설계되면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정치적 갈등을 조장하게 되고, 이것은 조세저항 또는 복지확대 반대로 이어진다. 결국 복지재원의 규모를 확대하기 어렵다. 실제로 현행 기초보장제도의 생계급여를 두 배로 증액하는 것이 가능할까? 국민기초보장제도가 만들어진 지 20년이 지났지만 그 20년은 우리에게 그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주었다. 두 배는커녕 생계급여 10만원을 증액하는 것도 쉽지 않다. 기초연금은 어떠한가? 노인빈곤율이 50%에 육박함에도 불구하고 기초연금 인상이 어렵다는 것은 지난 국민연금 논쟁에서 이미 확인되었다.

하지만 기본소득+현행제도 모델은 명목적 증세 없이도 30만원 기본소득이 가능하기 때문에, 당장의 조세저항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기본소득은 모든 시민들을 하나의 이해관계 안에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는 긴급재난지원금 지급과정에서 이미 확인되었다. 〈시사IN〉과 KBS의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 정치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는 비율은 48%였고, 43%는 세금이 제대로 쓰인다고 믿게 되었다고 응답하고 있다. OECD에서 발표하는 정부신뢰도가 2018년 36%였던 것과 비교하면 한국사회에 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기본소득은 예산제약론과 제도적 제약 때문에 달성하지 못했던, 생계급여인상, 기초연금인상, 실업자들의 삶의 안정성확보 등을 더 용이하게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다.

쟁점 5. 기본소득의 소득재분배 효과

기본소득 비판론은 기본소득이 소득재분배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저소득층에게 불리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주장을 위해 사용한 시뮬레이션이 저소득층에게 제공되는 현금급여를 모두 모아 전체 국민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가정한다. 당연히 저소득층에게 불리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비현실적인 가정이다. 많은 연구들은 기본소득이 저소득층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입증해왔다(백승호, 2010 등).

또한 t% 개인소득세에 기반한 기본소득 모델은 지니계수를 t% 감소시킨다는 것도 이론적으로 입증되었다(이건민, 2018).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조세-급여체계의 소득재분배 효과는 11~14%이다. 27.4%의 국민부담율이 달성한 소득재분배 효과다. 만약 이 정도의 재원을 t% 개인소득세-기본소득 모델에 대입하면, 27.4%의 소득재분배 개선효과가 예상된다. 현행 모델보다 1.9~2.4배 정도로 기본소득 모델이 소득재분배 효과가 더 크다. 물론 이러한 가정역시 비현실적이다. 적정한 수준의 기본소득과 기존 사회보장을 강화하는 모델이 상호보완적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

결론

지금까지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촉발된 기본소득 논쟁의 주요 쟁점들을 살펴보았다. 기본소득론에서 지향하는 진화된 복지국가는 공유부에 대한 정당한 배당의 권리를 기존 사회보장에 추가하는 것이다. 시민의 권리를 실현하는 데 경제적 효율성, 예산제약은 부차적인 문제다. 예산제약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예산제약을 전제한다면 기존의 복지국가를 강화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정부재정은 조세와 국채를 통해 주로 마련된다. 예산제약을 넘어 적극적인 재정확장 전략이 필요하다. 증세가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증세여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어야 한다. 증세 이외 재정확보 수단인 국채발행이 후세대에 대한 빚이라는 통념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

(국채발행을 통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에 제한을 두는 우려는 하나의 관념에 기초한다. 정부의 재정도 가정경제 혹은 기업과 마찬가지 원리로 운영된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이는 정부와 민간의 재정 운영 원리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차이를 무시하는 주장이다. 정부는 스스로 화폐를 발행할 수 있지만, 민간은 그렇지 않다. 어색하지만 반드시 물어야 하는 질문은, “정부는 스스로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데, 왜 빚을 내야 할까?”이다.

정부부채는 후세대가 갚지 않는다. 역사적으로도 정부부채를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상환한 사례가 없다. 과거 빚은 차환될 뿐입니다.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것은 건강한 경제, 생산성 높은 경제다. 긴축재정은 미래세대에 저생산성, 후진 경제를 물려주게 된다. (전용복, <정부가 빚을 저라: 코로나 이후 세상을 위한 경제학>, 출간 예정)

미국 연방준비은행 전 의장 그린스펀은 2005년에 이미 아래와 같이 언급하고 있다.

부과방식(pay-as-you-go) 연기금이 파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부가 원하는 만큼 통화를 창조하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지급하는데 그 어떤 제약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연금을 포함하여 사회보장기금의 재정건전성 문제보다는) 연금 수급자들이 구매할 실물 자산을 충분히 생산해낼 수 있는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가 실질적인 문제입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vDMgGmk4vYA).

기존 사회보장 강화론에서 고려되고 있지 못한 것이 플랫폼 자본주의로의 전환이다. 최근 노동시장 변화의 주요 특징은 비경활인지 경활인지, 실업인지 취업인지, 근로자인지 자영업인지 모호한 계층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고용과 연계된 전통적 복지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미래의 복지국가를 설계해야 할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복지패러다임을 통해 노동과 일에 대한 생각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소득보장제도와 관련해서 그 설계도의 핵심은 공유부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기본소득을 배치함으로써 모든 시민들이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기반으로서 1차적 안전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그 위에 플랫폼 자본주의의 다양한 노동형태를 포괄할 수 있도록 2차적 안전망으로 사회보험을 소득보험화하는 개혁이 필수적이다. 사회복지서비스와 관련해서는 모든 시민들의 사회복지서비스에 대한 접근권 및 양질의 사회서비스 수급권을 보장하는 개혁도 필수적이다. 이 모든 복지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기획은 예산제약론을 앞세워서는 불가능하다. 미래 복지국가의 설계도를 그리고, 필요한 재정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끌어내는 복지정치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예산제약론을 넘어 사회적 위험에 대한 욕구보장과 공유부 배당의 권리보장이라는 두 개 날개를 달고 한국 복지국가가 비상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각주 1] 197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던 허버트 사이먼(Herbert A. Simon)은 모든 소득의 90%는 이전 세대에 의해서 축적된 지식에서 유래한다고 보고 있다(금민,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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