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에서 “한국 사회의 변화 방향에 대한 청사진을 기본소득 의제를 중심으로”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기본소득 쟁점토론회”를 진행합니다. 이 쟁점토론회는 기본소득을 둘러싼 여러 이슈와 기본소득 실현을 위한 로드맵을 검토하는 자리이며, 2020년 2월부터 2021년 7월까지 진행될 예정입니다.
아래의 글은 2020년 5월 9일 <쟁점토론 4. 기본소득과 젠더 평등>을 위한 발표문(초고)입니다.

쟁점 토론 4. “기본소득과 젠더 평등” 발제문(초고)

기본소득과 젠더 평등

발제자: 이지은 이사, 김수연 이사

【목차】
1. 들어가며
2. 가부장적 복지체제의 태생적 한계와 젠더 불평등
3. 페미니스트들의 기본소득 비판/반비판
4. 복합적 젠더 평등과 정책적 조건들
5. 나아가며
1. 들어가며

기본소득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체(정치공동체)가 모든 구성원 개개인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이다. 국가 또는 지방자치체(정치공동체)가 모든 구성원들에게 직접 지급(보편성), 자산 심사나 노동 요구 없이 지급한다는 점(무조건성), 가구 단위가 아닌 개인에게 직접 지급한다는 점(개별성) 측면에서 기존 사회보장제도와 다르다. 빈곤 및 불평등 완화, 생태적 전환 등과 같은 기본소득의 다양한 변혁적 효과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기존 복지제도와 다른 기본소득은 젠더 평등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본 글은 현대의 가부장적인 복지체제와 젠더 불평등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기존 페미니스트들의 기본소득 논쟁에서의 비판/반비판의 내용을 검토한다. 나아가, 낸시 프레이저의 주장에 따른 ‘복합적 젠더 평등’ 규범과 ‘보편적 돌봄제공자 모델’에 대해 동의하며, 그 안에서 기본소득이 임금노동과 돌봄노동에 미칠 변화에 주목한다. 마지막으로 기본소득이 유급노동과 무급가사노동의 균형을 위한 수단으로 기능할 뿐 만 아니라, 가부장적 성체제(system of sexuality: 박이은실, 2014)에 균열을 내고, ‘돌봄민주주의’와 ‘문화사회’로 이행하는 데까지 기여할 수 있음을 확인함으로써, 젠더정의의 정치적 상상력을 확장하였다.

2.가부장적 복지체제의 태생적 한계와 젠더 불평등

1) 가부장적 복지국가의 형성과 2등 시민으로서의 여성

한국은 해방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복지국가로 도약하였다. 어떠한 성격의 복지국가로 발전하였는지는 학계의 논의가 다양하지만, 객관적인 지표상으로 보았을 때,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 수준이 크게 확대되면서, 명백히 복지국가에 진입하였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그렇다면, 젠더 관점에서 한국 복지국가의 다양한 노력들은 어떠한 성과를 보이고 있는가? 결론적으로 한국의 ‘여성의 지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사회지표들은 젠더 불평등 현상을 가리키고 있다. 세부적으로, 1인당 GNI(PPP$)의 경우에도 남성 50.24%인데 반해 여성의 경우 23.23%로 절반가량 낮으며, 여성의 노동시장참가율은 2018년 기준 52.8%으로 남성 73.3%보다 약 20% 이하 밑돌고 있다. 또한 2016년 OECD 성별임금격차에서 한국은 36.7%로 1위를 기록하였으며, 여성 평균월급은 남성 대비 64.1%로, 정규직 여성의 2명 중 1명이 경력단절 후 비정규직으로 이행하면서 퇴직 전까지 임금 차별과 고용불안까지 겪는다.. 또한 2011년 기준 65세 이상 한국 여성의 빈곤율은 47.2%로, OECD 30개국 중 1위로 나타났다(‘빈곤의 여성화’). 또한 여성 국회위원의 비율은 2018년 기준 17% 정도로 정치참여 수준이 상당히 낮게 나타난다. 무엇보다 2006년부터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에서 발표하는 성격차지수(Gender Gap Index: GGI) 산출 결과, 한국은 2019년 기준 153위 중 108위를 차지하며, 경제참여 및 기회(127위), 교육적 성취(101위), 정치적 권한(79위)에서 상당히 낮은 순위를 차지하며 높은 젠더격차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복지국가가 젠더 불평등을 야기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표적인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인 하이디 하트만(1979)은 근대국가의 발전과정에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강력한 상호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형성해 왔음을 설명한 바 있다. 노동시장에서 남성노동자의 질 좋은 일자리와 높은 임금을 보장하는 가족임금체계를 통해, 여성을 가사노동자 및 양육자로서의 역할로 안착시키는 ‘노동의 성별분업’을 확립하였다. 가정에서의 여성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다시 노동시장에서의 여성의 열악한 지위를 강화하여,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동시적 이익을 주었다(김교성/이나영, 2018: 12). 또한, 복지국가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시민권’ 담론에는 ‘노동자=시민’ 결합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하였으며, 따라서 노동시장에 주로 참여하는 남성노동자가 시민으로 인정받았다(김교성/이나영, 2018: 11). 이렇게 시민의 몰젠더성, 노동의 성별분업을 토대로 현대 복지국가는 발전해왔다.

이러한 결과로, 복지급여의 기본단위는 개인이 아닌 가구로 한정되었으며, 여성은 (남성)가구주에 의존하는 ‘간접적’ 시민권을 향유할 뿐 만 아니라(O’connor, 1993: 504-506), 남성중심의 사회보험과 여성중심의 사회부조로 구분된 ‘이중 복지체계’를 형성하며, 태생적으로 젠더차별적 특성을 가지게 된다(김교성/이나영, 2018: 13). 이러한 경로 속에서 20세기에 형성된 한국의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은 노동의 성별분업을 그대로 반영하는 성차별적 요소를 다수 포함하게 된다(이다혜, 2019). 또한 2000년대 이후 한국정부에서 나타나는 젠더 불평등을 대응하는 방식은 ‘여성의 남성화’ 방식에 치중되어 있기 때문에, 진정한 젠더 평등을 이루기에는 미흡한 측면이 있다(이는 후술할 ‘보편적 생계부양자 모델’과 조응한다, 3장 참고).

2) 신자유주의적 복지국가 내 젠더 불평등 양상

이러한 남성1인 생계부양자 중심의 모델은 후기 산업사회 들어, 1.5인 생계부양자 모델로 나아간다. 구체적으로 충분히 (가족)임금을 제공하는 일자리의 감소, 불안정 노동의 확산으로 인해, 가부장적 남성1인 생계부양자 모델의 가정이 균열되고, 여성들이 불안정 임금노동시장에 참여하게 되면서, ‘2차 소득자'(secondary earner)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열악한 노동조건과 여전히 여성에게 부여된 가족 내 돌봄노동 책임으로 인해, 여성은 이중부담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양상은 남녀 간 소득격차, 노동시장에서의 지위 격차, 여가시간 격차의 형태로 중첩적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보다는 개인을 더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기조와 조응하며, 젠더 불평등을 확대하거나 방관해왔다.

젠더 불평등 현상은 ‘빈곤의 여성화’, ‘불안정노동의 여성화’, ‘시간빈곤’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홍백의/김혜연(2007)은 1998년 이래 우리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는 ‘빈곤의 여성화’ 경향이 더욱 심화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여성의 노동시장내 차별을 막는 제도적 장치와 시민권적 개념에 기초한 소득보장프로그램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가운데 ‘생산과 복지의 연계’ 기조 하에 노동을 조건으로 한 기초생활보장제도사업의 일환인 자활사업의 경우, 여성 참여자가 과반을 훨씬 넘어 ‘자활의 여성화’로 이어진다고 지적하였다(윤명숙/김남희, 2017).

둘째, ‘불안정노동의 여성화’이다. 스페인의 페미니스트 활동가 그룹 Precarias a la Deriva[표류하는 여성 프레카리아트들]는 유럽사회에서 사회적 불안정성이 증가한 원인 중 하나로 ‘노동의 여성화’를 꼽았다. 이는 단순히 여성이 노동시장에 많이 참여했다는 것이 아니라, 유연성과 취약성, 높은 수준의 적응성, 임기응변 능력, 다중역할 수행과 같은 여성의 일/삶의 특징적 요소들이 노동시장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왔다는 것을 말한다. 여성의 노동화의 구체적인 요인은 여성 파트타임 노동의 증가이다. 또한 이들은 생산영역(임금노동)과 재생산영역(돌봄) 모두에서 확대되는 불안정성에 주목하였다(신경아, 2019: 187).

셋째, 여전히 가사돌봄노동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여성의 시간빈곤 문제는 더욱 두드러졌다. 맞벌이 부부 중 아내의 가사노동 시간(183분)이 남편(41분)의 4.7배에 달해, 가사노동에 대한 여성의 책임도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통계청, 2015). 경제활동인구 및 60세 이상 기혼 부부 여성은 남성에 비해 4배 이상의 시간을 가사노동에, 2배 가까운 시간을 돌봄 노동에 할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안미영, 2017).

3. 페미니스트들의 기본소득 비판/반비판

판 파레이스 등은 기본소득을 무급노동에 대한 ‘인정’으로 지급하는 것에 명시적으로 반대하며, ‘권리’로써의 급여라고 확인했다(Parijs, Jacquet and Salinas, 2000: 25). 그런데 페미니스트들이 관심을 갖는 부분은 여기서 말하는 ‘시민’은 누구이며 과연 ‘보편적 기본소득이 젠더 평등(Gender Equality)을 증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관련된다. 젠더 불평등이 구조화된 사회에서 ‘모든 시민에게 권리로서 급여를 준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특히 어떠한 젠더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지에 따라, 기본소득이 여성에게 미칠 효과에 대한 강조점이 달라진다. 이번 장에서는 기본소득이 젠더 불평등, 특히 남성은 공적영역/임금노동, 여성은 사적영역/돌봄노동이라는 ‘노동의 성별분업’을 강화 또는 완화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기술하였다.

분배정의에 대한 현대 이론가들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의해 파생된 불평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재분배의 이론적 정당성을 주장했다. 자유평등주의적 전통(liberal egalitarian tradition)에서 이러한 주장을 한 사람은 대표적으로 롤스가 있다. 이러한 논의들은 돌봄노동의 지위가 명시적으로 다뤄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많은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을 받았다. 구체적으로 페미니스트들은 ‘여가’와 동일하게 ‘가사영역의 일’을 간주하는 것에 대한 비판, 노동의 성별분업과 평등의 이상 사이의 긴장을 해결하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했다(Kittay, 1999; Okin, 1989; Toronto, 1993). 그러나 이러한 긴장에 대해 해결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서는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들의 광범위가 동의가 존재하지만, 방법에 대해서는 합의된 바가 없다(Miller, Yamamori, & Zelleke, 2019).

1) 프레이저의 세 가지 모델

미국의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1970년대~80년대의 지배적인 페미니즘의 이론적 경향을 두 가지 ① 보편적 생계부양자(universal breadwinner) ② 돌봄제공자 동등(caregiver parity)로 구분했다. 먼저, 보편적 생계부양자 모델은 주로 여성의 고용을 촉진함으로써 젠더 평등을 성취하고자 목표하며(Fraser, 1997), 풀타임 고용을 막는 여성의 돌봄 책임을 벗어나게 하는 공공서비스 제공 정책을 설계한다(Bergmann, 1998; Hirschman, 2006). 스칸디나비아 사민주의 복지국가 모델이 대표적인 예이며, 국가 주도의 아동 및 노인돌봄, 건강 보호, 교육 및 직업훈련, 광범위한 공공일자리 영역을 통해서 여성과 남성의 완전고용 규범이 지탱되고 있다. 둘째, 돌봄제공자 동등 모델은 이와 반대로, 주로 비공식 돌봄노동을 지원함으로써 젠더 평등을 꾀하며(Fraser, 1997), 돌봄노동은 다른 유급고용과 동등하게 보상되거나 간주될 것을 요구한다(Abelda et al. 2004; Bergmann, 2000; Kittay, 1999). 이 모델은 아직 현실 복지국가에서 시행되고 있지 않지만, 참여소득 제안과 유사하다.

그러나 프레이저는 이 두 가지 모델을 비판한다. 근거는 근본적으로 여성이 시민으로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노동자로 가정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두 모델 모두 가구의 돌봄 책임들을 완전히 상품화할 수 없으며, 고용에 준하는 (가사영역의 노동)시간과 업무들의 경계들을 정할 수 없기 때문에다(Mink, 1995). 결과적으로 두 모델은 단지 돌봄노동을 가치화하는데 있어서 현재 상태를 기준으로 약간의 향상만을 꾀하며, 여성과 남성의 진정한 평등(true equality)을 부정한다.

프레이저는 유급고용 뿐만 아니라 여성의 일(돌봄노동) 또한 재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③ 보편적 돌봄제공자 모델(universal caregiver model)이라 명명했다. 모든 시민들은 두 가지 조율의 일에 참여하고, 두 가지 일 모두에 책임이 있으며, 국가는 이를 지원한다. 프레이저와 일부 학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유급고용과 돌봄노동의 더 평등한 분배를 위한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보편적 돌봄제공자 모델과 함께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유급노동과 함께 돌봄노동을 지지하는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Baker, 2008; Elgarte, 2008; Fraser, 1997; Pateman, 2006; Zelleke, 2008).

2) 기본소득 비판과 반비판

결국, 어떠한 젠더 평등한 사회상을 그리는가(유급노동과 돌봄노동의 분담구조 및 정도)에 따라 기본소득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강조점이 다르다. 프레이저가 분류한 세 가지 모델에 따라 기본소득이 젠더 평등에 미칠 영향에 대한 논점이 달라진다(McLean, 2015).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첫 번째 모델인 ‘보편적 생계부양자 모델’을 지향하는 맥락에서, 기본소득을 주었을 때 기대・우려하는 바는 여성의 유급노동에 대한 유인과 ‘선택’과 관련된다. 이 경우 기본소득은 사람들의 노동시간을 단축시킬 것이며, 특히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줄어, 상당한 임금 격차와 빈곤 위험 등 정치·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비판이다(Robeyns, 2001). 기본소득은 특히 저임금/저숙련의 여성이 양육을 위해 집안에 머무르게 하여, 노동의 성별 분업을 촉진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Gheaus, 2008).

그러나 이러한 기본소득 비판에 대한 반비판은, 이러한 논의가 남성이 여성의 재생산노동에 무임승차하고 있는 측면, 즉 노동을 구성하는 ‘남성중심적 젠더규범’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유급고용’ 자체에만 관심을 둔다는 점을 지적한다(McKay, 2001). 오히려 기본소득은 유급고용시간에 제약이 있는 사람들의 경제적 독립을 촉진시키고, 무급가사노동의 개인·사회적 가치를 인정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재비판한다(Robeyns, 2001; Pateman, 2004).

둘째, 일부 학자들은 ‘동등 돌봄제공자 모델’에서 “기본소득이 너무 중립적이어서” 돌봄을 보상하거나 가치화하는데 충분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이유로 Ackerman & Alstott(2004)은 어린 아동이 있는 돌봄제공자에게 현금급여를 지급하자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옹호자들은 기본소득의 중립성을 젠더 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 특성으로 꼽았다. 중립성은 프레이저의 ‘보편적 돌봄제공자’ 모델로의 평등과 차이의 정책을 통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Fitzpatrick, 1999; Bambrick, 2006; Zelleke, 2008; Birnbaum, 2012). 또한 기본소득의 무조건성은 어느 누구도 노동자 혹은 돌봄제공자로 구획하지 않고 시민으로서 대하며, 남성중심적 젠더편향을 가정하는 ‘보편적 생계부양자 모델’의 단점을 피하는 동시에(McKay, 2001) 국가와 시장에서 보상하지 않는 돌봄노동의 일정 부분을 가치화할 수 있다(Robeyns, 2001; Baker, 2008). 그러나 이러한 시각에 재비판은 무급가사노동 중에서도 ‘돌봄 노동’의 특성이 간과되었음을 비판하면서, ‘돌봄 노동’ 가치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위해 사회·경제적 책임논의가 기본소득과 별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윤자영, 2016).

이러한 두 입장의 대립은 근본적으로 ‘젠더(불)평등’이 무엇이며, 여성에게 어떠한 사회적 규범을 부여할지에 대한 견해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일각에서는 집단으로서 남성과 동등한 지위의 여성을 가정한 가운데 ‘젠더중립적인’ 남녀평등 정책을 지향하는 접근(separate spheres)도 있으며, 혹은 남성과 다른 여성의 ‘차이를 인정’하여 돌봄을 보상하는 전략(the Recognition of Difference)도 있다(Zelleke, 2011). 그러나 전자의 ‘동등 정치’는 기존의 남성중심주의적 젠더 위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후자의 ‘차이의 정치’는 젠더차이가 생물학적 차이에 기인한다는 젠더 근본주의에 매몰될 위험이 있다. 앞서 말했듯이,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젠더 평등을 이루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였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무엇보다 기본소득이 실현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본소득이 ‘노동의 성별분업’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논쟁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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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복합적 젠더 평등과 정책적 조건들

1) 젠더정의(gender equity) : 복합적 개념

프레이저는 젠더 평등을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복잡한 아이디어로 재개념화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는 기존의 평등/분배만을 강조하는 정치, 혹은 차이/정체성/인정만을 강조하는 정치로는 진정한 젠더정의를 실현할 수 없으며, 또한 젠더정의를 단일한 가치나 규범으로 가정하는 것을 탈피해야 한다는 것에 근거한다. 따라서 젠더정의에는 평등과 차이와 관련된 개념들을 포함할 뿐 만 아니라, 이 양자와 여전히 일치하지 않는 다른 규범적 아이디어도 포함한다. 젠더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서로 제각기 구별되는 여러 가지 규범을 동시에 그리고 다 같이 존중해야 한다(Fraser, 2017: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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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riple R strate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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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책적 조건들

기본소득만으로는 젠더 평등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돌봄의 민주화만으로도 젠더 평등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없으며, 기본소득과 돌봄의 민주화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통해 젠더 평등을 완성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기본소득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은 두 번째 절에서도 설명했듯이, ① 기본소득이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감소시키고 무급가사노동에 종사하게 만드는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이며, ② 기본소득만으로는 돌봄노동의 가치를 충분히 보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러한 이론적 비판은 기본소득 + 돌봄의 민주화 방식이 어떻게 결합하는가에 따라 기대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구체적으로 기본소득과 함께 젠더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임금수준 대비 기본소득의 지급수준이 높아야 한다. 둘째, 남성과 여성의 노동시장 접근 기회가 평등해야 한다. 셋째, 이미 여성이 다수 참여하고 있는 노동시장의 근로조건을 개선해야 한다. 넷째, 노동시장 내의 성차별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들이 필요하다. 다섯째, 생산(임금)노동과 재생산(무급가사/돌봄)노동에서의 성역할 위계를 완화해야 한다(문화적 측면). 여섯째, 돌봄서비스에 대한 접근권이 높여야 한다.

다수의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바는, 대표적으로 금민(2020)의 논의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여성의 이중부담을 없애고 여가시간 불평등을 해소하는 필수적인 조건으로 ‘사회적 노동시간의 단축’ 그리고 남성의 육아휴직에 대한 인센티브에서 나아가 부모 모두에게 출산육아휴직을 의무화하고 유급화하는 방법이다. 또한 시장화된 사회서비스를 구매할 수 없는 저임금 여성 노동자가 전업가사노동을 선택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해서, 국가가 무상공공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Elgarte, 2008; 권정임, 2013). 무엇보다 돌봄의 민주화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는다면 지역 사회에 전가되는 돌봄 부담은 여성의 돌봄 부담을 가중시킬 위험이 크다. 오늘날 보건복지부의 커뮤니티케어와 여성가족부의 돌봄공동체 지원사업은 돌봄 의무를 시민사회에, 여성에게 전가할 위험이 크다. ‘돌봄’을 비롯한 사회재생산 활동을 젠더를 넘나들며 모두가 동등하게 부담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의 도입과 함께 어떤 변화가 수반되어야 할까?

프레이저는 기본소득이 사회주의적-민주주의적-페미니스트적 통치의 한 요소로서 제도화될 때 그것은 매우 변혁적일 수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기본소득이 양질의 풍부한 공공 육아와 함께 결합된다면 이성애 가구 내에서의 권력 균형을 질적으로 바꿀 수 있고, 이로써 성별화된 노동분업에 급진적인 변화의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본소득 지지자는 여성의 임금노동 또는 돌봄노동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폭력적인 가부장제와 부자유한 관계에서 탈출할 수 있는 자유를 강조하지만, 특정 사회문화적 조건과 규범틀 안에서 남성보다 여성이 (자발적으로) 돌봄/가사노동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기본소득 본연의 개인의 ‘실질적 자유’ 증진을 달성할 수 있으려면, 사회구성원 모두가 돌봄의 의무와 책임과 권리를 동등하게 분담할 수 있도록 법제도와 더불어 젠더 규범의 변화가 요구된다.

5. 나아가며

어떠한 젠더 평등한 사회상을 그리는가(유급노동과 돌봄노동의 분담구조 및 정도)에 따라 기본소득의 기능과 역할이 달라질 수 있다. 여러 논의들을 살펴본 결과, 우리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첫째, 기본소득 만으로는 상당한 젠더 평등 효과를 기대할 수 없으며, 둘째, 기본소득을 포함한 돌봄의 민주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프레이저가 가장 이상적으로 주장했던, 남녀 모두 젠더에 상관없이 유급노동과 무급가사/돌봄노동의 동등한 참여와 분배를 실현해야 한다는 ‘보편적 돌봄제공자 모델’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보다 포괄적으로 프레이저의 ‘복합적 젠더정의’ 규범에 따라 분배/인정/대표의 세 가지 차원에서의 정의가 실현될 때에만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젠더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도 동의하는 바이다.

글을 마무리 하며, 우리는 사회경제적 자유 뿐 만 아니라 사적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던 관계 맺기의 변화와 상상이 함께 불러일으키는 기본소득의 가능성을 소개하고자 한다. 페이트먼(Pateman)은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주어지는 기본소득이 소득을 고용 혹은 결혼과의 고리로부터 끊어냄으로써 특히, 여성이 남성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자본과의 관계에서 이전과는 다른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고 주장한다(박이은실 2014:18에서 재인용). 즉, 페미니스트들의 기본소득 논의가 주로 고용과 노동, 특히, 노동의 성별분업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고 지적하면서, 기본소득이 여성과 남성의 관계, 여성과 여성의 관계, 남성과 남성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논의가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박이은실, 2013).

케이시 윅스(Kathi Weeks, 2016)는 프레이저의 보편적 돌봄제공자 모형을 이어받으면서도 이를 넘어설 것을 제안한다. 프레이저의 모델은 지배적인 임금노동 담론에 근본적인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시장 노동 바깥에서의 삶을 누리기 위한 시간을 더 많이 만들어내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2012년부터 활동해 온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는 일찍이 기본소득이 “자유와 예속의 관계가 아닌 새로운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기본소득과 같이 이야기”해 왔다. “생활동반자를 찾는 밤(2019.07.05.)”, “1인가구를 위한 독립생활개론”, “우리에게 조금 먼 가족이 필요해”(2018.11-2019.04) 등의 행사에서 볼 수 있듯이, 기본소득은 생계부양(임금노동)과 돌봄제공(무급가사/돌봄노동)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여성을 억압해 왔던 노동들에서 자유로운 활동과 관계로의 변화를 추동하는, 인간 본연의 잠재적 능력을 확장할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 결론 : 기본소득을 포함한 돌봄의 민주화 지향, 보편적 돌봄제공자 모델(universal caregiver model) 지향, 3R 정책

● 토론거리

– 어떠한 젠더 평등 사회를 꿈꾸는가? 여성이 임금노동시장에서 차별을 겪지 않는 사회인가, 돌봄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인가, 남성과 여성 모두 돌봄을 제공하는 데 불이익을 받지 않는 사회인가?

– 젠더 평등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기본소득의 역할은 무엇인가?

– 실질적으로 어떠한 정책들과 함께 기본소득이 도입되어야 하는가?

– 기본소득보다 보편적 공공/사회서비스 도입이 선행되어야, 젠더 평등이 더 효과적으로 실현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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