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에서 “한국 사회의 변화 방향에 대한 청사진을 기본소득 의제를 중심으로”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기본소득 쟁점토론회”를 진행합니다. 이 쟁점토론회는 기본소득을 둘러싼 여러 이슈와 기본소득 실현을 위한 로드맵을 검토하는 자리이며, 2020년 2월부터 2021년 7월까지 진행될 예정입니다.
아래의 글은 2020년 12월 12일 <쟁점토론 11. 범주형 기본소득>을 위한 발표문(초고)입니다.

쟁점 토론 11. “범주형 기본소득” 발제문(초고)

범주형 기본소득의 의의와 쟁점

발제자: 서정희, 안효상

기본소득은 그 정당성과 (예상되는) 다양한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 내에 그리고 단번에 도입되기 어려운 정책으로 이해되고 있다. 재정적 실현가능성부터 심리적, 행정적, 행위적, 정치적 실현가능성까지 실제로 기본소득이 하나의 제도로서 자리잡을 수 있는가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되는 것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기본소득을 도입하고자 하는 특정 정치공동체의 맥락에 대입하면 사태는 더 복잡해진다. 왜냐하면 구체적으로 도입되는 기본소득 제도는 해당 정치공동체의 경제 구조 및 기존 복지 체제의 구조에 의존할 것이기 때문이다.

범주형 기본소득은 이렇게 기본소득이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는 인식에서 나온 하나의 전략이자 유형이다. 따라서 범주형 기본소득이 그 자체로 의미가 없지는 않겠지만, 기본소득의 전면적인 실시라는 맥락에서 다루어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기본소득의 여러 변종에 관한 정의, 여러 변종 사이의 관계 등을 다룬다. 이어 범주형 기본소득의 정의와 두 종류의 범주형 기본소득을 다룬다. 끝으로 범주형 기본소득이 가질 수 있는 장점과 단점을 기본소득 도입 전략이라는 맥락에서 검토한다.

1. 기본소득의 정의와 다양한 형태의 기본소득

1) 기본소득의 정의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정관 제2조에서 기본소득을 “공유부에 대한 모든 사회구성원의 권리에 기초한 몫으로서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개별적으로, 정기적으로, 현금으로 지급되는 소득”으로 정의한다.

이런 정의는 기본소득의 정당성과 분배 방식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인류 모두의 것인 자연적 기초로부터 흘러나온 수익”인 자연적 공통부와 “누가 얼마만큼 기여했는지를 따질 수 없고 어떤 특정인의 성과로 귀속시킬 수 없는 수익”인 인공적 공통부는 모두에게 속할 뿐만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개별적으로 할당되어야 하는 것이다(금민, 2020: 11). 이때 기본소득은 사전적 분배로서 사회배당이라 할 수 있다(스탠딩, 2018: 39, 46-48).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는 기본소득을 “자산조사나 근로조사 없이 모든 사람에게 개인 단위로 무조건적으로 지급되는 주기적 현금”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이런 정의에서 나오는 다섯 가지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정기성: 급여가 일시금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기적 간격으로 (예를 들어 매달) 지급되는 것을 말한다.

현금성: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이 무엇을 소비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적절한 교환수단으로 지급되는 것을 말한다. 현물급여(예를 들어 음식 혹은 서비스)나 특정 용도의 소비에 한정되는 바우처로 지급되어서는 안 된다.

개별성: 개인 단위로 지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가구 단위로 지급되어서는 안 된다.

보편성: 자산조사 없이, 모두에게 지급되어야 한다. (주석: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이러한 정의 규정은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와 입장을 달리 한다. 자산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조건성의 특징이다.)

무조건성: 노동 요구나 노동 의지를 입증하는 요구가 없이 지급되어야 한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정의 및 다섯 가지 특징은 기본소득의 현실적 의미와 지향 그리고 기본소득 실현 전략 수립에 준거점이 된다.

우선 기본소득의 ‘기본’이란 1차적으로 ‘기본적인 경제 보장’을 제공한다는 의미이다. 기본적인 경제 보장에는 소득 이외에도 주거, 교육, 의료 등의 사회서비스도 포함된다. 이렇게 보면 기본소득은 넓은 의미의 기본적 경제 보장의 일부이며, 이 중 현금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기본소득의 충분성 혹은 적정한 금액이라는 쟁점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서 다양한 입장이 있으나 앞서 말한 ‘기본적인 경제 보장’이라는 관점을 취한다면 ‘빈곤선(생활에 필요한 최소 소득 수준) 이상’의 수준이어야 할 것이다. 아래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이런 정도의 금액 이하의 기본소득을 우리는 부분 기본소득이라고 할 것이다.

‘기본’의 또 다른 의미는 기본소득을 권리로 보는 것이다. 이는 국가가 임의로 급여를 중단할 수 없다는 의미와 더불어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가지고 있는 다른 권리가 행사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권리라는 점도 드러낸다.

기본소득이 모두에게 지급된다는 의미에서 보편성은 이상적으로는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에게 해당할 수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특정 사회, 지역, 국가 등에 ‘상시 거주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국민국가의 구성원, 즉 시민에 ‘합법적 거주자’를 더한 것이다. 이런 정의는 두 가지 긍정성이 있는데, 하나는 특정 시점에 해당 사회, 지역, 국가를 실질적으로 구성하고 운영하고 참여하는 사람들을 포괄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권리로서의 기본소득이 시민의 권리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권리라는 것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기본소득이 개별적으로 지급된다는 것은 모든 구성원이 동등자라는 원칙을 표현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삶의 현실적 형태인 가구 혹은 가족과 관련해서 특정 유형을 선호하거나 차별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는 기본소득이 근대적 삶의 지향인 자율성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의 무조건성은 (지구네트워크의 정의와 달리) 자산 조사, 지출 조건, 행위 조건 등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자산 조사가 없다는 것은 현재의 소득 상황이나 재산 정도가 어느 수준 이하라는 것을 입증할 필요가 없거나 이런 상황이 자신의 ‘잘못’이나 ‘책임’이 아님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지출 조건이 없다는 것은 기본소득으로 받은 돈을 언제, 어디에, 어떻게 쓸지를 수급자의 재량에 맡긴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본소득은 현물 급여(재화와 서비스) 혹은 바우처 등과 다르다. 행위 조건이 없다는 것은 기본소득을 받기 위해 어떤 일이나 노력을 해야 하는지 등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무조건성은 기본소득 실현 전략 수립에서 제출된 범주형 기본소득과 참여 소득에 대해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준거점이 된다.

정기성은 현실의 경제적 삶에서는 매우 상식적인 것이다. 현대인의 삶은 대개의 지역에서 월 단위로 돌아간다. 하지만 경제적 삶이 월 단위로 돌아간다는 말 자체는 훨씬 더 심원한 의미가 있다. 정기성이란 경제 주체들에게 무엇보다 예측가능성을 주는 것이며, 이는 삶의 자율적 구성의 토대가 된다. 이런 정기성이 담보되기 위해서는 앞서 말했듯이 기본소득은 중단되지 않는 권리여야 한다.

끝으로 현금성은 앞서도 말했듯이 지출 조건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더해 현금성은 어느 정도 발달한(가능하면 투명한) 시장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 때문에 일부 논자들은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기존의 모든 사회 복지를 없애고 시장에서 구매하는 것으로 바꿀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듯이 기본소득은 ‘기본적인 경제 보장’의 일부이다. 서비스나 현물 형태의 보장은 그 자체로 필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기본소득은 말 그대로 소득이다(스탠딩, 2018: 41).

2) 기본소득의 이상적 형태와 과도기적 형태

기본소득의 이상적 형태는 앞서 말한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아래에서 볼 것처럼 완전 기본소득(full basic income)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인 기본소득, 특히 무조건성을 하나의 특징으로 하는 기본소득이 당장 실현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서 완전 기본소득의 요건 가운데 일부를 완화하거나 훼손한 기본소득의 변형태들이 제기되었다. 여기서는 이런 변형태들을 완전 기본소득 실현으로 가는 디딤돌 혹은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고 과도기적 기본소득이라고 부를 것이다.

(1) 완전 기본소득(full basic income)

완전 기본소득(full basic income)이라는 용어는 피츠패트릭이 가장 먼저 사용한 용어이다. 이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기본소득이 온전한 형태로 당장 실현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현실에서의 변형태를 고민할 때 이상적 형태로서의 기본소득을 변형태와 구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피츠패트릭은 완전 기본소득을 무조건적이고, 그 자체로 먹고 살기에 충분하다는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개념으로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최소소득보장(a guaranteed minimum income)제도를 의미한다고 말한다(Fitzpatrick, 1999: 36).

“먹고 살기에 충분하다”는 것은 감각적으로 명료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동물적 삶과 인간적 삶에 대한 오래된 구분(아리스토텔레스)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적 삶의 최소는 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사회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공적인 덕)부터 타인에게 사적인 지배를 받지 않는 상태(비지배 자유)까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를 염두에 두면 우리는‘최소’를 모든 사람이 동등한 지위의 시민으로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만큼 충분한 자원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완전 기본소득은 현실적 개념과 제도이면서도 공동체의 지향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2) 부분 기본소득(partial basic income)

기본소득의 정의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기본소득의 주요 원칙 중 하나는 ‘충분성’이다. 부분 기본소득(partial basic income)은 기본소득의 정의 조건과 원칙 중 ‘충분성’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기본소득이다. 피츠패트릭은 부분 기본소득을 무조건적이지만, 먹고 살기에 충분한 수준은 아닌 기본소득으로서 불충분하기 때문에 다른 급여, 다른 임금, 다른 소득원에 의한 보충이 요구된다고 규정하였다(Fitzpatrick, 1999: 36).

최근 단계별 전략으로서 기본소득의 수정안을 모두 부분 기본소득으로 통칭하는 경향이 있다. full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partial인데, 논리적으로는 타당할 수 있으나, 너무도 다양한 방식의 부분 기본소득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용된 학술적 개념으로서 기본소득의 다양한 변형태로서의 하위 범주들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판 파레이스와 판데르보흐트(2018)는 기본소득의 모든 원칙과 정의 규정을 충족시키는 기본소득이 현실에서 즉각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기본소득의 어떤 전략을 타협할 것인가에 따라 단계별 전략으로서 3가지 타협이 가능하다고 제시하고, 개별성 원칙을 타협한 가구 단위 기본소득, 보편성에 대한 타협으로서 범주형 기본소득, 충분성에 대한 타협으로서 부분 기본소득을 검토한다. 이들은 이 전략 중에서 부분 기본소득을 선호한다.

여기서 우리는 판 파레이스와 판데르보흐트를 따라 그 자체로 충분한 금액이 아닌 기본소득을 부분 기본소득이라고 부를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부분 기본소득의 하한선을 어느 정도로 설정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사회 배당이라는 관점에서는 적은 액수의 부분 기본소득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기본’소득이라는 관점에서는 의미 있는 금액도 중요하다.

(3) 범주형 기본소득

판 파레이스와 판데르보흐트는 완전한 형태의 기본소득으로 나아가기 위한 단계별 전략으로서 검토될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로서 범주형 기본소득을 제시한다. 범주형 기본소득(Categorical Basic Income)은 기본소득의 지급 대상을 몇 가지 범주의 인구 집단으로 제한하는 기본소득으로 정의한다(판 파레이스, 판데르보흐트, 2018: 360). 범주형 기본소득이 제기되는 이유는 “기본소득이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하다고 확실하게 보장해줄 수도 없으며, 단기적으로 어찌 되었든 소득세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기본소득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판 파레이스, 판데르보흐트, 2018: 359).

특정 인구 집단으로 제한되는 범주형 기본소득은 두 가지 방식의 기준이 가능하다(판 파레이스, 판데르보흐트, 2018: 360~365). 첫째 방식은 연령이다. 보편적 아동수당 제도, 보편적 기초연금, 청년 기본소득이 그 예가 된다. 특정 연령에 한정하는 범주형 기본소득은 높은 수급률, 낙인효과 없음, 빈곤의 덫 축소라는 기본소득의 장점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

두 번째 방식은 연령 범주 이외에 직업 범주에 한정하는 것이다. 판 파레이스와 판데르보흐트가 제시하는 직업 범주의 범주형 기본소득 사례는 농민 기본소득과 예술인 기본소득이다.

(4) 참여소득

참여소득(Participation Income)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활동의 수행이라는 조건을 근거로 지급되는 현금 급여로, 관대성의 수준은 매우 다양하다(Fitzpatrick, 1999: 37). 참여소득은 기본소득과 이데올로기적 기반이 명백히 다르다(Fitzpatrick, 1999: 37).

참여소득은 그 주창자인 앤서니 앳킨슨의 말처럼 [기본소득이]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그 지지자들이 타협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결론에서 나온 것으로 이때 타협하는 것은 무조건성의 원리이다(Atkinson, 1993; 1996). 여기서 타협하는 무조건성은 앞서 말한 행위 조건이며, 이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어떤 일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경제적 삶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유급고용노동 이외에 어떤 일이나 활동을 인정할 것인가라는 문제부터 인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생활 침해 등의 난제는 참여소득의 원래 취지를 자체를 무색하게 할 정도이다. 이런 이유로 가이 스탠딩 같은 사람은 “이런 아이디어[참여소득]는 잊어버리는 게 낫다”라고까지 말한다(스탠딩, 2018: 209).

이에 반해 판 파레이스와 판데르보흐트(2018)는 “순수주의야말로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최고의 비법”이라고 하면서 참여소득이 “기본소득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도록 재촉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는 참여소득을 일단 도입하고 참여라는 조건을 계속 완화시키거나 없애는 방식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들은 참여소득을 기본소득으로 가는 ‘뒷문’이라고 본다.

우리는 참여소득이 참여의 조건을 완화하거나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서 기본소득으로 가는 ‘뒷문’이 되기 전에 참여의 조건을 둘러싸고 좌초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하지만 농민 기본소득과 같이 직업에 기초한 범주형 기본소득을 도입할 경우 참여소득의 원래 취지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단 이 경우에도 농업 활동이라는 참여가 공동체 구성원 대다수가 기꺼이 인정할 만한 ‘의미 있는 활동’이라는 점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2. 범주형 기본소득의 유형과 특징

1) 범주형 기본소득의 개념과 유형

범주형 기본소득이란 ‘특정 인구 집단에게 한정된 기본소득’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는 다시 ‘특정 인구 집단’이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한국 사례에서 드러난 사용례와 선행 연구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범주형 기본소득의 특정 인구 집단은 두 가지 하위 범주가 가능하다.

첫째, 범주를 설정하는 기준이 인구학적 조건인 경우이다. 청년 기본소득, 장년 기본소득, 장애 기본소득이 그 예가 된다. 판 파레이스와 판데르보흐트의 경우 연령에만 한정하였다.

둘째, 범주 설정 기준이 인구학적 조건이 아니라 직업 범주인 경우이다. 한국 사례에서 보면 농민 기본소득, 문화예술인 기본소득, 플랫폼노동자 기본소득이 그 예이다.

그런데 직업 범주로 구획되는 범주형 기본소득의 경우 참여소득과의 구분이 문제가 된다. 농민 기본소득이나 문화예술인 기본소득, 플랫폼 노동자 기본소득은 농업, 문화예술 활동, 플랫폼 노동이라는 활동을 수행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는 전제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이라 할 때, 범주형 기본소득이 아니라 참여소득이라 명명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참여소득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기본소득의 ‘무조건성’ 원칙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적어도 참여소득이 유의미한 사회개혁 방안으로 고려되는 이유는 자산조사에 기반한 제도에서의 조건성이 인간의 수치심을 유발하는 ‘낙인효과’가 있는 방식인데 반해, 참여소득에서의 조건성은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활동’을 조건으로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낙인이 아니라 사회적 유의미성을 전제로 한다는 점 때문이다. 그런데 유의미한 ‘활동’이 아니라 ‘특정 직업’ 범주를 조건으로 제공되는 현금급여를 참여소득이라 한다면, 그 직업 자체가 통으로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활동이 되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농업, 문화예술, 플랫폼 노동이 모두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활동이라 할 수도 있다.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모든 유급 노동과 직업은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활동이 된다. 제조업은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활동이 아닌가? 서비스업은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활동이 아닌가? 이 논리가 확장되면 모든 직업을 전제로 참여소득이 가능해진다. 직업 범주 방식의 참여소득이 대안적 사회정책이 될 수 있을 것인가?

2) 범주형 기본소득의 효과

범주형 기본소득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첫째, 범주형 기본소득을 받는 집단에게 그만큼의 효과적인 소득 보장을 한다.

둘째, 기본소득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키고, 일부 집단에게 한정되지만 기본소득의 현실성 속에서 지지를 확산시킬 가능성이 크다.

셋째, 한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범주형 기본소득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기본소득 정책을 구현할 수 있는 최대치이다. 더 나아가 전국적인 기본소득제가 실시되더라도 지방의 권한과 현실에 따라 범주형 기본소득을 실시할 수 있다.

넷째, 기본소득이 보편적임에도 그 누구도 직접적인 이해 집단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범주형 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의 잠정적인 주체를 형성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아래에서 보듯이 기본소득을 받지 못하는 집단과의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측면도 있다.)

범주형 기본소득은 기본적으로 범주를 설정하고 왜 다른 범주의 사람들보다 이 범주의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가를 논증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몇 가지 문제를 동시에 발생시킨다.

첫째, 기본소득이 기존 복지 제도의 부정적 효과로 비판한 낙인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청년이건 농민이건 특정 집단에게 먼저 돈을 지급하고자 할 때, 왜 이들에게 (먼저) 그래야 하는지를 설명해야 하는데, 대개 각 집단이 더 어려운 처지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게 된다. “이럴 경우 권리로서의 복지, 권리로서의 기본소득의 원리는 뒷전으로 밀리게 되며, 기본소득 진영에서 그렇게 비판해온 낙인 효과가 뒷문으로 들어오게 된다”(안효상, 2019: 8).

둘째, 범주형 기본소득은 대상 간 차별성을 강조하는데 힘이 실린다. 대상 간 차별성의 강조는 완전 기본소득으로의 확장성 획득에 걸림돌로 작용할 개연성이 높다. 차별성이 연대성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인가? 하나의 범주형 기본소득이 다른 범주로의 확장을 통해 보편적인 기본소득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받는 범주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다른 집단의 사람들과 연대의식이 강해야 한다. 다른 집단으로 기본소득을 확장시키려고 할 때 강력한 연대 세력이 되어 주어야 가능한 전략이다. 수급을 받은 대상이 다른 대상으로 기본소득을 확대하려고 할 때 강력한 지지세력이 되어 줄 수 있을지, 함께 연대해서 움직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특히 범주형 기본소득의 수준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먼저 수급한 대상은 다음 행보는 다른 범주형 기본소득을 위한 연대가 아니라 자신의 범주의 기본소득 수준을 상향시키는 노력이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셋째, 직업 범주형 기본소득의 경우 무조건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조건성 충족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이와 관련하여 판 파레이스 등은 이렇게 지적한다. “그런 범주들에 귀속되는 것과 상당한 금전적 이익이 결부되는 순간, 누가 농부 또는 예술가의 범주에 들어갈 자격을 갖는가(해당 활동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루에 몇 시간이나 그 활동을 해야 그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가 등)를 놓고 이전투구가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판 파레이스, 판데르보흐트, 2018: 364).

넷째, 범주형 기본소득은 어떤 집단에 속하는 사람을 먼저 지원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집단 간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힐리, 레이놀즈, 2018: 186-187).

3. 범주형 기본소득과 기본소득의 실현가능성: 몇 가지 질문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입장과 정책안이 (완전한) 기본소득 도입의 준거점이 되고자 한다면, 우리의 입장과 정책안은 기본소득의 다섯 기준을 모두 만족시키는 한편 충분성도 현재 경제 규모와 동학을 감안해서 최대한 높게 잡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기본소득이 실제로 도입되고, 이를 위해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세력에 소구할 수 있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정책안을 몇 개의 시나리오 형태로 제시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완전한 기본소득으로 가는 길지 않은 시간표를 제시해야 한다.

범주형 기본소득을 이런 시나리오 속에 넣을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답해야 한다.

첫째, 인구집단(연령)에 기초한 범주형 기본소득을 도입 전략으로 설정할 경우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로 확장해 나갈 것인가?

둘째, 직업에 기초한 범주형 기본소득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출현한, 특히 농민 기본소득 도입 움직임은 어떤 가능성이 있는가?

셋째, 직업에 기초한 범주형 기본소득과 겹치는 것으로 참여소득의 현실성이 있는가?

참고문헌

금민 (2020).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서울: 동아시아.

스탠딩 가이 (2018). <기본소득>. 파주: 창비.

안효상 (2019). “불성실한 오용과 창조적 오독.” <기본소득> 3호 (겨울).

판 파레이스, 판데르보흐트 (2018). <21세기 기본소득>. 서울: 흐름출판.

힐리, 레이놀즈 (2018). “아일랜드: 아일랜드의 기본소득 경로.” 리처드 K. 키푸토 (편). <기본소득, 존엄과 자유를 향한 위대한 도전>. 서울: 나눔의 집.

Atkinson (1993). “Participation Income.” BIRG Bulletin, 16, 7-11.

Atkinson (1996). “The Case for a Participation Income.” The Political Quarterly, 67: 1, 67-70.

Fitzpatrick, Tony (1999). Freedom and Security. London: Palgrave.

Healy, S., & Reynolds, B. (2012). “Ireland: Pathways to a basic income in Ireland.” Basic income guarantee and politics. Palgrave Macmillan, 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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