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토론 6. “기본소득과 기초자산” 질의-답변
“기본소득과 기초자산” 쟁점에 대한 질의와 답변
정리: 김수연 이사
질문 1. 기초자산과 기본소득 모두를 공유부 배당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재산 소유 민주주의는 기초자산에만 적용되는 개념인가?
재산 소유 민주주의(property owning democracy)란 재산 소유로 개인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이 재산을 가질 수 있도록 평등하게 분배해야 바람직한 사회가 된다는 주장이다. 스코틀랜드 우파 정치인이 본 개념을 먼저 사용한 이후 1980년대 대처(Margaret Thatcher)와 신자유주의자들이 공공부문을 축소하고 사유화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지는 등 보수적 변형이 있어 왔다. 이러한 시각은 자산 평등을 민간 순자산의 범위 안에서만 바라본 것으로 대처의 재산 소유 민주주의는 민영화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산 소유 민주주의 개념은 재산 기초자산뿐 아니라 공유지분권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열려 있다.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은 평등한 토지의 자연적 소유권과 인공적 소유권(토지 개간 활동의 가치를 인정)하며 이중적 소유권을 주장한다. 페인이 21세 기초자산 지급과 50세 노인기본소득 지급을 동시에 주장했다는 사실은, 토지공유부라는 공통의 기초에서 기초자산과 기본소득 둘 모두 도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공유부에서 기초자산이 도출된다면 왜 특정 연령대에만 배당되어야 하는지 설명 불가능한 난점이 있다. 기초자산의 근거를 공유부에서 도출하는 것은 어려워 보이지만,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안으로 가능해 보인다. 한편 기초자산제와 유사하게 농지를 n분의 1로 분배하는 방안, 소농 중심의 새로운 생태적인 순환경제를 지향하면서, 가용할 농지를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분배하는 기본농지/기초농지 안은 적절하다.
하지만 가장 발전적인 기초자산 안을 도입한다 해도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프랜차이즈 가맹점과 같은 여러 가지를 시도하다가 금융 자본주의 수렁 속에서 소진되기 쉽다. 기초자산제는 끊임없이 자산 불평등을 완화했다가 다시 강화하는 자본주의 논리 속에서 스스로를 부정하는 운동 속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반면 공유 지분에 기초한 재산 소유 민주주의는 공유 지분을 늘려가는 것으로, 자본주의의 경쟁과 독점화라는 경제 논리 속에서 무너질 염려가 없다. 사회배당과 결합된 공유지분권 모델은 공유자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원대한 기획이다.
질문 2. 최근에는 소득 불평등보다 자산 불평등이 부의 불평등을 야기하는 더 큰 원인이라는 것이 주류 견해이다. 그렇다면 자산 불평등은 기초자산으로 해결해야 더 효과적인가?
자산 불평등이 크게 체감되는 상황에서 기본소득이 적절한 대안이 아니라는 지적에 대해 깊이 숙고해야 한다. 특히 최근 자산 불평등 문제가 극심해지면서 기본소득보다 기초자산이 대안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자산 불평등의 주요 원인은 공적 자산의 축소와 민간 부문의 확대로, 공공 부문을 늘리는 방안이 근본적인 대책이다.
한편 기초자산 분배는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 시장은 자본을 모을수록 수익이 커지는 수확 체증의 세계이다. 이러한 세계에서 자본/자산을 쪼개어 작게 분배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재산 소유 민주주의가 열등하게 기능할 수 있다. 게다가 시장은 교환이 불평등을 강화하는 메커니즘으로, 자산의 ‘평등한’ 교환은 불평등을 가져온다. 기초자산을 위한 과세는 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겠지만, 기초자산 자체를 분배하는 행위는 불평등을 야기한다.
반면 기본소득은 자산 불평등을 효과적으로 완화할 수 있다. 공유지분권에 입각한 기본소득은 확실한 대안으로, 전체 자산의 비중을 변화시킬 수 있는 현금 분배로서, 자본주의적 경제 안에서 침식되지 않는 확고한 기초를 부여한다. ‘조세형’ 기본소득의 경우 자산 분배가 아닌 소득 분배 문제만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효과를 따져보면 자산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 예시로 토지보유세-토지배당 모델은 토지자산 가격에 영향을 끼침으로써 경제적으로 큰 효과를 낼 것이다.
질문 3. 기초자산에 대판 비판으로 부정적인 탕진이 있다. 이는 기본소득에도 가해질 수 있는 비판이다. ‘탕진’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적절한가?
‘탕진’이 아니라 탕진 이후의 삶에 대한 대안이 부재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기초자산을 주장하는 입장에서 분배된 기초자산의 탕진을 막고 이를 효율적으로 운용하여 오랜 시간 삶을 영위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탕진이 문제시된다. ‘탕진’ 이후 자산 불평등이 다시 심화되는 현상은 기초자산 찬성론의 내적 딜레마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산 불평등을 심화할 수 있는 ‘탕진’을 막기 위해서 기초자산 찬성 진영은 교육, 창업, 주택 등 용처에 제한을 두고 생산적인 소비를 유도하는데 이는 사회투자국가론과 상생한다.
기초자산을 변형한 제도로 2005년 도입되었다가 2011년 폐지된 영국의 아동신탁기금(Child Trust Fund)에도 사회투자국가론이 전제되어 있다. 이는 생애주기별로 과업을 책정하여 통치하려는 국가의 가부장성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동시대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고 특정 연령대에만 지급되는 기초자산은 연령주의(ageism)에 기반한다. 세대 간의 연대성이 확실하지 않으면 기초자산의 설계는 도입시 보편성 문제에 직면하여 정치적으로 지지 받기 어렵다. 만약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미래통합당이 19~34세 청년에게 월 30만원 지급하는 청년기본소득을 제시한다면 정의당의 ‘청년기초자산제’는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 사회투자국가론
사회투자국가론은 ‘기회의 평등’을 지향하며 사회정책은 경제성장과 효율성 향상에 기여할 때에만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으로, 복지 지출은 명확한 수익을 낳는 것이어야 한다. (출처: 김영순, “사회투자국가가 우리의 대안인가?”, <경제와 사회> 통권 제74호, 2007년.)
질문 4. 기초자산에서 주장하는 재원 마련 방법으로 상속세 및 사회적 상속 개념은 유용한 것 같다. 상속세 개념을 기초자산뿐만 아니라 기본소득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인가?
상속이란 (법률 용어로) 개인 소유를 개인에게, 집단 소유를 집단에 넘기는 방식을 지칭하는 듯하다. 반면 ‘사회적 상속’은 개인의 일생 동안 이루는 성취를 시장경제의 원리에 의해서 유도하고 활성화시키는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이러한 성취의 누적이 인연을 통한 타인 또는 혈통을 통한 가족들에게 상속되는 것을 원칙적으로 배제하고 종신 과정에서 이를 사회적으로 환원하는 개념이다(이래경, “조세개혁과 사회적 상속에 대하여”, <프레시안> 2019년 3월 12일.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32233?no=232233 참고).개인의 사망 및 법인의 해산 이후 소유 대상에 지휘권(command)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에 이전해야 한다는 결론은 공유부 배당과 다른 논리이다.
한편 기초자산을 최초로 주장한 토마스 페인은 재원으로 상속세를 제안했다. 기초자산뿐 아니라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재산세, 상속세를 더 많이 걷어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세대간 계층 이동이 점점 어려워지고 세대간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상속’ 개념은 청년 세대에 유의미하게 호소하는 지점이 있다. 인류 공통 유산을 ‘상속’ 받는다는 개념으로써, 특정 연령대에 지급되는 기초자산이 아닌, 전 국민에게 단 한번에 나눠주는 보편적 기초자산제도 가능한 방안이다. 다만 ‘자산 불평등’ 현상을 자산의 분배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직관적으로 더 와닿지만, 기본소득으로 분배하는 방식이 자산 불평등 해소에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질문 5. 구체적인 액수를 제시된 정책안으로서 기초자산처럼 기본소득도 구체적인 액수를 제시하여 토론해야 할 듯하다. 나아가 기본소득은 기초자산, 공공 사회서비스 등 다른 제도간 정합성을 어떻게 모색해야 하는가?
기초자산을 주장하는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나 브루스 액커만(Bruce Ackerman)은 각각 약 1억6천만 원과 8만 달러라는 구체적인 액수를 제시한 바 있다. 2006년 구체적인 금액과 관련하여 기초자산과 기본소득 두 모델을 두고, 액커만과 알스토트(Ackerman & Alstott)가 주장하는 8만 달러에 상응하는 평생 기본소득(한화 약 40만 원)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기본소득 주장 진영에서는 판 파레이스(Van Parijs)와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이, 기초자산 주장 진영에서는 액커만과 알스토트, 르 그랑(Le Grand)이 논쟁에 참여했다. 이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수학적으로 제도의 경제적 효과를 검증하는 차원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이고 철학적인 성격이었다. 차후 기본소득과 기초자산 논쟁에서 동일한 경제적 효과를 가져오는 액수에 대한 토론이 필요해 보인다.
기초자산을 지급하고 공공서비스의 교육, 주택 등 공공서비스의 민영화 및 상품화가 유도될 수 있다는 비판은 기본소득 주장 진영에도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사회서비스 공공화에 대한 비판이 특히 기초자산 찬성론에 유효한 이유는 그들이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제한적) 용처가 교육, 창업, 주택 등 공공성으로 풀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해당 문제를 공공성을 강화가 아니라 자본주의적인 소비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은, 개인에게 문제 해결의 책임을 묻는 결과로 귀결된다. 다만 피케티는 기초자산의 용처를 제한하지 않고, 교육 공공재에 대한 접근 기회를 강조하기도 한다.
기초자산에 대한 현실적인 정책 설계는 기초자산을 구체적인 정책 공약으로 내세운 정의당의 ‘청년사회상속제’의 평가에서 출발할 수 있다. 기초자산을 기본소득의 대척점에 놓고 대립적인 관계로 상정하고 다룰 것인가? 기본소득과 기초자산의 규모를 달리하여 병행 도입하는 방안을 고민할 것인가? 기초자산과 기본소득, 참여소득과 일자리보장제 등 각각의 제도가 정초된 철학적 기반과 장〮단점을 토론하고, 제도들 간 협상과 파트너십 구축의 근거를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질문 6. 기초자산과 기본소득이 형성할 새로운 주체성의 성격은 무엇인가?
기초자산의 경우 보편적 배당이 아니라, 특정 연령층과 세대에게 지급하고 개인의 목표와 용처를 따지게 된다. 재산소유 민주주의와 공유 민주주의 등은 재산 분배의 효과와 함께 구상하는 사회의 지향점과 관련된다. 기초자산은 경제적 안정을 보장함으로써 새로운 주체성을 형성에 이바지하는가? 재산 소유 민주주의, 또는 미드가 주장하는 국가공유지분권 모델은 (시민을) 투자자 또는 지분은 가지고 있되,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 개인으로 상정하고 있는 듯하다. 또한 기초자산은 ‘탕진’ 이후의 삶의 지속성을 염두에 두고 ‘자산 운용자’로서의 주체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앞서 공유부 배당으로써 (모든 연령대에 보편적으로 분배되는) 기초자산과 기본소득이 도출될 수 있다는 것이 언급되었다. 기초자산과 기본소득을 도입하고 쟁취해 나가는 운동 자체는, 불안정한 자본주의 내 삶의 취약성이라는 공동 조건을 인지하고, 노동, 생태, 여성, 실업자, 장애인, 도시빈민, 영세자영업자, 농민, 노령자 등 다양한 주체들이 연대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에 다름아니다. 보편적 시민 개념을 확장하고, 새로운 사회화 형식의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운동 과정에서 개개인이 단순한 유권자 또는 재산 소유자로 상정하는 데서 나아가, 실질적인 정치적 주체로 성장할 수 있게 만드는 구체적인 수단에 대한 토론도 필요할 것이다.
[참고] 국가공유지분권 모델
제임스 미드(James Meade, 1989년)의 국가공유지분권 모델은 사회 전체의 주식자산의 대략 50%를 국가가 소유하는 것으로 본다. 미드는 국가는 경영권은 행사하지 않지만 배당권을 행사하여 국가공유지분권을 근거로 하여 사회 전체의 자산소득의 절반을 “사회 배당”(Social Dividend)으로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평등하게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출처: 금민, “공유부와 소유권 (I) – 공동소유의 다양한 형태와 공유부 배당의 결합 가능성”,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콜로키움 108회 발표문,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