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토론 6. “기본소득과 기본자산” 발제문(초고)
기본소득과 기본자산
발제자: 서정희 이사, 금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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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기본소득에 대한 반대 주장은 각 국면에서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기본소득 이론의 진화, 기본소득 실험의 시도 및 전개는 기본소득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역할도 담당했지만, 동시에 기본소득에 대한 반대론을 가열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기본소득과 관련된 찬반 논쟁 중 한 가지는 기본소득이 해방적 사회변혁으로서의 가장 효과적인 대안인가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한 답변으로서 자본주의 사회의 대안적 모델로서 기본소득보다 기초자산이 더 우월한 전략이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본 글은 다양한 방식으로 제기된 기초자산의 정의와 제도로서의 설계안, 이론적 근거들을 살펴보고, 이론적 측면에서 그리고 제도적 측면에서 기초자산의 타당성과 한계를 검토할 것이다. 이를 토대로 기초자산 제도를 기본소득과 병치시키는 전략을 구성할 것인지, 기초자산을 배제하고 기본소득을 기반으로 하는 전략을 모색할 것인지 검토한다.
Ⅱ. 기초자산 제도에 관한 이론적 검토
1. 기초자산의 용어와 정의
기초자산 논의 역시 기본소득 논의만큼이나 오랜 기간동안 그리고 여러 국가에서 주창되어 온 역사가 있어서 다양한 명칭으로 제안되었다. 액커만과 알스토트(Ackerman and Alstott, 1999), 에릭 올리 라이트(Wright, 2004)는 ‘사회적 지분급여’(social stakeholder grants)로, 줄리언 르 그랑(Le Grand, 2006)은 ‘데모그란트’(demogrant)로, 세드릭 샌드퍼드(Sandford, 1969)는 ‘부의 자본세’(negative capital tax)로, 앳킨슨(Atkinson, 1972; 앳킨슨, 2015)과 피게티(Piketti, 2014;, 2020)는 ‘자본 배당’(capital endowment)으로, 쿤리페와 어레이거(2003년), 화이트(White, 2011; 2015)는 ‘기초 자본’(basic capital)으로, 본치(Bonciu, 2020)는 ‘기초 자산’(basic asset)으로 다르게 부르고 있지만, 이 제도들의 제도적 구상은 일시금 방식의 자본 배당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논의 초기에는 사회적 지분급여로 명명되었으나 최근 기초자산이나 기본자본이라는 이름이 더 많이 사용된다. 이를 제도로 주장하고 있는 정당인 정의당이 이 제도를 ‘기초자산’으로 명명하고 있으므로, 본 글에서는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모든 제도를 기초자산이라 칭한다.
2. 기초자산 제도의 설계안
기초자산 제도를 최초로 제기한 토마스 페인을 제외하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안으로서 제안된 기초자산 제도는 액커만과 알스토트가 제안한 사회적 지분급여(stakeholder grants, 이하 기초자산)라 할 수 있다. 이 제도는 모든 시민들이 21세가 되었을 때 4년에 걸쳐 매년 2만 달러씩 총 8만 달러를 지급하여 이 급여로 청년기의 대학교육이나 창업을 가능하게 하거나 자녀를 키우거나 연금으로 전환하여 노년기를 보장하려는 제도이다(Ackerman and Alstott, 1999). 원칙적으로 액커만과 알스토트는 용처를 예시하고 있지만, 그 용처에만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고, 기초자산 소유자는 ‘자유롭다’고 언급한다(Ackerman and Alstott, 1999: 11). 유일한 책임은 사망 시 사회적 지분을 이자를 더해서 회수하는 것이다. 다만 21세에 80,000 달러라는 목돈을 잘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을 담보하기 위해 몇 가지 자격조건을 부과한다. 첫째,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한다는 것인데, 만약 고등학교 졸업장을 획득하지 못했다면 사회적 지분급여의 이자만큼을 기본소득과 같은 형태로 받게 된다. 둘째, 범죄경력이 없어야 한다(Ackerman and Alstott, 2006a: 45).
영국에서 기초자산 제도의 대표적 주창자는 르 그랑과 니산으로 이들은 페이비언 협회(Fabian Society)의 16페이지의 팜플렛을 통해 이 제도를 최초로 주장한다. 르 그랑과 니산(Le Grand and Nissan, 2000)의 주장은 액커만과 알스토트의 주장에 비해 1년 늦게 영국에서 제시되었는데, 모든 18세 사람들에게 1만 파운드의 데모그란트를 ‘자산 및 교육비 적립 계좌’(ACE, Accumulation of Capital and Education)로 지급한다. 이 계좌는 신탁관리자(trustees)가 관리하고, 신탁관리자들은 사람들이 자본 인출의 용도를 밝히는 특별 계획을 승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개인은 신탁관리자가 정의한 승인된 목적에 지출할 때만 계좌 인출을 할 수 있다. 더 높은 수준의 교육, 더 많은 교육, 집세를 낮추기 위한 지출, 소기업 창업 비용, 연기금 시작 등이 목적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기초자산 제안은 수정된 형태로 영국에서는 아동신탁기금(Child Trust Fund, CTF) 제도로,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개인발달계좌(Individual Development Accounts, IDAs) 제도로 도입되었다. 영국의 아동신탁기금 제도(UK Treasury, 2001a; 2001b)는 모든 18세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태어났을 때 400파운드, 5살, 11살, 16살 생일에 250파운드를 적립하는 제도로 설계되었다. 빈곤선 아래의 가구의 아동은 800파운드까지 받을 수 있으며, 아동이 18세가 되기 전까지는 신탁 기금의 인출은 불가능하다. 18세 이후에는 사용에 대한 제한이 없고, 부모와 아동에게 재정 교육을 제공한다. 2005년 1월 제도가 시행되면서 계좌 개설 시 250파운드, 7세에 추가 50파운드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도입되었다. 2011년 아동신탁기금은 폐지되었고, 그 대체 제도로 주니어 개인 저축 계좌(Junior Individual Savings Accounts, Junior ISA)로 대체되었다. 여러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개인발달계좌는 저소득층 가구의 아동을 위한 계좌로 부모와 정부가 매칭으로 적립하는 제도다.
한국의 경우 정의당의 청년사회상속제와 청년기초자산제가 제안된 바 있다.
기본소득과 기초자산 제도의 혼합 방식의 제도가 제안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는 화이트(2006)는 기본소득과 기초자산이 각각의 장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기간 제한형 기본소득인 한시적 시민수당과 기초자산의 혼합 모델을 제안한다. 화이트가 제안한 한시적 시민수당은 노동능력 조사나 자산조사 없이 인출할 수 있는 수당으로 정해진 기간동안만 받을 수 있도록 예를 들어 경제활동 연령에 최대 2만 파운드를 인출할 수 있는 시민수당을 설정하고, 일년에 최대 8천 파운드 한도 내에서 인출하도록 제안한다. 동시에 3만 파운드의 기초자산을 제안하고 있는데 이는 교육, 직업훈련, 창업 등의 목적에 사용할 수 있도록 제안한다(화이트, 2006).
<표> 기초자산 모델 비교
주 *: 앳킨슨, 앤서니 (2015)은 금액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음. 다만 르 그랑의 1만 파운드를 위해서는 현재의 상속세 구조에서는 5천 파운드 자본 배당밖에 안 되므로 새로운 조세구조를 제안하고 세율을 대폭 높일 것을 제안하고 있음.
3. 기초자산의 제기 배경 및 목적
1) 자산 불평등 심화, 자산 재분배
1980년대 이후 소득 불평등의 심화, 자산 불평등의 심화에 대한 주장은 차고 넘친다. 특히 부의 불평등 중 소득불평등보다 자산불평등 문제가 부의 불평등 문제에서 더 큰 요인이라는 것은 주류적 견해가 되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전체 부에서 소득의 비중보다 자산의 비중이 높아지면, 자산 불평등이 소득 불평등보다 부의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수 있다.
둘째, 자산 불평등은 소득 불평등에 영향을 미친다. 소득 불평등이 자산 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방향도 존재하지만, 전체 부에서 자산의 규모가 커지면 금융소득이나 부동산 임대 소득 등의 자산 운용으로 발생하는 소득이 커지게 되고, 이것은 다시 소득 불평등으로 연결된다.
전 세계적으로 자산 불평등 문제는 전체 부에서 임금소득 분배율의 축소와 자산의 확대라는 측면도 존재하지만, 자산 불평등 정도가 소득 불평등 정도보다 더 심각하다는 문제도 존재한다(알바레도 외, 2018). 자산 불평등의 심화는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기초자산 주창자들의 공통점 중 한 가지는 모두 자산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시정으로서 기초자산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자산 불평등이 왜 문제인가에 대한 접근은 차이가 있다.
르 그랑(Le Grand, 2006: 124~125)은 자산 소유가 서구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영국에서 매우 불평등한데, 이에 대하여 자산 기반 평등주의(asset-based egalitarianism)에 근거하여 문제제기한다. 자산 기반 평등주의가 필요한 이유는 자산 소유라는 것이 행위자의 행위능력(capacity)에 기여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자산 소유는 개인에게 더 많은 경제적 독립성을 주고, 인생의 부침(vicissitudes)을 무사히 헤쳐나가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의 결정에 덜 휘둘리게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관찰된 불평등의 어떤 점은 연령과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성인기를 시작하는 시기에 자산을 분배하는 기초자산으로 연결된다.
불평등 완화 자체에 집중. 앳킨슨(2015)의 기초자산. (이 부분은 추후 보완함.)
2) 공통의 유산
기초자산을 주창자들 중 일부는 ‘부’(wealth)는 공통의 유산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르 그랑은 이 점을 명확하게 지적한다.
“출생 때 혹은 성년의 나이가 되었을 때 보편 급여를 지급해야 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선진국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공통의 유산(common inheritance), 즉 건물 및 기타 물리적 인프라, 교통 수단, 자본 설비(capital equipment) 및 농업 토지를 포함한 일련의 자본 자산에 대한 지분의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공통의 유산 대다수는 이전 세대의 노동과 노력의 결과이며, 그 구성원은 사실상 다음 세대에 부의 선물을 제공하기 위해 함께 싸워 왔다. 이러한 유산으로 인해 대부분의 선진국 거주자들은 현재 부유할 수 있는 것이다. 수세기에 걸쳐 막대한 자본 축적이 없었다면, 현재 세대만의 노력으로 우리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현재의 생산 수준을 창출할 수 없었다.” (Le Grand, 2006: 132)
“한 세대의 부가 다음 세대에게 공통의 자산이라는 아이디어는 중요하다. 부를 창조해 온 개인들이 그들의 자식 (세대)에게 모두 무상으로 이것을 제공해야 한다. 소유는 자원에 관한 개인적 지휘권(command)을 제공하지만, 사후에도 자원에 관한 지휘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정당화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많은 사람들을 위한 삶의 기회가 자본 창출을 위한 접근 부족으로 인해 감소될 때 더욱 그러하다. 사람이 그들의 노력만으로 소득 혹은 이윤으로서 상속된 부에 대한 더 많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어떻게 주장할 수 있는가? 보편적 데모그란트로 실행하자는 우리의 제안처럼 우리의 국가적 유산(patrimony)에 대한 권리가 더욱 평등하게 분배된다면, 이것은 더 공정하게 간주될 것이다.” (Le Grand, 2006: 132)
액커만과 알스토트 역시 기초자산과 기본소득이 둘 다 모든 개인에게 사회적 유산을 제공하는 제안임을 밝히고 있다(액커만과 알스토트, 2006a: 44). “기초자산과 기본소득과 같은 보편적 프로그램들은 과거 세대가 달성한 업적들 속에 개개 시민들의 몫이 권리로서 존재한다고 가정한다”(액커만과 알스토트, 2006a: 45).
기초자산 주창자들은 기본소득과 기초자산이 공통부의 분배라는 동일한 인식에 기반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 공통부를 분배하는 방식에서는 기초자산과 기본소득은 분절된다.
3) 거시 자유
액커만과 알스토트는 매월 소액을 지급하는 방식의 기본소득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기초자본에 대해 시민들의 지분탕진을 문제시하고 있지만, 이러한 비판은 결국 모든 시민을 한정치산자로 간주하는 것이라 비판한다(액커만과 알스토트, 2006a: 47~48). 또한 대부분의 청년들이 인적자원 개발이 필요한 21세의 고등학교 졸업생이 숙련 교육을 위해 2만 달러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 하에서는 이 돈을 모으기 위해 4~5년을 기다려야 하고, 아이를 갖고 싶고 양육책임을 분담하고자 하는 신혼부부가 기초자산으로 주택에 투자하고 임금 노동시간을 줄이고자 하는 삶을 기본소득 하에서는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젊은 청년들이 삶에 대한 장기적 안목을 갖게 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비판한다(액커만과 알스토트, 2006a: 48).
“비록 매달 400달러는 단기적인 재정적 위기를 극복하게 할 것이지만, 그 액수는 너무 작아서 그들이 수십 년을 내다볼 실질적인 자유를 얻게 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인생을 선택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반면에, 기초자산은 자신들의 삶을 개척해 나가도록 한다. 8만 달러를 은행에 넣어두고, 청년들은 어떻게 그들의 목표와 능력을 펼칠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단기적으로 사고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액커만과 알스토트, 2006a: 48)
액커만과 알스토트(2006a: 48-50, 56-58)에 의하면 청년기에서 성인기로 전환하는 시기는 대학교육이나 창업 혹은 주택마련 등 일시적으로 목돈이 필요한 시기이고, 이러한 투자는 한 개인의 성인기를 다르게 만들 수 있다. 기본소득과 같은 매달 적은 돈을 지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목돈을 지급함으로써 교육기회 획득이 가능해지고, 목돈이 소요되는 기회에 대한 가능성을 높이고, 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출발선을 제공하는 기회의 평등을 증진시키고, 자산 재분배를 가능하게 한다. 액커만과 알스토트(2006b)는 이를 ‘거시 자유’(macro freedom)로 명명한다.
4) 재산소유 민주주의
기초자산에 대한 논구는 재산 소유 민주주의의 평등주의 유형(White, 2015; 2011)으로부터 기본소득보다 더 많은 지지를 받는다.
5) 자본주의 소유권 변화
기초자산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은 기본소득 주창자들의 스펙트럼만큼이나 넓다. 자유주의에 기반해서 기초자산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거시 자유의 증대를 주장하기도 하고, 재산소유 민주주의론과 결합하여 사적 소유를 인정하되 소유의 민주화 수단으로서 기초자산을 접목시킨다. 또 다른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기반은 사회주의이다. 자본주의에서의 소유권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변화시킬 방법으로서 기초자산을 고려한다.
후자의 대표적인 주창자인 피게티는 ‘자본과 이데올로기’라는 저서에서 1980년대 이래로 진행되어 온 초불평등주의(hyper-inegalitarian)는 정해진 운명이 아니므로, 정의로운 소유권에 기반한 21세기 새로운 참여 사회주의로 나아갈 것을 제안한다(Piketty, 2020: 966~967). 피게티가 제안하는 21세기 새로운 참여 사회주의 요소는 정의로운 소유권(자본에 대한 진정한 사회적 소유 제도화, 기업 내 권력 분배), 영구적 사적 소유권을 일시적 사적 소유권으로 전환, 누진적 소득세, 보편적 기본소득, 교육 정의 등이다.
자본주의와 사유재산제를 초월하여 참여 사회주의를 이루기 위한 2가지 조치를 제안하는데, 이 중 한 가지가 대규모 재산에 대해 매년 누진적 재산세를 부과하여 보편적으로 기초자산을 배당하는 것이다(Piketty, 2020: 971~972). 연단위 누진적 재산세와 상속세를 통해 국민소득 5%(4%는 연단위 재산세로, 1%는 상속세)에 해당하는 규모로 재원을 마련하고, 평균 상속 자산(중위 자산이 아님)의 60%에 해당하는 자본 배당(선진국의 경우 1인당 12만 유로, 한화 1억 6천만 원)을 25세의 모든 청년들에게 보편적으로 실시하여 자본주의의 사적 소유권 자체를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한시적인 소유권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Piketty, 2020: 981~982).
피게티는 보편 배당을 위한 조세 체계로서 3가지 누진세를 제안하는데, 연단위 누진적 재산세(a progressive annual tax on property), 누진적 상속세(a progressive tax on inheritances), 누진적 소득세(a progressive tax on income)를 통한 기초자산과 기본소득 및 사회보장제도의 실현을 제시한다. 피게티는 각 재원에 따라 연단위 누진적 재산세와 누진적 상속세는 국민소득의 약 5%(4%는 연단위 재산세로, 1%는 상속세)에 해당하며, 이는 모두 자본 배당의 재원으로 사용하고, 국민소득의 약 45%에 해당하는 누진적 소득세(사회보장세와 누진적 탄소세 포함)는 기본소득과 사회국가의 재원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Piketty, 2020: 981~982).
참고로 피게티는 기초자산은 25세 청년 모두에게 지급하는 방식을 제안하면서도,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보편적 기본소득’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전체 인구의 30%에게 적용하는 방식으로 설계하고, 다른 소득이 증가하면 기본소득 급여가 줄어드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Piketty, 2020: 1000~1003).
<표> 피게티의 누진적 조세 체계 예시
Ⅲ. 기초자산 이론적 쟁점
1. 기초자산은 자산불평등을 완화하는 우월한 대안인가?
피게티를 포함한 여러 학자들이 작성한 「세계 불평등 보고서」는 자산 불평등의 주요 원인으로 공공 순자산의 축소와 민간순자산의 증가를 꼽는다(알바레도 외, 2018). 민간순자산의 증가가 자산불평등의 원인 중의 하나라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러한 사실은 민간순자산 비중을 자산불평등을 해소할 경로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기초자산은 민간순자산 비중을 줄이는 방안이 아니라 민간순자산의 내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안일 뿐이다. 문제는 민간순자산 비중을 줄이는 방안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법률적 공적 소유의 확대는 민간순자산의 비중을 줄이겠지만 소득불평등의 해소로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공적 소유 그 자체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소유가 아니라 국가나 지자체의 소유이므로 기본소득 재원이 되어야 한다는 내적 필연성이 없다. 공적 소유의 수익은 국가나 지자체의 재량적 처분에 따라 사용될 뿐이다. 따라서 법률적으로 공적 소유를 늘려간다고 하더라도 동시에 수익을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무조건적 개별적으로 분배하는 공동소유의 성격을 부여함으로써 공적 소유 비중의 증대가 자산불평등만이 아니라 소득불평등의 완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설계할 필요가 있다. 미드의 국가공유지분권 구상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Meade, 1989; 1993 [1964]; 1995). 공동소유형 기본소득 모델이나 공유지분권형 기본소득 모델은 민간순자산 비중을 줄여 자산불평등 완화에 기여하면서도 소득불평등 완화에도 동시에 기여한다.
2. 공유부의 분배
공통의 유산이라는 문제의식은 기본소득의 근거로서의 공유부 분배와 맥을 같이 한다. 그런데 기초자산과 기본소득의 문제의식은 현 세대가 누리고 있는 부가 현 세대만의 개별적 노력의 산출물이 아니라 이전 세대로부터 내려온 공통의 유산에 힘입은 바 크다는 동일한 인식에서 출발함에도 불구하고 그 공유부의 분배 방식에 대해서는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3. 자본주의 침식, 새로운 주체성 형성
기초자산은 기본소득과 더불어 자본주의 계급 관계에서의 권력 불평등을 부분적으로 완화시켜 계급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전략으로 꼽힌다(라이트, 2006). 기초자산은 그 자산의 액수가 기업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다면 노동자가 스스로 생산수단을 획득할 수 있고, 이는 생산수단을 얻기 위해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의존성을 깨뜨릴 수 있다(라이트, 2006). 기본소득은 검소하지만 적정 수준에서 살 수 있는 급여를 매월 지급함으로써 생산수단을 통해서가 아니라 생존수단 자체와 사람들을 결합시킴으로써 자본주의 계급 관계 내의 권력 불균형에 도전한다(라이트, 2006).
라이트(Wright, 2015: 433-434)는 자본주의가 부정의한 체제라 전제하고, 전통적인 자본주의 전환의 논리는 2가지였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자본주의 ‘박살내기’(smashing capitalism) 전략으로 혁명적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취한 자본주의 파열전략(ruptural strategies)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 ‘길들이기’(taming capitalism) 전략으로 전통적 사민주의가 추구한 자본주의와의 공생전략(symbiotic strategies)이었다는 것이다. 전자는 이제 신뢰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후자는 파열전략보다 더 그럴듯하지만 자본의 세계화와 금융화로 인해 그 효과성이 훼손되었다고 평가한다.
주목받고 있는 세 번째 전환 논리는 자본주의 ‘침식하기’(eroding capitalism) 전략이다(Wright, 2015: 435). 자본주의 경제 내부의 공간과 균열 속에 해방적 대안을 건설하고, 이러한 공간을 방어하고 확장하기 위한 투쟁 전략이다. 이러한 간극 전략(interstitial strategies)의 전제는 모든 경제 시스템은 실제로 다양한 종류의 경제 관계, 관행, 제도의 복합체라는 것이고, ‘자본주의 경제’라는 것도 자본주의가 지배적이지만 모든 종류의 비자본주의적 경제 조직과 활동도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공소유 조직, 노동자소유 협동조합, 비영리 조직,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조직들은 민주주의적 평등주의 원칙(democratic egalitarian principles)에 따라 조직된 대안 경제의 벽돌(구성 요소)로 볼 수 있다. 간극 전략이 제안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자본주의는 변환될(침식될) 수 있고 이러한 비자본주의적이고 민주적이며 평등주의적 형태의 경제생활을 계속 확장함으로써 보다 해방적인 대안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라이트(Wright, 2004; 라이트, 2006)는 액커만과 알스토트의 기초자산이 자본주의 계급 관계의 권력 불균형에 미치는 영향이 미비할 것으로 예측한다. 첫째, 일부 기초자산 수급자는 기초자산 급여를 단기 소비에 사용할 것이다. 기초자산은 사람들이 자기 미래를 책임질 기회를 가져야 하며 기초자산이 이 기회를 상당히 평등하게 만들 것이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기초자산을 단기 소비에 사용하여 급여를 소진했다 하더라도 출발선 평등이라는 목표는 훼손되지 않을 것이고, 이로 인해 기초자산이 계급 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약화될 것이다.
둘째, 소기업은 대부분 일 년 이내에 사업을 접는다. 기초자산으로 사업을 시작할 젊은 사람들의 성공률이 스스로의 저축으로 소기업을 시작한 사람들의 현재 성공률보다 높을 이유는 없다. 오히려 경험 부족 때문에 실패율은 더 높을 것이고, 그렇다면 기초자산으로 소규모 사업을 시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할 것이다. 실패할 기회 역시 시장경제에서 경쟁할 기회의 고유한 특징이다. 하지만 실패의 가능성은 기초자산이 계급 관계에 미칠 영향의 범위를 제한한다.
셋째, 소기업이 성공한다고 해도 이들은 신용시장이나 프랜차이즈ㆍ협력업체(suppliers)ㆍ도급계약(subcontractors) 등의 계약관계로 인해, 대부분 자본에 종속된 여러 가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상황의 소기업 자영업자가 보통 노동자와 똑같은 상황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자영업을 하게 되면 대부분 어느 정도 실제로 자유롭다. 그러나 많은 사람에게는 자영업을 한다해도 생계가 달린 자본과의 권력 관계에서는 미미한 변화가 있을 뿐이다.
더 나아가 기초자산이 사회적 잉여에 대한 사용처를 이전하는 것인데, 대안적인 경제, 비자본주의적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라이트(Wright, 2015: 435~437)는 교육, 주택, 소규모 사업 등의 사용처는 시장 중심성을 강화할 것이고 자본주의 재생산을 강화할 것이라고 답한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자본주의 침식과 새로운 주체성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기초자산보다 기본소득이 더 우월하다는 점은 라이트의 저작들(Wright, 2004; 라이트, 2006; Wright, 2015)에서 잘 드러난다. 라이트는 2004년 논문과 2006년 저서에서는 기본소득이 고용 관계에서의 ‘탈출 옵션’(exit option)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관계 내의 성격을 직접적으로 변환시킬 수 있음을 강조한다.
“첫째, 기본소득이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탈상품화된 형태의 생산활동, 즉 시장 지향적이지 않은 생산활동에 관여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하고 싶어 하지만 시장이나 공공기관에 의해 잘 조직되지 않는 활동이 있다. 대표적으로 돌봄 노동. 예술, 정치, 다양한 커뮤니티 서비스 등도 기본소득에 의해 촉진될 수 있다. 기본소득은 사람들이 고용관계에 진입하지 않고도 이런 종류의 활동을 하기로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이런 식으로 계급 관계 내에서 힘의 균형에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Wright, 2004: 83).
“둘째, 여전히 일반적인 자본주의적 고용관계에 진입하는 사람들에게 UBI는 노동자의 집합적 조직이 없는 상황에서도 노동과 자본의 힘의 대칭성에 기여할 것. 특히 저숙련, 저임금 노동자에게. 이들은 저임금과 열악한 근로환경으로 고생하는데 UBI가 제공하는 실질적인 탈출옵션은 고용주와의 협상력을 높일 것임. 물론 저숙련 일자리가 사라짐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많은 저숙련 노동자들은 소박한 UBI 수준 이상의 소득을 원할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일자리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잠재적 노동자가 여전히 있을 것. 차이점은 그러한 일자리의 속성이 결정되는 힘의 균형이 노동자쪽으로 이동된다는 것.” (Wright, 2004: 83).
“셋째, UBI는 단지 개별 노동자의 권력(leverage)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집합적 힘(collective strength)의 증대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기여. 노동계급 조직 형성의 맥락을 결정하는 하나의 요인은 노조가 고용주의 문제해결을 돕는 정도임. 노조 조직률(union density)에 대한 논의에서 살펴보았듯이, 자본주의는 높은 노조 조직률이나 낮은 노조 조직률에서 가장 잘 작동. 높은 노조 조직률이 고용주에게 유리한 경우는 노동시장이 만성적으로 타이트(tight)할 때임. 이 경우 고용주는 다른 기업의 근로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임금 인상의 문제에 직면. 개별 노동자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임금 인상이 단기적으로 좋겠지만 임금이 생산성보다 빠르게 상승하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고 노동시장의 불안정으로 이어짐. 이때 강력한 노동운동은 안정적인 경제 환경을 대가로 고용주와 노동자에게 임금 억제를 강제할 수 있음. UBI는 타이트한 노동시장과 동일한 압력을 행사하여 고용주가 높은 노조 조직률에 보다 수용적이게 만듦.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더 쉬운 출구옵션을 갖게 되면 고용주는 노동자 조직과 새로운 형태의 집합적 협력(collective cooperation)에 동의하게 됨. 이러한 집합적 협력은 ‘고진로’ 자본주의(high road capitalism)의 한 요소. 고도 자본주의는 노동과 자본이 노동, 생산, 혁신의 설계 및 규제에 대해 훨씬 더 긴밀하게 협력하는 자본주의 모델. 만약 이러한 긴밀한 협력이 안정적으로 제도화된다면 자본주의 계급 관계 내에서 힘의 상대적 평등화에 기여할 것. 이처럼 UBI는 높은 수준의 협력적 평형을 실현가능하게 하고 힘의 균형을 노동자 쪽으로 이동시키게 됨.” (Wright, 2004: 83~84).
2015년 논문에서는 기본소득이 기초자산에 비해 비자본주의적 형태의 시장 활동 가능성, 새로운 주체성 형성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된다.
“첫째, 모든 성인에게 지급되는 빈곤선 이상의 정기적이고 보장된 무조건적 기본소득은 자본주의 노동시장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변환을 구성함.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는 생산수단으로부터 따라서 생존수단으로부터 분리됨. 이러한 이중 분리(double separation)=프롤레타리아화(proletarianisation). 결국 노동자는 생계를 위해 생산수단 소유자에게서 고용을 찾음= ‘프롤레타리아의 비자유’(proletarian unfreedom). ⇒ UBI는 모든 사람들에게 생산수단의 소유 없이 생존수단 제공. 이는 급진적인 노동력의 탈 프롤레타리아화 그리고 자본주의 계급관계의 부분적인 변환을 구성함.” (Wright, 2015: 435~436)
“간극적 변환(interstitial transformations)의 가능성 측면에서, UBI는 자본주의적 고용에 ‘no’라고 말하고 자신의 에너지를 대안적 경제 활동에 쏟을 자유를 줌. 비시장지향적(nonmarket-oriented) 경제활동의 주요 제약사항 중 하나는 생계유지의 어려움. ⇒ UBI는 기본소득을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이 탈상품화된 대안적 경제형태에 더 관여하게 만들고 비시장, 비국가 부문을 확대하게 만듦.” (Wright, 2015: 436)
“또한 UBI는 비자본주의적 형태의 시장활동(certain noncapitalist forms of market activity)의 가능성을 높임. 노동자 소유 협동조합(worker-owned cooperatives)을 보자. 이들 협동조합의 주요 제약사항 중 하나는 전통적인 신용시장에서 대출을 받기가 어렵다는 것. 노동자들은 주로 담보물이 없고 따라서 대부분의 중소기업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사업도 위험하다는 사실을 반영. 게다가 노동자는 먹어야 하고 저축이 없는 경우 협동조합은 처음부터 수익을 창출할 필요가 있음. 이 모든 것이 신용도를 떨어뜨림. ⇒ UBI는 노동자 소유 협동조합의 신용거래를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데, 협동조합으로부터의 시장 소득과는 무관하게 기본적인 생존 욕구가 충족되어 주어진 사업계획을 보다 실행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 (Wright, 2015: 436)
“마지막으로 UBI는 모든 종류의 행동주의(activism)와 정치적 참여에 대해 기본 보조금(basic subsidy)을 제공. 장기적으로 자본주의 지배의 침식을 위해서는 아래로부터는 간극전략을 통해 제도 구축(building)의 노력이 계속되어야 하고, 위로부터는 공생전략을 통해 새로운 국가 이니셔티브가 있어야 함. 두 가지 모두 커뮤니티 내에서 그리고 보통의 정치 내에서 정치활동가들의 지속적인 참여를 필요로 함.” (Wright, 2015: 436)
“전체적으로 UBI는 상당한 양의 사회적 잉여를 자본축적에서 사회축적으로 이전하는 메커니즘으로 이해할 수 있음. 보장할 수는 없지만 UBI는 대안경제의 벽돌을 만드는 데 필요한 인간활동에 자금을 제공.” (Wright, 2015: 436)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생태 사회로의 전환 속에서 기본소득을 논의하는 이유 중 하나는 “생태 사회로의 전환은 삶의 태도의 변화 혹은 새로운 주체성의 형성을 요구하는 것인데, 기본소득이 이를 위한 물질적 토대를 마련해줄 수 있다는 것”(안효상, 2020: 54-55)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본소득은 노동자 중심성을 탈피함으로써 그 운동을 추동할 주체가 없고, 운동을 추동할 세력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기간의 비판(윤홍식, 2017)은 순서가 틀렸다. 기본소득이 있어야 자본주의 계급관계의 침식과 새로운 주체 형성이 가능한 것이다.
4. 재산 소유 민주주의론의 의미와 한계
현대 정치와 정치철학의 맥락에서 ‘자산 소유 민주주의’ 개념을 먼저 들고 나온 쪽은 미드와 같은 자유사회주의나 롤스와 같은 정치적 자유주의 쪽이 아니다. 1923년에 스코틀랜드 보수정치인 스켈톤(Noel Skelton)이 ‘자산 소유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사용한 이후 보수적 변용이 존재했으며 1980년대의 대처(Margaret Thatcher)와 신자유주의자들은 공공부문의 축소와 공공재의 사유화를 ‘자산 소유 민주주의’라고 불렀다(Jackson, 2012: 38〜40, 47). 이러한 보수적 변용 및 신자유주의적 변용으로 ‘자산 소유 민주주의’는 미드나 롤스에게 나타나는 고유한 관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초자산인가 기본소득인가의 맥락에서 ‘자산 소유 민주주의’를 논할 때 우파적 변용과 좌파적 변용의 차이가 중요한 논점은 아니다. 정작 중요한 점은 ‘자산 소유 민주주의’ 개념이 기초자산이나 공유지분권적 기본소득의 두 가지 실현 형태에 대해 열려 있으며, 두 가지 중에서 어떤 것을 택하게 되는가는 ‘자산 소유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와 관련된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롤스(Rawls, 2001: 140)는 미드로부터 ‘자산 소유 민주주의’를 물려 받았지만 기본소득을 찬성하지 않았다.
이러한 차이는 ‘자산 소유 민주주의’의 원형적 틀이 갖춰진 18세기 정치철학의 두 가지 뿌리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불평등 기원론』(Discours sur l’origine et les fondements de l’inégalité parmi les hommes, 1754)에서 루소는 사유재산제도를 인간 본성이 타락하게 된 원인으로 보았다. 아울러 루소는 모든 것이 공유였던 자연상태로 복귀할 수 없는 이유를 인간 본성의 타락에서 찾았다(Roussea, 1754: 161, 203). 사회계약으로 탄생하는 국가는 사유재산제도가 초래한 자산불평등을 치유하는 목적을 가진다. 따라서 루소의 자산 소유 민주주의는 자산이 대체적으로 평등하게 분배되는 상태를 지향한다(Spitz, 2016).
반면에 페인은 “평등은 때로는 오해되었고, 때로는 과잉 강조되었으며, 때로는 침해되었다”고 말한다(Paine, 1969[1796]: 606). 극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는 ‘자연적 소유’에 관한 평등뿐만 아니라 개간에 의한 ‘인공적 소유’의 불평등도 옹호한다. 이와 같은 이중적 목표에 의해 토지에 대한 자연적 소유권과 인공적 소유권을 엄격히 구별하고 자연적 소유권에 입각한 공통부 배당 개념을 설계한다(Paine, 1969[1796]: 611〜613).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페인의 해결이 자연적 소유와 인공적 소유의 이중적 소유권론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루소의 ‘자산 소유 민주주의’는 사유재산권을 가능한 한 평등하게 분할할 것을 목표로 한다. 누구나 일정 수준의 기초자산을 보유하며 여기에 더하여 소유권 상한이 설정되어 있는 사회는 루소 식의 ‘자산 소유 민주주의’에 들어맞는다. 반면에 페인의 ‘자산 소유 민주주의’는 법률적으로 보호되는 ‘인공적 소유’의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토지와 같은 공통부에 대해 ‘자연적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페인은 이러한 근거로부터 나오는 두 종류의 배당권, 즉 한편으로는 사회적 지분급여, 다른 한편으로는 노인기본소득과 같은 권리를 논증한다. 미드는 페인에게는 ‘자연적 소유’와 ‘인공적 소유’로 이중화 되어 있는 소유권 구조를 공유지분권이라는 소유형태의 내적 구성요소로서 결합시킨다. 국가가 상장 주식의 50%를 소유하되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무조건적 개별적으로 배당하는 방식의 국가공유지분권 모델이 그것이다.
기초자산제에서는 민간순자산의 더 평등한 분배라는 측면이 강조된다. 하지만 경쟁의 격화와 독점화라는 자본주의의 역사 속에서 기초자산제와 결합한 방식의 ‘자산 소유 민주주의’는 관철될 수 없었다. 반면에 공유지분에 기초한 ‘자산 소유 민주주의’는 민간자산과 공유자산의 비중을 변화시킴으로써 자산불평등을 해소하며 이러한 과정이 관료기구의 비대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모두에게 기본소득으로 수익을 배당함으로써 소득불평등 해소에도 기여한다. 페인의 ‘자산 소유 민주주의’는 18세기의 ‘자산 소유 민주주의’가 17세기로부터 물려받은 ‘소유 개인주의’의 틀을 벗어나 ‘공유자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도정에 놓여 있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공유권과 사회배당을 민간주식자산에 대한 지분권으로 구체화한 미드는 현실의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자산 소유 민주주의’가 실현될 가능성을 타진함으로써 사회배당과 결합된 공유지분권 모델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공유자 민주주의’ 기획을 소유권적 차원에서 완성시켰다고도 말할 수 있다.
Ⅳ. 기초자산 제도 설계와 관련된 쟁점
1. 급여 탕진, 급여 소진, 그 이후의 삶
기초자산에 대한 논쟁에서 가장 주요하게 언급되는 쟁점은 급여 탕진(stake blowing)이다( ). 기초자산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급여 탕진이라는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몇 가지 조건성을 부과한다. 액커만과 알스토트는 고등학교 졸업장과 범죄경력이 없어야 한다는 수급조건을 추가하고, 기초자산 급여의 수급을 1년에 2만 달러씩 4년으로 분할하여 지급하는 안을 제시한다. 르 그랑 등은 기초자산 급여 사용에 교육, 창업, 주거비라는 조건을 부과하고 적절한 용도인지 신탁관리자가 심사하게끔 하는 절차를 구성한다. 또한 자산 관리 운영에 대한 부모 교육과 어렸을 때부터의 재무 관리를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추가한다.
그러나 급여 탕진의 문제는 다소 왜곡된 측면이 있다. 급여 탕진이 개인의 권리를 구성하느냐 아니냐는 논쟁이나, 급여 탕진을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 조건을 추가하는 방식은 기초자산 문제에서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목돈의 일시금이든 매월 정기적인 금액이든 급여는 소비함으로써 소진된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러한 급여 소진 시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다투어야 한다.
기존의 급여 탕진 비판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비판할 수 있다(서정희, 조광자, 2008). 첫째, 급여 탕진이 과연 개인의 부적절한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을 처벌하거나 이를 원천적으로 봉쇄해야 하는 문제인가 하는 점이다. 급여 탕진의 예로 빈번하게 인용되는 것은 도박으로 돈을 탕진한다거나 알콜릭으로 술에 돈을 모두 소비하는 사례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의지 부족의 문제로 접근할 수 있다. 레이비스는 이러한 행위는 의지 부족의 문제를 가진 개인의 행위이고 의지 부족에 기반한 행위는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의료적 치료의 대상이라고 설명한다. 의료적 치료가 필요한 개인에 대해 개인의 선택으로 빈곤하게 되었으므로 평생 빈곤하게 살아야 한다는 식의 반응은 적절하지 못하고, 이를 이유로 급여를 분할해서 지급하는 것도 근거가 없다. 분할해서 지급하면 탕진의 문제가 사라지는가? 1회 지급보다 4회 지급이 낫다면 매월 지급하는 기본소득 방식이 훨씬 더 우월한 것 아닌가?
둘째, 좀 더 근원적인 문제는 급여의 소진이 과연 탕진인가 하는 점이다. 기초자산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소진하는 이유가 라스베가스에서 도박으로 탕진하거나 스포츠카를 사거나 하기 때문에만 발생하는가 하는 것이다. 창업 자금으로 한 번에, 대학 등록금으로 한 번에 사용하면 탕진이 아니고, 비싼 물건을 사면 탕진인가? 소비 용처에 따라 탕진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리고 그것이 탕진이든 아니든 급여를 소진했다는 결과는 동일하고, 급여가 소진되어 더 이상 생활에 필요한 현금이 없다는 사실도 동일하다. 급여를 소진하지 않고 기초자산을 기반으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자산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특히 일정한 지분을 운용하는 자산운영은 계층 문제와 관련이 있다. 빈곤 가정 출신의 사람은 자산운영 경험이 적기 때문에 부의 축적에 필요한 태도와 기술을 전승하는 부유한 가정 출신의 사람보다 지분 소진이 훨씬 용이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지급되는 자산급여의 문제는 결국 자산관리능력의 문제로 치환된다(White, 2006: 72-73). 기초자산 소진의 문제는 개인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도 존재하지만, 실제로 창업이나 자산운용 등으로 지분급여를 운용하는 경우에도 급여 소진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고, 이를 개인의 선택이라고만 보기 어렵다.
기초자산 주장의 가장 큰 맹점은 오히려 급여를 탕진하든 소진하든 다 사용하고 난 이후의 삶의 안정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공백으로 남겨두고 있다는 점이다. 후술하겠지만 급여 탕진 비판에 대한 반론으로서 기초자산 주창자들이 제시하는 분할 급여, 자격조건 강화, 아동과 부모에 대한 금융 및 재정교육 강화 등은 단지 급여 소진의 시점을 연기하는 전략에 불과하다. 단 한 번뿐인 일회성 급여로서의 기초자산을 다 소비하고 난 이후의 삶의 안정성은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결국 기초자산 주창자들의 거시자유는 인생에서 한 번의 기회로 달성되어야 하고 그 이후의 삶은 자신의 책임으로 영위하거나 기존 복지국가 시스템의 작동에 달려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초자산 주창자의 대표자로서 액커만과 알스토트(2006a)는 사민주의 중도좌파의 복지시스템을 반대해왔다. “사민주의는 유급 노동을 사회정의의 핵심으로 생각한다. 사민주의 유토피아는 모든 사람들이 권리로서 적정임금과 단시간의 일자리를 인정받는 사회이다. 그리고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서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기초자산과 기본소득은 노동계급을 위한 정의보다는 모든 사람을 위한 실질적 자유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기초자산과 기본소득은 모든 개인들에게 조건 없이 자원을 제공한다. 그리고 유급 노동이 모범적 삶의 유일한 기준이라는 도덕적 판단을 하지 않는다.”(액커만과 알스토트, 2006a: 45) 또한 “사민주의는 너무 많은 사람들을 사회생활에서 배제한다.” (액커만과 알스토트, 2006a: 46)
결국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를 자유 사회주의 관점에서 비판했던 기초자산 주창자들은 개인에게 거시 자유를 인생에서 단 한 번 확보해 주고, 그것도 용처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제공한 후, 급여가 소진된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침묵함으로써 여전히 복지국가 시스템으로 삶의 불안정성을 극복하도록 두고 있다. 기초자산 주창자들은 생애 전반에 걸친 안정성 확보에 대한 안을 추가해야할 것이다.
2. 가격 상승, 시장 강화 문제
대부분의 기초자산 논의들은 용처를 제한하고 있다. 주로 교육, 창업, 주택 구입(혹은 주거비)으로 사용처를 제한한다. 그런데 일정 연령에 도달한 청년에게 목돈을 지급해서 교육, 창업, 주택 구입에 사용하도록 하는 조치는 그 부문의 시장 가격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부를 넓게 퍼트리는 방식’(Atkinson, 2016)으로서 과연 기초자산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지에 대해서는 보다 숙고가 필요하다. 특히 한국에서처럼 부동산 시장이 부의 주요 원천이고 가격 자체가 높은 국가에서(강남훈, 2020a) 시장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있는 조치가 필요한가 하는 점은 보다 면밀한 검토를 요한다.
기본자산의 경제적 사용처는 교육, 주택, 소규모 사업 등이다. 이러한 부문에서의 기본자산 사용은 경제활동의 핵심적 조직원칙으로서의 시장의 중심성을 강화할 것이다(Wright, 2015: 436~437). 첫째, 교육에 투자된 기본자산은 인적자본을 향상시키고 따라서 정의를 향상시키지만 사유재(private good)로서의 고등교육의 상품화를 공고히 할 것이다. 다른 대안들, 예를 들어 등록금 없는 고등교육 등은 고등교육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고등교육을 공공재(public good)로 간주하고 시장원리를 제거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둘째, 주택 부문에 사용되는 기본자산은 부유한 부모가 없는 청년들의 모기지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킬 수 있지만 이는 사람들이 주택에 접근할 수 있는 중심적 방법으로서 시장 중심성과 사적 소유권을 확고히 하는 방식이다. 이와 달리 저비용주택을 인수하기 위해 공동체 토지신탁(community land-trusts)을 만드는 것 등의 대안은 정의를 향상시키고 시장 주도의 주택 논리를 약화시키는 방식이 된다.
셋째, 기본자산은 소규모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부의 제약을 부분적으로 해결하고 자본주의 경제의 중소기업 부문에 더 정의로운 여건을 조성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규모 사업은 실패하고 기본자산은 이를 막을 수 없다. 기본자산이 소규모 사업을 시작할 가능성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전체 자본주의 경제에서 소규모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엄청나게 증가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설령 소규모 사업의 비중을 증가시킨다 하더라도 이는 어떤 식으로든 자본주의의 침식에는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본자산은 자본주의의 재생산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보다 정의로운 형태의 자본주의로 이동시키는 것은 맞지만, 보다 민주적이고 평등한 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의 대안들을 창출할 공간을 확장하지는 못한다.
3. 조건성
기초자산 제도 설계 시 나타나는 조건성을 정리하면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 사용처 제한이라는 조건성이다. 교육, 주거비, 창업이라는 용도로 기초자산을 사용할 것을 제시한다. 둘째, 사용처를 제한하지 않는 기초자산 제안의 경우 자격조건을 제한한다. 고등학교 졸업, 범죄경력이 없을 것 등이다. 셋째, 기초자산의 소진을 막기 위하여, 부모와 아동에 대한 재정 교육 의무화하는 것이다.
사용처 제한과 자격조건 제한의 한계에 대해서는 앞에서 살펴보았다. 세 번째 조건은 자본주의 침식하기 전략이 아니라, 그 어떤 전략보다 자본주의 순응 전략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재정을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 자산을 늘리는 방식이 되는지에 관한 교육을 하는 것이 자본주의 계급 관계의 침식과 새로운 주체성 형성, 사회개혁 전략에 어떤 함의가 있을 것인가? 모든 사람들이 적은 규모의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자산 증식에 참여하는 것,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끊임없는 자산 증식을 통해 삶을 영위하게 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 시스템인지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Ⅴ. 결론: 방향 및 대안
기초자산을 병치할 것인가, 기본소득만 배치할 것인가?
– 기본소득만 배치, 공유부 배당 방식의 기본소득
– 기초자산의 필요성으로 제기되는 교육, 창업, 주택은 사회서비스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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