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에서 “한국 사회의 변화 방향에 대한 청사진을 기본소득 의제를 중심으로”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기본소득 쟁점토론회”를 진행합니다. 이 쟁점토론회는 기본소득을 둘러싼 여러 이슈와 기본소득 실현을 위한 로드맵을 검토하는 자리이며, 2020년 2월부터 2021년 7월까지 진행될 예정입니다.
아래의 글은 2021년 5월 22일 <쟁점토론 16. 교육과 기본소득>을 위한 발제문입니다. (참고. 아래 글은 주석을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석을 포함한 전체 발표문은 PDF 파일에서 볼 수 있습니다.)

쟁점 토론 16. “교육과 기본소득” 발제문

기본소득과 기본교육

발제자: 안현효

1. 서문

4차 산업혁명은 노동시장에 큰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노동 수요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 지에 대해서는 낙관론과 비관론으로 나뉜다. 기본소득론은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이 기계노동에 의한 인간노동의 대체라는 관점에서 파악하므로, 결국 노동의 수요는 줄어들 것이라는 전제 하에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 사회적 변화가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유발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대표적 논의가 인지자본주의(cognitive capitalism)론이다.

한편 4차 산업혁명은 전통적인 교육제도에 대해서도 문제를 야기한다. 4차 산업혁명 기에 필요한 인재는 문제해결력, 판단력, 창의력을 갖춘 역량을 갖춘 인재다. 이는 산업사회에서 필요로 했던 인재, 즉 공장의 기계에 조응하여 기계를 운전하고, 기계를 만드는 노동을 수행하는 인재와 사뭇 다른 인재다. 이러한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는 기존의 지식 주입식 교육이 아닌, 지식 창조가 가능한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 문제는 근대 이후 지금까지 확립된 대중교육 기반의 전통적인 공교육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 문제를 제기한다. 그동안 산업사회의 교육에 대한 요구가 직업교육에 대한 요구였다고 한다면 4차 산업혁명 기에는 단순한 직업교육이 아닌 그 이상의 요구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앞에서 제시한 두 가지 갈래의 논의는 서로 독립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발표에서 필자는 이 두 갈래의 논의를 결합시키고자 한다. 지금까지 기본소득론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 사회변화, 인지자본주의론에 기초한 기본소득 필요성의 이론적, 실제적 필연성에 대해 논의해 왔지만, 본 논의를 통해 우리는 4차 산업혁명기에 요구되는 교육혁명을 위해서도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할 것이다.

2. 인지자본주의와 기본소득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의 갈래는 많다. 한국에서 기본소득 논의는 판 파레이스의 실질적 자유지상주의(real libertarianism)에서부터 시작했다(Parijs, 1997). 이 논의는 자유주의(neo liberalism)와의 이데올로기적 대결의 결과로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출발하여 신자유주의 또는 자유지상주의의 형식주의를 비판하는 맥락에서 제출되었다. 그런데 판 파레이스는 이른바 평등주의적‘좌파 자유주의’(left libetarianism)과의 차별성도 강조한다.

이러한 철학적 맥락의 논의는 원래 있었지만 최근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은 경제 및 사회의 변화, 즉 신자유주의라는 케인스 이후의 자본주의가 초래한 사회적 불평등의 증가와 뗄 수 없다.

자본주의 변화라는 맥락에서 기본소득에의 관심 증대의 이유는 포스트 케인즈주의 시대의 복지사회의 붕괴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인 논의는 기본소득을 전통적인 고용관계 붕괴에 따른 정책 대안으로서 접근하는 것이다. 서정희&백승호(2017)은 4차 산업혁명이 사용종속관계(자본주의적 고용관계)의 회피전략을 더 강화시킬 것이며, 이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의 증가와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가 확산되므로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기본소득을 중요한 복지정책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서정희&백승호, 2017; 최현수&오미애, 2017).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은 기본소득을 4차 산업혁명 또는 근본적 사회 변화와 연계시키지 못하고 있다. 사회 변화를 반영하나 보다 적극적 대안으로서 제기된 논의는 지식기반경제(Knowledge based Economy: KBE)의 좌파적 대응물로서의 인지자본주의(cognitive capitalism) 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인지자본주의론은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사회 불평등의 심화와 전통적 복지사회의 붕괴에 대응한 소극적 대안으로서의 기본소득이 아니라, 인지자본주의라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 속에서 기본소득을 주장한다(Lucarelli & Fumagalli. 2008; 조정환, 2010; 안현효, 2012; 김종규, 2017).

이런 논의에서는 맑스가 언급한 집단지성에 주목한다.

고정자본이 발전함에 따라, 사회의 일반적 과학, 즉 지식은 직접적 생산력이 되고, 따라서 사회적 삶의 과정의 조건 그 자체는 일반지성의 통제하에 놓이게 되며, 일반지성(general intellect)과 일치하게끔 변환된다(Marx, 1974: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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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기본소득이 생산성에 미치는 경로에 대한 다양한 해석(안현효, 2012, 137쪽)

<그림1>은 인지자본주의론이 고전파 또는 신고전파로 대비되는 전통적 경제학적 사고(conventional wisdom)사고와 어떤 관점에서 달라지며, 또 소득분배를 중시한 케인스적 사고와도 어떻게 구분되는가를 도식화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인지자본주의론은 외부성에 주목한다. 외부성은 지식외부성과 네트워크외부성으로 구분되는데 이 개념에 의해 한 공장에서 발생하는 직접적 생산과정의 노동과정의 역할은 축소되고, 노동생산성과 소득이 괴리된다. 즉 노동자의 임금이 생산성에 비례한다는 논리가 파괴된다. 이는 노동소득이 비용의 관점에서 주어지지 않고 사회적 생산성을 보증하는 장치로서 주어진다.

결국 인지자본주의론은 직접적 생산과정을 넘어서는 사회적 생산과정에 주목한다. 그리하여 사회적 생산성으로서의 집단지성이 사회적 소득의 원천이 되고, 이것이 다시 기본소득의 가치론적 근거가 될 수 있다(안현효, 2012; 안현효, 2013).

여기서 질문은 오늘날의 경제, 사회체제를 인지자본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면 인지자본주의의 동력은 어디에서 출현하느냐는 문제다. 인지자본주의는 지식기반경제(Knowledge-based economy)이론에서 착안한 것이다. 여기서는 지식 그 자체가 생산력이 되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식이 무엇으로 구체화되는가? 지식기반경제 또는 인지자본주의이론이 등장한 시점에는 4차 산업혁명이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았고,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을 인지자본주의의 기술적 기반으로 적시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인공지능과 인공기계 또 그것의 현실과의 결합체(Cyber Physical System)로 규정되는 4차 산업혁명은 지식이 어떻게 구체화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경우 직접적 생산과정에서의 개별적 인간노동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사회화된 노동력이 중요하게 된다. 물론 직접적 생산과정 역시 노동자 단독의 생산이 아니라 생산과정에서협업과 분업을 통한 조직화가 일어난다. 이런 점에서는 사회적 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회적 노동은 공장 안 에서의 사회적 노동인데, 만약 생산과정이 직접적 생산과정의 범위를 넘어서 직접적 생산과정에 포함되지 않는 활동도 생산에 기여하게 된다면 사회 전체가 생산에 참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구글의 검색 활동은 구글프로그램의 생산과정에 포함된 것은 아니고 구글 서버의 소비 행위로 볼 수 있지만 이 행위를 통해 구글 서비스의 가치가 상승하게 된다면 구글 소비자 역시 넓은 의미의 생산과정에 참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Arvidsson & Colleoni, 2012).

“오늘날 네트워크 속 인구들의 관계, 소통, 협력, 정동(affect)은 가치 창출의 새로운 원친이 되고 있으며 그들의 사회화된 노동은 자본에게 말 그대로 ‘공짜 점심’이 되고 있다.”(이항우, 2014: 143)

이때 개별 노동의 생산성이 아니라 사회적 생산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때 사회적 생산성을 “생산물/직접적 생산과정에 참여한 노동자(노동시간)”과 같이 전통적으로 정의한다면 비정상적인 급격한 상승이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이 생산에 기여한 것은 직접적 생산과정의 노동자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참여자들이 포함된다. 우리는 이를 집단지성 또는 일반지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보았다.

이 경우 교육에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만약 교육이 사회로부터 분리된 개인의 양육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해 왔다면, 이제는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 개인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교육은 경쟁적 교육이 아닌 협동적 교육이 된다. 교육학에서는 전통적으로 학습전략에서 경쟁학습전략, 협동학습전략, 자기학습전략의 세 가지 학습 전략 간의 효과를 비교하는 연구가 많이 수행되었다. 학습전략에 따른 학습효과는 연구의 설계와 조건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체적 결론은 단순 반복 훈련이나, 단순한 기능학습 과제에서는 경쟁학습전략이 효과적인 반면, 문제해결 학습과제나 학습과제에 위계성이 있는 경우에는 협동학습전략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이다(박성익, 1985: 57). 이러한 연구결과가 인지자본주의 시대에 더욱 적합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한 인지자본주의에서 필요한 과업은 대체적으로 단순하고 반복적인 과업이 아니라 복잡하고 고등한 과업만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에 따라 교육의 전략 역시 협동학습을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 이는 결국, 기본소득의 문제의식과 마찬가지로 교육에 대한 투자는 개인의 영역이 아니고 사회의 영역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의 변화와 조응할 것이다.

3. 산업사회와 공교육의 쟁점

교육이란 무엇인가? 매우 어려운 주제다. 하지만 원초적으로 교육이 제기된 시기로 되돌아가 보면, 교육은 처음에는 인간 본연의 자유를 추구하는 교육인 ‘자유교육’(liberal education)이었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직업교육이나 과학교육, 전문교육에서는 찾을 수 없는 무엇인가-인간 본연의 자유를 향유하고 이성을 계발하는 것-를 원했고, 그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 자유교육이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스 사람들이 자유교육을 어떻게 생각했는가는 플라톤의 <폴리테이아: 국가론>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 시대에 자유교육에 대한 철학적 주장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마음이 그 자체가 가진 본성으로 인해, 지식을 추구하는 것을 고유하고 독특한 활동으로 삼기 때문에 교육은 진리 추구를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리의 추구는 좋은 삶을 위한 본질적인 요소이다. 두 번째 주장은 교육은 정의로운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이상적인 삶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교육은 철학적 재능이 있는 사람을 발굴하여 이들로 하여금 시민적 덕을 실천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플라톤은 교육이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게 하고 실천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보았다(박덕수, 2009).

그리스 시대 자유교육에 대한 철학적 주장들로부터 자유교육은 ‘지식의 추구’를 중요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유교육에서의 지식이란 실용적인 목적과는 무관하게 가치로운 것이며 불변의 진리를 담고 있다. 또한 자유교육은 인간이 개인으로서 그리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자유교육은 노예를 위한 교육이 아닌 자유민을 위한 교육, 마음이 그것의 원래 본성에 따라 작용하도록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교육, 오류와 착각으로부터 이성을 자유롭게 하는 교육, 잘못된 것으로부터 인간의 행위를 자유롭게 하는 교육으로 보았다.

그런데 산업사회가 등장하면서 직업인을 양성하는 교육이 등장했다. 물론 12세기 경 등장한 대학에서부터 신학, 법학, 의학이라는 전문직업 교육이 대학 교육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고 이후 대학교육의 한 역할은 전문직업인의 양성이었다. 당시에는 전문직업인이 되기 위해 당연히 기초인 자유교육이 전제되었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본격화되면서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에 필요한 노동자와 기술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게 되었다. 공교육이 노동자와 기술자의 교육까지 맡으면서 교육의 대상도 엘리트 교육에서 대중 교육으로 전환되고 그 내용도 직업교육, 전문직업교육, 과학자 양성교육으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자유교육은 주로 직업교육이나 전문교육과는 대비되는 일반교양을 위한 교육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교육의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의 이러한 분리를 비판적으로 본 교육학자가 듀이다. 듀이는 직업교육의 대두 속에서 자유교육이 복고적으로 퇴행하는 것을 비판하고,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이 새로이 재정립하여 통합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교육에는 이미, 노동의 보다 대국적인 특성에 착안하여, 자유교육적인 양상과 사회적 유용성의 조건을 조화시킬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은 자연히 기존의 경제적 상황에서 생기는 폐단을 없애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그들의 활동을 통제하는 목적에 능동적인 관심을 가지면 그만큼 그들의 활동은 비록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동일하다 하더라도, 자유와 자발성을 띠게 되며, 외부적으로 강요되는 노예적 특성을 떨쳐 버리게 된다.”(Dewey, 1916: 387)

그러나 산업사회에서 교육은 듀이의 이상론과 충돌해왔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교육과 직업교육의 분리는 공교육 체제인 학교의 변화를 초래한다. 교육을 수행하는 곳은 학교다. 학교라는 말은 여가를 뜻하는 schole에서 나왔다. 그리스인은 학교를 순수한 여가활동으로 생각한 것이다. 반면 노동은 ashole라 하여 여가와 대립하는 단어로 쓰였다. 그러므로 그리스 시대에는 학교가 여가 활동하는 곳, 즉 여가와 공부가 같은 영역의 개념이다. 이 단어에 의하면 학습이란, 즐거운 놀이가 된다. 오늘날 학교가기 싫어하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그 어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교육의 장소인 학교가 지겨운 훈련 장소가 된 이유는 근대 학교의 집체식 교육에서 시작한다.

결국 산업사회에서 시작한 대중 교육은 시민교육과 결합된 직업 교육이 그 핵심이었으며 여기에 전문학자를 양성하는 엘리트 교육이 추가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삶의 의미를 묻는 고전적 자유교육은 점차 쇠퇴하게 된다. 이는 여가로서의 교육 그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산업사회의 교육은 주입식 대중 집체 교육을 기반으로 했고, 이에 대응하는 토론형 교육은 소규모 교육 여건 속에서만 가능하므로 엘리트 교육의 일환으로 살아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목적은 노동자로서의 삶(취업), 교육의 내용은 산업사회의 일꾼으로 기능할 수 있는 직업 지식교육, 교육의 방식은 집체형 주입식 교육으로 진행되었다.

4.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 교육의 변화

산업사회의 (정보화사회 또는 지식기반사회로의) 변화와 교육혁신의 담화가 증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하여 최근 들어 교육혁신, 교육혁명의 구호 하에 새로운 교육에 대한 요구가 급증한다(김태일, 2017; 조상식, 2016; 김진형, 2016; 박남기, 2017).

이주호(2016)은 다음의 세 가지를 주문한다.

– 프로젝트 학습과 수행평가 중심으로의 교수학습 방식의 전환
– 컴퓨팅 사고력 교육 및 진로・기술 교육의 혁신
– 혁신생태계의 중심지가 되기 위한 대학의 변화

이 주문의 순서는 거꾸로다. 즉 교육방식의 혁신에서 출발하여 교육과정, 교육목적까지의 변화를 논의한다. 이런 순서는 사회적 요구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새로운 교육을 요구하지만 무엇이 새로운 교육인지 개념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새로운 교육은 교육의 목적, 교육의 내용, 교육의 방법 모든 측면에서 총체적으로 접근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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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화, 수준별, 토론식, 문제중심 교육 등의 교육혁신은 사실상 교육 방법에 집중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연계한 교육혁신은 교육의 내용의 변화까지 요구한다.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교육의 목표는 구체화하고, 교육의 내용과 방법에서 혁신이 있어야 한다. 비판적 사고, 소통, 협동 능력을 갖추고 창의력 있는 인재를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외우는 공부보다는 만들어 보는 교육으로 바꾸어야 한다. 교육 내용은 새 시대에 필요한 것으로 지속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김진형, 2016).

조상식(2016)은 교육의 목표, 교육의 방식, 평가에 걸친 광범위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보며 구체적으로는 탈교과적 일반능력으로서 역량, 비선형적 · 다차원적 학습모형, 과정중심평가의 필요성을 제기한다(정제영, 2016).

이러한 변화 요구는 시대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기존의 주입식, 집체형 교육으로는 산업사회, 고전적 자본주의에 대응하는 것만 가능하다는 인식은 공유되고 있다. 주입식, 집체형 교육에 대한 비판은 오래된 것이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이 거론되면서 교육의 목적과 내용의 영역에까지 근본적이고 새로운 인식이 확산될 실질적 계기가 마련되었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의식의 상당 부분은 현실적 조건 하에서 기업으로부터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교육목표로서 역량(competencies)과 창의성(creativity)에 대한 필요를 강조하게 된다. 문제는 역량과 창의성이 무엇이며, 또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합의가 없다는 점이다. 직무역량에서 시작한 역량개념은 구체화 과정에서 많은 논란에 직면해 있으며(소경희, 2009), 창의성 교육을 강조하는 견해는 창의성 교과를 만들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김왕동, & 성지은, 2009, 14).

하지만 기업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으로서 역량 인재, 창의적 인재는 학교 교육과정으로 교육학적으로 구체화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가 명확히 정의될 수 있다면 학교라는 조직이 별도로 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요컨대 기업은 인재를 요구하지만 정작 어떤 인재인가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독특한 특징은 다재다능성에 있기 때문인데 다재다능성은 하나의 직무를 훈련시키는 것만으로 양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5. 4차 산업혁명 기 교육혁신의 조건으로서의 기본소득

1) 4차 산업혁명에서 새로운 교육의 가능성

4차 산업혁명 기에 요구되는 새로운 교육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교육목표, 교육내용, 교육방법의 3차원적인 영역이 모두 검토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의 기술적 기초가 인간의 두뇌와 근력을 기계의 두뇌(인공지능)와 근력(자동기계)로 대체한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4차 산업혁명의 비전은 노동소멸적 자동생산의 보편화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앞에서 언급하였던 직접적 생산과정 외부의 사회적 생산의 확대, 그리고 이로 인한 전통적 고용관계의 완화로 특징지워질 수 있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직무의 정의가 매우 어려우며, 그 직무를 교육한다고 해서 직무 형태가 평생 유지되지 않는다. 따라서 직업교육이 불임화하게 된다. 즉 특화된 지식 위주의 주입식 교육이 한계를 갖게 된다. 현재의 공교육 체제는 국민교육 단계에서 국, 영, 수로 대표되는 기초학업교육 이후 고등교육에서 전공교육으로 넘어가서 전문직업 교육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교육과정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 교육과정에서 배출된 인재는 특정 직업에 맞추어져 훈련된 인재이다. 그런데 급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그 직무가 불필요하게 되면 노동자는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가진다. 이것이 공교육 체제의 첫 번째 역사적 동요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구체적 직무 교육이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교육을 시행해야 하는데,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인재상에 맞는 핵심역량(core competencies)의 교육이다. 이러한 역량을 가진 인재는 맥락적 지능, 정서적 지능, 영감적 지능, 신체적 지능을 갖추고 고차사고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핵심역량을 어떻게 교육에서 구체화할 것인가라는 교육과정을 만들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공교육 체제의 두 번째 역사적 동요라 할 만하다.

한편에서는 전통적인 직업교육의 효과가 무력화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역량교육의 내용이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공교육이 총체적 위기 상황에 놓이게 된다.

우리는 현재 현재의 공교육을 대체할 새로운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교육목표의 차원에서도 정확히 말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인류 역사를 통털어서 새로운 시대가 출현한 시기로서 15세기의 르네상스를 회고해보면 하나의 교훈이 있다. 르네상스는 르–네상스(re-nessance), 즉 새로운 탄생인데, 이 용어를 통해 15세기 이탈리아의 휴머니스트들은 ‘고전고대로부터 중세를 거쳐 가기들의 시대로 이어져 온 문학·학문·순수예술의 역사에 대한 자신들의 관념을 나타내기 위해 암흑과 광명이라는 대조적 비유법’(김차규, 2014: 70)을 사용함으로써 기독교에서 탈출하여 인본주의를 주창한 그리스 시대로 되돌아갔다. 인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때마다 기본으로 돌아가곤 했다.

인류 지성사의 기원으로 파악되는 그리스-로마 시대는 인류 역사에서 최초로 사고와 이성에 주목한 시대였다.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새로운 교육은 사실상 새로운 지성교육이다. 우리는 이를 창의지성교육이라 부르고자 한다. 이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지성교육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치 15세기의 이탈리아의 지식인처럼 그리스 시대에 시작한 인문학교육에 기초한 자유교양교육의 중요성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 시기의 자유교양교육이 보편교육이면서 융합교육적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기의 교육목표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리스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에는 그리스 고전이 보편교육이면서 동시에 인문교육이라는 점에서 두 가지의 논점을 야기한다.

첫째는 왜 4차 산업혁명 시기가 보편교육을 다시 요구하는가라는 점이다. 보편교육은 칸트가 <학부들의 논쟁>에서 말한 대로 기초학문 교육을 의미한다. 4차 산업혁명 기에 필요로 하는 인간의 능력은 분업으로 특화된 능력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 성찰을 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반면 전자는 AI로 대변되는 인조지능이 대체할 수 있게 된다.

둘째로 왜 인문교육인가라는 점이다. 얼핏보면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이 컴퓨터 과학이므로 인문고전교육이 아니라 코딩교육일 것 같다. 하지만 창의지성교육의 핵심이 융합이라고 할 때, 분절된 지식이 아니라 통합된 지식교육이 더욱 필요하게 된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교육, 고전교육 자체가 융합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고전교육과 긴밀한 연관을 가지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때 공교육에 고차사고력(안현효, 2013)을 도입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편 이 교육과정은 듀이가 고민한 자유교육과 직무교육을 통합하는 교육일 것이다. 즉 통합교육으로서의 스콜레의 회복이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새로운 교육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스콜레로서의 교육이란 창의지성교육의 또 다른 이름이며, 그 목표는 첫째 진리의 탐구, 둘째 정의의 실천, 셋째 행복의 추구로 요약할 수 있다.

2) 통합교육으로서의 스콜레의 회복이 가능한 조건으로서의 기본소득

통합교육으로서의 스콜레의 회복을 위해서는 교육과정이 직무교육만으로 편성되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한 후 직업을 찾는 것이 최대 목표가 되었던 기존의 산업 사회에서는 직무교육을 교육과정에서 배제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학교 졸업 후 직업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하다면 직무교육이 학교 교육과정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줄게 된다. 즉 교육 -> 사회 & 사회 -> 교육의 쌍방향적 운동과정 속에서 학교의 혁신이 일어날 것이다.

사회에서의 변화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고용구조의 변화로부터 초래된다. 자본주의적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은 하나의 직무에 특화된 인재가 아니라, 다양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재인데, 더 중요한 것은 직무 자체가 계속 새롭게 생성되고 소멸 될 것이므로 스스로 지속적으로 학습하는 인재이다. 다른 한편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자동화와 연결성이 극대화하면서 직업 자체의 총량도 줄어들고 직접적 생산과정의 비중도 줄어든다. 공유경제와 같은 새로운 형태가 상당한 비중으로 등장하는데 이 영역은 자동화, 연결성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일 것이다.

이는 교육에서 직업교육에 한정해서 교육과정을 설계할 압력을 상당부분 완화시킬 것이다. 학교교육은 보편적 역량을 가진 인재를 육성하는데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보편적 역량을 갖춘 인재는 구체적 직업 능력을 배우기 이전에 사고력을 훈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교육이 직업역량을 지닌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과제로 간주될 때는 사회의 관점에서는 하나의 비용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학교교육이 보편적 역량을 지닌 인재를 과제로 한다면 사회 전체의 편익이 된다.

교육에서의 기본소득은 바로 고차사고력을 훈련하는 보편교육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될 것이다.

첫째로, 4차 산업혁명 기의 교육은 평생교육일 것이다. 이른바 평생학습사회가 도래된다(Stiglitz & Greenwald(2014)의 learning society). 학습사회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직업에 집착하거나, 모두가 모두에 대한 경쟁에 몰아넣는 개별적 선택의 상황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공생하고 협력하는 교육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직업에 관한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해야 하며, 비록 직업이 없다 하더라고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함으로써 평생학습이 가능한 조건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본소득이 보장될 때 혁신과 벤처에 적합한 통합, 고전 교육이 용이해진다.

둘째는 기본소득은 생업으로서의 일의 의무를 벗어나게 함으로써 교육에서 스콜레를 회복할 수 있게 한다. 교육 = 즐거움이 되는 조건을 창출하여야 보다 창의적인 교육이 가능하며 경쟁 교육이 아니라 협동교육이 가능해진다. 결국 기본소득이 보장될 때 창의지성 교육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6. 결론: 교육의 유토피아로서의 기본교육

Delbanco(2012)는 <대학의 미래>라는 책에서 대학에 오는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는 경제적 이유로서 고등교육을 이수한 학생은 안정적인 직장과 보다 높은 급여를 받음으로써 개인의 경제적 경쟁력 향상이 가능해지고, 거시적으로는 결국 국가 경제의 건전성과 경제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생, 학부모, 기업인들은 이러한 목표를 우선 목표로 간주한다. 두 번째 이유로는 정치적 이유이자, 인류 사회가 학교를 만든 주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용어로서 이 문제를 풀어쓰면 민주시민의 양성이다. 민주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를 이해하고, 자연현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 이유는 매우 단순하고 직관적인데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이다. 삶이 무엇인지를 이해함으로써 행복을 추구하고 삶을 생각하고 성찰하는 것이다(Delbanco, 2012, 53).

이 세 번째 이유가 바로 여가로서의 스콜레와 부합한다. 사회와 교육이 서로 작용하여 교육과정의 변혁이 일어나는 것이 4차 산업혁명기에 교육혁신의 주요한 내용이며, 이러한 쌍방향적 운동이 가능하게 하는 첫 번째 사회정책적 조건은 탈노동사회이고, 쌍방향적 운동이 가능하게 하는 두 번째 사회정책적 조건은 교육과 사회에서의 기본소득이 될 것이다. 통합교육으로서의 스콜레의 회복이 유토피아인 이유는 여가와 노동이 통합되고, 놀이와 생산이 통합되며, 교육이 비용이 아닌 생산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기 교육혁신의 주요 내용은 결국 삶의 의미를 이해하고, 즉 인간/사회/자연을 이해하는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재의 양성이 되며, 이것의 출발점은 여가로서의 스콜레라 할 수 있다. 이것이 기본교육의 내용이 될 것이다. 기본교육이란 결국 교육 유토피아로의 회귀이다. 물론 기본교육, 즉 교육 유토피아의 가능성은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온 가능성이지만, 자연히 도달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기본소득은 그 노력의 첫 단추로서 4차 산업혁명을 올바르게 적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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