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토론 10. “기본소득과 일자리보장” 발제문(초고)
기본소득인가 일자리보장인가
발제자: 이건민 이사
1. 열며: 기본소득과 일자리보장 중 진정으로 ‘때를 만난 아이디어’는 과연 무엇일까
‘때를 만난 아이디어(the idea whose time has come)’라고 자처하는 두 가지 주요한 정책구상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기본소득과 일자리보장이다. 여기서 일자리보장(job guarantee; JG)이란 일할 능력과 일할 의사가 있지만 민간 영역에서 적합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에게 정부가 직접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구상을 말한다(Harvey, 2005; Tcherneva, 2003; Wray, 2017 등 다수). 기본소득이 “일하지 않고 소득을 얻을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정책이라고 한다면, 일자리보장은 “소득을 벌 수 있는 일자리에 대한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Van Parijs and Vanderborght, 2018, p. 111). 기본소득과 일자리보장은 각각 자신이 우리 시대의 당면 문제인 빈곤 및 소득불평등, 비자발적 실업, 불안정․비정규 노동 등에 적실히 대처하기 위한 더 나은 구상이라고 주장하면서 경합해왔다.
본고는 기본소득과 일자리보장 중 무엇이 위에서 열거한 우리 시대의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더 적합한지를 따진다. 이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일자리보장 개념을 소개하고, 일자리보장 제안의 두 가지 버전을 구분한다. 다음으로 기본소득 지지자들과 일자리보장 지지자들의 첫 번째 논쟁이라고 할 수 있는 ‘Rutgers Journal of Law & Urban Policy 2(1)(Fall 2005)’ 특집논문에 게재된 필립 하비의 논문(Harvey, 2005) 내용을 소개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이어서 MMT(Modern Money Theory 또는 Modern Monetary Theory; 현대화폐이론) 주창자들의 일자리보장 제안 내용을 Tcherneva(2003)를 중심으로 소개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마지막으로 기본소득이 일자리보장보다 우월한 이유를 종합 정리하면서 글을 맺는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진정으로 ‘때를 만난 아이디어’는 일자리보장이 아니라 기본소득임을 분명히 할 것이다.
2. 일자리보장의 개념, 수단과 목표
위에서 정의했듯이, 일자리보장(JG)은 일할 능력과 일할 의사가 있지만 민간 영역에서 적합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에게 정부가 직접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구상을 뜻한다(레이, 2017; Harvey, 2005; Tcherneva, 2003 등 다수). 일자리보장은 중앙은행의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역할에 빗대는 용어로서 ‘최종 고용자(employer of last resort: ELS)’,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일종의 ‘완충재고’ 기능을 한다는 점에 착안한 용어로서 ‘완충재고고용(Buffer Stock Employment; BSE)’, 이 프로그램이 주로 공공서비스 영역에 집중된다는 점에 주목한 용어로서 ’공공서비스고용(Public Service Employment; PSE)’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Tcherneva, 2003, 2018; Wray, Dantas, Fullwiler, Tcherneva, and Kelton, 2018; Wray, Kelton, Tcherneva, Fullwiler, and Dantas, 2018 등 다수).
일자리보장의 수단과 목표를 요약하자면, ‘최저임금(또는 생활임금) 수준에서 무한탄력적인 노동수요(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공공사회서비스, 공공인프라 등의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정부의 직접 일자리 창출(direct job creation)과 일자리보장을 개념적으로 뚜렷이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자리보장이 정부의 직접 일자리 창출을 주요한 정책 수단으로 삼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일자리보장은 민간 부문에서 노동인구를 모두 고용하지 못하여 생긴 일자리 갭(job gap)을 완전히 메울 만큼, 즉 노동능력은 있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을 모두 흡수할 만큼 공공 부문의 일자리를 충분히, 그것도 경기불황기뿐만 아니라 경기호황기까지 포함하여 항상적으로, 창출하여 제공함으로써 완전고용 또는 강한 완전고용을 달성하겠다는 매우 야심찬 형태의 정책 구상이다. 따라서 일자리보장에 대한 반대와 비판이 정부의 재정정책에 대한 반대나 공공사회서비스 확충, 공공인프라 확충, 정부의 직접 일자리 창출 일반에 대한 반대와 비판으로 결코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3. 일자리보장 제안의 두 가지 버전
일자리보장 제안에는 크게 두 가지 버전이 있다. 하나는 미국 럿커스대학교(Rutgers University) 법학 교수인 필립 하비(Philip Harvey)의 제안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화폐이론(MMT)을 주창한 학자들이 제안하는 일자리보장 제안이다. 둘 다 일자리보장의 초기 주창자인 하이먼 민스키(Hyman Minsky)를 따르고 있다는 점, 노동능력이 있고 노동할 의사가 있지만 현재 일자리를 얻지 못한 모든 사람들에게 정부가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 그리고 정부가 일자리를 제공해야 하는 부문(공공사회서비스, 공공인프라) 면에서는 공통된다. 구분되는 점이 있다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필립 하비(Harvey, 2005 등 다수)가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일자리의 임금 수준이 “공공 및 민간 부문의 유사한 일자리에 지급되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decent wage’), MMT론자들(Tcherneva, 2003; Wray, 2017 등 다수)은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의 동시 달성이라는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일자리의 임금 수준은 최저임금(minimum wage) 또는 기껏해야 생활임금(living wage) 수준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기본소득보다 일자리보장이 더 우수하다고 주장하는 데 있어서, 필립 하비가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든다는 점을 강조하는 반면, MMT론자들은 공공프로그램 등에 대한 정부의 재원 조달에 관한 독특한 시각을 드러내면서 공공프로그램의 ‘비용’을 논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는 대신 인플레이션 등의 면에서 일자리보장이 기본소득보다 더 우수하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4. 필립 하비의 일자리보장 제안에 대한 비판적 고찰
이 절에서는 필립 하비의 일자리보장 제안 내용(Harvey, 2005)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4.1. 일자리보장은 노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인가, 아니면 노동의 의무를 부과하는 노동연계복지 내지 강제노동의 일종인가
일자리보장이 노동연계복지(workfare)나 강제노동(forced labor)으로 귀결될 위험이 높으며 따라서 노동의 권리(right to work)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에게 억압적인 형태의 노동의 의무(duty to work)를 부과하는 것이라는 기본소득 지지자들의 비판에 대해서 필립 하비는 다음과 같이 응답한다. 첫째, 노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프로그램은 어떠한 형태의 소득보장 프로그램과도 결합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즉 무조건적 기본소득과 결합될 수도 있고 엄격한 형태의 노동연계복지와도 결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노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노동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수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의 목표는 유급노동을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얻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데 있으며, 유급노동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되었든 소득지원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하비의 주장에 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비판할 수 있다. 그는 일자리보장과 소득보장 프로그램을 상호 독립적인 것으로 보는 듯하며, 일자리보장 자체가 특수한 형태의 소득보장 프로그램임을 보지 못한다. 정부에서 제안하는 일자리를 받아들일 때에만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으로부터 소득을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하비는 유급노동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되었든 소득지원을 받아야만 한다고 말하지만, 정부에서 제안한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은 현재의 조건적인 사회보장 프로그램 하에서는 소득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거나 매우 제한적으로만 받게 될 것이다. 실제로 유의미한 액수의 무조건적 기본소득이 지급될 경우에만 사람들은 정부에서 제안하는 일자리를 받아들일지 여부를 강제적 성격 없이 자발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가이 스탠딩 역시 다음과 같이 비판한 바 있다. “일자리보장 노선의 … 결점은 ‘노동연계복지’로의 경로로 안내한다는 것이다. 보장된 일자리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던 누군가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들은 ‘게으르거나’ ‘까다롭다(choosy)’고 낙인찍힐 것이며 따라서 ‘배은망덕하고(ungrateful)’ ‘사회적으로 무책임하다’고 낙인찍힐 것이다. 연구들은 한 개인이 갖춘 자격(qualifications)보다 낮은 수준의 일자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장기적으로 그들의 소득과 사회적 지위를 낮출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의 영국 복지급여 제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증명하는 바와 같이, 그들에게 할당된 일자리들을 취하지 않은 사람들은 복지급여 제재에 직면할 것이며, 그리하여 그들은 그 일자리들을 좋아하든 않든 관계없이 일자리들로 향하게 될 것이다.”(Standing, 2019, p. 73)
4.2. 일자리보장은 빈민법 전통에 서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일자리보장이 빈민법(poor law) 전통에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 하비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빈민법은 빈민과 그들의 노동을 통제하고 규율하기 위한 빈민구호 체계인 반면, 일자리보장은 비자발적 실업에 맞서 싸우기 위한 일자리창출 이니셔티브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자산조사 기반 공공부조 프로그램들은 실업의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는 반면, 일자리보장은 실업의 원인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실패에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양자가 뚜렷하게 구분된다고 주장한다.
하비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보장은 여전히 노동능력이 없다고 간주되는 자격 있는 빈민(deserving poor)과 노동능력이 있다고 간주되는 자격 없는 빈민(undeserving poor)의 구분에 입각해 있다는 점에서 빈민법 전통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일자리보장은 자산조사(means-testing)가 초래하는 수많은 문제점들(빈곤의 덫, 실업의 덫, 별거의 덫, 저축 저해 효과, 낙인효과와 수치심 부여,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부정적 효과, 낮은 수급률, 받아야 할 사람들이 못 받고 받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받게 되는 오분류, 상당한 행정비용과 행정부담 등등)에 대해서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뚜렷한 문제를 안고 있다.
4.3. 노동의 권리 주장에 놓인 철학적 기초는 과연 튼튼한가
필립 하비는 노동의 권리 주장의 철학적 기초로 자연권 관점(natural rights perspective), 법적 실증주의적 옹호론(legal positivist case), 인간개발권 관점(human development right perspective)을 들면서 각각의 변호 논변을 펼친다. 자연권 관점에 대해서, 그는 노동의 권리와 유사하다고 판단되는 다른 인권들에도 자연권적 속성을 가진다는 정당화가 광범하게 이루어졌으므로 노동의 권리 역시 자연권적 정당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법적 실증주의적 옹호론에 대해서, 그는 현재 집행되지 않은 권리라고 하더라도 역사가 전개됨에 따라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집행되는 권리로 충분히 변화할 수 있으며, 이는 기본소득 보장뿐만 아니라 노동의 권리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인간개발권 관점에서, 그는 비자발적 실업 문제, 그리고 특히나 사회취약계층이 다른 계층보다 더 많이 겪게 되는 고용 기회의 불평등 문제는 인간개발권에 있어서도 문제를 낳는다는 점,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는 여전히 임금노동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그러므로 임금노동은 인간개발권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들면서 노동의 권리를 옹호한다.
이러한 하비의 주장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평가해보자. 노동의 권리가 다른 인권들과 유사하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인권들(예를 들어, 공민권(“정당한 법의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사람으로부터도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박탈할 수 없다”)이라든지, 형사사건에서의 제 권리(“누구라도 정당한 법의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라든지)이 자연권적 속성을 가진다고 광범하게 인정되기 때문에, 노동의 권리 역시 자연권이라고 볼 수 있다는 주장은 아무래도 근거가 빈약한 것으로 보인다. 노동의 권리를 자연권이라고 볼 수 있다는 별도의 논리 전개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두 번째로, 현재 집행되지 않은 권리라고 하더라도 역사가 전개됨에 따라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집행되는 권리로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는 주장 자체는 옳지만, ‘노동의 권리’가 미래에 그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별도로 따져봐야 할 문제이다. 세 번째로, 비자발적 실업 문제, 그리고 특히나 사회취약계층이 다른 계층보다 더 많이 겪게 되는 고용 기회의 불평등 문제가 인간개발권에 있어서도 문제를 낳는다는 점, 그리고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는 여전히 임금노동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점은 맞지만, 그것이 일자리보장을 곧바로 정당화해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자리보장이 과연 비자발적 실업 문제를 일소할 수 있는지는 꼼꼼히 따져봐야 할 문제이고, 우리 시대의 비자발적 실업 문제와 노동빈곤층의 문제가 비단 사회취약계층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처하는 데 일자리보장이 나은지 기본소득이 나은지는 제대로 검토해야 할 문제이다. 또한 임금노동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는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가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이를 임금노동의 강화와 전면화로 푸는 것이 과연 적합한 것인지 오히려 임금노동의 중심성을 약화,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바람직하지는 않은지는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문제라 할 수 있다.
4.4. 노동의 권리는 보장될 수 있는가
필립 하비는 경제보장 프로그램의 첫 번째 목표는 고용을 극대화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민간고용을 촉진하고 특정 기간에 민간 부문에서 고용할 수 없는 노동능력이 있는 노동자들은 공공부문에서 흡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신이 말하는 일자리보장이 이류의(second-rate) 일자리들을 창출하는 프로포절이 아니라 “가능한 한 민간고용과 유사한” 공공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프로포절은 경기침체기 동안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항시적으로 작동하는 정책으로 구상된다고 말한다. 경기침체기에 공공일자리는 주요 방어선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심지어 경기호황기에서조차 공공일자리는 실업이 많은 지역에서 소규모로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실업급여를 받지 않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하비는 그가 주장하는 일자리보장 제안이 초래할 경제적 변화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에 기댈 뿐, 그것이 초래할 부정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다. 그의 제안이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지는 않을지, 민간 부문(과 기존 공공 부문)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은 없을지, 과연 경제 전체적으로 비자발적 실업을 없앨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분석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일자리보장 지지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MMT론자들은 ‘물가 안정’의 이유를 들어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에서의 임금이 ‘괜찮은(decent)’ 수준이어서는 안 되며 ‘최저임금’ 또는 기껏해야 ‘생활임금’ 수준에 고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이 스탠딩(2018) 역시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일자리보장은 사기일 가능성이 크다. 어떤 종류의 일자리를 보장할 것인가? 어느 수준의 임금을 줄 것인가? ‘보장된’ 특정한 일자리가 줄어들 때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모든 사람에게 각자 가진 기술을 사용할 수 있고 보수가 좋은 걸맞은 일자리를 보장하는 것은 완전히 비현실적인 일이기 때문에, 실제로 보장되는 것은 낮은 수준, 낮은 임금, 단기로 억지로 만든 일자리이거나 잘해봐야 생산성이 낮은 일자리일 것이다. 거리 청소, 슈퍼마켓 매장 정리, 기타 유사한 육체노동이 반드시 행복으로 가는 길 같지는 않다. 일자리보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분명 이런 일자리를 원하지 않을 것이고 자기 자식이 이런 일자리를 갖는 것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p. 237) “실제로 모든 사람이 원하는 혹은 자기 능력에 맞는 일자리를 보장받을 것인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p. 239)
Standing(2019, p. 72)은 또한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만약 보장된 일자리들이 희망했던(desired) 서비스나 재화를 제공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에 보조금이 지급된다면, 대체효과와 사중효과가 발생할 것이 틀림없다. 만약 누군가가 최저임금 수준의 보장된 일자리를 제공받는다면, 이미 그러한 일을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슨 일이 발생하는가? 일자리보장 기구(job guarantee agency)가 그러한 일자리들이 더 많이 발생할 경우에도 임금 인하 없이 그들의 일자리 역시 보장할 것인가? 만약 실업자들이 국가가 보조하는 최저임금 일자리를 제공받는다면, 이것은 다른 사람들을 일자리에서 방출하거나 그들의 소득을 저하시킴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취약성(vulnerability)을 증가시킬 것이다.”
4.5. 일자리보장은 엄청난 비용과 행정적 복잡성을 야기할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비는 일자리보장 제안의 비용이 상당할 것이라는 기본소득 지지자들의 비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응답하고 있다. 첫째, 그는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의 간접비용(overhead cost)은 그리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특정 경제에서 모자란 일자리의 총 수(job gap)가 얼마인지가 중요하지, 그 숫자가 감독 작업/비감독 작업, 생산 기능/지원 기능 중에서 어떻게 나누어지는지, 그리고 그 프로그램에 원료를 공급하기 위해 창출되는 프로그램 일자리들과 민간 부문 일자리들이 어떻게 나누어지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둘째,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의 순비용을 고려하는 문제에서, 그는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임금에서 지불되는 세금의 액수와 그들이 프로그램을 통해 만드는 산출물(output)을 함께 감안한다면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의 순비용은 낮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으로 인한 공공부조 예산의 절약까지 고려한다면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의 순비용은 더욱 낮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셋째,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은 특정 경제에서 모자란 일자리의 총 수에 해당되는 만큼의 사람들에게만 지급되는 반면 기본소득은 특정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지급되므로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의 순비용이 기본소득의 순비용보다 훨씬 작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비 자신의 2003년 연구를 인용하면서(Harvey, 2003), 1999년 미국을 대상으로 했을 때 공식빈곤선에 달하는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위해 소요되는 정률세율은 49%인 반면, 자신이 주장한 노동의 권리/소득의 권리 지원의 결합 전략(combined right to work/right to income support strategy)에 소요되는 정률세율은 30%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행정적 복잡성 이슈에 대해서, 하비는 현재에도 복지, 고용, 훈련, 감독 등과 관련하여 다양한 행정이 수행되고 있으므로, 일자리보장이 초래할 행정적 복잡성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또한 모든 기능들이 정부에 의해 수행될 필요는 없으며 비영리기구와 영리기업들도 일부 프로그램을 집행하거나 계약의 형태로 프로그램을 수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비의 주장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비판하기에 앞서서 우선 지적해야만 할 사항은 바로 필립 하비가 기본소득의 명목 소요재원과 순 소요재원을 전혀 구분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기본소득의 순 소요재원이 아닌 명목 소요재원에 주목할 경우, 기본소득의 비용을 과대평가하게 된다.
하비는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이 초래할 막대한 비용과 행정적 복잡성에 대한 기본소득 지지자들의 비판에 충실하게 대답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의 문제는 1)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과정(“일자리에 대해 무엇을 지불할 것이며 얼마나 오랜 시간에 대해 지불할 것인가”와 “누가 지불할 것인가”), 2) 노동능력이 있으면서 노동 의사도 있는 사람들을 모집하는 과정(“누가 일자리를 제공할 책임을 가질 것인가”와 “누가 일자리를 제공받을 자격을 얻을 것인가”), 3) 그들 각자에게 제안할 구체적인 일자리를 매칭하는 과정(“무슨 일자리인가”), 4) 만약 그들이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훈련, 재훈련 등이 필요할 경우 그것을 연결시키는 과정, 5) 그들이 실제로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제대로 내고 있는지 감독하는 과정(“참가자들을 감독하는 데 그리고 일자리 요건들에 대한 준수(compliance) 여부를 감시하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 것인가”), 6) 일부 사람들이 태만하거나 성과가 좋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후속조치를 집행하는 과정(여기서 후속조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 자체도 하나의 큰 이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7) 만약 돌봄 등의 서비스를 수행한 프로그램 참가자가 실수 또는 고의로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에게 (심각한) 손해를 입힐 경우 초래되는 다양한 비용(의료비, 법적 비용 등)을 마련하는 과정 등등 다양한 과정에 걸쳐서 발생할 수 있다(Standing, 2019). 따라서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이 초래할 수 있는 (순)비용은 하비가 예상한 것에 비해서 훨씬 더 클 수 있다. 만약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의 강제적 성격이 강하다면, 이를 위해 요구되는 다양한 모니터링 비용이 초래될 뿐만 아니라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정신적, 신체적 건강이 악화될 수 있으며 이것이 비용으로 추가로 명시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이 프로그램 참여자들의 직무 수행 성과와 무관하게 ‘보장된 일자리’로서의 성격이 강하다면, 모니터링 비용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겠지만 이러한 일자리 하나를 창출하기 위해 소요되는 ‘cost(일자리 비용; 일차적으로는, 괜찮은 임금을 지급하므로)’와 ‘output(일자리를 통해 창출되는 산출물; 일차적으로는, 태만하거나 숙련 정도가 낮거나, 열심히 일할 유인이 거의 없으므로)’의 격차는 상당할 수 있으며, 유사한 직종의 민간 부문에서 일자리보장 프로그램 부문으로의 이직 현상은 상당할 수 있다. 이는 경제 전체의 효율성과 활력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으며, 이러한 것까지 고려한다면 일자리보장의 순비용은 막대할 수 있다.
또한 기본소득이 갖는 다양한 사회적 효과가 최근 들어 점점 더 주목받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Mays, 2019). 기본소득은 정신적, 신체적 건강 증진, 범죄 감소, 우애와 협력, 연대의식의 고취, 공동체 활성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강남훈, 2019; Forget, 2011; Kangas, Niemelä, and Ylikännö, 2019). 따라서 기본소득의 ‘비용’을 따질 때에는, 기본소득 도입으로 인해 다양한 사회적 비용(보건의료비, 교육비, 범죄로 인한 비용, 사회갈등으로 인한 비용 등)이 감소할 수 있음을 명시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윌킨슨과 피킷(2012, 2019) 식으로 말하자면, 기본소득은 사회적 기울기(social gradient)가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들의 기울기를 낮추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판 파레이스와 판데르보흐트(2018) 역시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노동능력이 있는 실업자가 소득을 얻을 다른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제도가 시행된다면 이는 강제 고용과 강제 노역의 결합물이나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장비, 훈련, 감독, 소송 등에 들어가는 비용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그렇게 해서 일자리를 준다고 해도 숙련도나 노동의욕이 가장 떨어지는 이들을 강제로 징발하는 셈이니 그 순생산성을 따져보면 마이너스로 나올 확률이 너무나 높다.”(pp. 112-113) 그리고 “모든 이에게 소득을 제공하겠다고 공언하면서 그중 노동능력이 있으면서도 일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어떤 소득도 절대 주지 않는다는 어려운 과업을 정부가 얼마나 엄밀하게 수행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한 이런 식의 노동보상 체계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순비용은 아마도 옥중의 기결수들을 먹여 살리는 비용과 아주 비슷할 것이다.”(p. 113) “이 제도를 옹호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논지가 분명한 이들은 비판자 다수와 마찬가지로 이 제도의 생산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환상도 품고 있지 않다. 정말로 일을 시킬 만한 이들을 고용하는 데까지는 이 제도에서 큰 편익이 생겨나겠지만, 그 지점을 넘어 일반적으로 시행될 경우에는 사람들에게 소득을 안겨주기 위해 억지로 일을 시키는 제도로 전락하게 되며, 그 비용이 무척 클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러한 책무를 정당화시킬 수 있다고 해도, 비용 억제에 대한 걱정이 끊이질 않을 것이다.”(p. 113)
4.6.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에서 제안하는 일자리의 질은 과연 어떠할까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에서 제공되는 일자리의 질이 임금 면에서나, 노동조건 면에서나 열악할 가능성이 높다는 기본소득 지지자들의 비판에 대해서 하비는 자신은 정규 노동시장에서의 열악한(substandard) 일자리들보다는 더 높은 임금과 더 나은 노동조건을 제공하는 형태의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려지점은 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유사한 직종의 민간 부문에서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직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 하비는 열악한 민간 부문 일자리들에서 고용된 사람들은 이직하고자 하겠지만, 괜찮은(decent) 민간 부문 일자리들에서 고용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다. 또한 그는 열악한 민간 부문 일자리들에서 나온 사람들로 인해 실업은 증가하겠지만, 그것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만큼이나 충분히 작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하비의 대답은 불충분하며, 그의 예측은 경제학적으로 뒷받침되기 어렵다. 그리고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일자리의 강제적 성격이 강한 경우와 약한 경우로 나누어보았을 때,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이 초래할 수 있는 순비용은 상당할 수 있다. 아울러 농업의 시간, 산업의 시간에 이은 제3의 시간(영시간 계약zero hour contracts과 다양한 형태로 점점 증가하는 플랫폼노동을 떠올려볼 것)이 점점 더 지배하게 될 21세기 경제(스탠딩, 2018, pp. 192-193, 223-224)에서는 ‘전일제 노동’을 보장받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고, 그러므로 유사한 직종의 민간 부문에서 일자리보장 프로그램 부문으로의 이직 현상은 동일한 시간당 임금률에서조차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이 하비의 제안과 같이 괜찮은 임금을 보장할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4.7. 비자발적 실업에 대한 대처로서 기본소득과 일자리보장 중 어느 것이 더 나은가
하비는 기본소득 보장이 비자발적 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임노동자(a wage laborer in a market job)인 존(John), 무급의 가족 돌봄노동자(an unpaid family care worker)인 제인(Jane), 병으로 인해 일할 수 없는 제인의 아버지(Jane’s Invalid Father; a non-worker)로 구성된 가설적인 상황을 예로 들고 있다.
존과 제인은 월 200 화폐단위(monetary units; MUs)의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지급받는 사회에 살고 있으며, 둘 다 세후로 월 200 화폐단위를 지급받는 유급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제인은 해고되어 비자발적 실업에 고통 받지만, 존은 그렇지 않다. ‘제인이 기본소득을 계속해서 지급받는다고 해서, 기본소득이 유급노동 상실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의 문제에서 하비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유급노동을 하고 있을 때에도 유급노동을 하지 않고 있는 때와 마찬가지로 제인은 동일한 액수의 기본소득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존과 비교했을 때 제인은 실질적 자유를 추구하는 면에서 심각하게 불리하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하비의 비판에 대해서 Standing(2005)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왜 기본소득이 직장을 잃은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보상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판받아야만 하는가? 실직에 대처하는 방법은 보험제도들과 노동시장정책들을 통해서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이 실직비용들과 예상되는 실직비용들을 줄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잘못되었다. 누군가가 극빈하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아는 것은 분명히 실직에 의해 위협받는 어떤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심리적 효과를 가질 것이다. 또한 실업을 더 참을만한 것으로 만들뿐만 아니라 대안적인 만족스러운 형태의 노동을 찾는 데 시간을 갖는 것을 더욱 실현가능하게 할 것이다.”
하비는 (기본소득과 노동소득만을 고려할 경우) 기본소득을 지급받는 사람은 ‘기본소득’만이 유일한 소득의 원천이지만, 유급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은 ‘기본소득’뿐만 아니라 ‘노동소득’이라는 추가적인 소득 원천을 갖는다는 간단한 얘기를, 기본소득이 유급노동 상실에 대한 보상이라고 볼 수 없다는 주장으로 전환시키고 있을 뿐이다. 기본소득이 비자발적 실업 문제를 완벽히 해소할 수는 없지만, 기본소득으로 인해 비자발적 실업 문제는 전혀 해결할 수 없으리라는 가정 역시 지나치거나 잘못된 것이다. 고소득층과 고자산층으로부터 저소득층과 저자산층으로 소득을 이전시키는 기제로서 기본소득을 이해한다면, 그리고 평균적으로 저소득층의 한계소비성향이 고소득층의 한계소비성향보다 크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기본소득 도입으로 인해 사회 전체적인 소비는 증가하고 이로 인해 노동수요도 증가하여 일자리가 늘어남으로써 오히려 노동공급이 증가할 수 있다(기본소득의 “승수효과”, “거시경제효과” 또는 “일반균형효과”라 부르는 것). 이와 마찬가지로, 일자리보장이 비자발적 실업 문제를 완벽히 해소하리라고 기대하는 것 또한 지나치거나 잘못된 것이다.
비자발적 실업 문제에 대처하는 방안으로는 일자리보장보다는 ‘기본소득 도입+노동시간 단축’ 패키지가 더 유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뿐만 아니라, 일자리보장은 ‘비자발적 고용(involuntary employment; 사회적으로 유용하지 않거나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더라도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상황을 일컬음)’ 문제에 대처하는 데에서 별로 유용하지 않을뿐더러 일자리보장론자들은 이를 문제로조차 인식하지 않는 반면, 기본소득은 ‘비자발적 고용(involuntary employment)’을 줄이는 데에도 상당히 기여할 수 있다(판 파레이스, 판데르보흐트, 2018, pp. 56-59).
4.8. 기본소득은 비화폐노동에 대한 보상인가, 그렇지 않은가
기본소득 보장이 돌봄노동, 가사노동, 자원봉사활동 등 임금이 지급되지는 않지만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유용한 다양한 비화폐노동에 대한 보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기본소득론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필립 하비는 아래의 <표 1>을 제시하면서 비판한다.
하비는 일자리를 잃은 후 집에 머무르면서 병약한 아버지를 돌보기로 결정한 제인의 실제 상황은 <표 1>과 같다고 말한다. 존과 제인은 모두 타인을 위해서 주당 40시간 일하지만, 존은 시장일자리에서 일하고 제인은 무급 가족 돌봄 노동자로 일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제인은 제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액수의 기본소득을 받고 돌봄노동에 대해서는 별도의 화폐적 보상을 받는 게 없으므로 제인이 가족돌봄 노동에 대해서 보상을 받는다는 말이 틀리다는 것이다. 오직 임금노동만이 가치를 갖는다고 말한다. 아울러 우리가 공공도로, 공공공원, 경찰, 소방, 공공교육, 건강보험 등도 정부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며, 이것들에 대해서는 비화폐노동의 보상이라고 말하지 않으므로, 기본소득 보장에 대해서만 ‘비화폐노동의 보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표 > 존, 제인, 제인 아버지의 소득 상황
Weekly Hours Worked for Others | Wages Received for Work | Basic Income Grant | Total Income | |||||
John (a wage laborer in a market job) | 40 | 200 | 200 | 400 | ||||
Jane (an unpaid family care worker) | 40 | 0 | 200 | 200 | ||||
Jane’s Invalid Father (a non-worker) | 0 | 0 | 200 | 200 |
출처: Harvey (2005, Figure 2)
여기서 하비는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기본소득과 노동소득만을 고려할 경우) 기본소득을 지급받는 사람은 ‘기본소득’만이 유일한 소득의 원천이지만, 유급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은 ‘기본소득’뿐만 아니라 ‘노동소득’이라는 추가적인 소득 원천을 갖는다는 간단한 얘기를, 기본소득이 비화폐노동의 보상이라고 볼 수 없다는 주장으로 전환시키고 있을 뿐이다. 또한 그가 제시한 예는 존이 가진 일자리와 제인이 가졌던 일자리가 모두 바람직한 일자리인 것으로, 그리고 제인은 이러한 일자리를 잃음으로써 비자발적 실업에 처한 상황인 것으로 전제되어 있다. 비교도 제인의 실업 전후에 대해서만 수행되고 있다.
하지만 만약 기본소득 지급 전과 지급 후의 존과 제인의 세후 임금이 달라진다면, 그로 인해서 존과 제인의 유급노동 결정 자체가 달라진다면, 그림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하비가 제시한 예가 아닌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다른 예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병약한 아버지가 있음에도 기본소득 지급 전에는 생계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유급노동에 종사하던 제인은 기본소득 지급 후에 생계 걱정 없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기꺼이 돌봄노동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예로, 기본소득 지급 전에는 생계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장시간 유급노동에 종사하던 존은 기본소득 지급 후에는 유급노동 시간을 줄이고 대신 무급의 다양한 활동을 늘릴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예로, 기본소득 지급 전에는 생계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원치 않던 유급노동에 종사하던 존은 기본소득 지급 후에는 임금 수준은 더 낮지만 자신이 하고 싶고 자신에게 적합한 유급노동을 이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비가 주목하고 있는 제인의 실업 전후의 비교가 아니라, 기본소득 지급 전후에 존과 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과 옵션들의 비교일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비록 기본소득이 비화폐노동에 대한 직접적 보상은 아니라 하더라도, 기본소득이 임노동, 돌봄노동, 가사노동, 자원봉사활동 등에 있어서 개개인의 기회집합을 확장시킴으로써 비화폐노동에 대한 실질적 보상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급노동과 유급노동으로 이루어진 축에서, 현재가 급격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한다면, 기본소득이 지급된 후의 상황은 바닥이 높아지고 경사가 완화된 형태의 운동장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는 분명히 현재의 유급노동 중심성을 약화시키고 상대적으로 무급노동의 가치를 더 많이 인정하는 형태라고 볼 수 있다.
4.9. 유급일자리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면에서 기본소득과 일자리보장 중 어느 것이 더 나은가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구직자들이 유급일자리를 찾기가 더 쉬워질 것이라는 기본소득 지지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필립 하비는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과 기존 일자리를 재분배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자리보장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반면, 기본소득은 그 자체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기본소득으로 인해서 구직자들이 저임금의, 열악한 노동조건의 일자리를 거부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만약 그러하다면 기본소득 보장은 사람들이 유급일자리를 찾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함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하비는 위에서 지적한 ‘기본소득의 승수효과’에 대해서 전혀 주목하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일자리의 성격에 따라 미치는 기본소득의 상이한 효과를 간과한다. 그는 유급일자리를 단일한 성격을 갖는 그 무엇으로 상정하는 듯하며, 한 사회에서 유급일자리는 가능한 한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간주하는 듯하다. “기본소득은 좋은 노동good work, 자신에게 적합한 노동, 그 자체로 매력이 있으며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를 불러일으키는 노동은 장려하고 증가시키는 반면, 임금, 노동조건 등 다양한 면에서 열악한 노동, 자신에게 맞지 않는 노동, 그 자체로는 매력이 없으나 화폐적 보상에 기초한 외재적 동기extrinsic motivation를 갖는 노동은 장려하지 않으며 감소시킨다. 따라서 후자의 경우에는, 자본가나 경영자는 임금 수준을 높이거나 노동조건을 개선하거나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도록 경제적으로 강제될 것이다.”(이건민, 2020a, pp. 115-116)
아울러 (일자리보장이 과연 완전고용 또는 강한 완전고용을 창출할 수 있느냐의 문제와는 별개로)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완전고용에 대해서도 일자리보장 지지자들과는 상이한 입장을 가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일자리보장 지지자들이 전통적 의미에서의 완전고용을 우리가 반드시 추구해야 할 지상의 목표로 상정하거나 신성시하는 반면,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전통적 의미에서의 완전고용을 절대화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완전고용이라는 목표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완전 고용이란 두 가지 다른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노동 연령에 있는 모든 신체 건강한 인구에게 전일제 유급 일자리를 준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고, 의미 있는 유급 노동을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러한 일자리를 가져다줄 현실적 가능성을 의미할 수도 있다. 기본소득은 그 목표로서 전자는 버리고 후자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생산성이 낮은 일자리의 저임금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법과, 개인이 자기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일을 덜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을 좀더 쉽게 만들어주는 방법을 동시에 사용한다.”(판 파레이스, 판데르보흐트, 2018, pp. 68-69)
4.10. 기본소득은 저임금노동의 질을 저하시키는가 향상시키는가
하비는 기본소득 보장이 “나쁜” 일자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좋은” 일자리가 부족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저임금노동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나쁜” 일자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기본소득을 저임금노동에 대한 임금보조금으로만 바라보는 것이라면, 하비는 전적으로 틀렸다. 기본소득은 스피넘랜드 제도, 유니버설 크레딧, EITC 등등과는 완전히 다르게 작동한다(이건민, 2020a). 기본소득이 저임금노동에 대한 임금보조금 기능으로 작동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때에도 기본소득은 특정 시점에서 임금 수준과는 무관하게 일정한 액수로 지급되므로 동태적(dynamic) 임금보조금이 아닌 정태적(static) 임금보조금이라 할 수 있다(Gilbert, Huws, and Yi, 2019). 또한 노동조건이 열악하거나 그 자체로 매력이 없는 형태의 저임금노동이라면 기본소득은 임금보조금으로 기능하기보다는 이러한 노동으로부터 탈출하는 옵션(exit option)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도핀(Dauphin) 지역을 포화장소(saturation sites;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을 실험집단으로 삼는다는 것을 의미함)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무조건적 현금이전(Unconditional Cash Transfer; UCT)이 갖는 거시경제효과를 비롯한 공동체효과를 식별할 수 있다는 뚜렷한 장점을 지닌다고 평가 받는(Calnitsky, 2019), 1974~1979년에 실시된 캐나다 민컴(Manitoba Basic Annual Income Experiment; Mincome) 실험은 임금 상승 효과와 노동시장을 빡빡하게 하는 효과(tight labor market; 노동자들이 까다로워져서(choosy) 기업에서 구직자를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을 일컬음)가 있었음을 보고한다(Calnitsky and Latner, 2017). 아울러 일자리보장이 일자리보장론자들의 주장처럼 현실에서 완전고용을 달성할지는 크게 의문시된다는 점, 나쁜 일자리를 없애는 것이 괜찮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Graeber, 2018), 나쁜 일자리를 괜찮은 일자리로 전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 등을 추가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4.11. 노동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데 기본소득과 일자리보장 중 어느 것이 더 나은가
하비는 기본소득 보장은 노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의 대체재가 아니라, 소득지원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수단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괜찮은 유급노동에 대한 접근이 양질의 교육, 양질의 보건의료서비스, 적절한 소득지원에 대한 접근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권리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 가이 스탠딩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역사를 통틀어, 대다수의 사람들은 매우 이상한 ‘인권’을 발견해왔다. 일자리를 갖는 것은 급여의 대가로 상사에게 보고하고 복종하면서 예속(subordination) 상태에 놓이는 것이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job’, ‘jobbing’, ‘jobholder’라는 단어들은 생계가 산산조각난(a bits-and-pieces existence) 사람들을 지칭하기 위한 것으로서, 애석(regret)이나 심지어 연민(pity)의 용어들이었다. 예속과 소외(alienation)는 또한 노동법의 중심에 있어 왔으며, 그것은 주인-노예 모델(the master-servant model)에 토대한다.”(Standing, 2019, p. 71)
또한 Standing(2005)은 노동이 ‘임노동’으로 협소하게 이해되지 않고 ‘쉼 없는, 창조적인, 재생산적인 에너지를 전달하면서 인류를 정의하는 무언가’로 풍부한 의미로서 정의될 경우, 기본소득은 노동의 권리를 위한 필요조건이 된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 보장에 대한 권리의 부재는 실재 세계에서 노동의 권리를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당신이 자격권(entitlement)을 갖기 위하여 x, y, 그리고 z를 해야만 한다면, 당신은 권리를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권리가 아니다.” 기본소득은 개인들이 어떻게 일하고, 때때로 어떻게 일하지 않을지에 대해서 합리적인 선택들을 만들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제공하기 위한 전략의 일부분을 이룬다. 물론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인 것은 아니며, 기본소득은 현대 사회에서 소득의 잘못된 분배, 자원들에 대한 불평등한 접근(성), 불안정의 심화 등을 바로잡을 정책들 및 제도적 변화들의 하나의 패키지의 일부분으로서 여겨져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 보장은 개인들로 하여금 노동에 대한 더 장기적인 결정들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공포를 줄이고 자기통제 또는 자율의 감각을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Standing(2005)은 오히려 일자리보장론자들이 모든 직업들이 ‘노동의 권리’라는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심지어 괜찮은(decent) 일자리의 경우에도 그러하다고 말한다). 가이 스탠딩은 실제로 많은 직업들이 위에서 언급한 광의의 의미에서의 노동권을 약화시킨다고 볼 수도 있음을 지적하는데, 그것들은 “자유롭게 선택된 것”이 아니라 통제와 규율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4.12. 소득지원 정책으로서 기본소득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가
하비는 기본소득을 노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의 대체재가 아니라 소득지원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수단으로 이해할 경우, 기본소득이 갖는 주요 장점은 행정적 단순성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하비는 기본소득 보장이 다음과 같은 뚜렷한 한계가 있다고 본다. 첫째, 사회취약계층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둘째, 가족돌봄이나 공동체 서비스 노동에 대해서는 세계인권선언이 강조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equal pay for equal work)’을 적용할 수 없다. 셋째, 기본소득이 지급되더라도 노인,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들, 장애인들 등에 대한 별도의 소득지원은 여전히 요청된다.
이러한 하비의 견해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기본소득 보장이 사회취약계층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지는 못한다고 볼 수는 없다.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사회취약계층을 비롯한 저소득층의 소득을 상승시킴으로써 그들의 기회집합을 크게 하고 그들에게 더 많은 선택지와 기회를 부여할 수 있다. 오히려 “일자리보장 제도는 하나의 익숙한 덫을 생기게 할 것이다 – ‘일할 수 있는’ 사람들, 그리하여 보장된 일자리에 자격을 갖춘 사람들과 ‘일할 수 없는’ 사람들 사이의 허위의 구분. 영국에서, 이것은 모욕적이며 낙인을 부여하는 ‘노동능력(capacity-to-work)’ 조사와 ‘일할 가능성(availability-for-work)’ 조사를 초래해왔으며, 이는 장애인, 취약계층, 돌봄 책임을 가진 사람들에게 반하는 차별적인 조치를 낳았다.”(Standing, 2019, p. 73) 다음으로 가족돌봄이나 공동체 서비스 노동에 대해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적용할 수 없다는 비판은 지나치거나 그릇된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가족이나 친척, 이웃을 무상으로 돌보는 일과 돈을 받고 다른 사람을 돌보는 일을 동일노동이라고 보기는 곤란하다. 무급의 자발적인 활동에 대해 국가가 모두 임금을 지급하고 관리해야 하는 세상을 생각해보면(일자리보장론자들은 어떠한 형태의 유급노동도 기본소득을 포함하여 모든 형태의 복지보다 우월하다는 입장을 취하므로, 이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음), 이러한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인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화폐적 보상을 얻기 위한 외재적 동기가 자발적인 내재적 동기를 몰아낼 수 있으며, 우리의 일상생활이 관료주의에 침해당할 것이다. 또한 “임노동(labour)이 아닌 많은 형태의 노동(work)은 심리학적으로, 사회적으로 더 보람 있”으며, “모든 사람을 일자리로, 자신에 의해 선택되지 않은 활동들로 밀어 넣는 체제(regime)는 조직된 소외(orchestrated alienation)가 될 것이다.”(Standing, 2019, p. 75) 아울러 기본소득이 지급되는 경우에도, 돌봄노동에 대한 화폐적 보상 내지 소득지원은 사회수당의 형태로 충분히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기본소득이 지급되더라도 노인,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들, 장애인들 등에 대한 별도의 소득지원은 여전히 요청된다’는 말 자체는 옳지만, 이것이 기본소득에 대한 비판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는 기본소득뿐만 아니라 다른 형태의 복지급여, 그리고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되기 때문이다.
4.13. 하비의 구상인 ‘일자리보장+자산조사는 하지만 work test(노동능력 조사 및 노동의사 조사)는 하지 않는 특수한 형태의 ‘기본소득 보장’(“unconditional means-tested public-assistance benefit”)’은 과연 바람직한가
하비는 ‘노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일자리보장과 자신이 제안한 특수한 형태의 ‘기본소득 보장’, 즉 자산조사를 실시하는 ‘기본소득 보장’은 원래의 형태의 ‘기본소득 보장’보다 비용도 적게 들고, 빈민에게 더 관대한 액수를 지급하며, ‘노동의 권리’도 보장한다는 장점을 지닌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이 두 정책은 경쟁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일자리보장론자들의 주장과 기대와는 달리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이 비자발적 실업 문제를 해소하고 ‘노동의 권리’를 보장할지는 크게 의문시된다. 또한 그들이 주장하는 바보다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은 막대할 것으로 예측된다. 여기에다 자산조사 공공부조 복지급여가 더해진다면 비용은 더 커지게 된다. 아울러 자산조사 공공부조 복지급여는 상당한 문제들(빈곤의 덫, 실업의 덫, 별거의 덫, 저축 저해 효과, 낙인효과와 수치심 부여, 정신적, 신체적 건강에 부정적 효과, 낮은 수급률, 받아야 할 사람들이 못 받고 받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받게 되는 오분류, 상당한 행정비용과 행정부담 등등)을 양산하는 바, 앞으로의 복지정책은 자산조사 공공부조 복지급여에 대한 의존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지 그것의 비중을 더 크게 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매우 곤란하다.
5. MMT론자들이 말하는 최종고용자 프로그램
이 절에서는 Tcherneva(2003)를 중심으로 MMT론자들이 말하는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의 수단과 목표, 핵심 요소를 살펴보고, 그들이 어떠한 근거를 들어서 기본소득을 비판하고 있는지를 소개한다.
5.1.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의 수단과 목표: 최저임금 수준에서 무한탄력적인 노동수요(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을 동시에 달성한다는 것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을 지지하는 MMT론자들로는 바드대학(Bard College)의 경제학과 교수인 랜덜 레이(L. Randall Wray), 파블리나 체르네바(Pavlina R. Tcherneva),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대학교(Stony Brook University)의 공공정책및경제학과 교수인 스테파니 켈튼(Stephanie A. Kelton), 미주리대학교(University of Missouri – Kansas City; UMKC)의 경제학과 교수인 스콧 풀윌러(Scott Fullwiler), 뉴욕주립대 코틀랜드(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Cortland)의 경제학과 교수인 플라비아 단타스(Flavia Dantas), 호주 뉴캐슬대학교(University of Newcastle) 교수인 윌리엄 미첼(William Mitchell)과 마틴 와츠(Martin Watts), 그리고 매튜 포스테이터(Mathew Forstater) 등이 있다.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일자리보장(Job Guarantee; JG)은 최종고용자(Employer of Last Resort; ELR), 완충재고고용(Buffer Stock Employment; BSE), 공공서비스고용(Public Service Employment; PSE)이라고도 불린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역사상으로 존재해왔던 정부의 다양한 직접일자리창출 프로그램들과 다음과 같은 점에서 구분된다. ①보편적이고, ②시간제한이 없으며, ③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계된다(Tcherneva, 2003, p. 3).
최종고용자 아이디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는 하이먼 민스키(Hyman Minsky)의 1986년 저서인 Stabilizing an Unstable Economy에서 기원한다. 이 저서에서 민스키는 정부는 완전고용 전략을 개발해야 하며, 완전고용을 달성하기 위한 주요 수단은 바로 민간기업의 이윤 기대와 독립적으로 최저임금 수준에서 무한탄력적인 노동수요를 창출하는 것(정부에서 최저임금 수준에서 일자리 갭(job gap)만큼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의미)이라고 주장하였다(Minsky, 1986, p. 308).
5.2.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의 핵심 요소
미주리대학교(University of Missouri – Kansas City; UMKC)의 완전고용 및 물가안정 센터(Center for Full Employment and Price Stability)는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은 6가지 핵심 요소로 구성된다고 말한다.
①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은 인종, 젠더, 교육 수준, 노동 경력, 이주(immigration) 지위와 상관없이 일할 의향과 준비가 되어 있고 일할 수 있는 그 어떤 사람들에게도 일자리를 제공하며, 경제 상황(performance of the economy)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이러한 조건들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왜 민간기업들이 무한탄력적인 노동수요(infinitely elastic demand)를 제공할 수 없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정부가 그러한 역할을 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모든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비영리기구 등에 위탁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②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은 사회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그것은 고용안전망(employment safety net)이다. 그것은 민간부문 또는 기존 공공부문 일자리와 경쟁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펌프에 마중물을 부음(priming the pump)”으로써, 즉 총수요를 증가시킴으로써 작동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정의상(by definition),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은 사회취약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그것은 완충재고정책이며, 다른 완충재고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완충재고의 가격, 즉 이 경우에는 바닥에 있는 임금(최저임금 또는 생활임금을 의미함)을 안정화시켜야 한다.
③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의 목표는 완전고용이지만, 느슨한 노동시장과 함께하는 완전고용이다.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이 사회취약계층을 고용한다면, 이것은 실제로 보장된다. 최종고용자 프로그램과 함께, 노동시장은 느슨해진다. 왜냐하면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으로부터 밖으로 나와서 민간기업으로 유입되는 가용한 노동 풀(pool of labor)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느슨한 노동시장은 사람들이 일자리에서 빠져나오도록 함으로써만 유지될 수 있다.
④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의 보상패키지는 임금 및 가격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하는 동시에, 괜찮은 생활수준을 제공해야만 한다. 제공되는 패키지로는 보건의료서비스, 육아서비스, 병가, 휴가, 사회보장기여금 등이 포함될 수 있다.
⑤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의 참가경험은 노동자들이 다음 일자리로 가도록 준비시킨다. 따라서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의 노동자들은 유용한 노동습관과 숙련을 배워야 한다. 훈련과 재훈련은 모든 최종고용자 일자리의 중요한 구성요소여야 한다.
⑥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의 노동자들은 유용한 활동들에 종사한다. 공공서비스와 공공인프라.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의 노동자들은 유용한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는데, 하지만 그들은 이미 수행되는 무언가를 해서는 안 되며, 특히나 민간부문과 경쟁해서는 안 된다.
5.3. MMT론자들의 기본소득 비판
MMT론자들은 필립 하비와 같이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든다”라는 식으로 기본소득을 비판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MMT론자들은 자국화폐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 어떠한 정부도 아무리 ‘비싸다 하더라도(expensive)’ 어떠한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발권력을 이용하여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레이, 2017; Tcherneva, 2003 등 다수). MMT론자들은 정부는 자국통화에 대한 유일한 발행자이기 때문에, 언제나 지출(spending)이 우선이고 과세(taxation)는 지출 다음에 뒤따라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MMT론자들은 정부는 지출하기 전에 과세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MMT론자들은 화폐는 국가의 창조물이며 정부는 정부가 발행한 화폐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 과세한다고 본다. 국정화폐의 주요 기능은 정부가 지출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즉 민간 부문에서 공공 부문으로 실물 재화 및 서비스가 이전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곧 MMT론자들은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이 되었든 소득보장 프로그램이 되었든 그러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기 위한 어떠한 ‘재정적’ 제약도 없다고 본다(물론 그들은 ‘정치적’ 제약은 존재한다고 인정한다).
MMT론자들은 기본소득에 비한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의 장점으로 다음의 세 가지를 들고 있다. ①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은 화폐의 가치에 대한 닻(anchor)을 제공한다. ②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은 보편적 소득지원 프로그램들보다 경기변동을 훨씬 더 잘 안정화시킨다. ③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은 물가안정성을 높인다.
첫 번째로,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이 화폐의 가치에 대한 닻을 제공한다는 MMT론자들의 주장은 아래와 같이 요약된다.
조세가 화폐를 추동한다는 관점(taxes-drive-money approach)에서 보자면, 통화의 가치는 주어진 조세채무(tax liability)를 지불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에 의해 결정된다. 기본소득보장의 경우에는, 보편적으로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조세채무를 지불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requirement)이 없으므로, 통화의 가치는 급격히 하락할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에서는 통화의 가치가 공공 부문 임금과 연결된다. 예를 들어, 조세채무가 동일한 수준이고 물가도 안정적이라고 가정할 경우, 최종고용자 프로그램 참가자의 시간당 임금이 두 배로 상승한다면, 노동자들은 동일한 액수의 임금을 얻기 위해서 절반의 시간만 일해도 된다. 따라서 통화의 가치는 급격히 하락할 것이다. 반대로, 최종고용자 프로그램 참가자의 시간당 임금이 절반으로 하락한다면, 노동자들은 동일한 액수의 임금을 얻기 위해서 두 배의 시간 동안 일해야 한다. 따라서 통화의 가치는 상승할 것이다. 이와 같이,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은 자국화폐의 가치에 대한 안정적인 기준점(benchmark)을 제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고안될 수 있다.
두 번째로,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은 보편적 소득지원 프로그램들보다 경기변동을 훨씬 더 잘 안정화시킨다는 MMT론자들의 주장은 아래와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우선 공공 부문 고용에 대한 정부의 지출이 경기조정적으로(countercyclically) 변동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기침체기에는, 민간기업이 노동자들을 해고하는데 해고된 사람들은 공공 부문에서 일자리를 찾게 된다. 그 결과로, 정부지출은 자동적으로 증가하며, 필요한 경기부양을 제공한다. 반대로, 경기가 개선되고 민간 부문이 팽창하면, 노동자들이 공공 고용 풀에서 빠져나가며, 이로 인해 정부지출이 줄어들고 적자도 감소한다.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은 이와 같이 정부지출이 완전고용을 유지하기에 적절한 수준에 있도록 보장하게끔 작동하는 강력한 자동안정화 장치(automatic stabilizer)로 기능한다.
기본소득보장은 만약 그것이 실업자만을 대상으로 타기팅하거나 개인의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더 많은 액수를 지원하는 식으로 작동한다면, 경기대응적 안정화 장치(countercyclical stabilizer)로서 기능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순수한 형태에서, 기본소득보장은 경기변동에 대한 안정화 효과를 갖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소득 수준이나 고용 지위와 무관하게 모든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은 물가안정성을 높이지만 기본소득보장은 그렇지 않다는 MMT론자들의 주장은 아래와 같이 요약된다.
최종고용자 프로그램과 기본소득보장은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는 수요측 정부 프로그램들이라고 비판받는다. 군사케인즈주의와 같이 “펌프에 마중물을 붓는(priming the pump)” 정책들은 (대부분 바람직한 노동자들과 경쟁하는) 상위계층에게 주로 일자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아마도 인플레이션적일 것이다. 하지만 하위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저소득계층만을 타기팅하는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이나 기본소득보장과 같은 프로그램들은 위와 같은 인플레이션적 압력을 낳지 않을 것이다. 소득보장에 대해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최대한은 그것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은 그것의 실행 그 자체가 인플레이션적 압력을 낳지 않으며 실제로는 물가안정성을 높일 것이라는 점을 보장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주요한 근거가 있다. 첫 번째는,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이 ‘fixed price/floating quantity rule’(임금 수준은 고정시키고, 노동공급량은 일자리 갭(job gap)에 따라 변동시킨다는 규칙)에 따라 작동하는 하나의 완충재고 프로그램(bufferstock program)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는, 공공고용프로그램과 관련된 어떠한 정부적자지출도 항상 ‘정확한(right)’ 수준에 위치할 것이라는 점이다.
먼저 ‘fixed price/floating quantity rule’에 따라 작동하는 완충재고 프로그램이라는 근거는 아래와 같이 설명된다.
이 아이디어는 노동을 완충재고 상품으로 활용하며, 다른 완충재고 상품과 마찬가지로 이 프로그램은 상품의 가격을 안정화할 것이다. 공공 부문 피고용인들에게 제공되는 임금은 외생적으로 고정되며 민간 부문의 임금과 경쟁하지 않는다. 이것은 민간 부문에서의 노동수요가 증가할 때 임금은 상승하며 노동자들이 공공 부문 일자리로부터 빠져나온다는 것을 보장한다(완충재고가 “팔린다(sold)”). 반대로, 민간 부문이 노동자들을 해고할 때, 그들은 공공 부문에서 일자리를 찾는다(완충재고가 “구입된다(bought)”). 다른 말로 하자면, 완충재고의 가격에 대한 상승 압력이 있을 때 그 상품은 팔리며, 완충재고의 가격을 하락시키는 힘이 작용할 경우 그 상품은 구입된다. 따라서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은 공공 부문에서의 임금 안정성을 보장함으로써 물가에 대한 대항 압력(countervailing pressure)과 강력한 경기대응적 기제(counter-cyclical mechanism)를 제공한다.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은 ‘fixed price/floating quantity rule’에 의해 작동된다. 왜냐하면 완충재고의 가격(공공 부문 임금)은 고정되어 있고, 그 상품의 양(공공 부문 고용)은 변동하도록 허용되기 때문이다. 외생적인 공공 부문 임금은 완벽하게 안정적이며, 노동은 (다른 모든 종류의 상품의 생산에서 직간접적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기본상품(basic commodity)이기 때문에, 이러한 규칙은 다른 모든 상품가격에 대한 완벽한 기준점(benchmark)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공 부문 임금은 특정한 경제에서 물가에 안정적인 닻(anchor)을 제공한다.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에는 이러한 중요한 특징이 내장되어 있지만, 소득보장 제안들에서는 이에 비교가능한 대응물(counterpart)이 없다.
다음으로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에 대한 정부적자지출이 항상 정확한 수준에 위치할 것이라는 근거는 아래와 같이 설명될 수 있다.
기본소득보장 지지자들에게서 정부적자지출의 ‘정확한(right)’ 수준이란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할 수 있는 수준일 것이다. 최종고용자 프로그램 옹호자들에게서 그것은 완전고용을 보장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의 경기대응적 설계(countercyclical design)는 적자지출이 인플레이션적인 또는 디플레이션적인 압력에 대응할(counteract) 것임을 보장한다. 소득보장 프로그램들에서는 그러한 대비가 존재하지 않는다.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은 총수요가 총공급이나 경제의 생산능력에 비해 너무 많거나 너무 적을 때 발생한다. 이러한 압력을 상쇄시키기 위한 열쇠는 소득과 지출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완전고용일 때의 산출물을 구입하기에 충분한 수준으로 정확히 소득과 지출을 부양하는 것이다.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은 설계상, 예산적자가 결코 너무 많거나 너무 작지 않게끔 보장한다. 정부지출은 실업이 제거될 때까지 증가할 것이며, 그 지점에서 적자는 증가하기를 멈출 것이며, 이는 총수요가 총공급의 완전고용 수준을 상회하지 않게끔 보장한다. 반대로, 만약 실업이 다시 증가한다면, 총수요와 총공급이 균형을 이루게끔 적자지출이 증가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자동안정화 장치로 기능하는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의 특징은 지출이 너무 작을 때에는 완전고용 수준의 산출물이 도달할 때까지 증가하게끔 보장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기본소득 프로그램들은 물가변화에 대응하는 힘(countervailing force)을 작동시킬 수 없다.
이외에도, MMT론자들은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이 교육, 훈련, 재훈련 프로그램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인적자본 유지 및 개발 면에서 기본소득보장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이 공공서비스와 공공인프라를 향상시킴으로써 민간 부문의 생산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기본소득보장보다 우월하다고 본다.
6. MMT론자들의 기본소득 비판에 대한 반비판
이 절에서는 최종고용자 프로그램과 기본소득을 다각도로 비교하면서, MMT론자들의 기본소득 비판에 대해서 반비판한다.
첫째, 엄격한 형태의 균형재정론을 비판한다는 점, 균형재정론에 입각한 긴축정책을 비판한다는 점에서는 MMT론자들과 뜻을 함께 한다. 하지만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이 되었든 소득보장 프로그램이 되었든 그러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기 위한 어떠한 ‘재정적’ 제약도 없다는 MMT론자들의 주장은 지나치거나 그릇된 것이다.
특정 시점에서 특정 프로그램에 대한 지출이 재원조달액수보다 당연히 클 수도 있지만(이것은 경제의 변화로 인해 실제 세입이 예상 세입보다 작거나, 특정 프로그램의 지출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변수의 변화로 인해 실제 지출이 예상 지출보다 늘어날 경우 발생할 수 있음), 특히나 막대한 액수의 지출인 경우 사후적으로라도 과세를 통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울러 특히나 막대한 액수의 지출인 경우에, 재원마련 방안이 강구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에 수반되는 ‘정치적’ 제약은 상당할 수 있다. MMT론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따를 경우, 자칫 잘못하면 우리는 특정 프로그램 또는 사회 전체의 조세-급여 체계(tax and transfer system)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비롯한 각종 효과 분석의 유용성마저 모두 폐기할 위험성이 있다.
MMT론자들은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을 실시하다가 설령 (예상치 못한) 인플레이션이 초래된다 하더라도 그러할 경우에는 증세를 통해서 통화를 흡수하면 된다고는 주장하지만(예를 들어, 스테파니 켈튼 교수; 한광덕, 2019. 5. 7), 세율을 높이거나 낮추는 문제는 경기변동에 따라 신속하고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정책변수라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에 수반되는 ‘정치적’ 제약은 상당할 수 있다.
둘째,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이 화폐의 가치에 대한 닻을 제공한다는 MMT론자들의 주장, 그리고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은 물가안정성을 높이지만 기본소득보장은 그렇지 않다는 MMT론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선 기본소득보장의 경우에는 “보편적으로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조세채무를 지불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 없으며 “따라서 통화의 가치는 급격히 하락할 것”이라는 MMT론자들의 비판은 잘못되었다. MMT론자들은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은 총수요가 총공급이나 경제의 생산능력에 비해 너무 많거나 너무 적을 때 발생”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나 최소소비수준 이하 액수의 기본소득 지급이 사회 전체적으로 노동공급을 유의미하게 감소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최소소비수준 이하 액수의 기본소득 지급이 총공급이 경제의 생산능력을 크게 감소시킨다고 볼 수는 없다(Yi, 2018; Gilbert, Huws, and Yi, 2019). MMT론자들은 생계수준 기본소득을 지급할 경우 사람들의 노동공급이 급격히 감소하고 이로 인해 경제 전체의 생산도 급격히 줄어들 것이라고 보는데, 이는 부당전제의 오류이다.
여기서 MMT론자들은 ‘무복지의 상태(NSS; No Social Security)’와 ‘기본소득이 지급되는 상태’를 비교하고 있는데, 현재 상태는 ‘무복지의 상태’가 아니라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 등 각종 복지 프로그램들이 존재하는 ‘조건적 사회보장(CSS; Conditional Social Security)의 상태’이다. “우리는 이미 무복지 상태의 나라가 아니다. 기초생활 보장 제도, 구직수당 등 선별소득보장을 시행하고 있다. 따라서 무복지와 비교할 필요는 없고 선별소득보장과 비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선별소득보장과 비교할 때 기본소득은 확실하게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는 정책이다.”(강남훈, 2019, p. 55) 다음으로 통상적으로 고려하는 소득효과와 대체효과뿐만 아니라 승수효과와 공동체효과 역시 추가로 감안해야 한다(강남훈, 2019, pp. 55-58). 기본소득은 한계소비성향이 작은 고소득층/고자산층에서 한계소비성향이 큰 저소득층/저자산층으로 소득을 이전하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 노동수요를 늘리고 이로 인해 일자리를 증가시키는 승수효과를 낳는다. 만약 승수효과를 고려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기본소득의 일자리 효과를 과소평가하게 될 것이다. 기본소득의 공동체효과는 위의 승수효과를 비롯하여 신체적•정신적 건강 증진 효과, 범죄와 의료비 감소 효과, 협동의식 증진 및 사회적 경제 조직 활성화 효과, 교육 투자로 인한 노동생산성 증가 효과, 지대추구 행위 축소 및 소득불평등 개선 효과, 사회적 안정 및 사회통합 효과 등 전 사회에 미치는 광범한 효과를 모두 포함한 것이다. 만약 공동체효과를 고려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기본소득의 일자리 효과를 과소평가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기본소득이 노동시장 참여를 제약하는 요인들을 완화•제거하고 노동시장 참여로 인해 발생하는 거래비용(교통비용, 직장생활을 함으로 인해 입을 것과 먹는 것에 소요되는 추가 지출 등)과 기회비용(출퇴근시간, 돌봄비용 등)을 보전한다는 점을 추가로 감안한다면, 최소소비수준 이하 수준의 기본소득 지급이 사회 전체적인 노동공급을 줄일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Yi, 2018; Gilbert, Huws, and Yi, 2019). 따라서 (통화증발에 크게 의존하여 큰 액수의 기본소득을 지급하지 않는 한) 기본소득이 도입될 경우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보는 MMT론자들의 시각은 문제가 있다.
다음으로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에서는 통화의 가치가 공공 부문 임금과 연결되므로 이것이 사회 전체의 물가에 대한 일종의 닻(anchor) 내지는 기준점(benchmark)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MMT론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fixed price/floating quantity rule’에 따르면, 최종고용자 프로그램 부문에서 흡수해야 하는 노동의 양은 민간 부문 및 기존 공공 부문의 일자리 현황과 경기변동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 만약 최종고용자 프로그램 부문에서 흡수해야 하는 노동의 양이 매우 작을 경우, 그것이 전체 경제의 고용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작을 것이고, 따라서 최종고용자 프로그램 부문에서의 임금 수준이 사회 전체의 물가수준은커녕 사회 전체의 임금 수준에 미치는 영향조차도 미미할 것이다. 2) 만약 최종고용자 프로그램 부문에서 흡수해야 하는 노동의 양이 매우 클 경우, 그것이 전체 경제의 고용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겠지만, 이 경우에는 최종고용자 프로그램 부문에서 수행되는 노동의 질과 노동생산성이 큰 이슈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시간당 임금률이 고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고정되어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에서 수행되는 노동의 질과 생산성이 형편없을 경우(실제로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에서 수행되는 노동의 질과 생산성이 형편없을 확률은 매우 클 것으로 보이며,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에서 흡수해야 할 노동력 풀이 커질수록 더욱 그러할 것으로 보임), 시간당 임금률은 고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질적 측면까지 고려된 노동공급은 급감하고 총공급 역시도 급감하여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될 수 있다. 즉 수요견인 인플레이션(demand-pull inflation)과 비용인상 인플레이션(cost-push inflation)이 동시에 발생할 위험이 있다. 최저임금 내지 생활임금 수준에서 시간당 임금률을 고정시킴으로써 물가안정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며,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적 성격, 즉 노동시간 동안 노동자의 노동력을 얼마만큼 어떻게 추출할 것인가의 문제가 첨예하게 제기된다는 점을 전적으로 도외시한 것이다(이러한 점에서, ‘buffer stock employment’에서 노동(력)이라는 완충재고 상품은 여타의 완충재고 상품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할 수 있다). 실증적으로 보더라도, 물가 또는 임금과 관련하여 닻(anchor)과 기준점(benchmark)이 있으면 또는 더 많이 있을수록 물가안정성 또는 임금안정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가설은 지지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제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들의 물가 및 임금 상승률이 최저임금제를 실시하지 않는 국가들의 물가 및 임금 상승률보다 낮고 더 안정적이라는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셋째,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은 보편적 소득지원 프로그램들보다 경기변동을 훨씬 더 잘 안정화시킨다는 MMT론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통상적으로 거시경제학에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효과를 비교하는 면에서 중요한 이슈를 이루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정책‘시차’의 문제이다. 정책시차란 “경제 문제가 발생한 시점부터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의미하는데, “경제 전문가들이 나라 경제에 문제가 있음을 알아채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을 고르는 시간,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국회 동의를 받는 데 걸리는 시간, 정책 실행 후에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필요한 시간 등으로 구성된다.”(한진수, 2009. 11. 4) “시차가 짧을수록 문제점을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으므로 좋은 정책이다. 정책을 집행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측면에서는 재정정책이 통화정책에 비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재정정책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국회의 통과를 거쳐야 하지만, 통화정책은 매달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결의하면 되기 때문이다. 정책 실행 후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을 채택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므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가운데 어느 한 쪽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기 어렵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는 정책 같은 경우에는 효과가 비교적 빨리 나타난다.”(한진수, 2009. 11. 4)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이 보편적 소득지원 프로그램들보다 경기변동을 훨씬 더 잘 안정화시킨다는 MMT론자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정책시차”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음을 확인해볼 수 있다. 물론 MMT론자들은 자신들의 구상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통합한 것이므로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에서 정책시차의 문제는 별로 이슈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이 갖는 행정적 복잡성 자체가 막대한 행정부담과 행정비용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상당한 ‘시간’을 소요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노동능력이 있으면서 노동의사도 있는 사람들을 모집하는 과정, 2) 그들 각자에게 제안할 구체적인 일자리를 매칭하는 과정, 3) 만약 그들이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훈련, 재훈련 등이 필요할 경우 그것을 연결시키는 과정 등은 모두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며, 이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경기 상황과 일자리 현황은 이미 변화했을 것이다.
설령 정책시차 문제가 큰 이슈가 아니라 하더라도,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이 민간 부문과 기존 공공 부문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또는 ‘않아야 한다’는 MMT론자들이 갖고 있는 전제 자체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MMT론자들이 ‘않아야 한다’라고 거듭 강조하는 이유는 그렇지 않을 경우 이론상으로(in theory) 그리고 문서상으로(on paper) 정합적인 자신들의 이론체계가 현실에서 들어맞지 않고 무너지게 되기 때문이다. MMT론자들이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으로서 제시하고 있는 일자리는 주로 공공서비스와 공공인프라 분야에서 창출될 것인데, 현실의 경제와 사회는 ‘폐쇄체계’가 아니라 ‘개방체계’이기 때문에 분명히 민간 부문과 기존 공공 부문과 경쟁할 것이고 ‘일자리’에 국한하더라도 확실히 경쟁할 것이다. 만약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으로 인해서 민간 부문과 기존 공공 부문의 일자리가 조금 또는 상당히 구축된다면, MMT론자들이 옹호하는 ‘완전고용’을 실제로 추구하기 위해서는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이 더욱 더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이 민간 부문의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MMT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은 오히려 민간 부문의 경제를 둔화시키거나 구축하는 기능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매우 비현실적인 가정으로, 만약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이 민간 부문과 기존 공공 부문과 경쟁하지 않는 전혀 별개의 프로그램이라고 한다면, 경기가 좋을 때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의 노동자가 민간 부문 또는 기존 공공 부문으로 다시 유입되거나 경기가 나쁠 때 민간 부문 또는 기존 공공 부문에서 노동자가 유출되어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으로 다시 들어가는 과정(일자리 매칭, 직무 교육·훈련 등의 전 과정)이 그렇게 매끄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매우 비현실적이면서도 낙관적인 가정 하에서도, MMT론자들이 말하는 경기변동 안정화 효과와 완전고용 달성이 결코 유망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이뿐만 아니라, MMT론자들이 말하는 ‘fixed price/floating quantity rule’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경제가 노동시간, 고용형태, 노동의 안정성/불안정성 등의 다양한 차원에서 단일하거나 비교적 균질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경제는 노동시간, 고용형태 등 여러 면에서 복잡다기하다. 위에서도 제3의 경제, 영시간계약, 플랫폼노동 등의 문제를 제기한 바 있는데, 이것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고자 한다. 농업의 시간, 산업의 시간에 이은 제3의 시간(각주 5 참조)이 점점 더 지배하게 될 21세기 경제(스탠딩, 2018, pp. 192-193, 223-224)에서는 ‘전일제 노동’을 보장받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고, 그러므로 유사한 직종의 민간 부문에서 일자리보장 프로그램 부문으로의 이직 현상은 동일한 시간당 임금률에서조차도 상당할 수 있다. 이는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에서 최저임금 내지 생활임금으로 고정되어 설정된 시간당 임금률 하에서, 호황일 경우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에서 민간 부문으로의 노동 유출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본 MMT론자들의 가정이 불안정노동이 지배적인 현실의 경제에서는 더 이상 그대로 적용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호황, 불황과 관계없이, 유사한 직종의 민간 부문에서 일자리보장 프로그램 부문으로의 이직 현상은 동일한 시간당 임금률에서조차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MMT론자들은 경기변동에 따라 민간일자리의 수가 등락하는 ‘순환’적 측면에만 주목할 뿐, “기술변화, 산업구조의 변화 등 사회경제구조 변화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하고 있다(이건민, 2017, p. 105). 그들은 “현재의 실업의 성격이 구조적․기술적이라는 점”을 도외시하고 있다. MMT론자들은 “모든 인플레이션은 화폐적 현상이다”라고 주장한 밀튼 프리드먼을 비롯한 통화주의자들의 주장에 빗대어 “모든 실업은 화폐적 현상이다”라고 주장하기까지 하는데(레이, 2017), 이는 오늘날의 실업 문제에 대한 MMT론자들의 순진무구한(naive) 시각을 잘 드러낸다.
MMT론자들은 ‘조세형 기본소득’만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조세형 기본소득’만으로 국한하더라도, 생계수준 기본소득의 지급은 어떠한 경우에도 지지할 수 있는 소득바닥을 제공함으로써 소득안정성을 높이고 이로 인해 경기상황에 관계없이 생필품을 소비할 수 있는 여력을 모두에게 부여함으로써 소비안정성을 높인다. 또한 ‘조세형 기본소득’은 시장소득을 많이 벌 경우 많은 액수를 세금으로 납부하고 시장소득을 적게 벌 경우에는 기본소득이 중요한 소득원천으로서 지지해주기 때문에, 경기변동에 따른 한 개인의 소득변화로 인한 소득변동성을 줄이고 이에 따라 소비변동성도 줄임으로써 경기변동의 진폭 자체를 줄이는 기제를 작동시킬 수 있다.
아울러 기본소득에는 ‘조세형 기본소득’만이 있는 것이 아니며,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최근 주목하고 있는 구상으로서 화폐의 민주화를 동반한 기본소득 지급방안이 존재한다.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일본의 경제학자 Tomohiro Inoue(2019)는 Guy Standing(2018)이 제안한 안정화 급여(stabilization grant) 구상, 즉 경기가 호황일 때는 적은 액수로, 경기가 불황일 때는 많은 액수로 지급됨으로써 경기안정에 기여하는 변동형 기본소득 구상을 더욱 정교화한 바 있다. 그는 세금을 재원으로 하는 기본소득을 ‘고정 기본소득’, 화폐발행 이익을 재원으로 하는 기본소득을 ‘변동 기본소득’이라고 부르면서, 고정 기본소득과 변동 기본소득으로 구성된 ‘이중 구조의 기본소득’을 제안한다(pp. 90-93). 이 중에서, “변동 기본소득은 스탠딩이 말하는 안정화 급여 보조금과 유사하다. 단, 내가 말하는 변동 기본소득은 화폐발행 이익으로 충당해야 한다. 표현을 달리하면 헬리콥터 머니를 바탕으로 한 기본소득이다. … 실제 물가상승률이 목표 물가상승률보다 낮으면 국채의 매입액수를 늘리고, 높으면 매입액수를 줄이는 것이다. … 정부는 매입액수를 국민의 숫자로 나눠서 빠짐없이 변동 기본소득으로서 지급한다. 그러려면 화폐발행 이익을 군비증강과 도로건설 같은 다른 용도로 허비하지 않도록 규칙을 제정해야 한다. … 국채의 매입액수는 철저히 중앙은행이 결정한다. 그러면 중앙은행의 결정에 따라서 변동 기본소득의 액수는 저절로 정해진다. 결국은 중앙은행이 변동 기본소득의 액수를 변경하므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지킬 수 있다. … 나는 이러한 변동 기본소득에 따른 경기통제가 거시경제정책의 주축으로서 기존의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을 대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격적으로 그러한 정책을 시행하려면 … 화폐제도의 근본적 변혁이 필요하다.”(pp. 91-92) 궁극적으로는, 이노우에 교수는 ‘100퍼센트 지급준비제도’(100퍼센트 완전지급준비제도)로의 전환까지도 요청하고 있다(pp. 124-129). 이러한 형태의 기본소득은 화폐의 민주화에 크게 기여할 뿐만 아니라, 확실히 경기변동을 안정화시키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이는 사람들에게 적시에 현금의 형태로 지급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과정과 절차를 필요로 하는, 그리하여 정책시차를 수반하는 최종고용자 프로그램과는 뚜렷하게 구분된다.
넷째, 정부적자지출의 적정 수준과 인적자본 개발과 관련한 MMT론자들의 주장에도 문제가 많다.
현실에서는 정부적자지출을 일부 활용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대체로 기본소득의 재원조달 방안으로 정부적자지출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누진적인 소득세제로의 개편과 동반한 기본소득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물론 생태세, 토지보유세 등에 기반한 기본소득 모델, 공통부기금에 기초한 기본소득 모델, 화폐제도 개혁을 동반한 기본소득 모델 등도 존재한다). 한편으로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에 대한 정부적자지출이 항상 정확한 수준에 위치할 것이라는 MMT론자들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위에서 ‘fixed price/floating quantity rule’이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근거를 제시하면서 충분히 논의되었다. 오늘날의 실업 문제가 아니라 순환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구조적․기술적 실업의 성격이 강하고 앞으로도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면, (완전고용을 달성하려는 목적의)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한 정부적자지출의 수준은 계속해서 증가해야 하는 추세를 보일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실업이 완전히 제거되지도 않을 것이다. 민간 부문의 생산성을 증가시킬 수 있는 공공서비스 및 공공인프라의 개발이 왜 기존의 공공 부문에서 담당하지 않고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에서 담당해야 하는가도 의문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fixed price/floating quantity rule’에 입각한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이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을 동시에 달성한다는 주장이 허구적이라면 말이다.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이 교육, 훈련, 재훈련 프로그램을 포함하긴 하지만, 애초에 최종고용자 프로그램에서 제안하는(offer) 일자리 자체가 각 사람의 선호, 숙련도 등에 적합한 것인지 자체가 크게 의문시된다. 만약 각 사람에게 적합하지 않은 형태의 일자리라면(실제로 그러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위한 교육, 훈련, 재훈련 프로그램은 편익보다는 비용이 더 클 것이다. 반면에 “기본소득이 있으면 누구든 시간제로 일하거나 일을 쉴 수도 있다. 이를 통해서 더 나은 기술을 획득하고, 자기에게 더 맞는 일자리를 찾고,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거나, 휴식이 절실한 이들은 그냥 푹 쉴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숙련된 노동자가 은퇴 연령이 한참 남은 상태에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소진’되거나, 그가 지닌 기술이 퇴물이 되는 위험을 줄여주게 된다. 교육 시스템을 평생 교육의 방향으로 재정립한다면, 좀더 탄력적이고 느긋한 노동시장이 젊은 학생들과 경력직 노동자들을 칼같이 구별하는 노동시장보다 훨씬 더 21세기에 걸맞은 인적 자본 개발이다. … 이러한 긍정적인 영향은 현재 노동 인구의 인적 자본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의 인적 자본과도 관련되어 있다. 가구 소득을 좀더 안정적으로 만들어주는 다른 방법들과 마찬가지로, 기본소득 또한 아이들의 건강과 교육에 좋은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기본소득이 실업 함정의 문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면, 어려서부터 집안에 일하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가정에서 자라나는 탓에 노동 의욕에 부정적 영향을 받는 아동들의 수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기본소득이 있으면 부모들도 시간제 직업 선택을 덜 두려워하게 되고, 한결 수월하게 일과 가정생활을 양립할 수 있다. 따라서 아이들이 부모의 관심을 크게 필요로 할 때 좀더 신경을 쓸 수 있게 된다. … 일자리, 교육, 돌봄, 자원봉사 등의 여러 활동 사이를 쉽게 이동하는 자유를, 더 많은 자원을 가진 이들만이 아니라 모든 이가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정한 일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더 현명한 일이다. 이렇게 기본소득이 제공하는 더 큰 경제적 안전과 바람직한 형태의 탄력성 확장은 서로 긴밀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기본소득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인 것이다.”(판 파레이스, 판데르보흐트, 2018, pp. 63-65)
7. 나가며: 진정으로 ‘때를 만난 아이디어’는 일자리보장이 아니라 기본소득이다
끝으로 위에서의 논의를 바탕으로 기본소득이 일자리보장보다 우월한 이유, 향후 전망 등을 종합 정리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첫째, 일자리보장론자들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fixed price/floating quantity rule’에 따를 경우 경제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경기변동 상으로 경기침체 국면인지 공황 국면인지 호황 국면인지 등에 상관없이, 또한 자동화 추세의 진행과도 관계없이) 거의 자동적으로 손쉽게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여러 지점들(민간 부문과 기존 공공 부문과의 경쟁․대체 관계,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을 실시할 경우 유사 직종의 민간 부문과 기존 공공 부문으로부터의 노동인구의 이동 가능성, 행정 부담 및 비용과 모니터링 문제, 자동화 추세 등)을 모두 고려했을 때,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을 통해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일자리보장론자들의 약속은 허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한동안은 일자리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매우 클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현재의 경제 시스템이 유급노동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에 큰 가치를 부여하며, 일자리 자체에 본질적 가치, 다양한 비화폐적 가치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자리보장론자들이 아메리코(AmeriCorps)와 같은 현존하는 시민서비스 프로그램(civic service program)(Wray, 1999; 2000), 현존하는 공공서비스 고용 프로그램(public service employment program)(Wray, Dantas, Fullwiler, Tcherneva’ and Kelton, 2018; Wray, Kelton, Tcherneva, Fullwiler’ and Dantas, 2018)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있다는 점, 더 나아가 참여소득과 결합하는 방식의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있다는 점(Tcherneva and Wray, 2005; Tcherneva, 2007)을 고려해볼 때, 실제 시행 및 그 성공 여부와는 상관없이 일자리보장론을 현실화하라는 요구는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일자리보장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셋째, 일자리보장론자들은 일자리보장(최종고용자) 프로그램이 ‘workfare’ 프로그램이 아니라 ‘fair work’(경기침체, 공황, 자동화,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실업자가 된 ‘deserving’ poor를 위한 자발적 프로그램을 포함함) 프로그램이며, 강제노동과 노동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fair work’를 가장한 ‘workfare’, 노동의 권리 보장을 가장한 강제노동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에서 말하는 완충재고 노동자들은 ‘산업예비군(실업자)’의 다른 이름일 가능성이 높으며,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일자리는 가짜 일자리(bogus job)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Sawyer, 2003).
불안정노동이 확산되고 있는 현재 시대에 진정으로 요구되는 것은 ‘전일제노동의 전면화’라고 하는 헛된 약속이 아니라, 불안정노동자를 비롯한 모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일자리의 질을 개선시키고 노동 및 사회 보호 수준을 높이며 협상력을 제고하는 것,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소득안정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시대에 기본소득이 요청되는 하나의 중요한 이유를 이룬다.
넷째, 일자리보장 구상은 ‘노동능력이 있는 자’와 ‘노동능력이 없는 자’, ‘자격(가치) 없는 빈민(undeserving poor)’과 ‘자격(가치) 있는 빈민(deserving poor)’이라는 허위의 구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오히려 승인하고 강화한다는 문제를 지닌다. 반면 기본소득은 이러한 허위의 구분에 정면으로 도전함으로써 각종 억압으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키는 효과를 낳을 뿐만 아니라, 개인(특히나 사회취약계층)의 자유, 기회, 선택, 역량 등을 실질적으로 증진시킬 수 있다.
다섯째, 근본적으로 일자리보장 구상의 근저에는 ‘전일제 완전고용’에 대한 집착이 자리하고 있으며, 일자리보장론자들의 ‘전일제 완전고용’에 대한 집착(노동주의에 대한 집착이자, 부분적으로는 경제성장주의, 생산주의에 대한 집착)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우리는 이러한 집착에서 벗어나서, 현실부합성과 실천적합성을 담보한 진정으로 해방적인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지대 추구 행위의 강화와 불평등 심화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일자리보장론자들이 주장하는 형태의 ‘fair work’가 아니라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fair share’이고, ‘workfare’가 아니라 ‘commonfare’이다.
일자리보장론자들은 (최)상위 소득자 및 자산가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소득과 부를 벌어들이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침묵하는 대신에, 사회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일자리보장 정책이라고 하는 강제적 성격이 강하고 가부장주의적인 개입을 강요한다. 이러한 점에서 일자리보장은 오늘날의 소득불평등과 자산불평등을 개선하는 데 효과적이거나 효율적인 정책이 아닐 뿐만 아니라, 사회취약계층의 자유를 제약하고 침해한다는 점에서 해방적인 정책도 아니라고 평가할 수 있다. 반면 모든 구성원들이 사회에서 창출된 부를 (일정 정도) 공유하는 시스템인 기본소득은 오늘날의 소득불평등과 자산불평등을 개선하는 데 효과적이고도 효율적인 정책일 뿐만 아니라, 특히나 사회취약계층의 기회와 자유를 확장시키는 해방적인 정책이다.
일곱째, 생태, 젠더에 미치는 영향 면에서도 기본소득이 일자리보장보다 우월하다.
일자리보장론자들은 일자리보장 프로그램이 생태․환경 보전 사업, 그린 뉴딜 등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일자리보장이 기본소득보다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지만(Tcherneva, 2007), 일자리보장론은 생태․환경보다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정책목표로 삼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필요한 수준을 넘어서는) 일자리 창출은 거의 필연적으로 생태․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므로, 생태․환경 보전 사업, 그린 뉴딜 등은 이러한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사후적으로 그것도 부분적으로 대응하는 조치일 뿐이다. 반면 기본소득은 “빈곤 문제를 경제성장과 개발로 대처하고자 하는 성장주의와 개발주의의 압력을 유의미하게 낮춤으로써 생태적 전환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생태세와 생태배당을 결합한 구체적인 정책은 저소득층의 경제적 상황을 이전보다 개선시키면서도 이들의 에너지 사용상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에너지 소비량을 줄일 수 있는 계기를 조성한다.”(이건민, 2018. 9. 20) 당연한 말이지만, 기본소득의 도입이 에너지전환과 생태적 전환을 위한 정책을 가로막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떠한 형태의 기본소득(기본소득 정책패키지)이냐에 따라 그 정도는 매우 상이할 수 있겠지만, 경제성장주의, 생산주의, 노동주의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은 오히려 생태적 전환에 친화적일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급박한 생태위기에 제대로 대처하고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크게 높이기 위해서는, 당연히 우리는 기존의 지배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생태적 전환을 명시적으로 지향하면서 이를 촉발하는 형태로 기본소득을 도입·배치해야 할 것이다.
어떠한 형태의 일자리도(그것이 아무리 저임금의, 낮은 질의, 열악한 노동조건의 일자리라 하더라도) 모든 형태의 복지보다(그것이 선별적이든 보편적이든 관계없이) 우선시되고 우월하다고 본다는 점에서, 그리고 ‘노동능력이 있는 자’와 ‘노동능력이 없는 자’, ‘자격(가치) 없는 빈민(undeserving poor)’과 ‘자격(가치) 있는 빈민(deserving poor)’이라는 허위의 구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오히려 승인하고 강화한다는 점에서, 일자리보장론은 젠더평등에 기여하기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젠더불평등 구조를 재생산하고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상당한 규모의 노동시간 감축, 아동, 노인 돌봄 영역 등을 비롯한 사회서비스 정책의 확대, 젠더평등 지향적인 일·가정양립지원정책 마련 및 조직문화 개선 등과 동반될 경우, 기본소득은 유급노동, 가사노동, 돌봄노동 등에서의 젠더평등에도 기여할 수 있다. 생애주기상의 특정 시점에서 각 개인의 유급노동, 가사노동, 돌봄노동의 노동시간 배분이 사회적으로 강제되는 측면을 줄이고, 각자의 형편과 선호에 따라 노동시간 배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확장시킨다”(이건민, 2018. 9. 20).
종합하자면, “빈곤과 불평등을 가장 효율적․효과적으로 감소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적․생태적 전환을 촉진할 수 있는, ‘리얼 유토피아’로의 ‘거대한 전환’을 추동할 수 있는, 진정으로 다른 사회를 가져올 수 있는 큰 정책”은 일자리보장이 아니라 바로 “기본소득”이다(이건민, 2017, p. 112). 기본소득은 “자본과 노동 중에서 자본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는, 자본주의적 기업과 노동자 소유 기업 중에서 자본주의적 기업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는, 노동과 활동 중에서 노동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는, 생산과 재생산 중에서 생산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는, 성장과 복지 중에서 성장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는, 개발/발전과 생태/환경 중에서 개발/발전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는 기존의 사회적 기울기(social gradient)를 상당히 낮출 수 있다.”(이건민, 2019, pp. 3-4)
보론: 일자리보장 아이디어를 현실에 (어떻게) 적용·수용할 것인가
본문에서는 여러 가지 근거를 들어가며 일자리보장보다 기본소득이 우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일자리보장은 전적으로 폐기되어야 할 아이디어인가? 필자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아래는 일자리보장과 관련한 필자의 (잠정적인) 입장 몇 가지를 정리한 것이다.
①“일할 능력과 일할 의사가 있지만 민간 영역에서 적합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에게 정부가 직접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라는 일자리보장 아이디어를 현실에서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으로 보이므로 명시적으로 반대한다.
물론 특정 분야에 국한하여 일자리보장 아이디어를 수정하여 적용하는 것은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노우에 도모히로(2020, p. 148)는 “JGP보다 BI, 즉 기본소득이 훨씬 낫”기는 하지만 “탈노동 사회가 정착할 때까지는 기본소득에 더해 JSP를 도입하는 것이 사회에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덧붙이면서, “정부와 지자체가 희망자를 모두 받아서 매일 2시간 정도 도로와 공원을 청소하게 하는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그는 “몇 시간 동안 오랫동안 일을 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시급 1,000엔으로 아침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 일하면 2,000엔이 됩니다. 그 후 도시락을 나눠 주고 공공시설 등에서 환담하면서 먹을 수 있도록 해주면 좋을 것입니다. … 이것은 니트의 사회복귀 프로그램으로도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강남훈은 역자 후기(도모히로, 2020, pp. 192-193)에서 “기후 위기, 인공지능, 수명 연장에 대응하려면 농업을 소농 중심(소농형 스마트 농장을 포함해서)으로 개혁해서 더 많은 사람이 농촌에 살게 만들어야” 하므로, 농업에 대해서는 고용보장 아이디어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농업 종사자에게 직접 임금을 주는 것은 아니고, 농업참여수당(농업 종사자들에게 개인별로 동일한 금액이 지급되므로 농민기본소득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을 지급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일자리를 보장하는 방식이다. 농민들은 전국민 기본소득 이외에 농민기본소득을 추가로 받게 된다.”(도모히로, 2020, p. 193)
②일자리보장론자들도 강조하고 있는 아바 러너(Abba Lerner)의 기능적 재정(functional finance) 접근법은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균형재정론에 집착하느라 필요한 곳에 재정을 쓰지 못하는 일이 발생해서는 곤란하며, 우리 사회에 필요한 복지와 일자리를 위해서는 재정을 적극적으로 투여해야 할 것이다. 물론 여기서 유급노동 중심성, 전일제 일자리를 중심으로 한 완전고용에 대한 집착은 경계한다.
③시장 영역과 기존의 공공 영역에서 충족시키지 못한 ‘미충족 사회욕구(unmet social needs)’에 대비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은 중요하다. ‘미충족 사회욕구’가 발생하는 대표적인 예로는 돌봄, 생태·환경 보전 활동, 자원봉사활동, 교육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기본소득이 지급될 경우, ‘미충족 사회욕구’의 상당 부분이 재량시간이 늘어난 사람들의 자발적인 활동으로 인하여 충족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일부 ‘미충족 사회욕구’는 여전히 존재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참여소득이라는 새로운 아이디어, 참여예산제도, 시민서비스 프로그램(civic service program) 등의 기존 제도, 협동조합 등의 사회적 경제 조직 등을 활용하여 ‘미충족 사회욕구’에 대처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이때 참여소득은 Atkinson(1996) 식의 보편적인 형태가 아니라 Pérez-Muñoz(2016; 2018) 식의 제약적인 형태에 가까울 것이다). (또는 부문에 따라서는 공공 부문에서 직접 일자리 창출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을 것이며, 이렇게 창출되는 공공일자리는 임금, 노동조건 등의 면에서 바람직한 수준이어야 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충족 사회욕구’의 충족이라고 하는 ‘공동체와 사회의 필요’이지, 본말이 전도되어 ‘(유급)일자리의 창출’이나 이를 통한 ‘(강한) 완전고용의 달성’이 정책목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④아울러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생태적 전환을 추동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 역시 중요하다. 탄소세-탄소배당 정책을 비롯한 기본소득의 도입과 그린뉴딜의 추진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강남훈 이사장님과 금민 이사님 등 많은 논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탄소세-탄소배당 정책을 비롯한 기본소득의 도입 없는 그린뉴딜 정책의 추진은 기대한 효과를 낳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그린뉴딜의 추진에서 중요한 것은 기후위기의 대응을 위한 에너지 전환, 생태적 전환이지, 본말이 전도되어 ‘(유급)일자리의 창출’이나 이를 통한 ‘(강한) 완전고용의 달성’, ‘경제성장’이 정책목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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