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2020년 4월 11일 월례 쟁점토론회의 토론내용을 반영하여 고쳐쓴 <쟁점토론 2. 생태적 전환을 고려한 기본소득> 발표문 수정본입니다.

‘쟁점 토론 2. 생태적 전환을 고려한 기본소득’ 발제문 수정본

인류세 시대의 기본소득: 생태적, 사회적 전환을 위하여

발제자: 안효상 상임이사

들어가는 말

2019년은 기후 변화에 맞서는 인류의 광범위한 노력과 ‘기후 정의’를 위한 분투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며, 코로나바이러스 위기가 아니었다면 이 흐름은 올해(2020년)까지 더 강력하게 이어졌을 것이다. 물론 코로나바이러스 위기가 인간에 의한 자연 환경 파괴와 깊게 연관되어 있으며, 생태적 전환을 이루지 못할 경우 이런 바이러스 팬데믹이 더 자주 더 위험하게 일어날 것이라는 경고가 널리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는 도리어 생태적 전환을 위한 우리의 노력에 새로운 연료를 더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런 위기가 자연의 파괴적 이용에 기초한 성장주의적 자본주의 때문이라는 것, 이런 자본주의는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방식의 인간 이용[착취]에 기초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바이러스 위기처럼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사태 속에서 여전히 취약한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내몰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생태적 전환은 사회적 전환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최재천 (외) 2020, Davis 2020, 지젝 2020).

사실 생태적 전환과 사회적 전환을 동시에 사고하는 정치 생태학적 탈성장 패러다임에서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제기한 입장은 1960년대의 이른바 ‘환경적 자각’ 직후에 이미 제출되었다. 1970년대 초에 워런 존슨은 “환경적 방책으로서의 보장 소득”이라는 글에서 고용의 유지를 위해 지속적인 성장이 필요하며, 이것이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로 이어지는 것이 기본적인 경제 문제라고 보면서 보장 소득이 지속적인 성장과 고용 창출의 필요성을 제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때 보장 소득은 서비스 [경제의] 기회를 확대하고, 새로운 방식의 살림살이(livelihood)의 모색을 촉진하며, 경제의 건강을 유지하는 유연한 장치라는 것이다(Johnson 1973).

따라서 기후 변화를 넘어서는 심각한 기후 위기가 기본소득에게 새롭고 더 무거운 과제를 부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로 보인다. 왜냐하면 기후 위기에 맞서는 일은 무엇보다 인간적 삶 자체를 변모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며, 이때 기본소득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개인들의 영혼의 자율성을 보장하며 존재 상호 간의 책임성을 다할 수 있게 하는 수단으로서, 인간이 발견한 것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본소득이 생태적, 사회적 전환 그리고 생태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떤 효과를 발휘할지를 정돈하는 일은 기본소득 진영의 시급한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기후 위기를 포함해 우리가 직면한 위기가 훨씬 더 크며,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리고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주요한 쐐기라는 점을 고려할 때 기본소득이 우리가 바라는 효과를 낳기 위해서는 다른 여러 정책과 조치 그리고 제도적 배치가 필요하다는 것도 분명하다.

인류세 시대의 생태적 위기

인류세 개념은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 위기와 생태 위기를 여러 가지 점에서 잘 드러낸다. 기후 위기 및 생태 위기를 촉발한 인간의 역할, 이런 위기의 기원과 원인, 이 위기의 심대한 성격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위기에 맞서는 인간의 책임에 대한 강조라는 면에서 그러하다. 인류세 개념의 고안자인 대기화학자 파울 크루트센은 2002년에 <네이처>에 실은 한 쪽짜리 논문에서 “여러 가지 면에서 인간이 지배하는 현재의 지질학적 세(epoch)에 ‘인류세’라는 용어를 쓰는 게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이 인류세는 지구적 수준에서 이산화탄소와 메탄 농도의 증가가 시작된 18세기 후반에 시작되었는데, 이는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개량한 1784년과 일치한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지난 3세기 동안 지구 환경에 미치는 인간의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인데, 이는 인구 증가와 1인당 지구 자원 이용의 증가 때문이다. 인간의 영향력은 특히 온실가스 농도의 증가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사태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이번 세기에 지구 온도가 섭씨 1.4-5.8도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운석 충돌, 전쟁, 팬데믹 같은 지구적 수준의 파국이 없다면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주요한 환경적 힘(force)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Crutzen 2002).

인류세로의 변화에서 중심에 있으며, 오늘날 가장 심각한 위기는 말할 것도 없이 기후 변화이다. 모든 대륙에서 기록적인 기온 상승이 일어나고 있으며, 해수면이 상승하고, 삼림이 불타고, 빙하가 녹고, 슈퍼폭풍이 빈발하고 있는데, 이는 지구 대기 중의 특정 미량 가스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년 사이에 이산화탄소(CO2)는 250ppm에서 400ppm으로, 메탄(CH4)은 700ppb에서 1700ppb로 증가했으며, 이로 인해 기후 체계 내의 열에너지 운동이 변화한 것이 기후 변화를 가져왔다(Wainwright and Mann 2020; Bonneil and Fressoz 2016; Amgus 2016).

2018년 10월 IPCC에 제출한 보고서 <섭씨 1.5도 지구 온난화>에 따르면 최근의 인위적 온난화로 인한 온도 상승 추세는 10년마다 섭씨 0.2도이며, 현재 속도로 지구 온난화가 지속되면 2030-2052년 사이에 섭씨 1.5도 상승하게 된다고 한다. 섭씨 1.5도 상승 시 섭씨 2도 상승에 비해서는 약하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 평균 온도 상승,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극한 고온 발생, 일부 지역에서 호우 및 가뭄 증가가 나타난다고 한다.

2100년까지 전 지구 평균 온도 섭씨 1.5도 상승 제한을 위해 남은 잔여탄소배출총량(carbon budget)은 4,200-5,800억 CO2 톤이다. 따라서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CO2 배출량을 최소 45퍼센트를 감축하고, 2050년까지 전 지구적으로 CO2 총 배출량이 순제로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1000억 – 1조 CO2 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야 한다. 이외에 메탄(CH4), 에어로졸 등의 배출량도 줄여야 한다(IPCC 2018).

하지만 온실가스의 대량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기후 위기만이 우리 앞에 놓인 도전은 아니다. 지구와 인류는 기존의 삶을 떠받치고 있는 생태적 한계(ecological boundaries)를 넘어서는 다중적인 생태 위기를 겪고 있다. 스톡홀름 회복력 센터(Stockholm Resilience Center)는 아홉 가지의 행성적 한계를 제시하고 있다. 대기권 오존 고갈, 생물권의 온전함의 상실(생물다양성 상실과 멸종), 화학적 오염과 새로운 물질(novel entities)의 방출, 기후 변화, 대양 산성화, 담수 소비와 지구적 수자원 순환, 토지 체제의 변화, 질소와 인이 생물권과 대양으로 배출, 대기 에어로졸 부하(Stockholm Resilience Center; Rockström et al. 2009).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기후 위기와 생태 위기는 이제 위기가 아니라 ‘뉴노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은 말할 것도 없고, 올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일어난 산불 그리고 올여름 시베리아의 이상 고온과 동아시아의 폭우와 홍수까지 기후 위기로 인한 이상 기후는 ‘뉴노멀’이 엄청난 불규칙성과 예측불가능성을 기본적인 특징으로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 그대로 불확실하다는 것만이 확실한 시대이다.

현재가 인류세의 시작일 뿐이며, 기후 위기가 ‘뉴노멀’이라는 점은 최소한 네 가지 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로 이미 티핑포인트를 지났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구 온난화와 기후 위기를 완화하고, 여기에 적응하는 것이다. 둘째, 앞서 말한 것처럼 아홉 개의 행성적 한계 가운데 기후 변화를 포함해서 네 가지 한계, 즉 생물권의 온전함, 질소와 인의 순환, 토지 체제 등이 아주 위험하거나 위험한 수준에 도달했다. 셋째,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를 비롯해서 공식 기관들은 기후 위기 문제를 2100년에 한정해서 사고하고 예측하고 있지만, 온난화와 해수면 상승은 그 이후에도 계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넷째, 미래의 기후에 관한 예보는 확률(probabilities)인데, 이 확률 곡선이 대칭적인 것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편향되어 있다. 예를 들어 기온 변화가 섭씨 1.5도에서 4.5도 사이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할 때 섭씨 6도를 초과할 가능성이 10퍼센트 정도가 된다(Angus 2016).

인류세는 이런 뉴노멀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말에 다름 아니다. 지난 1만 년 동안의 홀로세(Holocene) 시기에 기후가 안정되었던 것이 인류의 문명과 문화가 발흥할 수 있었던 조건이라고 한다면, 인류세 개념은 이런 조건 자체가 변경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인간의 조건’ 자체가 변화했다면, 우리의 인식과 정치 자체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Chakrabarty 2009). 인식과 관련해서 더 이상 자연과 인간을 구별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건, 정복과 착취의 대상이건 자연은 인간과 떨어져 있지 않다(Büscher and Fletcher 2020). 정치와 관련해서 보자면 인류세를 낳은 여러 가지 힘(화석 연료 사용, 군사주의, 소비주의, 성장주의, 자본주의 등등)은 단일한 인류에게 동일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영향을 미치고 있고, 이를 둘러싼 갈등과 타협이 지난 200년의 역사였다(Bonneil and Fressoz 2016; 미첼 2017). 이런 갈등과 타협의 조건 자체가 바뀔 경우, 정치의 조건 자체도 변화할 것이다.

기본소득의 생태적 효과

인류세 개념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지구 시스템 과학의 등장으로 인해 우리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인류가 자연 내의 존재, 생태적 한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기후 위기와 생태 위기에 맞선다는 것은 지금과 같이 무한 성장 논리에 기반한 자본주의 체제를 벗어난다는 함의가 있다. 하지만 인간의 경제 혹은 살림살이가 생태적 한계 내에 있다 하더라도 심각한 인간성의 박탈 상태에 빠지지 않게 하는 바닥이 있다(레이워스 2018).

모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경제적 보장을 해야 한다는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실질적 자유의 보장을 통해 개인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비지배 자유의 물질적 토대를 제공함으로써 정치공동체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게 하고 구성원 상호간에 그리고 환경에 대한 책임으로 다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한다. 또한 공유부에 대한 모두의 몫이라는 관념은 공동의 것(commons)에 대한 존중감을 강화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기본소득은 생태적, 사회적 전환에서 매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생태적, 사회적 전환은 인간의 살림살이를 정상 상태 경제로 돌리는 일이며, 이는 탈성장 혹은 포스트 성장을 의미할 것이다(잭슨 2013; 데일리 2016; Kallis 2015; Gough 2017). 특히 빠른 시간 내에 기후 위기를 완화하고 여기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물질적 성장의 혜택을 많이 누린 글로벌 노스 지역에서 더 급진적인 탈성장 조치가 필요하다. 기본소득은 기본적으로 성장주의의 아비투스인 고용 노동에서 사람들이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줌으로써 성장주의 패러다임을 해체할 수 있다.

이렇게 기본소득을 통한 경제적 보장과 성장 및 일자리 창출의 분리가 기본소득의 생태적 옹호에서 주요한 흐름을 형성한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창립자 가운데 하나인 얀 오토 안데르손은 적절한 기본소득을 통해 성장과 경제적 보장의 ‘불경한 연계’가 분리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Andersson 2009). 이러한 분리 속에서 존슨이 이미 제기한 것처럼 개인들이 기존의 생산주의적, 성장 기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이제까지와는 다른 생활 형태를 경험할 가능성이 열린다. 이는 다양한 방식으로 주장되는데, 기본소득이 보장됨으로써 개인들이 환경적 영향이 더 작은 자율적 영역으로 옮겨갈 수 있고(Boulanger 2009; Schachtschneider 2012; Widerquist et al. 2013), 사람들은 공식 경제 외부에서 환경적, 정서적 가치에 더 몰두할 수 있으며(Fitzpatrick 2009), 물질적 소비를 적게 하고 여가를 더 많이 선택하며(Goodin 2001; Johnson 2011), 완전고용 정책과 비교할 때 일자리 나누기가 더 용이하며(Fitzpatrick 1998, 1999), 일이 더 노동집약적이고 덜 자원집약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Van Parijs 2013).

고용 노동이라는 자본주의적 소득 보장 이외에 자본주의적 성장주의를 부추기는 또 다른 경향은 소비주의이다. 어원적으로 파괴를 의미하는 소비(consumption)가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지위와 정체성을 가리키는 행위로 시작되는 것은 17세기 말에 발흥하는 중간 계급이 사치재 소비에 몰두하면서부터이다. 이런 경향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미국에서는 도금 시대(Gilded Age)라고도 불리는 제2차 산업혁명 시기 유한 계급의 ‘과시적 소비’였다(베블런 2012). 같은 시기 대량 생산의 발전은 ‘광란의 20년’을 거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비 사회를 가져왔다(Hounshell 1984). 이런 소비주의는 한편으로 보면 ‘만물의 상품화’ 속에서 자본주의적 축적을 보장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는 (과시적, 구별짓기의) 소비라는 정체성으로 사람들을 재생산하여 자본 순환에 포섭하는 것이기도 하다(월러스틴 1993; 부르디외 2005). 이를 위해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소비주의를 부추기는 다양한 제도, 담론, 이데올로기 등이 등장하고 발전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광고, 할부 금융, 고임금, 핵가족주의 등등이다(Lears 1994; 피시만 2000).

어떤 형태로 재원을 마련하건 기본소득은 해당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부의 분배와 재분배이며, 이는 좀 더 평등한 사회를 이루거나 불평등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경제적 보장의 기초를 제공하는 사회를 이루어낼 수 있다. 이 속에서 ‘과시적 소비’와 지위재의 추구는 약화될 것이다(Howard et al. 2019).

생태적 전환과 기본소득

앞서 말한 기본소득의 생태적 효과는 장기적으로 발휘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생태적 전환을 위한 적절한 정책과 제도적 배치가 필요하다. 여기에 더해 현재 진행 중인 기술 변화를 고려할 때 다수의 사람들이 추방당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사육당하는 수단으로 기본소득이 추락할 수도 있다.

생태적 전환의 첫 번째 단계로 시급하게 요청되는 것이 화석 연료에서 벗어나 재생에너지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편으로 재생에너지 생산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 화석 연료 에너지 생산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 화석 연료 에너지 생산에 대한 규제로 가장 적절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온실 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는 가운데 탄소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핵발전에서 벗어나기 위한 핵발전 안전세 + 전환세를 생각할 수 있다.) 이는 녹색 자본주의와 시장에 기대 기술 혁신 및 소비 행동의 변화를 꾀하는 전략의 일부이다. 물론 에너지 체제의 전환이 분산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이때 협동조합이 의미 있는 생산 단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협동조합 또한 시장 관계 속에서 활동한다는 점에서 일정 기간 자본주의적 시장 규제를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우리는 이를 에릭 올린 라이트를 따라서 공생적 전략이라 부를 수 있으며, 생태적 전환의 첫 번째 단계라고 할 수도 있다(라이트 2012; Gough 2017).

화석 연료 생산과 사용의 규제를 위한 탄소세는 당연히 에너지 가격에 반영되며 이는 역진적일 수밖에 없으며, 더 나아가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적으로 생태적 전환을 어렵게 할 수 있다. 이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탄소세와 함께 탄소 배당을 실시하는 것이다. 탄소세 수입을 기본소득 방식으로 분배하는 탄소 배당은 에너지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자 배출량 감축 목표와 결합하여 에너지 체제 전환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조정 기제이다(Akerlof et al. 2019; Paul and Mason 2019; 조혜경 2019; 금민 2020).

탄소 배당이 기본소득 방식에 근거한 것이긴 하지만 탄소세 + 탄소 배당에서 우선적인 것은 에너지 체제 전환을 유도하는 탄소세 부과이며, 배당은 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탄소세 세율은 배출 감축 목표에 따라 증감할 수 있으며, 탄소세 + 탄소 배당 자체도 생태적 전환의 일부인 에너지 체제 전환이 이루어지면 종료될 수 있는 정책 수단이다.

생태적, 사회적 전환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경제적 보장의 일부인 기본소득이 자율적 영역의 확대로 가는 기반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특정 시점에서 사람들이 노동 시장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날 수 있을 정도로 기본소득 액수가 충분해야 한다(Pinto 2019; 라이트 2019). 이때 충분성은 공공서비스 및 공동체에서 제공되는 재화와 서비스 등과 연동되어 측정되는 것이다. 둘째, 포스트 성장을 위해 그리고 노동 시장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노동 조건 및 생활 조건의 개선을 위해 노동 시간 단축이 필요하다. 노동 시간 단축이 과도기적으로 가져올 효과로는 개인이 고용 노동과 자율적 영역에서의 활동을 자율적으로 분배함으로써 고용 노동이 누리고 있는 현실적, 상상적 지위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셋째, 개별적 활동, 공동체 활동, 협동조합을 포함한 사회적 경제 등을 활성화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특히 성별 분업을 깨고, 가사와 육아 등을 공정하게 분배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프레이저 2017; 금민 2020).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필요에 대한 재구성과 합의이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속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존엄한 삶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적절한 음식과 주거, 공공 의료 서비스 등이 그러한 것이다. 물론 복지국가의 발전 속에서 이에 대한 합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하에서 기존의 사회적 필요 및 공공 서비스 관념이 해체되거나 약화되었다. 더 나아가 기후 위기와 생태 위기 속에서 필요에 대해 우리는 새롭게 인식하고 재구성해야 한다(Gough 2017). 또한 이렇게 필수적인 것과 필요를 어떤 방식으로 공급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이다. 이는 또한 더 평등한 사회가 더 생태적일 수 있다는 가정과 관련이 있다(금민 2020). 기본적인 필요가 만족되고, 과시적 소비나 지위재에 대한 추구가 줄어들 때 우리는 포스트 성장 패러다임에 기초한 생태적 전환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다.

기후 위기, 생태 위기,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속에서 우리가 잠정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공공 서비스의 확대 강화이며, 이는 크고 강력한 국가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크고 강력해질 것을 혹은 능력이 있기를 요구받는 국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이고 어떻게 통제할 것이며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이는 새로운 사회 협약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이때 공유부에 기초한 기본소득의 전망은 새로운 정치공동체의 새로운 시민성을 이루는 토대가 될 것이다.

나오며

인류세라는 인식과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는 사뭇 인간의 정반대되는 면을 각각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인류세는 인간이 자연의 거대한 힘과 겨룰 정도의 거대한 지질학적 힘이 된 시대를 가리키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지만 현실은 풋내기 마술사처럼 자신이 걸어놓은 마법을 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반면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모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돈을 준다는 매우 단순한 것이지만 그 사정(portée)은 매우 멀고 넓다.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인간에게 소득 보장이라는 형태로 경제적, 물질적 토대를 만들어줄 경우 인간은 인간적, 자연적, 사회적으로 여러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생태적, 사회적 전환을 이룬다는 것은 새로운 주체성의 형성을 요구하는 일이다. 기본소득은 적정한 소득 보장을 통해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증대시키고, 자율적 영역의 확대를 통해 이런 전환을 바람직하고 가능한 것으로 만들 가능성이 크다.

추기

오늘날 기후 위기에 맞서는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정책이자 전략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글로벌) 녹색 뉴딜이다. 녹색 뉴딜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이미 10년이 넘지만 2008년 경제 위기 속에서 주변화되었다가(Friedman 2007; Green New Deal Group 2008). 2019년 2월 5일 미 의회에서 <녹색 뉴딜을 만들어 내기 위한 연방 정부의 의무를 인정하는> 결의안이 통과되고, 여러 대선 후보들이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중심적인 의제가 되었다(116th Congress 2019). 유럽에서도 2015년 파리 협약 이후 녹색 뉴딜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었고, 2019년 12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유럽연합 경제를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유럽 그린 딜(European Green Deal) 계획을 제출했다(European Commission 2019).

녹색 뉴딜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양한 변종이 있지만, 기본적인 주조는 다음과 같다. 첫째, 2050년까지 탄소 배출 순제로에 도달하기 위해 화석 연료 중심 에너지 체제를 재생 에너지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둘째, 재생 에너지 체제를 비롯해서 순환 경제를 이루기 위한 대규모 공공 투자이다. 셋째, 이른바 ‘정의로운 전환’이다. 이는 체제 전환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부문과 지역에 대한 지원, 사회적, 환경적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 등을 말한다. 넷째, 이는 새로운 일자리 보장이라는 약속으로 이어진다. 다섯째, 체제 전환 과정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에 대한 강조이다. 여섯째, 글로벌 체제 전환을 위한 지원과 규제이다. 여기에는 글로벌 노스가 글로벌 사우스에 대해 지금까지의 피해에 대해 보상하고, 체제 전환에 필요한 재정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과 지역과 국가 간 체제 전환 노력의 차이를 없애기 위해 ‘탄소 국경 조정 메커니즘’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김병권 2020; Pettifor 2019).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녹색 뉴딜은 시장 경제에 대한 국가의 조정과 개입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세력화를 기초한 사회적 타협 등의 뉴딜을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맞게 조정한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기후 위기와 생태 위기가 자본주의의 이윤 추구와 깊은 관련이 있다면 녹색 뉴딜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보이고 있는 열광과 달리 제한적인 의미만 가질 것이다(Hickel and Kallis 2019). 뉴딜은 (공공) 투자, 완전 고용과 유효 수요 창출, 지속적인 성장이라는 요소의 상호연관 속에서 가능한 일이며, 이는 녹색 뉴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Harris 2013). 물론 기후 위기와 생태 위기에 맞서는 과정에서 기술 혁신과 소비 방식의 변화가 요청된다고 할 때 녹색 뉴딜을 통한 전환 과정, 특히 에너지 체제의 전환은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에너지 체제의 전환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탄소세와 결합된 탄소배당이다. 탄소세가 에너지 체제 전환을 추동하기 위해서는 감축 목표량에 맞추어 세율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재생에너지의 생산과 소비가 공공 부문뿐만 아니라 민간 부문으로도 확산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탄소 배당은 탄소세라는 시장 기반 정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주요한 지렛대이며, 다음 쟁점인 ‘정의로운 전환’의 일부를 이루기도 한다.

녹색 뉴딜과 관련한 두 번째 쟁점은 ‘정의로운 전환’ 속에서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일자리 보장’에서 나온다(래첼, 우제 2019). 에너지 체제의 전환과 순환 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당연히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겠지만, 이것이 기존의 노동 관행에 따른 완전 고용을 보장할 정도로 크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완전 고용의 추구는 기존의 성장주의 패러다임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생태적 전환에 역행할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기본소득을 통해 자율적 영역의 확대를 꾀하는 것이 생태적 전환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세 번째 쟁점은 공공 투자의 재원을 어떤 방식으로 마련할 것인가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 위기와 생태 위기가 자본주의적 축적 그리고 특정 지역, 즉 글로벌 노스의 소비주의에 기원하는 것이라면 생태적 전환을 위한 재원도 거기에 따라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미 의회 결의안이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유럽 그린 딜’ 계획에는 이 부분이 명확히 나와 있지 않다. 따라서 이를 둘러싼 논의가 녹색 뉴딜의 진전에서 중요한 부분을 이룰 것이다.

참고문헌

금민 (2020).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서울: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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