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온라인매체 <프레시안>에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릴레이 기고”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고를 통해,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와 운영위원을 비롯한 여러 회원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기본소득 옹호론을 펼칠 예정입니다. 아래 글은 2021년 2월 25일, 윤형중 운영위원의 릴레이 기고문입니다.


“기본소득은 중산층과 취약계층을 한 배에 태우는 아이디어”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릴레이 기고] 중산층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바꿀 수 있는 기본소득

윤형중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급하기 때문에 부와 소득의 재분배 효과가 없다는 비판이 있다. 모두에게 똑같은 돈이 주어져 빈부 격차는 그대로라는 일견 그럴듯한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기본소득의 한쪽 면만을 보는 것이다. 기본소득을 지급하려면 어디선가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만일 그 재원을 빈자보다 부자에게서 더 많이 걷어 확보한다면 기본소득은 당연히 재분배 효과를 지니게 된다. 그동안 제시된 대부분의 기본소득안들은 고소득자와 자산가에게 더 걷는 재원 방안을 담고 있다. 따라서 더 나은 논쟁을 하려면 기본소득의 동일 지급액만 강조하며 재분배 효과가 없다는 단편적 주장을 펼 것이 아니라, 기본소득의 재원 방안들과 여타 세금과 복지 체계를 비교 분석하며 재분배 효과를 종합적으로 따지는 토론을 할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은 가난한 이들을 더 가난하게 만들까

간혹 기본소득이 가난한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는 주장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7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이런 주장이 실렸고, 국내에서는 최한수 경북대 교수(경제통상학부)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서 2017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기본소득 모의실험을 통해 이런 주장을 펼친 바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더 빈곤하게 만드는 정책이라면 거론조차 될 이유가 없었을 텐데, 과연 이 보고서들의 주장은 맞는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 보고서들에서 주장에 이르기 전의 ‘전제’를 눈여겨봐야 한다. 두 보고서 모두 저소득층에게 지원되는 현금성 복지를 폐지하고, 그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전제한 뒤에 재분배 효과를 측정했다. 비슷한 방식을 적용해 현실의 통계를 가지고 간단한 계산을 해보자. 2020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 예산은 4조 3천억 원이었고, 수급자 수는 약 130만 명이었다. 1인당 월 평균 28만 원 정도가 지급된 것이다. 이 돈으로 전 국민에게 나눠준다면 1인당 월 평균 7200원 정도를 받게 된다. 가장 취약한 계층인 기존 생계급여 수급자들은 매달 27만 원 정도의 소득이 감소하는 셈이다. 물론 이런 효과는 최저 생계를 지원하는 복지 제도를 폐지해 확보한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전제할 경우에만 발생한다.

그렇다면 최 교수와 OECD는 왜 이런 전제를 세웠을까. 아쉽게도 두 보고서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없다. 기본소득과 현금성 복지 정책, 둘 다 현금이란 공통점 때문일 것이라 추정할 뿐이다. 현실에서 이런 전제대로 기본소득이 지급될 가능성은 있을까. 만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허물어 기본소득 재원으로 삼겠단 정치인이 있다면 황당하다는 반응뿐 아니라, 위헌 소송까지 휘말릴 수 있다. 최저 생활을 보장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자체가 헌법 제34조 1항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구체적으로 보호하는 법률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과 마찬가지로 현금성 복지였던 기초연금과 아동수당이 도입될 때도 생계급여액을 전액 삭감한다는 주장은 전혀 없었다. 결국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는 ‘기본소득의 역설’은 현실에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전제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기본소득이 복지를 어느 정도 수준으로 대체할 가능성이 있고, 그것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따지는 것은 의미 있는 논쟁이지만, 가장 취약한 계층의 복지를 대체하는 것이 기본소득이라고 전제하는 것은 소모적 논쟁을 유발할 뿐이다.

왜 푼돈을 나눠주느냐는 질문이 의미 없는 이유

최한수 교수는 지난 21일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 “‘증세 없는 기본소득’, 비전 혹은 환상”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는 기본소득의 역설을 반복해 주장했을 뿐 아니라, 조세 감면 축소나 증세를 통한 기본소득도 현실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일단 조세 감면의 경우 통념과는 달리 수혜자는 중·저소득자인 경우가 69%, 중소기업이 72%이기 때문에 이를 대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 담겼다. 그런데 이 주장은 오히려 조세감면 체계를 축소하는 의견과 상반되지 않는다. 조세 감면 정책이 줄어들수록 세금 체계는 더 많이 버는 사람이 세금을 더 내는 구조(누진제)로 단순해진다. 세금 체계를 누진화하며 반대 급부로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중·저소득자는 여러 복잡한 조건이 부과된 조세 감면을 받기 보단, 예외 없이 기본소득을 받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물론 기본소득도 약점은 있다. 일부 고소득층, 자산가들은 받는 기본소득보다 더 내는 세금이 많게 된다. 이들은 기본소득에 반대할 것이고, 기본소득이 실시되면 높은 세율로 인해 근로 의욕이 줄어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일반적인 경제적 통념에도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이미 고소득자의 수입에서 근로가 아닌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고, 저성장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근로 의욕이라기보다는 일자리이며, 만성적인 수요 부족의 경제에서 새로운 균형을 달성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그렇다고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정도로 높은 수준의 기본소득제는 지속가능하지 않을 테니, 기본소득의 재분배 효과와 경제 효과를 종합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주목할 만한 기본소득의 역할은 증세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최 교수는 칼럼에서 “증세의 정치적 실현 가능성은 중산층이 이를 얼마나 지지하는가에 의존한다”면서도 “독일이나 일본의 부가세 증세처럼 복지를 위한 증세라 하더라도 계층마다 이해관계가 엇갈려 추진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중산층에게 유리하단 점을 강조하는 것만으로 기본소득을 위한 대규모 증세가 가능해질 거라 주장하는 것은 안일한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최 교수가 인정한 것처럼 기본소득은 중산층의 지지를 얻어내기가 쉽다. 더 내는 세금보다 받는 기본소득이 많은 순수혜자의 범위가 저소득층부터 중산층까지 포괄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증세해서 걷은 60조 원의 재원으로 모든 국민에게 월 10만원의 푼돈을 줄 필요가 있냐고 반문한다. 그 돈이면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를 충분히 메울 수 있다는 주장도 이어진다. 만일 이미 증세가 가능해진 상태라면 복지 체계가 부실한 한국의 상황에선 기본소득은 후순위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증세를 미리 전제한 것이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는 것이 오랜 기간 절실한 과제였지만, 왜 그 문제 제기로 증세를 달성할 수 없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여러 연구가 제시하는 근거는 복지 수혜자와 부담자가 분리될 경우 조세 저항으로 복지 강화가 어렵다는 것이다.

중산층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바꾸는 전복적 아이디어

증세를 통한 복지 강화는 한국뿐 아니라 여러 선진국들의 과제이기도 하다. 최 교수가 언급한 부가가치세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이미 한국보다 조세부담률이 높은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이 부가가치세를 인상해 복지 강화를 꾀하고 있다. 한국은 부가가치세를 도입한 1977년 이후 한 번도 세율을 올린 적이 없지만, 부가가치세를 운용하는 OECD 37개국 가운데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세율을 인상한 국가는 19개였고, 인하한 국가는 아이슬란드가 유일했다. 북유럽 국가들은 복지 정책으로 중산층의 신뢰를 얻으며 증세에 성공했지만, 다른 나라들은 그보단 낮은 수준의 복지와 세부담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낮은 수준의 복지와 세금에 대한 불신, 조세 저항이란 악순환에 빠져 불평등과 고령화 추세 등 당면한 문제에 제대로 대응도 못하는 상황이다.

기본소득은 중산층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바꾸면서 이런 악순환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것은 안이한 발상이 아닌, 전복적인 아이디어다. 지금껏 한국의 복지체계는 취약계층을 별도의 배에 태우고, 다른 배에 탄 고소득층과 중산층에게 일부 비용을 부담케 한 셈이었다. 취약계층이 망망대해에서 고립되면 안 되니, 다른 계층도 일부 비용을 부담하지만 자신의 문제가 아니니 충분히 내진 않았다. 그런데 중산층과 취약계층을 같은 배에 태우면 어떻게 될까. 고소득층이 반발하더라도 국민 다수가 탄 배가 잘 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 모두가 더 비용을 내자는 주장이 다수결로 결정될 수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고소득층도 다른 계층에 여러모로 의존하고 있으니, 모두가 어느 정도 안정을 확보하는 것은 고소득층에게 유리하다.

그렇다면 꼭 기본소득이어야 할까. 기존 복지로 정부와 세금에 대한 신뢰를 이끌어내 증세에 성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느 경로로 가야 사회 변화에 맞는 재분배 체계, 사회안전망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런 주제야말로 앞으로 더 토론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전제를 잊은 채 결론을 일반화하거나, 기본소득의 일면만을 보고 비판하는 식의 기본소득 찬반 논쟁도 보다 진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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