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온라인매체 <프레시안>에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릴레이 기고”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고를 통해,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와 운영위원을 비롯한 여러 회원들이 다양한 시각에서 기본소득 옹호론을 펼칠 예정입니다. 아래 글은 2020년 9월 10일, 윤형중 운영위원의 일곱 번째 릴레이 기고문입니다.


기본소득의 역설? 기본소득 ‘논의’의 역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릴레이 기고] 신현호 경제분석가에 대한 반박

윤형중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정책연구자)

한국 사회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쉽지 않은 특수한 환경이 있다. 그 환경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이 질문부터 던지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파동’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각자의 머릿 속에 여러 기억들이 스치겠지만, 가장 극단적인 두 입장은 상대를 ‘거짓 괴담을 유포해 정부를 공격하는 자’와 ‘굴욕 협상으로 국민 건강을 팔아넘긴 자’로 보는 것이다. 서로를 이렇게 보는 이들끼린 대화가 되지 않고, 서로의 생각도 웬만해선 바뀌지 않는다. 상대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기 보단, 상대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어느 논쟁이나 극단적인 입장이 있기 마련이나, 한국 공론장의 특징은 극단적 입장들이 주류가 되는 경우가 잦다는 점이다.

기본소득 논의가 어려운 이유는 이런 극단적 입장의 주류화와 관련이 있다.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이라거나, 복지국가의 원리와 근본적으로 상충한다, 인공지능 도입으로 일자리를 줄이려는 자본가들의 음모라는 등의 주장이 이런 극단적 입장들이다. 여기에 기본소득 고유의 특징 가운데 하나도 논의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 특징은 재원을 어디에서 마련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치관과 이념을 담은 기본소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런 기본소득의 ‘동상이몽적 특징’은 지지자나 비판자에게 이 제도의 특정한 일면에 과몰입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테면 기본소득의 재원을 기존 복지정책을 정리해 마련한다고 스스로 가정한 뒤에 진보주의자들은 이 특징에 기반해 ‘기본소득이 가난한 자에게 불리하다’고 비판하고, 보수주의자는 ‘기본소득이 복지를 효율화한다’고 지지한다.

그런데 사실 이 논쟁은 왜곡된 측면이 있다. 실제로 지금껏 전세계에서 이뤄진 여러 기본소득 연구와 논의에서 기존 복지를 대폭 폐지해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한다는 주장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기본소득이 저소득층 뿐 아니라 중산층을 복지 수혜자로 만들어 전반적인 증세를 유도할 수 있다는 주장은 많았다. 이 특징에 대해서도 진보주의자는 ‘기본소득으로 안전망이 강화된다’고 지지할 수 있고, 보수주의자는 ‘기본소득이 경제활동의 유인을 떨어뜨린다’고 비판할 수 있다. 따라서 기본소득 토론이 보다 실질적으로 이뤄지려면 자신이 어떤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비판하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게 이 논의가 꼬이지 않는 출발점인 셈이다.

이런 기준으로 최근 신현호 경제분석가가 서울신문에 기고한 칼럼 ‘기본소득의 역설’의 다섯 가지 주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칼럼은 첫째로 “현행 복지 재원을 모든 국민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기본소득으로 나눠 준다면 분배가 개선되기는커녕 악화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현행 복지 재원’을 기본소득으로 나눠주자는 주장 자체가 진지한 기본소득론자 사이에선 전무하다. 허수아비를 때리는 공격인 셈이다.

둘째 주장은 부유층 중심으로 증세해 재원 마련하면 기본소득의 재분배 효과가 있겠지만, “(일인당 월 30만원씩 주기 위한 연간 180조원은) 국세 총수입(2019년 293조원)의 60%가 넘는 대규모 증세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설령 증세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힘들게 조성한 재원을 모든 국민에게 균등하게 나눠줘야 하는지 여전히 의문”이라는 것이다. 일단 이 주장은 증세한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할 경우 재분배 효과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으나, 증세가 실질적으로 어렵다는 의미로 보인다. 그렇다면 가능한 수준으로 증세해 실시하는 기본소득은 찬성한다는 의미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도 기본소득의 순수 소요재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재난지원금 전국민에게 15조원을 지급한 뒤에 5조원을 선별적으로 과세하면 순수 소요재원은 10조원이다. 기본소득의 실질적인 재원 규모도 전체 지급액이라기 보단, 고소득층에서 중저소득층으로 이전된 가처분소득의 총합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1960년대 밀턴 프리드먼이 제안한 마이너스 소득세가 훨씬 적은 재원으로도 가능했던 이유는 기본소득의 순수 소요재원만큼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한 힘들게 증세한 돈을 모두에게 주지 않고 어려운 사람에게 몰아주면 재분배 효과가 더 커진다는 주장은 선후가 바뀐 것이다. 기본소득은 중산층을 복지 수혜자로 만들어 증세가 가능해지게 만드는 ‘정치적 기획’이다. 애초에 가능했던 증세로 기본소득을 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왜 증세가 어려웠는지, 그게 기존 복지 정책과 관련이 없는지를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세 번째 주장은 “부유층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해도 (부유층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흔쾌히 증세에 동의할 것이란 주장”도 있지만 “증세 부담을 상위 10%에 한정할 경우 이들이 납부해야 할 세금과 수령하는 기본소득의 차이가 10배에 달하는 점을 고려할 때 기본소득을 증세로 가는 요술 방망이로 생각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서 나오는 10배가 어떻게 나온 숫자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기본소득 사회에선 지금보다 부유층이 더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손해를 입는 부유층이 반대할 가능성이 크고, 요술 방망이처럼 증세를 손쉽게 달성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중산층의 경우 더 내는 세금보단 받게 되는 기본소득이 더 크다. 각자의 이익대로 투표한다면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찬성해 기본소득제는 실행될 수 있다. 요술 방망이는 아니어도 투표로 내 삶이 바뀐다는 강력한 증거는 되어줄 것이다.

신현호 경제분석가의 넷째와 다섯째 주장은 ‘선별을 적대시하면 가뜩이나 기반이 약한 복지제도에 대한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다’, ‘기본소득은 노동과 사회보험의 연계를 과감하게 단절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려는 노력과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불안정 취업층에게 안전망을 확대하는 제도 정비’였다. 일단 앞서 언급했듯 기본소득의 유형에 따라 선별적 복지에 대한 입장, 노동과 사회보험과의 관계 등에 있어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필자가 지향하는 기본소득에 한정해 이 주장들을 다룬다면 ‘선별을 적대시하자는 것이 아니라 선별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선별 복지와 병행하는 중층적 안전망으로서 기본소득을 실시하자’는 것이다. 또한 기본소득이 단번에 사회보험만큼의 기능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노동과 사회보험의 연계를 과감히 단절시키는 기본소득’은 우리 사회에 적합하지 않다. 취업자의 절반도 포괄하지 못하는 고용보험이나, 비정규직과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 상당수가 미적용되는 산재보험은 그것대로 해결해야 할 오래된 과제다.

분명 논의를 했는데도 논의가 진척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는 마치 대화를 나눴는데도 대화를 나누기 전보다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그럴 땐 서로 다른 개념을 전제로 주장하지는 않았는지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 논의가 오해로 귀결되는 역설도 마찬가지다. ‘분배를 개선하고자 하는 기본소득이 분배를 악화시키는 역설’은 신현호 경제분석가도 직접 칼럼에 썼듯 기존 복지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특정한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이런 저런 역설적인 상황을 방지하려면 자신이 비판하거나 지지하는 기본소득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신현호 경제분석가가 칼럼 말미에서 지목한 정치인은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다.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조 의원은 정부의 뉴딜을 최저임금 수준의 “쓰레기 일자리” 사업이라고 일갈했고, 신현호 경제분석가는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면 이 일자리를 쓰레기일 뿐이라고 비난하면서 동시에 월 30만원의 기본소득을 해결책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일까?”라고 적었다. 이 기회에 이 논란의 발단이 된 조 의원도 직접 자신이 어떤 기본소득을 지향하는지를 밝혔으면 한다. 기본소득의 재원은 어디에서 확보할 것인지, 기존의 사회보험 사각지대나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권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만 밝혀도 그 정체성은 분명해질 것이다. 자신이 지지·비판하는 기본소득이 무엇인지만 분명히 밝혀도 이 논의는 한층 진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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