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이 실패라고?
[기고] 핀란드의 실험 방법이 가진 한계, 그리고 주목해야 할 것들
정원호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근 기본소득 바람이 거세다. 코로나19 사태로 한바탕 ‘재난기본소득’ 바람이 휘몰아친 가운데, 지난 6일에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최종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실험은 2017~18년 두 해에 걸쳐 25~58세의 실업자 2000명에게 (구직이나 직업훈련 등의 의무가 부과되고 고용되면 소멸되는) 실업급여 대신 아무 조건 없이(고용이 되더라도) 월 560유로의 ‘기본소득’을 지급한 실험으로서 국가 단위에서는 세계 최초의 실험이었기에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실험 결과
이 실험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다. 가장 중요한 목적은 기본소득이 수급자들의 노동시장 참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본소득 수급자들의 전반적 웰빙 효과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실험이 끝난 직후인 2019년 2월에 발표된 예비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실험집단이나 비교집단이나 노동시장 참여는 거의 차이가 없었지만, 웰빙 효과는 실험집단이 비교집단에 비해 훨씬 양호하였다. 다만, 노동시장 참여는 행정자료를 이용하였기 때문에 1년 차(2017년) 결과만 반영한 것이었다.(웰빙 효과는 2018년 말에 설문조사)
이번에 발표된 최종 결과는 190쪽에 달하는 핀란드어 보고서로 발표되어서 필자가 전모를 파악할 수는 없는 상황인데, 4쪽의 영문 요약본에 의하면, 2017년 11월~2018년 10월 동안 실험집단의 고용 일수가 6일 증가하여 평균 78일간 고용되었다. 이는 비교집단의 73일보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많은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특기할 만한 것은 2018년 초부터 기본소득 수급자가 아닌 실업자들에게 실업급여에 따른 의무가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비교집단이 더 적극적으로 구직을 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결과는 실험집단의 고용일이 더 많게 나타났다. 만약 이 의무 강화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더라면 그 격차는 더 커졌을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 결과를 근거로 일반적으로 기본소득이 사람들의 노동시장 참여를 확대시킨다고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인가? 물론 아니다. 핀란드 당국도 인정하고 있듯이, 실험 기간 중간에 이 조치가 취해짐으로써 이 결과의 해석은 매우 ‘복잡해졌다’. 더 중요한 문제는 실험대상이 전체 국민 중에서 임의추출된 것이 아니라 실업자라는 특수집단으로 국한되었기 때문에 기본소득의 노동공급 효과에 관한 일반적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였다는 것이다.
실험의 한계
작년에 예비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나 이번에 최종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나 기본소득 반대자들, 특히 보수언론들은 고용증대 효과가 크지 않아 실패했다고 단언하고 있다. 반면에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무조건 기본소득을 주면 누가 일하냐'(노동공급 감소)는 비판에 비추어볼 때 실험집단의 고용이 비교집단보다 오히려 늘었으니 그 비판은 틀렸다. 특히 기본소득으로 웰빙 효과, 즉 행복도가 높아졌으니 성공이라고 평가한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후자의 입장에 서 있다. 그러나 성공과 실패 이전에 이 핀란드 실험은 몇 가지 중요한 한계를 갖고 있어서 올바른 기본소득 실험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 실험의 한계를 논하기 위해 우선 기본소득의 개념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은 모두에게(보편성) 아무 조건 없이(무조건성) (가구가 아니라)개인에게(개별성) 정기적으로(정기성) 지급하는 현금(현금성)이다. 이 가운데서도 핵심적인 특징이라면 보편성과 무조건성이라 할 수 있다. 부연하자면, 보편성이란 자산조사(means-test) 없이, 즉 취업·실업 여부, 자산·소득 상태 등과 무관하게 모두에게 지급한다는 의미이며, 무조건성이란 급여(기본소득)를 받는 대가로 구직노력, 직업훈련, 봉사활동 등의 조건이 없고, 추가적인 소득이 생겨도 급여가 삭감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런 기본소득의 특성에 비추어본다면, 핀란드 실험의 한계는 첫째, 실업자만을 실험 대상으로 한 점에서 보편성에 위배된다. 따라서 이를 ‘기본소득 실험’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대신 ‘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의 급여 수급에 따르는 조건(의무)은 없기 때문에 이 실험의 정확한 성격은 ‘무조건적 실업급여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이 실험의 배경을 보면 이해가 되는데, 최근 핀란드의 높은 실업률이 실업자들이 실업급여보다 낮은 임금의 일자리를 기피하기 때문이라는 인식 하에 저임금 또는 단시간 일자리라도 취업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고용 여부와 무관하게 계속 기본소을 지급하는 실험을 하게 된 것이다.
둘째, 이 실험의 무조건성 또한 사실은 불완전한 것이었다. 실업자들은 실업급여 외에 사회 부조, 주택 수당, 상병 수당 등을 받는데, 실험집단의 경우도 실업급여(기본소득)는 무조건적이지만, 다른 사회수당들은 조건부다. 즉, 소득이 증가하면 다른 수당들은 그에 상응하여 감액된다. 따라서 실험집단에 속한 실업자의 경우에도 고용에 대한 반대유인(disincentive)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 실험은 무조건성도 완전하게 보장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더 정확한 성격은 ‘불완전한 무조건적 실업급여’ 실험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한편,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실험 과정 중간에 비교집단의 조건을 강화함으로써 효과의 해석을 ‘복잡하게’ 만든 것도 문제인데, 이 외에도 최종적인 효과의 해석과 관련하여 무시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유의점들이 있다.
첫째, 기본소득(의 무조건성)과 관련된 쟁점은 ‘노동 의욕’이지 그 결과인 고용 현황이 아니다. 즉, 조건 없이 돈을 주면 일을 하느냐 마느냐가 쟁점이지, 실제로 고용이 얼마나 증가했는지는 기본소득과 무관하다. 실제 고용은 노동공급과 노동수요가 함께 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에 노동 의욕이 있더라도 해당 업종과 직종에서 노동수요가 없으면, 고용은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실험집단의 고용이 비교집단보다 많았다고 해서 곧바로 ‘기본소득은 노동 의욕을 해치지 않는다’고 결론 짓는 것은 올바른 해석이 아니다. 노동 의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직업상담이나 직업훈련 등의 지표를 살펴보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이 점은 핀란드 실험의 예비 결과 보고서 보완자료(2019.4)에 일부 나타나 있는데, 추후 최종보고서 영문판이 발간되면 좀 더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실험집단의 웰빙 효과는 비교집단에 비해 확연하게 좋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을 기본소득이 행복 증진에 유용하다는 직접적 근거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필자는 원리적으로 이 명제에 동의하는 입장이지만, 이 실험에서는 실험집단과 비교집단에 대한 사전 조사가 결여되어 있어서 각 집단의 사전-사후 변화를 파악할 수가 없다. 만약 실험집단이 원래부터 더 행복한 사람들이었다면, 이 실험 결과가 행복 증진에 관해 말해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밖에도 실험규모가 너무 작다든가 실험기간이 짧다든가 하는 애초 실험설계 상의 한계도 지적되고 있는데, ‘무조건적 실업급여 실험’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국가 차원의 실험치고는 좀 허술한 실험이 아니었나 하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기본소득 실험의 필요성?
마지막으로 이상의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을 보면서 기본소득 실험 자체에 대해 간략히 짚어볼까 한다.
기본소득은 기존 복지 패러다임의 급격한 전환을 의미하므로 일거에 도입되기는 힘들 것이며, 따라서 그 효과를 미리 점검해보기 위해, 나아가 사회적 관심을 촉발시키고 토론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도 그에 대한 사회적 실험은 유용한 측면이 있다. 이에 지금까지 1960~70년대 미국과 캐나다의 (기본소득과 유사한)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실험을 필두로 2010년을 전후하여 나미비아와 인도에서, 그리고 핀란드 실험 이후에 세계적으로 크고 작은 실험들이 매우 많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이 실험의 결과는 대체로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실험이 아니라 실제로 기본소득제도를 운용하는 사례도 있다. 미국 알래스카주는 1982년부터 지금까지 전 주민에게 석유 수입을 근거로 ‘영구기금배당'(Permanent Fund Dividend)이라는 기본소득을 지급해오고 있는데(금액은 매년 변동), 이는 기본소득의 특성을 모두 갖춘 가장 온전한 기본소득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란도 2010년부터 전 국민에게 월 40달러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다가 재정 악화로 2016년에 국민 3분이 1을 대상에서 제외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2016년부터 성남시가, 2019년부터 경기도가 만 24세 청년 모두에게 1년에 100만 원(분기별 25만 원)의 청년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실험을 한 나라에서 실험 후에 기본소득 제도가 실제로 도입된 곳은 없고,(핀란드도 정권 교체 후에 기본소득 도입 계획은 없다) 제도가 실제 시행되고 있는 곳은 사전에 실험을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네르지(Banerjee) 등 작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업적이 ‘빈곤 완화를 위한 실험 경제학적 접근’이었고, 최근의 재난기본소득 논란을 계기로 기획재정부도 정책 실험 도입 방안을 연구한다고 밝히고 있듯이, 최근 사회 실험의 의미는 더욱 커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사회 실험의 한계 또한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자연과학적 실험에 비해 사회 실험은 관련 변수들을 통제하기가 매우 어렵고, 따라서 실험 결과 검증할 수 없는 것, 부분적으로밖에 검증할 수 없는 것, 심지어는 실험이 필요 없는 효과들도 있을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특정 정책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대립인데, 실험 결과가 제출되었을 때 과연 이 이해대립이 해소될 수 있다고 보장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사회 실험 자체가 제도 도입의 충분조건은 아니라 할 수 있는데, 실제 기본소득의 경우에도 제도가 도입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해몬드(Hammond) 알래스카 주지사나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 정책 결정권자의 강력한 정책 의지였다고 평가되고 있다.
더욱이 기본소득 실험과 관련하여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관점 하나는 기본소득은 복지정책도 경제정책도 아닌 ‘인간으로서의 권리’라는 것이다. 물론 복지정책적, 경제정책적 효과는 당연히 수반되는 것이지만, 그 자체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물질적 수단으로서, 또 개인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주어진 공유자산(토지, 환경 등)에 대한 정당한 몫으로서 모두가 갖는 천부적 권리인 것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권리를 보장하는 데 실험이 필요한가?’라는 반문도 제기된다. 물론 깊이 생각해볼 문제다.
“실험은 당신에게 어떤 일을 하느냐 마느냐에 관해 말해줄 수 없다. 그것은 당신의 가치에 달려 있다.” _칼 와이더키 스트(Karl Widerquist,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