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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2021년 메이데이 논평 “모두를 위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오늘날 일하는 사람은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며, 이것이 노동자 운동이 현재 직면한 과제이다. 하지만 이런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권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 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권리 가운데 기본소득이라는 경제적 보장의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노동자 운동은 일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모든 존재의 권리를 옹호하는 투쟁에 함께 해야 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다중적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그리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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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지금 여기의 기본소득: 2021년 4월 광역단체장 보궐선거에 대한 논평

시간은 이성보다 더 많은 개종자를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크로노스가 아니라 적절한 기회의 카이로스일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방역 위기와 경제 위기는 기본소득과 관련해서 그런 시간인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다시 뽑는 이번 선거가 치러지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부적절하며 잘못된 일 때문이긴 하지만, 특히 한국 사회에서 두 지역이 차지하는 위치 때문에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나름의 해법이 제출되고 경합하는 또 한 번의 계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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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코로나19 대유행 속의 세계 여성의 날

‘누적되는 진보’라는 관념에 대한 회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여성과 소수자의 삶과 지위는 이런 회의가 근거 없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뼈아픈 현실이다. 경제 참여 및 기회, 교육 성취도, 건강 및 생존, 정치 권한 등 삶의 모든 면에서 여성과 소수자는 평등하지 못하다. 게다가 ‘강남역 사건’과 ‘n번방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의 신체, 더 정확히는 여성의 인격 자체에 대한 폭력은 끔찍할 정도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누군가는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먼저 일자리를 잃고, 또 누군가는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돌봄의 부담을 고스란히 지고 있으며, 또 누군가는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헌신을 요구받고 있으며, 또 누군가는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혐오를 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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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릴레이기고] “기본소득은 중산층과 취약계층을 한 배에 태우는 아이디어” by 윤형중

기본소득은 중산층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바꾸면서 이런 악순환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것은 안이한 발상이 아닌, 전복적인 아이디어다. 지금껏 한국의 복지체계는 취약계층을 별도의 배에 태우고, 다른 배에 탄 고소득층과 중산층에게 일부 비용을 부담케 한 셈이었다. 취약계층이 망망대해에서 고립되면 안 되니, 다른 계층도 일부 비용을 부담하지만 자신의 문제가 아니니 충분히 내진 않았다. 그런데 중산층과 취약계층을 같은 배에 태우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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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릴레이기고] “ 기본소득을 알래스카만 한다?…so what?” by 안효상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맴돌긴 하지만, 가슴 속에 어떤 마음이 있긴 하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언어가 얼마나 희박한지를 느낀다. 하지만 한 마디 말 속에서 너무나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우리는 언어의 과잉을 느낀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월 2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 뒤에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기본소득에 대해 “알래스카를 빼고 그것을 하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바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짧은 말 속에 다른 어떤 의미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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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모두에게 다달이’ vs ‘일정 시기에 목돈으로’ 불평등 사회 해법, 기본소득일까 기본자산일까 by 윤형중

불평등이 시대적 과제로 부상하면서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 받는 의제가 기본소득제와 기본자산제다. 모든 개인에게 아무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제와 인생의 특정 시점을 맞이한 이들에게 한번에 목돈을 주는 기본자산제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상적인 제도로 여겨졌지만, 어느덧 제도권 정치의 영역에서 논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