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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더불어민주당의 청년기본소득 논의를 환영하며

더불어민주당이 오는 9월 16일과 17일에 권리당원 투표를 통해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을 “기본소득 개념의 청년수당”으로 바꿀 계획을 발표했다. 그 취지는 “사회 진입 시기에 들어선 청년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소득 지원을 통해 사회 진입을 용이하게 하고 사회적 기본권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개별적으로 소득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이 실시되는 것이 우리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첫 걸음이라고 말해온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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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사] 권문석이라는 주춧돌 위에 서 있다: 6번째 권문석 추모제를 맞이하며

6년 전 돌연 그가 우리 곁을 떠나려 했을 때, 우리는 잠시 머뭇거리긴 했지만 그를 보내는 자리의 이름에 “사회운동가 권문석”이라고 썼다. 다른 어떤 이름보다 그것이 그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름이 우리로 하여금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넘어설 수 있게 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은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변화가 정상적인 사태로 인식된 이후 등장한 현상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바로 다수의 힘에 의해 이루어질 터였다. 이 속에서 혁명가 혹은 사회운동가라는 직업(occupation) 아닌 천직(vocation)을 선택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회운동을 선택한 사람들은 햄릿이 말한 것처럼 “시대가 탈구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사태를 제자리에 놓으려는 비판을 시도했으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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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2019년 메이데이에 노동의 의미를 생각한다

두 개의 마음은 과연 화해할 길이 있을까? 아니면 하나가 다른 하나를 넘어서야 할까? 그건 우리가 인간과 인간의 삶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스파르타쿠스부터 얼마 전 비극적인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난 김용균까지,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는, 자유의 붉은 피가 흐르고 있다. 그 붉은 피는 자기 삶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것, 그런 인간들 사이의 관계가 진정한 인간이라는 것을 아프게 말해준다.
오늘날 우리가 기본소득을 말한다면 그것은 겨우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일자리 없는 미래에 대한 공포를 달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 위해서이다. 그럴 경우 노동은 우리가 거기에 목매지 않아도 되는, 하지만 의미 있는 삶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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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019년 4월, 한국에서 처음으로 기본소득이 도입되다 by 김태호

2019년 4월부터 시행될 아동수당에서는 “수급권자”가 “7세 미만”이므로 현실적으로는 그 “보호자”에게 수당이 지급될 것이지만, 이 아동수당은 위의 원칙과 정의에 비추어 볼 때 기본소득이라 할 수 있다. 드디어 한국에서 기본소득이 시행되는 것이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물론 “모두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을 원한다. 하지만 당장 그럴 수 없다고 한다면 가능한 수준에서 특정한 집단부터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고, 위의 다섯 가지 원칙이 지켜진 그러한 기본소득은 “부분 기본소득”이라 부른다. 따라서 2019년 4월 이후의 한국의 아동수당은 대한민국 최초의 부분 기본소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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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자본주의 전환기에서 복지국가의 새로운 길 찾기 by 한창근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복지국가는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가? 복지국가의 출현은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서 출현하는 다양한 사회적 위험에 대한 대응기제로 등장하였다. 노동시장의 불안정성, 인구구조의 변화, 자본주의 피해자에 대한 보상 등은 복지국가의 성장에 필수적인 선행요인으로서 작용하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전환기에 올드(old)한 복지국가체제를 통한 시민들의 삶의 질을 보장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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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본소득이라는 빵과 장미를: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제35회 한국여성대회를 맞이하며 by 김수연

여성들이 요구한 “빵과 장미”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생존의 문제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위한 것임을 상징한다. 21세기 참정권을 비롯한 형식적 시민권을 부여받은 여성에게,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로 촉발되어 들불처럼 번진 ‘미투 운동’은 여성이 성적 대상화되지 않고, 한 인간으로 동등하게 존중받고자 ‘장미’를 흔드는 외침에 다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