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우리는 2019년 9월 21일에 서울 대학로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기후위기 비상행동’에 함께 했던 이들이다. 또한 점차 심화되는 기후위기에 각성하고 기후정의 실현을 요구하기 위해, 앞서 나선 이들과 손을 잡고 새롭게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는 이들이다. 우리는 온실가스 배출 책임은 적으나 삶과 일터에서 기후위기를 온 몸으로 맞닥뜨리고 있는 이들이며,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서 가장 먼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오며 현 체제와 싸워 온 이들이다.
우리는 2019년 정부를 향해 3가지 요구사항 ― (1)기후위기를 인정하고 비상선언을 실시하라, (2)온실가스 배출제로 계획과 기후정의에 입각한 대응방안을 마련하라 (3)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독립적인 범국가기구를 구성하라 ― 제시하고 싸웠다. 이 요구는 모두 수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한계는 명확하다. 기후위기 대응방향으로 ‘탄소중립’을 내세우지만, 오히려 허구적인 ‘녹색성장’으로 기업과 자본의 새로운 이윤 추구와 ‘그린워싱’의 계기를 제공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우리는 몇몇 정책적 그리고 제도적 개혁 요구만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하고 기후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는 점을 이제 명확히 인식한다. 또한 기후위기를 유발하고 그 해결을 방치한 기득권 세력들에게 문제 해결의 방향타를 계속 잡도록 해서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요구, 새로운 제안, 그리고 결의가 필요하다.
우리의 요구는 기후위기를 야기한 현 체제를 지배하고 있는 정부와 기업을 향해 있다. 특히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한다. 동시에 이것은 사회 전체에 대한 제안이자 다짐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의 요구는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국제사회를 향해 있다. 지구적 북반구 혹은 선진산업국의 정부와 기업을 향한 요구이자 전지구적 동료 시민들에 대한 제안이자 다짐이다.
2. 2022년, 우리의 요구
1) 화석연료와 생명파괴 체제를 종식해야 한다
기후위기의 직접적이고 가장 주요한 원인은 화석연료의 채굴과 연소에 따른 이산화탄소의 배출이다. 화석연료 기업들은 엄청난 석유, 석탄, 천연가스의 채굴과 공급을 통해 거대한 부를 쌓은 반면, 그 만큼의 온실가스를 대기 중에 쏟아 부어 왔다. 또한 그들이 소유한 화석연료 매장량을 모두 채굴한다면 기온상승 억제 목표인 1.5도를 지킬 수 없으며, 3~4도 이상 상승하게 될 것이다.
화석연료를 대규모로 채굴하고 지구 기후를 뒤바꿀 정도로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며, 이를 지속하게 만든 것은 자본주의 성장체제 때문이다. 물론 이는 화석연료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고 자본 축적을 통해 성장을 지속하려는 기업들은 급속하고 지속적인 온실가스 배출을 낳아 기후위기를 야기하고 있다.
우선 화석연료 생산, 유통, 소비를 가능한 빨리 중단해야 한다. 석탄발전소, LNG 발전소 등의 신규 건설을 중단하고 기존 발전소를 최대한 빨리 폐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이 지속가능하고 정의로운 방식으로 빠르게 확대되어야 한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생산을 가능한 빨리 중단해야 한다. 또한 화석연료의 개발, 공급과 소비에 대한 국내외의 공적 자금 지원과 보조금 지급을 즉각 중단하여야 한다. 이를 관련 산업의 정의로운 전환과 시민들의 에너지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화석연료 기업들의 폭리 취득을 중단시키고 거둬들여야 하며, 이들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핵발전은 기후위기의 대안이 아니다. 이산화탄소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핵발전은 핵사고와 방사성 폐기물의 위험으로 기후생태위기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한다. 이윤 추구를 위해서 위험을 지역으로, 사회적 약자로, 그리고 미래로 전가한다는 점에서 핵에너지는 화석연료와 다를 바 없다.
지구적인 한계를 넘어 지속적으로 채굴, 생산, 소비, 폐기하도록 만드는 채굴주의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다. 빠른 속도의 멸종, 토지와 해양 오염, 산림 파괴 등의 생태위기와 지역 공동체의 사람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를 낳는다. 이는 불합리한 자유무역 체제와 함께, 안전하고 정의로운 먹거리 체제를 만들려는 노력을 방해한다. 비윤리적이고 지속불가능한 공장식 축산과 산업적 수산업을 통한 남획은 대표적인 모습으로, 빠르게 정의로운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2) 모든 불평등을 끝내야 한다
기후위기는 본질적으로 불평등하고 부정의하다. 기후위기를 야기하는 온실가스 배출의 대부분은 기업의 이윤 추구 그리고 부유한 최상위 계층의 막대한 부에 기반한 투자와 소비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이들에게 피해가 집중되고 있다.
기후불평등은, 경제, 정치, 사회, 생태적으로 자리잡은 불평등이 고스란히 기후위기 과정에서 반복되고 심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평등은 기후위기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그 원인이다. 따라서 기후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사회적 평등과 정의를 회복하는 것이다. 기업과 자본, 부유층의 이윤과 지대 착취를 강력히 규제하고 재분배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기후위기 해결책인 재생에너지도 공공적으로 통제되어야 하며, 교통, 주거, 의료, 교육, 식량 등도 보편적 서비스로 혹은 커먼즈로 공적 및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기후위기는 전지구적 불평등 위에 자리잡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기후악당’이라고 불리고 있는 한국은 지금까지 지구적 기후불평등을 강화해온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지구적 형평성에 부합하도록 대폭 강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한국이 감축해야 할 몫을 세계의 다른 이들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 또한 한국 기업과 정부가 다른 국가와 지역에서 개발하고 있는 화석연료 프로젝트를 당장 중단해야 하며, 세계 다른 이들이 불평등하게 감내해야 하는 ‘피해와 손실’에 대한 한국의 책임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3)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의 목소리는 더 커져야 한다
이미 시작된 그리고 되돌리기 힘든 기후재난에 가장 큰 피해를 경험하고 있으며 경험하게 될 이들, 그리고 기후위기를 해결하겠다는 정부와 기업의 정책으로 가장 큰 부담을 떠안게 될 처지에 있는 이들, 즉 기후위기의 최일선 당사자들이 기후위기 해결과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논의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
폭염에 생명을 위협받는 쪽방촌 주민에서부터, 현재와 미래의 꿈과 전망을 잃어가는 청소년들, 석탄발전소, 핵발전소, 신공항, 송전탑 등의 퇴행적인 사업으로 고통받는 지역 주민들, 기후재난으로 농작물을 잃고 일방적인 대규모 재생에너지로 농토를 잃고 있는 농민, 대책 없이 일자리를 잃게 될 위험에 빠진 석탄발전소 노동자를 비롯하여 노동배제적 정책으로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 기후위기로부터 더욱 큰 위협을 받고 있는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그리고 무참히 희생되고 착취되고 있는 비인간 동물과 생태계, 이들을 포함하여 사회적 불평등과 부정의에 노출된 모든 이들이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들이다.
지금껏 기후위기를 만들어냈고 확대해온 기업과 (특히, 금융)자본,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기후 정책과 사회적 논의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그들을 기후 정책과 사회적 논의에서 저만치 구석으로 밀어내자. 또한 기후위기의 진실을 왜곡하며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온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덜어내자. 기후위기의 해결과 대안은 바로 기후위기를 온몸으로 겪으며 지금 여기서 다른 길을 만들기 위해서 분투하고 있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배제된 이들의 민주주의”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를 실현하고 강화해야 한다.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민주적 절차와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기후정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2019년 9월 21일에 서울 대학로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기후위기 비상행동’에 함께 했던 이들이다. 또한 점차 심화되는 기후위기에 각성하고 기후정의 실현을 요구하기 위해, 앞서 나선 이들과 손을 잡고 새롭게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는 이들이다. 우리는 온실가스 배출 책임은 적으나 삶과 일터에서 기후위기를 온 몸으로 맞닥뜨리고 있는 이들이며,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서 가장 먼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오며 현 체제와 싸워 온 이들이다.
3. 우리가 길이고 우리가 대안이다
이 모든 요구를 이루어낼 힘은 우리 안에 있다. 누군가가 우리를 대신해서 이 위기를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우리가 길이고, 우리가 대안이다.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들인 우리 자신이 바로 기후위기 해결의 대안이며 이를 실현할 사회적 힘이 될 것이다. 우리 자신이, 기후위기 시대,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갈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갈 것이다.
우리는 기후위기에 대한 과학자들의 암울한 경고에 두려움을 느낀다. 또한 현실화되고 있는 기후재난을 지켜보는 일에 매일같이 낙담하고 있다. 우리 중의 일부는 현재의 생활 방식으로 기후위기에 일조하는 것이 아닐지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어떤 이들은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서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무기력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러한 감정들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거기에만 빠져 있을 수 없다는 점 또한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지금 겪고 있는 기후위기와 기후재난이 다른 불평등과 파괴가 그런 것처럼 당연한 것도 불가피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이를 야기한 이들과 현 체제에 대해 분노하고, 그들의 책임을 묻는 것에서부터 새로운 길을 시작할 것이다. 9.24기후정의행진에서 함께 요구하고 함께 다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