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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관형 / 계간 《기본소득》 편집위원장
이맘때면 언제나 등장하는 말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꽃샘추위’라는 말이 있듯이, 봄이 왔다고 하는데 추위가 완전히 물러나지 않아 봄 같지 않다고 느껴서 하는 말일 듯하다. 또 하나는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이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처지나 세상 돌아가는 본새가 생동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져서 하는 말이 아닐까한다.
언제부터인지 ‘꽃샘추위’라는 말이 사라졌다. 봄이 왔나 느끼기도 전에 너무 금세 더워진다. ‘꽃샘더위’라고 해야 할 판이다. 세상 돌아가는 본새도 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대단한 환경보호론자도, 대단한 애국자도 아닌데 기후걱정, 나라 걱정으로 “춘래불사춘”을 되뇌는 요즘이다.
이번 15호는 ‘이 계절의 이슈1’로 윤석열 정부 1년을 평가하는 작은 코너를 마련했다. 복지, 경제, 환경, 정치, 사회의 다섯 분야에 대한 간략한 평가다. “안 봐도 비디오요, 안 들어도 오디오”라는 말도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지성의 더듬이를 가동시킬 필요가 있을 줄 안다. ‘이슈2’는 기본소득의 현장으로 스페인 까탈루냐의 기본소득 실험상황과 독일 프라이부르크 기본소득 연구소에서 진행한 윈터 스쿨 체험기를 다룬다.
또한 교육기본소득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김대중’ 전남교육감과 십시일반 기본소득을 진행하여 주목을 받고 있는 ‘자우’ 씨를 인터뷰한다. 계간 《기본소득》을 든든히 괴고 있는 ‘문학’ 코너는 이번 호에도 기대를 빗겨가지 않는다. ‘동향’에서는 2023년 BIEN대회 개최 준비 상황과 피터 슬로만의 『역사적 관점에서 본 기본소득』에 대한 서평을 싣는다. ‘함께 만들어가는 기본소득’에서는 다소 어려운 개념일 수는 있겠으나 현실을 ‘정동자본주의’로 파악하고 그 구조 하에서의 기본소득이 지니는 의미를 서술한 글을 접할 수 있다. ‘기본소득과 나’에서는 성남시의 청년기본소득 폐지에 대한 입장과 십시일반 기본소득을 경험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기본소득의 새로운 지평’에서는 기본소득 연구자인 부산대 김민수 박사의 글을 담는다.
봄과 관련하여 “춘색무고하(春色無高下), 화지자장단(花枝自長短)”이란 말도 있다. 봄볕은 누구나 어떤 것에나 높낮이 없이 고루 비추나, 꽃가지는 스스로 길고 짧은 차이를 나타낸다는 말이다. 불경에 나온다. 불법(佛法)은 누구나 차별을 두지 않으나, 그 법을 받아 각자가 이루는 것은 천양지차를 보인다는 뜻이다. 그러나 봄볕 자체가 골고루 들지 않는다. ‘춘색무고하’는 염원이지 현실은 아니다.
이 봄,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반지하 전세방에도, 펜트하우스에도 봄볕이 골고루 들 날이 올 꺼야. 기본소득을 통해 ‘춘색무고하’의 세상이 열릴 수 있을 꺼야.” 다시 눈을 뜬다. 현타가 온다. “‘춘색무고하’는 개뿔, ‘춘래불사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