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003 | 2019 겨울

|머리글 |

인간해방의 대안,
기본소득 실현의 디딤돌

백승호 / 계간 <기본소득> 편집위원장

1991년 소련 사회주의의 붕괴는 좌파에게 보편적 인간해방을 가능하게 하는 대안의 종말로 받아들여졌다. 그 이후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전 세계를 지배하는 동안에도 좌파는 속수무책이었다. 구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약 30년이 흘렀다. 그 사이 자본주의는 산업자본주의에서 신자유주의의 광풍을 주도했던 금융자본주의를 지나 플랫폼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로 진화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진영은 전통적 사회변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렇다 할 대안적 패러다임을 제시하지 못해왔다. 그 결과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를 막아내지 못했으며 불안정성은 우리의 삶 깊숙이 일상화되어왔다. 사회적 위험은 비정규직과 같은 특정 계층에만 국한되어 나타나지 않는다. 액체근대 시대의 위험은 유동적이다. 정규직이라고 안정적 삶이 보장되지 않는다. 소위 ‘내부자’로 분류되었던 대기업의 제조업 정규직 노동자들조차도 정리해고의 파도 앞에서는 미끄럼틀식 사회경제적 지위의 추락을 경험한다. 기존의 사회보험 중심 복지국가만으로는 이러한 유동적 위험에 대응하기 어렵다. 기존의 복지국가에 새로운 변혁적 대안이 더해질 필요가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좌파진영의 새로운 변혁적 대안으로 기본소득이라는 파도가 속도감 있게 밀려오고 있다. 기본소득은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한 대응으로서뿐 아니라, 토지, 빅데이터와 같이 애초에 모두의 것이었던 자원들로부터 생산되는 부의 공정한 분배를 위한 장치로서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은 인간해방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 ‘해방적emancipatory’이란 ‘인간에 대한 억압과 사회적 불평등을 제거하고,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풍요란 물질적 박탈로 인한 욕구가 충족된 상태뿐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개발하고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 보장된 상태를 의미한다. 아마도 기본소득 그 자체가 본질적이고 필연적으로 해방적인 상태를 담보하지는 않을 것이다. 에릭 올린 라이트는 새로운 대안이 해방적이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첫째는 바람직성이다. 대안이 바람직하다는 것은 사회정의와 정치정의를 실현할 수 있어야함을 의미한다. 사회정의는 “모든 사람이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데 필요한 물질적, 사회적 수단에 대해 대체로 평등한 접근권을 가지는 것”을 의미하며, 정치정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집단적 결정에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실질적 수단에 대한 평등한 접근권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공유부 배당의 기본소득은 바람직하다.

둘째는 실행가능성이다. 한 사회에서 대안의 실행가능성은 한 사회의 역사적 맥락과 부수적 조건들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그 대안에 대한 사회적 믿음이 커질 때 실행가능성은 높아진다. 체계적이고 설득력 있는 대안의 설계는 사회적 믿음을 확장시켜 사람들의 심리적 실현가능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비판에 기초한 바람직한 대안은 사람들의 심리적 수용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상적이라고 받아들여질 경우, 그 대안의 실현가능성에 대해서 사람들은 비관적일 수 있다. 따라서 구체적이며 실행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세 번째로 해방적 복지국가의 대안은 지속가능해야 한다. 대안이 아무리 바람직하고 실행가능하다 해도, 지속될 수 없다면 대안으로서의 생명력은 사라진다. 대안이 지속가능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해방적 대안을 지지하는 사회적 행위자들의 의식적 이행노력과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힘이 있어야 하고, 일관되고 설득력 있는 성과를 지속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기본소득의 실행가능성과 관련해서 다양하게 수정된 기본소득 유형들이 제시되어왔다. 대상자 선정에서 인구학적 조건만 부여하는 사회수당형, 사회적으로 유용한 활동에의 참여를 강조하는 참여소득형, 정치배당형, 생태배당형, 농민기본소득형, 급여형태의 변형으로 지역화폐형, 급여지급방식에서 상속자산권리를 강조하는 사회적지분급여형, 급여의 경제적 목표달성을 강조하는 경기조절형 기본소득 등이 그것이다. 계간 『기본소득』 2019년 겨울호는 기본소득이라는 사회 변혁적 대안의 실행가능성과 관련된 하나의 제안으로서 ‘농민기본소득’을 다룬다. 인간해방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소득 실현의 디딤돌로서 농민기본소득의 가능성을 탐색해 보고자 함이다.

머리글

인간해방의 대안, 기본소득 실현의 디딤돌  _ 백승호

이 계절의 이슈: 농민 기본소득, 기본소득을 위한 디딤돌인가?

불성실한 오용과 창조적 오독: 농민기본소득 그리고 이후  _ 안효상
농민기본소득의 필요성과 추진 현황, 그리고 과제  _ 박경철
녹색의 관점에서 바라본 농민기본소득  _ 하승수

화제의 인물

[오준호 작가]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  _ 인터뷰어 신형철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 90년대 생이 온다, 기본소득당이 온다  _ 인터뷰어 류보선

문학

[시] 혼자 울 수 있도록 – 오래된 기도 2  _ 이문재
[꽁트] 발바닥이 간지러워  _ 윤성희

류보선의 종횡무진 기본소득 3

묵시록적 징후들과 정치개혁의 원리로서의 기본소득  _ 류보선

동향

[학술 동향] 기본소득인가 일자리보장인가  _ 이건민
[국내 동향] 경기도 기본소득 공론화 조사  _ 백승호
[현장스케치] 2019년 한국기본소득 포럼 “우리 사회의 현실과 기본소득”  _ 이관형
[현장스케치] 사진으로 보는 “국제기본소득행진”  _ 박선미

기본소득과 나

기본소득, 새로운 사회복지  _ 송상호

친절한 교성 씨의 기본소득 QnA

기본소득의 재정적 가능성  _ 김교성

Basic Income Magazine

| 발행일: 2019년 12월 31일
| 발행처: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 편집위원장: 백승호
| 편집위원: 김교성, 류보선, 서정희, 이관형
| 편집디자인: 사과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