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018년 기본소득 연합학술대회 6세션 “기본소득과 법”
이건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2018년 기본소득 연합학술대회 6세션의 주제어는 ‘기본소득과 법’이다. 기본소득과 관련된 법적 쟁점을 모색하고(발표 1), 기본소득제도의 규범적 실행가능성을 살피며(발표 2), 기본소득제도의 헌법적 쟁점을 검토하는(발표 3) 순서로 진행되었다. 사회는 군산대 서정희 교수가 담당하였다.
발표 1. 기본소득과 관련된 법적 쟁점의 모색(노호창)
노호창 교수는 기본소득을 둘러싼 법적 쟁점을 포괄적으로 검토하였다. 구체적으로는 기본소득을 경제정책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사회보장제도 내지 복지제도로 볼 것인지의 문제, 기본소득의 적용영역은 어디까지로 할 것이며 구성원 자격은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의 문제, 기본소득의 규범적 근거는 어디서 찾을 수 있으며 그 실시 단위는 어떠해야 하는지의 문제,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실시하는 것이 가능할 경우 보건복지부와의 협의•조정이 필요한지의 문제,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실시하는 것이 가능할 경우 국가나 상급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의 문제,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실시할 경우의 헌법적 쟁점은 무엇인지의 문제, 기본소득 도입의 규범적 함의는 무엇인지의 문제, 기본소득의 당위성을 헌법 해석으로부터 도출가능한지의 문제 등을 분석하였다. 아래는 8가지 쟁점에 대한 발표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첫째, 기본소득을 경제정책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사회보장제도 내지 사회복지제도로 볼 것인지의 문제이다. 사실 기본소득은 경제정책으로 이해될 수도 있고 사회보장제도 내지 사회복지제도로 이해될 수도 있다. 하지만 둘 중에서 어느 쪽으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법적 근거, 주무부처, 제기되는 법적 쟁점 등이 달라지므로, 이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을 경제정책으로 이해할 경우에는, 헌법상 근거는 (경제적) 평등권(헌법 제11조), 사회적 시장경제질서(헌법 제119조 제2항)로 볼 수 있고 주무부처는 기획재정부가 될 것이며, 기본소득은 모든 구성원에게 동일한 액수가 정기적으로 지급되게 되므로, 법률에 반드시 근거가 있어야 하는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실시하는 것이 가능한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실시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 재원을 국가나 상급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지 등이 쟁점을 이룬다.
기본소득을 사회보장제도 내지 사회복지제도로 이해할 경우에는, 헌법상 근거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헌법 제84조 제1항),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국가의 의무’(헌법 제84조 제2항)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러한 헌법적 요청을 규범적 기초로 하여 사회보장 전반에 걸친 지도원리, 지침, 방향 등을 제시한 기본법으로서 사회보장기본법을 지적할 수 있다. 동법에서는 ‘사회보장’의 의미를 “출산•양육•실업•노령•장애•질병•빈곤 및 사망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소득•서비스를 보장하는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를 의미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사회보장기본법 제3조 제1호). 기본소득은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에 속하지는 않지만 사회보장기본법에서 제시하는 3가지 방법은 어디까지나 헌법 제34조 제2항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라는 조항의 예시적 구체화이므로, 기본소득이 이 법조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회보장•사회복지에 속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기본소득을 경제정책으로 이해할 경우에서와는 달리, 이 경우 주무부처는 보건복지부가 된다. 제기될 수 있는 법적 쟁점으로는 첫째, 법률에 구체적인 근거가 없어도 시행될 수 있는 것인지, 둘째, 전국적 차원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만의 차원에서도 시행될 수 있는 것인지, 셋째,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시행될 때 보건복지부와 협의•조정이 필요한지 등이 있다.
헌법적 쟁점과 관련해서는, 기본소득의 법적 근거를 헌법 해석을 통해서 찾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해석이 기본소득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근거가 되는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둘째, 기본소득의 적용영역은 어디까지로 할 것이며 구성원 자격은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기본소득의 수급자는 ‘영역적으로 정의된 특정한 공동체의 구성원’일 것으로 요구하고 있는데, 다만 이 조건은 영주(permanent residence)나 국적(citizenship)이 아닌 재정적인 거주(fiscal residence)를 의미한다는 전제에서, 현지의 개인소득세 적용을 받지 않는 여행자나 미등록 이주민 혹은 외교관이나 국제단체의 지원은 배제된다고 보았다. 현재의 맥락에서 기본소득의 영역적 요건으로서의 ‘공동체’는 일반적으로는 국가를 의미하기 쉬운데, 그렇다고 하여 반드시 국가에 한정된다고 볼 필요는 없고 국가보다 낮은 단위의 지방자치단체나 유럽연합과 같은 초국가적인 지역 차원에서도 기본소득은 충분히 가능하다.
셋째, 기본소득의 규범적 근거는 어디서 찾을 수 있으며 그 실시 단위는 어떠해야 하는지의 문제이다. 기본소득은 헌법의 해석을 통해서 그 근거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구체적인 제도를 반드시 헌법으로 정하여야 할 사항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헌법에서 특별히 법률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사항 및 헌법에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국가나 국민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이라든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관련된 중요한 규율이나 통치조직의 작용에 관한 본질적 사항은 최소한 법률로는 정해야 할 것으로 보았다.
법령우위의 원칙에 비추어, 최소한 기본소득의 도입에 배치되는 내용의 법률은 없어야 할 것으로 판단하였다. 만약 기본소득의 도입으로 인해 주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면 현행 지방자치법 제22조에 따라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았다. 특히 기본소득의 재원에 관하여 조세법상의 조치가 수반된다면 관련 법률도 함께 정비하여야 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넷째,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실시하는 것이 가능할 경우 보건복지부와의 협의•조정이 필요한지의 문제이다. 기본소득을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실시한다고 할 때,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재정권이 있고 또한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사무에 대해서는 스스로 조례를 통해 결정할 수 있으므로, 지방자치단체 스스로가 조례를 통해 지방세를 재원으로 하여 기본소득을 실시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기본소득을 경제정책으로 본다면 다른 법률이나 중앙정부와의 충돌문제가 없을 수 있으나, 기본소득을 사회보장•사회복지제도로 이해한다면 다른 법률 및 중앙정부와의 충돌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다섯째,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실시하는 것이 가능할 경우 국가나 상급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의 문제이다. 기본소득을 사회보장•사회복지제도로 이해할 경우에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기본소득이 실시될 때 재원이 부족하면 국가나 상급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방교부세 지원을 받을 수 있으나 사회보장기본법 제26조 제2항 및 제3항에 따른 협의•조정을 거치지 아니한 경우에는 감액당하거나 반환당할 수 있다(지방교부세법 제11조,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제12조 제1항 제9호).
이와는 달리 기본소득을 경제정책으로 이해할 경우에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기본소득이 실시될 때 재원이 부족하면 국가나 상급지방자치단체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할 것이고(지방교부세법 제6조, 지방재정법 제23조) 그 재원의 명목을 교부금으로 볼 것이냐 보조금으로 볼 것이냐에 따라 적용되는 법적 근거가 달라질 것이며, 이때 중앙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지원금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는 경우, 이는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사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위임사무를 집행하는 것이 되어 중앙정부의 관리감독과 기타 통제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여섯째,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실시할 경우의 헌법적 쟁점은 무엇인지의 문제이다.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한다고 했을 때, 특정 지역의 주민이라는 요건이 타당한지, 일정한 기간 이상 거주라는 요건이 타당한지, 거주기간에 따라 액수에 차이를 두는 것이 타당한지 등이 쟁점으로 제기된다.
만일 특정지역 주민일 것을 자격요건으로 할 수 없다면 지방자치단체 수준의 기본소득은 상정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특정 지역에 대한 기본소득의 필요성이 특별히 헌법에 규정되어 있거나 다른 지역에 비교하여 볼 때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다면 평등원칙 위반이 아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최소한 농어촌 등의 지역에 대한 거주요건을 설정하고 기본소득을 특정 지역을 범위로 하여 도입하는 법률을 제정하더라도 평등권 침해로 판단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혜적 제도의 입법목적을 달성함에 있어서 그 자격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일정기간 이상의 거주를 요구하는 것은 허용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기본소득의 개념상 공동체의 구성원인지 여부는 수급자격을 결정하는 요소이므로 부정수급을 방지하거나 구성원으로 편입되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단기 거주자를 배제하기 위해서라도 일정한 거주기간 요건을 두는 것은 타당하다고 본다.
거주기간에 비례한 차별적인 액수 지급의 타당성 여부는 공동체마다 구체적인 제도와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거주기간의 차이에 따른 차별적 지급이 합리성이 없다고 일률적으로 단정해서는 곤란할 것으로 보인다.
일곱째, 기본소득 도입의 규범적 함의는 무엇인지의 문제이다. 기본소득은 이를 사회보장제도로 보든 경제정책으로 보든 국민에 대한 금전적 지원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이를 국가적 관점에서 법률로써 입법적으로 추진한다면 규제입법이 아니라 형성입법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굳이 헌법에 그 근거가 명시적으로 존재하지 않거나 헌법해석을 통해서 그 입법적 당위성을 도출해내지 않더라도 국회의 입법형성권 행사, 즉 입법자의 결단만으로 충분히 법률적 차원에서는 풀어낼 수 있는 사안일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기본소득에 관한 법률이 제정될 수 있을지 여부라든가 언제 제정될 수 있을 것인지 여부는 국회에 달려 있다. 한편 기본소득의 근거 법률을 제정하게 된다면 법률 제정 시 예산확보 방안이 마련되는 것이 필수적이므로 예산마련에 대한 논의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기본소득을 헌법개정을 통하여 헌법에 도입을 하게 된다면 국민투표를 거쳐야 할 것이므로 국민적 공감대를 얻었다는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한다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헌법이 가진 최고규범성, 골격규범성, 개방성, 정치규범성 등 속성상 기본소득을 헌법에 규정한다면, 예컨대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기본소득을 지급하여야 한다”처럼 신설하는 것이 무난할 수 있다. 헌법에서 기본소득의 지급대상, 지급요건, 액수, 지급방법 등을 상세히 규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므로 시대변화에 따라 현실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법률에 위임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기본소득이 법적 권리 내지 법적 이익으로 인정될 수 있게 되면, 국가는 가능한 한 예산을 확보하여 그 권리를 실현시킬 의무를 지게 되고,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그 권리성을 부정할 수는 없게 된다. 이는 설사 기본소득을, 입법자의 광범위한 형성의 자유를 인정하여 법률을 통해 구체화할 때 비로소 법률상 권리로 인정될 수 있다고 보는 사회적 기본권의 영역에 속하는 대상으로 본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여덟째, 기본소득의 당위성을 헌법 해석으로부터 도출가능한지의 문제이다. 기본소득 도입의 직접적 근거가 될 만한 예로는 평등권(헌법 제11조 제1항),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조항(헌법 제119조 제2항)을 들 수 있으며, 간접적 근거가 될 만한 예로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인간다운 생활권, 사회국가원리를 꼽을 수 있다. 반대로 기본소득 도입에 부정적 근거가 될 만한 예로는 근로권과 근로의 의무가 있다.
끝으로 노호창 교수는 기본소득은 사회보장기본법이 제시하고 있는 사회보장의 3대 체계와는 이질적임을 지적하였다. 기본소득은 사회보험의 본질에 해당하는 임금노동과 소득의 연결이라는 합리성, 공공부조의 본질에 해당하는 자산심사와 생계비보조의 연결이라는 보충성, 사회서비스의 본질에 해당하는 필요성의 원칙을 배제한 접근이라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장차 다가오는 새로운 사회에 있어서 개인, 공동체, 국가 간의 관계가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동시에 우려되는 지점을 밝히기도 하였다. 미래사회가 만약에 생산력을 갖춘 소수와 생산력이 없어 기본소득으로 살아가는 다수로 구성된다면, 정치적 평등이 구현될 수 있을지 나아가 민주주의 체제가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며 경제력을 기준으로 정치적 역학관계가 재편되어 1인 다수표를 갖는 독재가 출현하지는 않을지 우려된다는 것이다.
발표 2. 기본소득제도의 규범적 실행가능성(김주영)
김주영 교수는 현대 사회 변화의 흐름 속에서 노동시장의 미래에 대한 예측을 바탕으로,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대안 가운데 하나로서 기본소득제도를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그 규범적 차원의 수용 가능성 및 정당화 가능성을 검토하였다. 아래는 발표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국가의 존재이유 가운데 하나는 구성원들의 ‘필요의 충족’ 또는 ‘권리의 보전’이라 할 수 있다. 노동시장의 급속한 변화는 임금노동을 중심으로 경제와 사회보장 제도가 구조화된 현재의 사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으며,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의 활용은 노동시장의 더 큰 위기와 도전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 하에 기본소득제도가 사회 구성원들에게 ‘필요의 충족’ 또는 ‘권리의 보전’을 제공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본소득의 헌법적 수용가능성에 관하여 고찰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 헌법 제10조에 의거할 때,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인격을 펼칠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 하에 설계된 기본소득제도는 이러한 헌법 이념에 어렵지 않게 수용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기본소득제도는 헌법의 다양한 기본원리 중에서 사회국가의 원리와 가장 밀접히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국가는 “사회정의의 이념을 헌법에 수용한 국가, 사회현상에 대하여 방관적인 국가가 아니라 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정의로운 사회질서의 형성을 위하여 사회현상에 관여하고 간섭하고 분배하고 조정하는 국가이며, 궁극적으로는 국민 각자가 실제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그 실질적 조건을 마련해 줄 의무가 있는 국가”로 규정된다.
기본소득은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보편적이고 일정한 소득보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적정한 소득분배 및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규정한 헌법 제119조 제2항에 충분히 부합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우리 헌법의 연혁을 감안한다면 조심스러운 평가도 가능하다. 즉 우리 헌법이 사유재산제도와 경제활동에 대한 사적자치의 원칙을 기초로 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고 있음을 선언하고 있고, 이는 국민 개개인에게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통하여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스스로”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하고 사유재산과 그 처분 및 상속을 보장해주는 것이 인간의 자유와 창의를 보장하는 지름길이고 궁극에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증대시키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이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소득의 유형 가운데 ‘완전기본소득’의 도입까지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이유로, 발표자는 현재의 사회복지체계의 근간을 형성해온 사회국가 원리보다는 오히려 공화주의 원리가 기본소득제도의 근간이 될 헌법적 원리로 적절할 것으로 보았다.
셋째, 기본소득제도 자체가 실질적 평등, 특히 조건의 평등에 관한 기본적인 토대를 형성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도 있는 만큼, 헌법상 인정되고 있는 평등원리 혹은 평등권(헌법 제11조)은 기본소득제도의 도입여부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할 수 있다. 물론 현재 기본소득을 도입하고 있지 않은 국가의 부작위가 헌법상 평등권 위반으로 보기는 어려우며, 특히 적용의 대상, 수준, 영역의 결정과정 등 기본소득제도의 실제적 구현에 있어서 평등의 문제가 제기될 우려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넷째, 현행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 가운데 일부는 기본소득제도 도입의 적극적인 근거라 활용할 수 있겠지만, 일부는 기본소득제도의 도입에 걸림돌로 기능할 수도 있음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헌법 제34조 제1항)로부터 인간의 존엄에 상응하는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적인 생활’의 유지에 필요한 급부를 요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권리가 “상황에 따라서는” 직접 도출될 수도 있다고 인정되기 때문에,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기본소득제도의 가장 직접적인 근거로 언급될 수 있다. 아울러 헌법이 천명하고 있는 국가의 사회보장 및 사회복지증진의무(헌법 제34조 제2항) 역시 국가에게 물질적 궁핍이나 각종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대책을 세울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결국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의 실현을 위한 수단적인 성격을 가지므로 기본소득제도의 근거로 활용가능하다.
재산권의 경우는 다소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헌법 제23조 제1항 본문은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고 규정하여 재산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으나 그 단서에서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고 하여 법률로 재산권을 규제할 수 있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다만 기본소득제도의 도입•운영 과정에서 일정 수준의 소득보장의 형태로 새롭게 재산권을 얻게 되는 사람들이 생기는 반면, 제도의 운영을 위한 재원 마련 등을 위해 기존 재산권에 대한 제한 혹은 침해를 받게 되는 사람들이 생길 수도 있으므로, 기본소득의 제한이나 충돌에 관한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헌재에서는 재산권의 내용을 새로이 형성하는 규정은 비례의 원칙을 기준으로 판단하였을 때 공익에 의하여 정당화되는 경우에만 합헌적일 수 있음을 명시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일을 한다는 것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무조건 최저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금전급부를 행하는 기본소득의 구상이 헌법상의 근로의 권리(헌법 제32조 제1항)와 근로의 의무와 배치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 바 있다.
기본소득의 헌법적 실행가능성에 관하여 검토한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현행 헌법체제 하에서 기본소득제도의 국가적 실행은 기본소득제도의 도입이 이루어지지 않아 발생한 인간다운 생활권을 위시한 사회적 기본권의 침해 주장에 대한 사법적 구제의 방식보다는 의회유보 및 법률유보의 원칙 하에서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기반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특정 제도의 도입에 있어서 입법자는 상대적으로 넓은 형성의 자유를 갖게 되지만, 입법에 의해서 국민의 기본권에 대해 일정한 제한을 가하게 되는 경우에는 입법자가 이러한 형성의 자유의 한계를 준수하였는지 여부는 원칙적으로 비례의 원칙에 의하여 판단하게 된다. ‘비례의 원칙’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국가작용을 입안•실행함에 있어서 준수하여야 할 기본원칙 내지 한계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 경우에는 특히 ‘과잉금지의 원칙’으로도 불리며, 세부적으로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절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 균형성의 충족을 요구한다. 이를 차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목적의 정당성 기준에 따른 기본소득제도의 헌법적 실행가능성이다. 일견 타당하거나 정당한 것으로 보이는 목적도 그것만으로는 합헌으로 선언될 수 없고 그것이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 제시한 목적들, 즉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 중 적어도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에 비로소 헌법에 합치하는 것으로 본다. 디지털 혁명이 야기하는 노동력 과다 현상은 향후 기술변화가 인간노동력에 대한 수요를 극적으로 변화시키지 않는 한 어떤 식으로든 저생산성 노동자의 소득이 1인당 평균생산 성장률에 뒤지지 않도록 재분배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는 주장을 감안하면, 기본소득제도는 기본적으로 공공복리, 경우에 따라서는 질서유지의 요건을 충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수단의 적절성 기준에 따른 기본소득제도의 헌법적 실행가능성이다. 기본소득제도가 노동시장의 변화로 인한 분배의 문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 수단의 적절성 역시 긍정될 수 있다. 다만 방법의 적실성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수단의 현실적 실행가능성의 확보, 즉 수단으로 실제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하므로, 기본소득 “재원 확보 방안”의 현실적 가능성에 대한 실제적인 논거의 확보가 필요할 것이다. 기본소득제도의 재원확보와 관련한 다수의 논의는 조세를 통한 재원의 확보를 주장하는 바, 이는 헌법이 규정한 조세법률주의(헌법 제59조)의 관할 범위 내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조세의 유도적•형성적 기능은 특히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한 헌법 제34조 제1항에 의하여 그 헌법적 정당성이 뒷받침되고 있으므로,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을 위한 조세제도의 개편 역시 규범적 정당성 면에서 긍정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침해의 최소성 기준에 따른 기본소득제도의 헌법적 실행가능성이다. 과잉금지의 원리는 입법권자가 선택한 기본권 제한의 조치가 입법목적달성을 위하여 설사 적절하다 할지라도 보다 완화된 형태나 방법을 모색함으로써 기본권의 제한은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치도록 하여야 하는 바(피해의 최소성), 이는 실질적으로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다른 정책대안들과의 비교를 통해 일반적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본소득제도는 기존 사회보장제도보다 더 나은 제도임이 납득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기존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개선책으로 제시되는 다른 대안들보다도 더 나은 제도임을 보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넷째, 법익의 균형성 기준에 따른 기본소득제도의 헌법적 실행가능성이다. 과잉금지 원리는 국가작용에 의하여 보호하려는 공익과 침해되는 사익을 비교 형량할 때 보호되는 공익이 더 클 것을 요구하므로(법익의 균형성), 기본소득제도 역시 이런 관점에서 제도의 도입으로 인해 달성되는 공익과 제도의 도입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에 대한 비교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본소득제도의 도입을 위해서는 예상되는 비용과 편익에 대한 추산뿐만 아니라, 향후 제도 도입으로 인해 초래될 수 있는 경제적인 변화를 면밀히 검토해야 할 과제가 부여된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김주영 교수는 기본소득제도의 헌법적 정당화 원리로서의 공화주의 원리와의 연계를 확인하기 위하여, 좀 더 오래된 형태의 기초소득보장 제도로서 고대 로마의 곡물수당 제도와 1795~1834년 실시되었던 영국의 스핀햄랜드 제도를 고찰하였다.
발표 3. 기본소득제도의 헌법적 쟁점(오동석)
오동석 교수는 인권의 경시와 대의민주주의 실패로 정리할 수 있는 구 체계를 혁신할 수 있는 민주적 역량을 결집하지 않는 한, 개헌은 헌법조문의 윤문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면서, 성문헌법전이 아니라 헌법체계가 문제라는 입장을 피력하였다. 헌법체계의 민주화는 성문헌법의 개정으로 이어지지만, 그 반대가 반드시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기본소득을 헌법적으로 보장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이며, 헌법에 근거를 마련하는 것보다 기본소득제도를 구축하는 것이 먼저라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발표자는 기본소득 개헌을 요구했던 지난 경험을 사례로 들었다. ‘국가인권위원회 개헌포럼’의 ‘기본권 보장 강화 헌법개정(안)’은 현행 제34조 제1항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제2문을 덧붙여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기본소득에 관한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는 개정안을 제시했다. 그동안의 헌법개정안이 인권 강화를 목표로 내거는 경우에도 현실적으로는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내용이 없던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획기적인 것이었다. 다만 ‘기본권 보장 강화 헌법개정(안)’은 구체적인 내용을 법률에 위임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권리를 가진다’고 표현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시책 강구를 주문한 데 그친다는 한계를 보였다. 기본소득제도의 다양한 모델이 있음을 감안한다면, 과연 입법이 제대로 이뤄질지 또는 만약 입법이 불충분하다면 헌법재판소가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하였다. 또한 기본권 형식으로 명시한다고 하더라도 현실 차원에서는 별 다를 바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헌법재판소나 법원에 대한 소송을 통해 사회적 기본권을 실현하는 방법은 그 자체로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오동석 교수는 권리 담론과 민주주의 담론 등 담론 투쟁, 권력관계 변혁 등의 정치적 과정을 통한 제도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기본소득제도의 헌법 규정은 의미가 있지만, 그것의 실현은 법률 차원의 보장을 모색하는 것으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민주주의와 정치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세 발표에 이어서, 공화주의의 개념,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들고 청년실업률이 높은 시대에서 근로의 권리와 근로의 의무 조항의 의미와 실효성, 법적으로 근로 개념을 확대할 필요성,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를 경기도에서 시작하고자 하는 시도가 법적으로 가능한지의 문제, 우리나라 지자체에서 세율조정이 법적으로 가능한지의 문제, 기본소득기본법을 발의한다고 할 때 기본법의 위상과 한계는 무엇인지의 문제, 사회국가의 보충성 원리가 기본소득제도의 도입과정에서 미칠 수 있는 영향, 법적 제도화의 의미와 한계 등을 둘러싼 활발한 토론과 논평이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