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8년 기본소득 연합학술대회 ‘기본소득, 한국사회의 미래를 비추다’ 둘째날(11월 24일 토요일)에 열린 <세션 5. 4차 산업혁명과 기본소득> 후기입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이자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상임연구원인 이건민 님이 쓴 글입니다.

후기: 2018년 기본소득 연합학술대회 5세션 “4차 산업혁명과 기본소득”

이건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2018년 기본소득 연합학술대회 5세션의 주제어는 ‘4차 산업혁명과 기본소득’이다. 인공지능의 가치 중에서 데이터의 가치는 얼마인지를 분석하고(발표 1),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에서 탈자본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사회•경제•정치적 개입 방안을 제시하며(발표 2), ‘정의로운 민주주의’로서 헌정 실질적 민주주의를 대안으로 제출하는(발표 3) 순서로 진행되었다. 사회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안효상 운영위원장이 맡았다.

발표 1. 4차 산업혁명과 공동부 – 데이터 가치론(강남훈)

강남훈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6d로 요약하여 제시하면서 발표를 시작하였다. 소득 탈동조(income decoupling), 직업 불안정(job destabilization), 인구 감소(population decrease), 지대 지배(rent domination), 기술 발전(technological development), 환경 재앙(environmental disaster)이 바로 그것이다.

발표자는 4차 산업혁명이 한편으로는 위와 같이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높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본소득의 근거가 되는 공동부를 확대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여기서 공동부(common wealth)는 공유, 무소유, 공공소유, 공동체 소유, 협동조합 소유, 무상, 나눔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우선 강남훈 교수는 데이터를 수집•활용하여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플랫폼 기업은 교차보조(cross-subsidization) 전략을 취한다고 적시하였다. 즉, 플랫폼 기업은 주목 효과(attention effect), 링크 효과(link effect), 기록 효과(recording effect), 콘텐츠 효과(contents effect) 등의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한쪽의 사용자에게 받은 요금으로 다른 쪽의 사용자에게 보조금을 지불하거나 무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교차보조 전략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교차보조 전략을 통해 플랫폼 기업이 궁극적으로 확보하려고 하는 것은 사용자들의 주목이며, 플랫폼 기업은 이렇게 수집된 주목을 광고회사에 판매하여 수입을 올려왔다. 그런데 플랫폼 기업은 또 하나의 수입 원천, 곧 인공지능을 찾아냈다. 소비자들의 행동이나 콘텐츠로 구성된 빅데이터가 인공지능을 만드는 핵심원료가 된 것이다.

다음으로 연구자는 정치경제학적 범주를 이용하여 인공지능의 가치가 ‘플랫폼 투하비용+특별잉여가치+데이터 지대’와 같다고 정식화하였다. 그런데 인공지능으로부터 생기는 수익의 상당 부분은 데이터로부터 나온 것이며, 데이터는 수많은 사람이 자기활동(비임금노동)을 통해 올리는 것이므로, 인공지능으로부터 생기는 초과수익은 상당 부분 지대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발표자는 공정한 분배 원칙의 하나인 섀플리 가치(Shapley value)를 활용하여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데 사용되는 데이터의 가치를 계산하였다. 데이터를 제공하는 사람이 무한대로 늘어나면 데이터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섀플리 가치의 합은 인공지능 가치의 1/2에 수렴하므로, 연합지성이든 연합행동이든 인공지능을 만드는 데 데이터를 제공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인공지능 가치의 1/2에 대하여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미래의 경제에서 부의 대부분이 연합지성의 산물인 인공지능을 활용해서 생산된다면, 사람들은 전체 소득의 약 1/2을 기본소득으로 나누어 가질 권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흥미로운 발표에 이어서, 3차 산업혁명과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이노우에의 견해와 전망, 산업혁명의 시대 구분, 정치경제학적 입장에서 생산성과 부의 척도에 관한 새로운 해석의 필요성 등에 관한 활발한 토론과 논평이 진행되었다.

발표 2. 탈노동사회, 탈자본주의, 기본소득 – 비판과 대안(금민)

금민 소장은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플랫폼 자본주의로 규정하고, 플랫폼 자본주의의 핵심 특징으로 데이터의 중심성, 이윤창출 기제로서의 네트워크 효과, 사회인프라에 대한 독점적 소유를 들었다. 1990년대부터 디지털 전환은 연속적 과정으로 진행되었지만,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곧, 기술적 전환적 측면에서는 플랫폼과 인공지능의 결합으로서의 일반지성이 등장하고, 사회 전체의 재구조화 측면에서는 생산뿐만 아니라 교환과 소비, 사회적 재생산 전체에 걸친 재구조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플랫폼 자본주의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발표자는 일자리 희소화에 대한 약한 반론과 강한 반론을 구분하고 이에 대해 재반론을 펼친다. 여기서 약한 반론은 직업(job)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직무(task)를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이며, 강한 반론은 기술진보로 인한 일자리 대체효과는 단기적으로 발생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보완효과와 생산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주장이다. 금민 소장은 기술변화는 필연적으로 기술적 실업을 낳는다는 점, 맑스 스스로가 이미 <자본> 1권 13장에서 보상이론을 설득력 있게 비판한 바 있다는 점, 확대재생산 없이는 일자리 희소화는 불가피하다는 점, 생태적 한계를 인정한다면 사회재생산의 전면적 상품화 이외에 시장 일자리 해법이 없다는 점, 사회재생산의 전면적 상품화는 하인계급을 양산할 것이라는 점 등을 논거로 들면서 강한 반론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이어서 금민 소장은 기본소득 논의의 현재적 지평을 확인하고 새로운 도전과제를 제출하였다. 현재적 지평은 플랫폼 자본주의와 일자리 없는 사회로 요약할 수 있는데, 여기서 방어적인 사회정책적 대응의 하나로서 기본소득을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는 커다란 한계를 갖는다고 지적하였다. 단기적 해법으로 EITC나 일자리보장(JG; Job Guarantee)이 더 선호될 수 있고, 기본소득은 일자리 희소화가 전면화될 때 비로소 필요한 정책으로 후순위로 배치될 우려가 있으며, 이는 일자리 질의 저하나 일자리와 소득 간 탈동조화 등에서 필요성을 찾을 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또한 설령 기본소득이 불평등 해소에서 가장 효과적인 정책임을 입증할 수 있더라도 차차기 정책으로 취급될 우려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의 지지자들이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과 분배정의론을 결합하고, 분배정의론으로서 공유부 배당론을 정교화하며, 공유부 기반 경제로의 이행과 기본소득의 관계에 대해 해명해야 하는 새로운 도전과제에 직면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의 핵심문제로 “빅데이터는 누구에게 속하는가?”를 꼽았다.

이뿐만 아니라, 금민 소장은 현 시기 자본주의가 제기하고 있는 보다 이론적인 질문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탈노동사회는 탈자본주의와 같은가? 바야흐로 자본의 코뮤니즘이 도래했는가? 탈자본주의는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가? 해방적 기본소득이란 단지 지급수준의 문제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자본주의와 생산적 노동의 상관관계에 대해 묻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술혁신과 사회전환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적극적 사회정책적 차원, 분배/소유정의론적 차원, 탈자본주의적 사회전환의 차원의 개입이 결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재원문제와 관련해서는, 근로소득 대중과세는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공유부 모델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소유관계는 여전히 중요하긴 하지만 ‘생산수단의 사회화 또는 국유화’ 요구로 환원되지 않으며, 화폐환류법칙의 변형을 위한 소유권 혁명이야말로 탈자본주의의 새로운 지표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금민 소장은 일반지성 자본주의와 탈자본주의를 명확하게 구분한다. 일반지성 자본주의에서는 플랫폼 자본의 일반지성이 등장하며 조세형 기본소득으로 소비기반이 유지된다. 거시경제적 조정자에서 대체임금 지불자로 국가의 기능이 변화하지만, 화폐자본의 순환과정에서 보자면 자본가의 수중에서 생산과정에 투하된 화폐자본에서 출발하여 더 커진 화폐액으로 자본가의 수중으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화폐환류법칙은 불변이다. 이는 현 자본주의보다 진보적일 수는 있지만, 이 이상의 사회형식으로 자동적으로 진화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는 달리 탈자본주의에서는 공유부에 대한 모두의 소유를 전제로 한 공유부 배당으로서의 기본소득이 지급되며, 여기서 말하는 탈자본주의로의 이행은 화폐 자체의 폐기가 아니라 화폐환류법칙의 근본적인 변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곧 사회 전체 성원들의 공유부로부터 출발하여 정기적으로 공유부 배당으로서의 기본소득의 지급까지로 이어지는 화폐자본 순환과정상의 발본적인 성격 변화를 탈자본주의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발표에 이어서, 소유 형식과 화폐환류법칙을 변화시키는 데 기본소득이 갖는 기능과 역할, 플랫폼 소유 형식에 개입하는 것이 가지는 의미와 중요성 등을 둘러싼 활발한 토론과 논평이 진행되었다.

발표 3. 4차 산업혁명과 ‘정의로운 민주주의’(권정임/강남훈)

강남훈 교수와의 공동연구의 대표 발표자인 권정임 교수는 ‘정의로운 민주주의’를 정의하고 이를 위한 전제조건을 제시하였다. 기술관료독재를 비롯한 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 결과들을 방지하고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인 결과들을 강화하여 모두가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는 사회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발전이 중요하며, 4차 산업혁명은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기술적, 물질적 매체와 수단을 발전시키기도 함을 환기하였다. 여기서 중요하게 제기되는 질문은 우리가 어떤 민주주의를 추구해야 하느냐인데, 이를 탐구하기 위하여 필립 판 파레이스(Philippe Van Parijs)의 ‘정의로운 민주주의 기획’을 비판적 출발점으로 삼았다.

발표자에 따르면, 판 파레이스의 문제의식은 민주주의(적 절차)에 따른 의사결정과 정의에 따른 의사결정 간의 불일치 가능성에서 출발한다. 판 파레이스는 양자 간의 일치를 담보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서 ‘정의로운 민주주의 기획’을 제시하였는데, 그가 명시적으로 추구한 정의는 실질적 자유지상주의적 정의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판 파레이스는 실질적 자유지상주의적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 기본적 자유의 존중, 실질적 자유를 위한 물질적 수단의 축차적 최소극대화(leximin principle), 좋은 삶에 대한 다양한 견해에 대한 평등한 존중, 모든 시민에 대한 평등한 배려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판 파레이스는 또한 민주주의와 정의가 양립불가능할 경우에는 민주주의보다 정의가 우선시되어야 하며, 민주주의적 제도 설계에서 효율성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권정임 교수는 판 파레이스의 ‘정의로운 민주주의 기획’을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첫째, 민주주의에 비한 ‘정의의 우선성’의 근거가 명시적으로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민주주의에 대한 순전한 도구적 이해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판 파레이스가 인민주권론을 전제로 하여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있다고 보았으며, 판 파레이스에게서 ‘정의’란 확장된 ‘자유’를 의미하며 이러한 맥락에서 민주주의보다 정의를 우선시하는 그의 기획은 사실상 ‘헌정 자유(민주)주의’ 틀에 기초한다고 판단하였다. 판 파레이스는 다수결주의를 토대로 한 ‘민주주의적 독재’의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보다 정의를 우선시한다는 것이 권정임 교수의 분석이다.

판 파레이스와 같이 민주주의를 협소하게 정의하고 도구적으로 인식하는 경우에는, 특히나 불평등이 구조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헌정 자유주의는 역설적으로 다수 인민(의 실질적 자유)를 억압하는 ‘자유주의적 독재’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판 파레이스에 대한 발표자의 비판이다. 기본권이 ‘형식적인 자유와 평등’으로 협소하게 이해될 때에는 ‘자유주의적 독재’의 가능성은 더욱 증폭될 수 있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 판 파레이스는 실질적 자유와 그것의 축차적 최소극대화를 위한 기본소득, 자유권, 기본권의 강화와 실질화를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권정임 교수의 진단이다. 즉 판 파레이스의 ‘정의로운 민주주의 기획’ 자체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절차적•제도적 차원의 민주주의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원래의 의미인 ‘인민주권’, ‘자치’를 부각하면서 이에 따른 직간접적 참여 기제를 창출하여 집단지성을 창출하고 권력을 효과적으로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인민주권과 자치라는 의미의 민주주의 개념과 기본권의 실질적 보장을 기반으로 한 헌정 실질적 민주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흥미로운 발표에 이어서, 4차 산업혁명과 정의로운 민주주의와의 관계,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자유주의적 독재의 출현 가능성, (성남시 청년배당의 사례에서도 엿볼 수 있는) 기본소득의 실질적 민주주의 증진 효과 등에 관한 활발한 토론과 논평이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