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로드맵 워크숍> 스케치
‘공유부’는 사회적 합의의 산출물, 공감대 형성 과제로 남아
한인정 회원(기본소득신진연구자네트워크 대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주관한 기본소득 로드맵 워크숍 열려
공유부의 크기와 범주, 발전주의와의 관계 등 다각적 논의 이어가
로드맵 확산을 위해선 쉬운 버전의 책자 필요하단 지적도 나와
한국기본소득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가 기본소득 로드맵 논의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많은 이들과 로드맵을 두고 논쟁하며, 지평을 넓히겠다는 기획이다. 로드맵 집필팀은 물론 30여 명의 회원이 참석한 워크숍에선 ‘공유부’ 배당으로서의 기본소득 논의가 주를 이뤘다.
■ 사회적 합의로서의 공유부, 실행 가능한 수준에서 논쟁 시작해야
지난달 25일에 열린 <기본소득 로드맵 워크숍>, 회원들의 주요 관심사는 공유부였다. 기본소득 로드맵이 정당성, 지속가능성, 충분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공유부 배당으로서의 기본소득’을 전면에 내세우고 공유부의 범위 및 규모, 생태주의와의 관계 등 구체적인 논쟁거리를 찾아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기본소득이 주요 정치권의 화두가 된 만큼, ‘기본소득 실행’이라는 목표를 넘어서 ‘충분한 기본소득’, ‘지속 가능한 기본소득’ 등을 논의하기 위해선 공유부 논쟁은 선결해야 할 과제라는 평가다. 신지혜 이사(기본소득당 대표)는 “기본소득을 공유부 배당으로서 설명해야만 기존 복지제도와의 상보성이 가능하며, 충분한 수준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공유부 논의의 물꼬를 튼 건 공유부의 범위와 규모에 관한 이야기였다. 공유부의 범위 및 규모를 명확히 밝혀내고, 이를 바탕으로 기본소득 안을 세워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선배 회원(대전네트워크 운영위원)은 “로드맵에 나온 공유부 크기가 명확하지 않다”며 “공유부의 전체 규모를 먼저 설정하고 실현 가능한 범위에서 확대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선 사회의 많은 부가 공유부라는 사실에는 동감하지만, 실현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있어서는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모든 것이 공유부라고 말한들 그것은 개인 혹은 한 집단의 의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공유부 배당으로서의 기본소득 논의가 정책테이블에 올라가려면 사회적으로 실현 가능한 공유부 배당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윤형중 운영위원은 “로드맵 집필팀이 제시한 월 30만 원의 기본소득, 즉 180조의 공유부는 토지세, 탄소세, 세제개혁 등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재원을 끌어온 것”이라며 “우선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선을 천천히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내 삶에서 체험하는 공유부, 구체화할 연구 필요
이처럼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선, 공유부를 구체화하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공유부라는 단어가 생소하기도 하고, 나의 현실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다면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위계점 회원은 “내 일상에서 빼앗긴 공유부를 찾아내야 공유부를 환수해서 기본소득을 줘야 한다는 의견에 동감할 수 있다”며 “우선 회원들이라도 자기 영역에서 존재하는 공유부를 측정하는 작업을 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발생하는 공유부를 찾아보는 시도도 해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문지영 회원(전남네트워크 운영위원)은 “지역은 아무래도 규모도 작고 공동체 의식도 있다”며 “지역 내 공유부를 찾아내고 이걸 기본소득으로 나누는 것은 합의에 이르기가 비교적 쉬울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단위의 공유부 설정에 있어서는 공유지의 소유권한, 배당범위의 논의도 진행되어야 한다는 의견 또한 나왔다. 공유부라고 했을 때 단순히 권리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는 책무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마치 제주도 바다가 모두의 것이라는 이야기는 논리적으로는 정당하지만, 실상 누가 그곳을 지키고 관리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재섭 회원은 “제주도에는 스쿠버와 해녀들의 분쟁이 잦다. 스쿠버들은 제주 바다가 해녀 것이냐고 반박한다. 하지만 누가 관리하고 지키는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며 “과연 공유부의 무게중심을 어디에 둬야 할지 고민이 된다. 지역단위 기본소득 논의를 진행하면서 실질적인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고민은 자연적 공유부를 어느 수준까지 나눠야 하느냐, 또 모든 것을 기본소득으로 나누는 것이 맞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한인정 회원(기본소득신진연구자네트워크 대표)은 “특히 자연적 공유부일수록 지역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당장 내 앞마당에서 보이지 않는 공유부라면 보전논리보단 발전논리에 기댈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 시대, 발전주의 방식의 논리를 재차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유부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청취한 기본소득 로드맵 공동집필위원장 서정희 이사는 “공유부를 더 치밀하게 이론화하고, 구체화하는 작업들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며 “네트워크에서 후속과제로 수행하고 있는 작업들이 있으니 이 과정을 통해 던져주신 질문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겠다”고 답했다.
■ 기본소득 로드맵, 대중이 궁금해하는 것을 묻고 답해야
기본소득 로드맵의 대중적 논의 확산을 위한 과제도 제시됐다. 대중설득을 위해선 명확한 숫자와 쉬운 언어로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보여줄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워크숍에 모인 회원들은 2033년 기본소득 안으로 제시된 91만 원(중위소득 50%)을 어떤 방식으로 표기해야 대중설득이 더 용이할 것인지를 장시간에 걸쳐 논의하는 등 관심이 쏟아졌다.
기본소득 로드맵을 더 대중적인 용어로 설명할 판본의 필요성을 피력한 회원도 있었다. 정우주 회원(전북네트워크 대표)은 “이번 로드맵은 그간 기본소득이 직면한 복지국가와의 관계, 구체적인 재원 로드맵 등 논점을 전문가의 언어로 밝혀낸 느낌이다. 회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판본들이 나와 주변에 쉽게 기본소득의 미래를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현실에 천착한 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지적은 이어졌다. 특히 기본소득을 둘러싼 대중들의 공감대 수준을 수시로 확인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들을 진행해나가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기본소득이 사회의 맥락, 사회문제와 한 배를 타고 움직여야만 사회구성원의 논쟁 테이블에 올라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지은 이사는 최근(8월)에 발표한 논문 “기본소득의 실현가능성에 대한 탐색”을 언급하기도 했다. 해당 연구는 노동윤리(일을 중요하다고 생각)가 강력한 사람일수록 기본소득을 덜 지지하는 결과를 보여줬다. 그간 한국의 논의 지형에서는 노동윤리에 근거해서 기본소득을 비판하는 경향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기본소득 논의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기본소득론자들이 노동윤리를 연구하고, 언급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즉, 기본소득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설파하는 것만이 아니라 대중이 주목하는 측면에 맞추어 설득하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백승호 이사는 “기본소득은 그 사회의 맥락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며 “노동윤리가 강한 나라에선 노동윤리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복지제도와 구조조정이 필요한 나라에선 어떻게 할 것인지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리얼리스트들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이번 워크숍을 기획한 안효상 이사는 “기본소득을 전체 사회의 종합적인 맥락에서 어떻게 보고 이끌고 나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자리였다”며 “특히 회원들이 제시해준 의견은 기본소득 로드맵의 공백을 더 철저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앞으로 많은 분들과 소통하며 공백을 메워나가는 네트워크가 되겠다”고 말했다.
한편, 기본소득 로드맵(<한국 사회 전환: 리얼리스트들의 기본소득 로드맵>)은 2021년 8월 17일 한국기본소득네트워크와 기본소득연구소가 공동발표한 연구 결과물로서 2023년 월 30만 원 부분기본소득에서 시작하여 2033년 91만 원의 완전기본소득으로 나아가는 안을 담고 있다. 주요 내용은 “소득보장의 1층에는 보편적이고 무조건적인 공유부 배당 기본소득이 소득안전판으로 자리잡고, 2층에는 소득 기반 사회보험이 자리 잡으며, 보편적 사회서비스가 이 사이에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하는” “기본소득이 있는 복지국가”를 실현하자는 기획이며, 토지보유세·탄소세·시민소득세·세제개편 등 공유부에 기반한 재정적 실현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