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문] 농사를 다시 가능하게 하는 돈: 청년 농민 기본소득 사회실험의 의의와 함의

(청년농어민기본소득 사회실험 보고대회, 2026년 3월 19일)

한인정(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

1. 연구배경

이 연구는 기존 농정의 지원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현재 농업 정책은 ‘자격–증명–지원’의 구조를 통해 농민을 선별하고 관리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농민의 삶을 생산성과 소득 중심으로 환원하며, 농사를 지속하게 하는 조건과 삶의 감각을 충분히 포착하지 못한다. 특히 청년 농민들은 불안정한 소득, 높은 노동 강도, 제도적 통제 속에서 농사를 지속하기 어려운 조건에 놓여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조건 없이 먼저 지원한다면 어떤 농사가 가능해지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2. 연구과정

이 질문에 응답하기 위해 청년 농민 기본소득 사회실험이 기획되었다. 이 실험은 국가가 아닌 농어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가 주도하여 마련한 실천으로, 소셜펀딩과 단체 후원을 통해 약 1억 9백만 원의 재원을 조성하였다. 한살림생산자연합회, 두레생산자회, 전국귀농운동본부, 한국친환경농산물가공생산자협회,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등 다양한 생산자·시민단체가 정기 후원과 협력 방식으로 참여하였으며, 200여 명의 시민이 모금에 함께했다. 이 실험은 제도 도입 이전에 효과를 검증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한 시민 주도형 실천으로 기획되었다.

이 실험은 만 39세 이하의 친환경 농업 종사 청년 농민 10명(5명은 3년 지속, 15명은 1년씩)을 대상으로 월 30만 원의 현금을 조건 없이 지급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으며, 2023년 4월부터 최대 3년간 전국 각지에서 진행되었다. 기존의 ‘증명 이후 지원’ 방식과 달리, 이 실험은 ‘지원 이후 삶’을 관찰함으로써 기본소득이 농사의 지속에 어떤 조건을 형성하는지를 탐색하고자 했다. 연구는 기본소득신진연구자네트워크(이지은, 한인정)가 수행하였으며, 심층면접, 시간 사용 분석, 자기기록 등의 질적 방법을 통해 참여자들의 삶의 변화를 추적하였다.

3. 연구결과

연구 결과, 기본소득은 단순한 소득 보전을 넘어 농사를 지속할 수 있는 ‘시간과 조건’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였다. 참여자들은 “불안의 무게가 달라졌다”고 표현하며, 생존을 위한 임금노동에 종속되던 상태에서 벗어나 자신의 농사에 시간을 배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농사를 ‘유지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지속할 수 있는 삶의 방식’으로 전환시키는 조건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조건 없는 지급은 기존 정책에서 요구되던 증명과 평가의 압박을 제거하며, 참여자들의 자기검열을 완화시켰다. 더 이상 자신의 곤궁함을 입증하거나 정당화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참여자들은 자신의 선택과 방향을 스스로 구성할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하였다. 이는 ‘증명하는 농민’에서 ‘질문하는 농민’으로의 전환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조건의 변화는 농사의 방식에도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단기 수익을 중심으로 한 작물 선택에서 벗어나, 나무를 심고 생태적 순환을 고려하는 등 ‘기다릴 수 있는 농사’가 가능해졌으며, 자신의 몸을 돌보거나 삶의 리듬을 조정하는 실천이 나타났다. 동시에 독서모임, 공동 작업, 지역 활동 등 관계적 실천이 확장되며, 농사는 개인의 생업을 넘어 동료를 만들고 문화를 생산하며 정책을 형성하는 사회적 실천으로 확장되었다.

4. 논의 및 제언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지원의 방식이 삶의 방식과 농사의 의미를 변화시킨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기본소득은 농사의 성과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농사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시간과 조건’을 형성하는 소득으로 작동하였다. 조건 없는 지원은 농민을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 전환시키며, ‘증명하는 농민’에서 ‘질문하는 농민’으로의 이동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기본소득이 단순한 소득 이전 정책이 아니라, 삶을 기획하고 관계를 형성하며 공공적 실천을 확장할 수 있는 기반 조건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본 연구는 농업 정책뿐 아니라 사회복지와 기본소득 논의 전반에 있어, 소득을 ‘결과’가 아니라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재사유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PS. 본 연구는 이지은 선생님과 함께 보완하여 논문으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향후에는 책으로도 이어갈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각자의 삶이 각자다울 수 있도록, 기본소득이 그 과정에 작은 밑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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