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비상계엄으로 시작된 정치적 위기에 대하여
지난 12월 3일 밤 대통령의 기습적인 비상계엄 선포, 뒤이은 군대의 국회와 선관위 등에 대한 침탈 그리고 국회의 비상계엄 해체 요구 결의안 통과는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하지만 우리의 감각은 살아있고, 그래서 움직이고 저항했다. 비상계엄 해제! 대통령 탄핵! 내란의 우두머리를 비롯한 관련자의 체포와 처벌!
순간 우리의 이성이 마비된 것은 눈앞에서 벌어지지만 설마 했던 폭력과 야만과 허위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부조리함을 느끼는 것을 넘어서 공포에 빠졌다. 그래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었지만 언제라도 들이닥칠 수 있는 파국 앞에서 여기에 브레이크를 거는 게 우리의 생사가 달린 문제라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진보한 것은 우리의 이성이 아니라 감각이었다. 수많은 파국을 견디며 다져진 우리의 감각 말이다.
비상계엄 해제 이후 이어지는 폭로와 조사, 의심과 확인, 토론과 확신 등을 거치면서 이번 사태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다. 물론 ‘왜?’라는 또 다른 중요한 질문이 있지만, 이에 답하는 것은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아마 우리의 이성적, 감성적 인식 능력을 다 동원해도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번 사태의 1막 1장은 현직 대통령이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의도와 방식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해서 가장 중요한 헌법 기관인 국회를 무력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를 통해 그가 얻고자 한 것은 우리가 독재 혹은 전제라는 말로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내란의 죄를 범한 것이고, 지금 나오는 폭로가 사실일 경우 외환의 죄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목표를 달성하려고 수반한 여러 조치들, 즉 정치 활동 금지, 언론에 대한 통제, 모든 시민을 겨냥한 자유의 박탈 등은 국회의 존속만큼이나 아니 어떤 경우에는 더 중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졸지에 ‘처단’의 대상이 된 의료인들에게도 정치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위로의 말씀과 연대의 인사를 전해야겠다.
2장은 시민의 저항과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통과로 비상계엄이 해제되면서 끝났다. 물론 대통령이 해제 선포를 최대한 늦게 함으로써 불안의 롱테일이 생겼다는 게 2장의 진정한 마지막 부분일 것이다. 시민의 저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또 국회 앞으로 집중되는 한편, 국회가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 상정, 표결한, 지난 주말로 이어지는 4일을 3장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3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총리와 여당 대표가 대통령을 만나서 서로 협박하고 협박당하는 과정에서 나온 국정 수습책인 ‘질서 있는 퇴진’은 그 자체의 논리적 모순 그리고 시민의 저항에 부딪혀 작동할 수 없을 것이고, 사태의 흐름은 14일에 있을 탄핵안 표결과 이를 에워싸고 있는 시민의 의지를 타고 흐를 것이기 때문이다. 14일은 3장의 끝이자 1막의 끝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탄핵안은 반드시 통과되어야 한다. 그래야 맥베스가 바라는 것과 달리 별들이 빛을 잃지 않고 그 빛이 그의 어둠과 깊은 욕망을 비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1막의 4장을 원하지 않는다.
탄핵으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는 것은 질서 있는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이자 우리가 혼돈과 불안의 시간을 끝내고 새로운 길을 나서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어야 누구나 반문하는 것처럼, 어떻게 21세기에, 2024년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는지를 제대로 따지는 일이 필요하고, 이를 넘어서서 민주공화국의 지속적인 완성과 체제의 진정한 전환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긍정적인 격동의 시기인 2막이 열릴 것이다. 이런 점에서 탄핵은 불안의 종결이자 희망의 시작이다.
2024년 12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