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온국민 코로나(재난) 기본소득 실시를 촉구한다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이른바 재난 기본소득의 필요성에 대한 요청도 커지고, 또 퍼지고 있다. 모든 국민에게 30만 원을 지급하자는 기본소득당의 한시적 코로나 기본소득에서 시작해서, ‘타다’의 이재웅 대표가 제안한 소상공인, 프리랜서, 비정규직, 학생, 실업자 1000만 명에게 재난 기본소득 50만 원을 지급하자는 청원 운동을 거쳐, 경기도 이재명 지사 그리고 경상남도의 김경수 지사의 전국민 100만 원 지급안까지, 일종의 눈덩이 효과처럼 이 제안이 커졌다. 그 사이에 여러 개인과 수많은 집단들도 여기에 가세했고, 의아하지만 미래통합당의 황교안 대표까지 과감성 있는 대책이 있어야 한다며 관심을 보일 정도이다.

이렇게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결이 다른 주장들이 봇물 터지듯 나오는 것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기대와 우려의 시선으로 보았다. 코로나19 감염이라는 비상사태 속에서, 그 효과가 상당한 수준에서 검증된 무조건적 현금 이전은 꼭 필요하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기본소득의 보편성과 달리 일부 사회 집단에게만 주는 것에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은 사태의 긴급성과 지원의 무조건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오래전부터 주장해 왔듯이 선별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낙인 효과, 과도한 행정 비용, 관료제의 자의성 등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 속에서 현금 지원을 무조건적일 뿐만 아니라 보편적으로 해야 하는 더 큰 이유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가 고통을 겪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고통이 직간접적으로 모두를 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고통의 공통 지반 위에 서 있고 희망도 공통 지반 위에서 찾아야 한다. 따라서 재난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주어져야 한다.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주어지는 현금 소득이며, 정기적이어야 한다. 기본소득은 우리 모두의 것인 공유부에 대한 모두의 몫에서 나오며, 모든 개인이 기본적 필요를 충족하고 사회생활에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런 원천과 목표가 있는 기본소득이 제대로 실시된다면 더 민주적이고 평등하며 생태적인 사회로 가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 우리는 생각한다.

오늘날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부상한 데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불안정한 노동의 확산과 실업의 만연 속에서 기존의 경제 체제 그리고 이에 기반을 둔 사회 복지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이와 더불어 기후 위기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산, 분배, 소비 체제의 구성을 요구하고 있으며, 제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파괴적 기술의 진전은 일자리에 대한 위협과 인간 노동의 의미에 대해 새롭게 사고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는 재난 상태 속에서 살고 있었고, 이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높은 우리 세대 사람들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하게 했다. 여기에 기본소득이 있다!

코로나19 감염증의 확산이라는 재난은 짧은 시간에 엄청난 고통을 주고 있지만, 재난의 충격과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시차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질서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 질서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노동을 하거나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연은 인간에게 공평할지 모르나 우리의 일상과 재난은 차별적이어서 고통은 없는 사람에게, 부담은 여성을 비롯해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중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방역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휴식이 아니라 불안과 부담을 주고 있다.

기본소득은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것을 통해 경제적 보장을 하는 것이지만 자율적 시간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개인들은 필요한 휴식을 취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결정하고 할 수 있는 자율성을 얻게 된다. 따라서 기본소득이 제대로 실시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적게 일하면서도 더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어제 청와대가 부대변인의 입을 통해 “재난 기본소득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검토는 하지 않는다”라고 발표하면서 재난 기본소득 논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방향을 잘못 잡았기에 정부의 추경 예산이 집행되더라도 재난의 규모와 범위를 볼 때 경제적 어려움을 비롯한 고통을 더 커질 것이고, 이 속에서 상당한 규모의 무조건적 현금 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 커질 것이다. 그러면서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은 더 큰 부담을 지게 될 것이다. 물론 이는 볼테르가 말한 것처럼 너무 유명해진 이름이 져야 하는 무거운 부담일 수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져야 할 부담은 다른 데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경제적 보장을 함으로써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탐색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일이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코로나19라는 비상사태를 맞이해서 기본소득의 정신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적절한 규모의 조건 없는 현금 이전, 즉 온국민 코로나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기본소득뿐만 아니라 이번 재난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모두가 제대로 된 삶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다른 여러 정책과 제도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여기에는 충분한 자유 시간의 보장, 공공 의료와 돌봄의 확대가 포함된다. 비상사태는 가라앉아 있던 것이 떠오르는 일이다. 우리는 코로나19라는 비상사태가 우리가 사회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패러다임이 떠오르는 일이기를 바라며, 그 속에 온전한 기본소득이 있기를 원한다.

2020년 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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