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훈 교수 퇴임 기념강연] 

기본소득 운동 – 개인의 관점에서 본 회고와 전망

Note. 2022년 6월 16일 목요일 오후 4시, 서울 청년문화공간 JU동교동 1층 카페에서 강남훈 교수 퇴임 기념강연이 열렸다.

오늘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에서 이렇게 정년 퇴임 기념강연회를 열어 주시고, 여러 분들이 시간을 내서 참석하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귀한 시간을 내서 모여주신 분들께 조금이라도 학습하실 재료를 드리려고 생각을 글로 적어 보았습니다.

공유부 배당으로서의 기본소득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정관에서는 기본소득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기본소득이라 함은 공유부에 대한 모든 사회구성원의 권리에 기초한 몫으로서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개별적으로, 정기적으로, 현금으로 지급되는 소득을 말한다.”(정관 제2조 목적) 이 규정을 보면, 모두에게 아무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지급되는 소득이라는 규정은 기본소득의 지급 방법에 불과하고, 공유부에 대한 모든 사회구성원의 권리에 기 초한 몫이 기본소득의 실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급 방법보다는 실체가 중요할 것입니다. 설령 아동수당같이 해당 집단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개별적으로 지급되고 있는 소득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소득을 받는 아동과 부모들이 공유부 배당이라는 의식이 없다면 기본소득이 제대로 뿌리내린 상태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보편 복지로서의 무상급식

우리나라 기본소득 운동은 공유부 운동이 아니라 보편 복지 운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금민 소장님과 곽노완 교수님으로부터 기본소득을 알게 되었고, 기본소득 운동을 함께 해 왔습니다. 2009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설립되었는데, 저한테 기본소득 이외에 또 하나의 과제가 떨어졌습니다. 그것은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의 무상급식을 정당화하고 도민을 설득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저는 기본소득은 보편적 무조건적 현금이고 무상급식은 보편적 무조건적 서비스이므로 현금과 서비스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동일한 논리로 옹호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 다. 실제로 무상급식에 대해 제기된 질문은 기본소득에 대해 제기된 질문과 동일했습니다: 왜 부자에게도 무상급식을 제공해야 하는가?

제가 찾은 첫번째 설득 논리는 재원이 되는 세금을 명시적으로 고려하는 것이었습 니다. 우리나라 세금 구조는 전체적으로 보면 비례세(내지 약한 누진세)입니다. 모든 계층이 비례적으로 낸 세금을 재원으로 해서 저소득층 학생에게만 무상급식을 제공하면 중산층과 고소득층이 순부담자가 됩니다. 그러나 모든 학생에게 무상급식을 제공하면 고소득층만 순부담자가 되고 저소득층과 중산층은 순수혜자가 됩니다. 부자까지 무상 급식을 제공해야 하는 이유는 중산층을 순수혜자로 만들기 위해서이고 이때 고소득층의 부담은 더욱 크게 됩니다.

다음으로 돈이냐 급식이냐는 질문에 대해서 대답해야 했습니다. 저는 머스그레이 브(Richard Musgrave)의 가치재(merit goods) 개념을 활용했습니다. 가치재는 사회적 외부효과 때문에 모든 사람이 강제로 일정한 양을 소비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재화입니다. 의무교육, 의무건강보험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저는 학교급식이 건강한 식습관 형성이라는 가치재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음식만 먹고 자라난 아이는 어머니가 앓은 질병을 앓을 확률이 높을 것입니다. 한국의 무상급식 정책을 수입한 미국 뉴욕시에서는 학생들의 성적이 오르고 학교 폭력이 줄어 드는 효과까지 나타났습니다.

정부가 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한 서비스에는 비배제성, 비경합성을 갖는 것뿐만 아니라 가치재의 성격을 갖는 것, 그리고 공공효율성(전기나 수도처럼 공공이 더 좋은 품질의 것을 더 싸게 공급할 수 있는 경우)이 있는 것 등을 포함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성격을 갖고 있지 않은 것들은 현금으로 지급해서 소비자 선택을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무상급식은 단계적으로 도입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확장 가능성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저소득층에게 선별적으로 지급되는 복지 제도는 확대되기 어렵습니다. 당시 한나라당은 초등학교 하위 30%에게 지급하자고 제안하였지만, 김상곤 교육감은 이 예산을 가지고 5,6학년 전체에 지급하겠다고 버티었습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후 5,6학년 무상급식이 실시되자, 다른 학년 학부모들이 무상급식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였고, 정치인들은 학부모들의 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알래스카에서 기본소득을 도입한 제임스 해먼드(James Hammond)는 소수의 집단이 정치인을 앞세워서 공유부 수익을 독점하는 정치 현실을 개탄했습니다. 해먼드는 자기가 기본소득을 도입한 것은 소수의 선별적 탐욕에 대항하는 다수의 탐욕을 일깨워서 공유부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했습니다. 다수가 공유부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기본소득이 도입되기 쉬울 것입니다. 반대로, 위와 같은 사례들은 기본소득이 공유부에 대한 다수의 인식을 일깨우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남시와 경기도의 기본소득

2015년 서강대에서 열린 기본소득 세계 학술대회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은 청년배당을 실시할 것을 결심하였습니다. 청년배당은 두 차례의 연구보고서를 포함해서 1년 이상의 준비를 거쳤습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들은 매달 운영위원회 이후 뒤풀이 시간에 청년배당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우리나라 지자체는 조세권이 없습니다. 지자체로서는 한두 연령대의 청년들에게 지급할 수 있는 재원밖에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24세 청년 18만 명은 성남시 전체 인구에 비하면 작은 규모였습니다. 1인당 백만 원이라는 금액도 큰 금액이 아니었습 니다. 정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추가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청년배당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정책이었습니다. 지역화폐를 영세 소상공인의 매장에서만 사용하게 하여 골목경제를 활성화시키는 효과를 노린 것입니다.

소상공인은 소득이 작으면서 복지에 반대하는 보수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는 집단입니다. 소상공인을 복지 확대 동맹에 끌어들여 정책의 확대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이었습니다. 성남시 청년배당은 영세 소상공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정책이 되었고, 이 재명 도지사의 당선과 더불어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경기도 농민기본소득은 농업 정책과 결합된 기본소득입니다. 정부는 WTO 가입 때 농민들에게 한 약속에 따라 농가직불금을 도입하였습니다. 그런데 경작 면적에 비례해서 지급되어서 농촌의 소득불평등을 확대하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농민기본소득은 농업 지원금의 일부를 전체 농민에게 기본소득 형식으로 지급하여 농촌 불평등을 줄이 고 농업을 살리자는 정책입니다. 경기도 농민기본소득은 농민수당 또는 농민기본소득의 형태로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로 확대되었습니다.

경기도 농어촌 기본소득 실험은 농어민을 포함하여 전체 농어촌 주민에게 지급되 는 기본소득으로서 지방소멸을 막고 지역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정책입니다. 실험지인 연천군 청산면의 인구는 사업이 시행되자마자 7.1% 증가했습니다.

기본소득은 여러 가지 경제 및 복지 정책과 결합될 수 있습니다. 소득세 공제 제도 를 없애는 대신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조세의 누진성과 형평성을 높이는 조세 개혁이 될 수 있습니다. 국토 보유세를 도입하면서 그 재원으로 토지배당을 지급하면 부동산 투기 를 막고 지대 추구 경제를 개혁할 수 있습니다.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탄소세 도입이 불가피한데, 탄소배당은 탄소세 도입 및 인상을 용이하게 합니다. 기본소득은 심지어 선거제도 개혁, 언론 개혁 등 정치 개혁과도 결합될 수 있습니다. 주권자들이 공유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 때에는 이와 같은 개혁 정책과 결합된 기본소득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대선은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기본소득을 주요 공약의 하나로 제시했던 이재 명 후보가 0.7%의 차이로 떨어졌습니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을 실현하는 나라가 될 뻔했는데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전국민 기본소득은 연령별, 지역별 기본소득에 더해지는 것이므로(어느 범주까지 중복 지급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책본부 내에서 이견이 있었습니다) 아동, 청년과 농어촌 주민에게는 연간 200만 원이 지급됩니다. 부부가 농어촌에 살면서 아이 2명을 키우면 연간 800만 원의 소득이 보장됩니다. 큰 금액입니다.

이재명 후보에 반대한 사람들을 유형별로 나누어보면 기본소득 공약을 잘 알면서 기본소득에 반대한 사람, 기본소득에 중립적이지만 다른 경제적, 정치적, 도덕적 가치 때문에 반대한 사람, 기본소득 공약을 잘 모르거나 오해를 해서 반대한 사람 등이 있을 것입니다. 대선 패배만큼이나 아쉬운 것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기본소득 공약이 선거 전면으로 떠오르지 못한 것입니다. 저는 기본소득에 대한 충분한 논쟁과 홍보가 있었더라 면 적어도 마지막 유형의 반대자는 입장을 바꾸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선거 결과가 바뀌었을 것입니다. (0.7% 차이로 패배하고 나니까 졌잘싸로 볼 수도 있지만 패배 원인이 백 가지도 넘게 되네요.)

부동산 가격 폭등과 기본소득 없는 증세

대선 패배 이후 패배 원인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부동산에 국한해서 보면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보는 견해와 부동산 증세로 보는 견해로 나뉘는 듯합니다.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부동산 가격 폭등을 막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일 것입니다. 설령 부동산 증세로 반대자가 늘어났다고 할지라도 부차적 원인에 불과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이 문제에 대한 저의 생각을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선거 결과 조사를 보면 소득과 이재명 후보 지지율은 거의 상관이 없지만 부동산 가치와 이재명 후보 지지율은 반비례합니다. 물론 이러한 조사는 지역 같은 중요 변수를 통제하지 않은 것이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수도권 지역을 고정시켜 놓고 볼 때에도 부동산이 비싼 지역 사람들이 반대하는 경향은 뚜렷이 나타납니다. 대선 이후 뉴스를 안 보고 계신 분들을 위해서 다음 자료를 인용하겠습니다.

서울 시민의 약 50%는 무주택자이고 50%는 유주택자입니다. 주택 가격이 폭등하면 무주택자 50% 사이에서 집권 여당에 대하여 반대자는 많이 생기지만, 유주택자 50% 사이에서 찬성자는 그렇게 많이 생기기 않습니다. 다음을 생각해 봅시다. 서민 주택 소유자들은 늘어난 주택 가격 격차에 분노한 사람이 생길 것입니다. 고가 주택 소유 자들은 원래부터 반대자가 많습니다. 그리고 보수 정당이 집권해야 세금도 작게 내고 값도 더 오를 것이라고 기대하므로 찬성으로 바꾸지 않습니다. 결국 주택 가격 폭등은 반대자를 많이 늘리게 됩니다.

종부세 인상은 어떤 효과를 끼쳤을까요? 종부세 인상은 가격 안정 효과는 거의 없습니다. 너무 소수의 주택에 대해서만 부과되기 때문입니다. 종부세 대상자 중에서는 거의 반대자만 생길 것입니다. 양도세 인상도 비슷합니다. 거래를 동결시켜 가격 안정 효과는 작고, 대상자 상당수는 반대자가 됩니다. 거래세 인상도 안정 효과는 작고 반대자를 늘립니다.

부동산 폭등으로 인한 부담자의 수가 종부세, 거래세, 양도세 인상으로 인한 부담자의 수보다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반대자 수가 부담자 수에 비례하고, 고가 주택일수록 반대자가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면 부동산 폭등이 반대자 증가의 주요 요인이 되고 증세는 부차적인 요인이 됩니다.

증세에서 크게 잘못한 것은 1가구 1주택에는 낮은 세율을 적용하고 1가구 2주택부터는 투기로 규정해서 높은 세율을 적용한 것입니다. 이 정책은 효과성이 없습니다. 투기 목적으로 자식에게 집을 사주면서 가구분리를 하면 1가구 1주택이 됩니다. 3인 가구 6주택인 경우에는? 가구분리를 하고 1인 법인 3개를 만들면 됩니다. ‘똘똘한 한 채’만으로도 부동산 투기는 얼마든지 계속할 수 있습니다. 전세 끼고 한 채 더 샀다가 3년 이내에 한 채를 파는 행태도 부동산 투기 조장 효과는 결코 적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차별적 증세는 형평성에 맞지 않습니다. 2주택 10억 원에 대하여 1주택 15억 원보다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은 불공평한 과세입니다. 동전의 크기가 크다고 10센트 다임보다 5센트 니켈에 더 많은 세금을 걷는 어리석은 정책입니다. 형평성에 맞지 않는 조세는 격렬한 반대자를 많이 만들게 됩니다. (임대사업자 감세 정책의 잘못에 대해서는 많은 지적이 있었으므로 오늘 말씀 드리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부동산 투기가 계속되자 정부는 2020년 11월 공시가격을 2030년까지 시세의 90% 수준으로 상승시키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보편적 보유세 인상 계획을 발표한 것입니다. 보유세 인상은 50%의 유주택자들 사이에서는 반대자를 만들어 내지만, 이로 인해 주택 가격이 하락한다면 50%의 무주택자들 사이에서는 찬성자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보유세 증세를 10년에 걸쳐서 진행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부담자들은 누구나 이번 정권을 반드시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반대로 수혜자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습니다. 아직 보유세가 인상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주택 가격은 낮아지지 않았습니다. 고통은 1회적으로 짧게 만들고 혜택은 빨리 나타나도록 설계해야 하는데, 고통은 여러 해에 걸쳐 지속되게 만들고 혜택은 느리게 나타나도록 잘못 설계한 것입니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습니다. 명시적으로 국토보유세를 신설해서 1회적으로 한꺼번에 0.5% 정도로 보유세를 올리고 그 수입을 모두 기본소득으로 나누는 국토보유세 토지배당 정책입니다. 50%의 무주택자들은 집값이 낮아지는 수혜를 바로 누릴 수 있습니 다. 나머지 50%의 유주택자 중에서도 40%는 국토보유세로 내는 돈보다 토지배당으로 받은 돈이 더 큰 순수혜자가 됩니다. 그리고 격차도 줄어듭니다. 이렇게 해서 국토보유 세 토지배당 정책은 기본소득 없는 보유세 인상 정책과 비교할 때 찬성자를 훨씬 더 많이 만들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서는 부동산 폭등이 대선 패배의 주요 원인이고, 기본소득과 결합되지 않은 보유세 인상과 형평성 없는 증세가 부차적인 원인입니다.

증세 때문에 반대자가 늘어났으므로 증세를 취소하면 다시 찬성자가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책 효과는 대칭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종부세를 낮춘다고 종부세 납부자가 중도진보 정당 찬성자로 바뀔 리 없습니다. 보수 정당이 자신들에게 훨씬 더 큰 혜택을 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종부세 납부자 중 중도진보 정당 찬성자는 매우 강한 진보의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종부세를 낮추는 것을 오히려 반대할 수 있습니다. 재산세 같은 보편적 보유세를 낮추면 부동산 가격이 그만큼 상승하므로 무주택자들이 다시 피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리고 유주택자 중 상당수는 격차 확대에 분노할 것입니다. 찬성자보다 반대자가 훨씬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패배의 부차적 원인을 고친다고 하면서 패배의 주요 원인을 악화시키는 잘못된 길입니다.

국토보유세와 결합된 토지배당 정책을 도입해서 부동산 가격을 낮추면서, 형평성 없는 차별 증세를 정정하고, 거래세를 줄이고, 양도세를 정상화하는 것이 대선 패배의 주요 원인과 부차적 원인을 모두 교정하는 정책입니다. (양도세 정상화에 대해서는, 이정우 교수님 제안대로, 1인당 평생 일정한 금액의 양도소득에 대해서는 비과세하고 그 이상은 누진과세하는 방안이 형평성 있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진보 정치인 중 부동산 증세가 대선 패배의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정치인이 상당수 있습니다. 자신이 만나는 사람마다 종부세 너무 올라서 못살겠다고 말한다면 종부세 인상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친구들의 의견이 자신의 의견이 됩니다. 어느 사이에 부동산 특권 집단에 속하게 된 것입니다.

“어느날 퇴근을 하니 아내가 흐느끼고 있었다. 이유를 물어보았다. 주인이 자신들이 들어와서 살 테니 비워달라고 했다. 주변 시세를 알아보니 전세값이 2억이 올랐다. 그래서 울고 있다. 아내의 말을 듣고 부둥켜 안고 나도 함께 울었다.” 친구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못 들어 보았다면 당신은 부동산 특권 집단에 속합니다. 어떤 부동산 정책을 주장하기 전에 인구의 절반이 되는 무주택자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고통과 불안과 분노를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유부 의식 – 나의 재산은 사유재산과 공유재산의 합

앞에서 논리를 전개하면서 보편적인 보유세는 부동산 가격을 하락시킨다는 말을 여러 번 하였습니다. 이것을 조세의 자본화 효과라고 부릅니다. 연간 120만 원의 보유세 를 내는 것은, 이자율이 5%일 때 2,400만 원의 부채가 있는 것과 동일합니다. 시장 관행에 따르면 어떤 집을 살 때 은행 부채가 있으면 그만큼 낮추어서 삽니다. 결국 120만 원의 보유세는 2,400만 원만큼 집값을 하락시키게 됩니다. 이러한 원리를 응용해 봅시 다. 어떤 건물의 임대료가 연간 2,000만 원입니다. 이 건물의 가치는 얼마가 될까요? 4억 원입니다. 조세의 자본화 효과로 국토보유세는 부동산 가격을 낮추는 효과가 있습니 다.

앞서서 국토보유세 토지배당을 실시하면 무주택자 50%와 유주택자 40%, 합계 90%의 사람이 순수혜자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오로지 부동산 순수혜만을 기준으로 투표한다면 90%의 사람이 지지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보유세의 자본화 효과를 생각해보면 유주택자 40%는 비록 순수혜자이기는 하지만 집값 하락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집값 하락에 대한 우려 때문에 국토보유세 토지배당 정책에 반대하게 되지 않을까요?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상당수 있을 것입니다. 이 문제는 재산에 대한 생각을 바꾸면 해결됩니다. 내는 것만큼 나의 재산 가치가 줄어들지만 받는 것만큼 새로운 나의 재산이 생기는 것입니다. 토지배당으로 공유토지에 대한 지분이 생기는 것입니다.

<표 1>은 국토보유세-토지배당 정책 전후 순수혜자인 토지 소유자의 토지 가치 변화를 나타냅니다. 연간 임대료 2000만 원을 발생시키는 부동산은 4억 원의 가치가 있습 니다. 나의 사유재산은 4억 원입니다. 여기에 국토보유세 120만 원이 부과되면 사유 재산 가치는 2400만 원 감소합니다. 그런데 토지배당 180만 원을 받으므로 3600만 원의 재산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유토지에 대한 나의 지분입니다. 나의 재산은 사유재산 더하기 공유재산 지분입니다. 결과적으로 나의 재산은 4억원에서 4억 1,200만 원으로 늘어납니다.

<표 2>는 국토보유세-토지배당 정책 전후 무주택자의 토지 가치 변화를 나타냅니다. 연간 임대료 2000만 원을 내야 하므로 4억 원의 부채가 있습니다. 나의 사유재산은 -4억 원입니다. 국토보유세 120만 원이 부과되면 사유 재산 가치는 아무 변화가 없습니 다. 그런데 토지배당 180만 원을 받으므로 3600만 원의 재산이 생깁니다. 이것은 공유 토지에 대한 나의 지분입니다. 나의 재산은 사유재산 더하기 공유재산 지분입니다. 결과적으로 나의 재산은 -4억 원에서 -3억 6,40만 원으로 3,600만 원 늘어납니다.

국토보유세-토지배당을 전면에 내세워서 이 정책을 실시하면 무주택자와 유주택자를 포함해서 90% 사람의 재산이 늘어나게 된다는 것을 알리지 못한 것이 패배의 또 하나의 원인입니다. 재산은 사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유와 공유 지분의 합으로 구성된다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지 못한 것이 패배의 원인입니다. 해먼드의 말대로, 공유부를 소수가 독차지하고 있는 것에 대한 다수의 분노를 일깨우지 못한 것이 패배의 원인입 니다.

기본소득 운동 향후 5년 동안의 과제

오늘 이 자리에는 주로 기본소득 운동을 하는 분들이 모였습니다. 우리는 다음 대선에서는 0.7%의 장벽을 넘어서 기본소득을 공약하는 후보를 당선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기초 지자체 단위의 기본소득을 도입하고 확대하는 것입니다. 대선 기간 중 진도 주민들은 군민기본소득 조례 발의에 성공했습니다. 해남과 강진 등에서도 군민 기본소득 조례 제정 운동이 진행 중입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선 군수는 군민기본소득을 공약했습니다. 전남 교육감은 교육 기본소득 연간 240만원을 공약했습니다. 무상급식처럼, 농민기본소득처럼 전국 상당수의 지자체에서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주권자들의 공유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것입니다. 주권자들이 달라지면 정치인은 저절로 달라집니다. 정치인은 표가 되는 일이라면 지옥까지라도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신안군의 햇빛연금과 바람연금도 다른 곳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쓰레기 연금, 플라스틱 연금도 도입해야 합니다.

국토보유세-토지배당과 탄소세-탄소배당 실험도 진행해야 합니다. 앞날을 내다보 는 지자체장을 설득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기본소득 실험은 주는 부분만 실험했습니다. 제대로 된 기본소득 실험이 되려면 내는 것까지 실험해야 합니다. 국토보유세-토지배당 실험은, 예를 들면 자신의 토지에 대해서 0.5%의 국보세를 내면서 연간 60만 원의 토지배당을 받는 실험입니다. 실험 대상자를 모집하면 순수혜자만 신청하고 순부담자는 신청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실험이므로 상관없습니다. 실험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공유부 의식을 확산시키면 됩니다.

탄소세-탄소배당 실험은 설계가 조금 어렵습니다. 실험자의 소비 품목을 조사해서 탄소세액을 계산해 내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장래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제도이므로 조금만 노력하고 지혜를 모으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실험을 하면서 소비재에 포함된 탄소배출량을 계산해서 제품에 표시하는 시범 사업까지 함께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피실험자의 탄소세를 회피하기 위한 소비 행태 변화가 지구를 살리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이 실험은 참여하기를 원하는 계몽된 순부담자도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토건사업을 줄이더라도 실험해 보겠다는 지자체장도 상당수 있을 것입 니다.

공론장을 어지럽히는 언론을 그대로 두면 민주주의가 쇠퇴할 뿐만 아니라 나라가 무너지게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언론개혁운동은 잘못하는 언론에 대해서 벌을 주는 방식으로 시도되고 있습니다만 성공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잘하는 언론에 대해서 상을 주는 방식이 훨씬 성공 확률이 높습니다. 부모가 말 안 듣는 아이를 훈육하는 방법에는 벌을 주는 방법과 상을 주는 방법과 상과 벌을 동시에 주는 방법이 있는데 벌을 주는 방 법이 가장 하책입니다. 머리가 굵어지고 팔뚝에 힘이 생긴 아이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기본소득 개념을 응용해서 잘 하는 언론에 상을 줄 수 있습니다. 제가 주권자 언론배당이라고 제안한 정책입니다. (김의겸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에서는 미디어 바우처라고 부른다고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주권자들에게 1년에 10만 원의 언론배당을 지급합니다. 이 돈은 언론 기사를 후원하는 용도로만 쓸 수 있습니다. 4조 원이면 신문사 매출을 능가합니다. 보수언론에 절반의 돈이 가고 진보언론에 절반의 돈이 가겠지만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따라 진보언론에게는 수십배의 가치가 있습니다.

선거법을 개정해서 정치개혁을 이루는 것도 중요합니다. 1사람을 뽑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지자체장 선거에서는 즉각 결선투표 제도가 도입되어야 합니다. 대선에서 민주당이 정의당 표 이내의 차이로 패배했고, 경기도 지사에서 국민의힘이 무소속 후보 표 이내의 차이로 패배했으므로, 결선투표제 도입의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할 것입니다. 거대 양당에게는 억울한 패배를 줄여주고 소수정당에게는 지지율만큼의 정치력을 부여하게 됩니다. 즉각 결선 투표제는 결선투표제에 비해서 조작 가능성이 작고 비용이 적게 듭니다(<기본소득과 정치개혁>, 진인진). 여러 사람을 뽑는 국회의원, 지방의회 의원 선거에는 비례대표 의석이 대폭 확대되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어야 합니다. 소수 정당도 정치력을 갖게 되고 거대 양당도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 하지 않게 되어 안정적인 정치를 할 수 있습니다. 주권자들은 자기 집단의 수에 비례해서 정치 대리인을 갖게 되므로 실질적 민주주의가 확대되고 정치 효능감이 커집니다(<기본소득과 정치개혁>, 진인진).

풍성한 공유부

공유부는 토지와 공기처럼 자연이 선물한 것도 있고, 언어, 문화, 제도처럼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든 것도 있습니다. 심지어 발명자 한 사람이 만들었지만 발명자가 인류에게 선물로 기증해서 공유부가 된 것도 있습니다. 한글이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세종대왕은 어리석은 백성을 어여삐 여겨서 누구나 쉽게 익혀 자기 뜻을 표현하도록 한글을 무상으로 배포하였습니다. 저는 한국 사람들이 어린 나이부터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 한국 경제 발전 원동력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인터넷인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은 인류 최대의 공유부입니다. 웹을 짠(weaving the web)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는 1990년 크리스마스 때 “내가 아니라 세상을 부유하게 만들겠다”고 하면서 자신이 만든 웹을 인류에게 선물로 기증하였습니다.

인터넷은 그 자체가 정보혁명의 양대 범용목적기술(컴퓨터와 인터넷) 중의 하나입 니다. 최근에는 인터넷 상에 쌓인 빅데이터를 활용해서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인공지능 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공유지의 희극이 발생한 것입니다. 인공지능은 인터넷이라는 공유부 위에서 생겨난 또 하나의 범용목적 발명품입니다. 저는 인공지능의 절반은 빅데이터를 제공한 세계 사람들의 공유부라는 점을 논증한 적이 있습니다(<기 본소득의 경제학>, 박종철출판사). 미래에 인공지능이 더 많은 생산을 담당하면 할수록 공유부는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공유부는 모두에게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할 수 있을 정도로 풍성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토지 가격의 연간 상승액은 GDP의 30% 수준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기본 생활을 보장할 수 있을 정도로 풍성한 크기입니다. 공유부가 있고 공유부를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에만 합의한다면 모든 사람의 기본생활은 얼마든지 보장할 수 있습디다. 성서는 토지 공유부를 사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위기 25장 23절).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지키면 좋겠습니다. 50년 만에 1/n로 토지를 다시 나누라는 명령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현대적인 방법은 2%의 토지 보유세를 매기는 것입 니다. 매년 100조 원이 넘는 재원이 마련됩니다.

이제 마무리해야 하겠습니다. 저의 스승의 한 분이신 김치영 목사님께서는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의 그림을 좋아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직전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그림 한번 봐! 이렇게 그릴 수 있다니! 터너 이 사람은 진정 놀라운 사람이야. 공기를 그릴 수 있는 사람이야. 네 눈에는 하늘과 땅만 보이고, 그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지? 사람들은 공기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아무것도 볼 수 없었으니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공기는 비어 있는(無) 것과 다르다. 터너는 하늘과 땅 사이를 꽉 채우고 있는 공기를 보았어. 이 공기에 빛이 부딪히자 공기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터너는 이것을 색깔로 표현한 것이지. 그는 하늘과 땅을 채우고 있는 공기의 빛깔, 그 빛을 그려냈다”(<빛, 색깔, 공기>, 대한기독교서회).

하늘과 땅 사이를 가득 메우고 있는 공기는 우리 모두의 공유부입니다. 만약 우리가 공기의 색깔을 볼 수 있다면, 그리고 공기가 공유부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리고 공유부는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면, 마지막으로 공기 중에서 산소는 무상 서비스로 나누고 이산화탄소는 값을 아주 비싸게 받아서 그 수입을 탄소배당으로 나누는 제도 도입에 합의할 수 있다면, 우리는 창백한 푸른 점(지구) 위에서 2050년보 다는 더 오래 존속할 만한 자격이 있는 동물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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