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례세미나 후기] 제2회 공유부 개념의 탄생: 페인과 스펜스 (2022년 5월 14일)

작성자: 윤형중 기본소득연구소 연구실장
공유부 이론의 선구자였던 페인과 스펜스를 탐구하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와 기본소득연구소가 준비한 2022년 제2회 월례세미나가 5월 14일에 진행됐습니다. 지난달에 ‘공유부의 개념과 유형’을 다룬 것에 이어 이번엔 공유부 개념이 누구에게서, 어떤 논의에서 시작됐는지를 다뤘습니다. ‘공유부 개념의 탄생: 페인과 스펜스’란 주제로 시작된 이날 세미나의 발제자는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이 맡았습니다.

공유의 회복, 그것이 기본소득

이날 발제문은 안 이사장이 2017년에 작성한 ‘의심 많은 쌍둥이: 토머스 페인과 토머스 스펜스의 토지 공유 사상과 기본소득’이었습니다. 이 발제문은 기본소득이 매우 단순하고도 강력한 아이디어지만, 특정한 역사 속에서 부상했다 가라앉기를 반복했고, 기본소득이 현실의 제도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불가능성의 이유를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기 위해 근대 사회를 근원적으로 규정하는 노동, 소유, 자연의 관계를 재구성해야 하는데, 이때 중심축이 되는 것이 공유라고 합니다. 공유는 인류의 보편적 삶의 조건이지만, 근대로 넘어오면서 노동을 매개로 해서 소유의 조건으로 변질되었죠.

하지만 노동과 소유의 관계를 통한 생존 조건의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기본소득이 부상했고, 이는 곧 공유가 당대의 이야기로 회복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공유와 기본소득에 관한 역사를 재구성하는 일이 오늘의 정치이자 내일의 윤리이고, 이런 취지에서 공유에 관해 선구적인 이론을 전개한 토머스 페인과 토머스 스펜스의 사상을 전유한다고 이 발제문은 밝히고 있습니다.

당대의 지식인이자 세 나라의 혁명에 영향을 미친 토머스 페인은 기본소득의 원형이라고 할 만한 아이디어를 1797년 출판한 <토지정의>에서 제시합니다. 이 책에서 페인은 “자연 상태에서의 대지는 인류의 공동 재산”이었으나 경작과 함께 토지 소유라는 개념이 등장했고, 여기서 더 나아가 페인은 대지 자체가 아니라 개량된 가치만이 개인적 소유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점에서 페인은 인간이 “대지를 점유할 자연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지의 일부를 영원히 자신의 재산으로 주장할 권리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두 가지 권리, 즉 만인의 공동권(common right)과 개인이 경작할 권리를 구별해야 한다고 말하고, 그렇기 때문에 ‘토지법(Agrarian Law)’은 불의하고, 자신의 팸플릿 제목을 “토지 정의”라고 한 것은 여기에 항의하기 위해서라고 하죠. 이 항의는 토지 소유권에 따라 자연적 상속권을 박탈당한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으로 나아가고, 그 옹호에서 기본소득의 원형이 등장합니다.

스펜스는 페인보다 근본적인 제안을 내놓습니다. 그는 자연 상태에서 공유재였던 토지를 소수가 찬탈하고, 여기에 대해 다수가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 것이 이어져 발생한 게 불평등이고, 해결책으로 토지의 공유를 내세웠죠.

그가 1797년에 쓴 <유아의 권리>를 통해 ‘공유’에 대한 자신을 생각을 밝힙니다. 그는 페인이 늦었지만 대지가 공유물인 것을 인정한 것이 기쁘지만, 페인의 계획은 “정의롭지도 만족스럽지도” 않은 방책이라 포문을 열었고, 토지 소유를 찬탈이라고 보는 스펜스에게 페인의 제안은 미진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다만 그는 바뵈프식의 공동 소유, 공동 노동, 공동 분배와는 결을 달리해 공유와 임대라는 방식으로 투지를 운영하고, 여기서 나오는 지대를 정치공동체 운영 및 배당의 기금으로 보았죠.

두 사상가의 이론을 보다 자세히 보려면 직접 발제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기본소득은 공유부에서 도출되는 모두의 권리

공유부 개념의 선구자인 두 사상가에 대한 발제 이후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의 보론으로 토론이 시작됐습니다.

금민 소장은 “소유권이 자연적 소유와 인공적 소유라는 이중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페인의 발명품이다. 또한 자연적 소유권을 강화하고, 인공적 소유권을 제약하는 각각에 대해 보충 논변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페인과 스펜스가 토지 공유를 주장한 시대적 상황에 대한 보충 설명도 있었습니다. 안효상 이사장은 “당시 잉글랜드는 2차 인클로저 운동이 진행 중이었다. 1차 인클로저 운동은 지역의 유력자들이 토지에서 농사 짓던 농민들을 몰아내고 울타리 치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행됐으나, 2차 인클로저는 의회를 통해 토지 소유권을 확립하는 방식으로 합법적으로 진행됐다”고 설명했고, 금민 소장은 “페인이 인클로저에 찬성하다가 인클로저 이후에 자연적 소유권과 인공적 소유권이란 개념을 창출해 해법을 모색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월례세미나에 참석한 강남훈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전 이사장은 “데이비드 리카르도의 지대론이 페인과 상당히 비슷하다. 리카르도는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지주 계급의 소득을 줄이지 않으면 경제가 장기 침체한다고 주장했고, 따라서 지주 계급의 지대 환수에 찬성했다”며 “페인과 스펜스가 얘기한 공유지는 근원적인 정당성에 대한 문제 제기이고, 리카르도는 지대 추구가 경제혁신을 떨어뜨리는 문제로 봤고, 헨리 조지는 지대 추구가 부동산 투기와 빈곤의 원인으로 보고 있고, 이 모든 문제제기들이 한국 사회에 의미가 있는데, 지난 대선에서 이 문제를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강남훈 전 이사장은 “결국 기본소득이 단순히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 사람들의 삶을 안정시키는 것이란 인식을 깨고, 이것이 공유부에서 나오는 우리의 권리란 얘기를 해야 한다”며 “월례세미나가 공유부 문제를 다시 심도 있게 다루는 게, 매우 중요한 시도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박선미 사무국장은 “인클로저는 과거사이기도 하지만 현재에도 지속되는 과정이고, 우리가 21세기 인클로저에 대해 페인의 입장을 취할 것인가, 스펜스의 입장을 취할 것인가에 따라 우리 운동의 방향성이 달라진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국유이냐, 공유이냐

스펜스의 주장은 향후 영국의 토지 국유화 운동에 영향을 줍니다. 이에 대해 안효상 이사장은 “스펜스의 주장이 국유화 운동으로 나간 이유가 있다. 영국에선 당시 공유를 국유로 이해한 측면이 있고, 오히려 스펜스는 소유권의 문제를 기본소득으로 접근하도록 만들어준 게 아닌가”하는 측면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강남훈 전 이사장은 현실 정치의 관점에서 접근했습니다. 강 전 이사장은 “국가가 토지를 소유하고 매년 사용료를 시장 가격으로 받으나, 민간이 토지를 소유하고 과세하는 것이나, 결과는 똑같다. 결국 선거로 집권하는 현대 사회에선 조세로 할 수밖에 없는데 조세형 기본소득에 대해 국민을 설득할 때도 토지가 공유부란 생각이 없으면 힘들겠단 생각을 이번 선거를 거치면서 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기본소득당의 대선 후보였던 오준호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은 “결국 공유의 회복이 중요하다고 본다. 지난 선거 기간을 대입해보면 기본소득을 얼마 줄 수 있고, 그게 개개인에겐 이득이다고 하는 게 생각보다 설득력이 있지 않았다. 오히려 토지의 경우 가만히만 있어도 집값이 수억 원이 올라가는 현실에선 일인당 몇 십만 원의 기본소득이 별로 매력적이지 않아 보였다. 결국 우리가 미래에 포인트를 기본소득이냐, 공유지의 회복이냐, 공유화이냐 등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정책 방향과 제안이 달라질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이지은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는 “공유부 논의에서 땅은 모두의 것이라고 하는데, 그 ‘모두’엔 인간만 있다. 토지는 인간의 소유물이 아닌, 자연과 연결된 생태적 가치가 있고, 그런 논의가 같이 가야 공유에 대한 감각을 키울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세미나에 참여한 최승호 충북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대 공동소유 이론에 따른 보유세를 통한 토지배당 논의를 보면 솔직히 아직은 이론적이고 담론적인 수준이다. 사례 연구나 실험적 실증 연구가 거의 없다. 향후 5년간 지역적인 실험 모델을 만들어봤으면 한다”고 제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