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모두를 위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2021년 메이데이 논평

지난 200년 넘게 전 세계 노동자 운동이 사회를 더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방향으로 바꾸려는 노력의 선두에 섰다는 점을 떠올리는 것은 전혀 회고적인 일이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노동자 운동은 이런 노력을 뒷받침하고 또 여기에 앞장서야 할 때이다.

전 세계 노동자 운동은 19세기에 정치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의 선두에 섰으며, 노예제 폐지 운동에 함께 했다. 또한 노동자의 삶을 지키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 작업 환경의 개선, 임금 인상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자의 단결을 위해 싸웠다.

단결된 노동자의 힘은 20세기 들어 노동자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는 것을 넘어 사회 자체를 변화시키는 커다란 힘이 되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끝낸다는 목표를 가진 사회주의를 실제 대안으로 만들었다. 또 다른 일부 지역에서는 노동자를 비롯해 차별받고 억압받는 모든 사람들이 경제적 보장을 받고, 동등한 지위를 누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힘이 되었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맞서 민족의 자주권을 지키는 투쟁에 함께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곳에서 인륜성에 반하는 파시즘에 맞서는 데 함께 했다.

그 결과 20세기 후반에 우리는 설사 당장 달성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뒤로 물릴 수 없는 기준과 방향을 가질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인류의 일원으로서 존엄하며 그리고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평등하고 자유로운 삶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의 기준과 방향이 배신당한 게 그 이후의 현실이다. 경제 성장과 효율성이라는 이름하에 노동은 분할되고 격하되었으며, 그동안 쟁취했던 소수자의 권리까지 부정당하거나 왜곡되었다. 게다가 맹목적인 이윤 추구라는 자본의 운동은 그 이전까지 누리고 있던 생계의 권리, 관습적 권리, 공동체의 권리까지 파괴했다. 게다가 이 과정은 우리 공동의 삶의 기반인 자연생태계를 파괴하여, 우리 공동의 현재와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다중적 위기를 겪고 있다. 일하는 사람은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 못하며,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고 있지 못하고, 불평등은 사회 자체를 해체시킬 정도이고, 기후 위기와 생태 위기는 우리 삶의 기반 자체를 허물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한국사회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무감각한 일일 것이다. 산업재해, 아니 중대범죄로 인한 죽음과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는 우리 노동 현실의 가장 극악한 부분일 뿐이다. 또한 코로나 방역 위기와 경제 위기 속에서 우리는 무차별한 고통과 차별화되고 전가된 부담 모두를 겪고 있다. 빈곤과 불평등이 더욱 심해지고 있는 한편 우리 사회가 존속하기 위해 필수적인 돌봄 노동과 재생산 노동은 관념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만큼이나 현실적으로 더욱 격하되고 있는 실정이다.

말 그대로 다양하고 긴급한 대응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의 대응을 관통하는 기준과 방향은 정의를 세우는 일이다. 이때 정의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가 그 존엄한 가치를 인정받는 일이며, 저마다의 몫을 가지는 일이다.

오늘날 모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주어지는 기본소득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관심과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무엇보다 공통의 부에 대해 모두가 가지고 있는 몫에 대한 권리를 구현하는 일이며, 이런 점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정의를 실현하는 일은 다중적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조건이자 목표이다. 모두가 아무런 조건 없이 경제적 보장을 확보할 때 각자가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존엄한 삶들의 연대, 공생, 협력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일하는 사람은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며, 이것이 노동자 운동이 현재 직면한 과제이다. 하지만 이런 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권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 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권리 가운데 기본소득이라는 경제적 보장의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노동자 운동은 일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모든 존재의 권리를 옹호하는 투쟁에 함께 해야 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다중적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그리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말이다.

2021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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