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기본소득 공론화법” 발의를 기대하며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양극화와 부족주의가 극심한 이때, 모두가 민주주의라는 지평 위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려 한다는 점은 아이러니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사회의 모든 곳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글로벌 대기업의 존재, 대중과 분리되어 자신들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정치 계급의 존재는 민주주의를 앙상하게 만드는 정도를 넘어서서 질식시킬 정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민주주의에 호소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가진 강건함 때문일 것이며, 지금의 위기를 넘어 새로운 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는 여전히 강력한 믿음 때문일 것이다.

기본소득 도입을 위해 발의될 “기본소득 공론화법”은 민주주의가 처한 지금의 역설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가 가야 할, 하지만 쉽지 않은 길이다.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우리 모두 누려야 하는 권리인 기본소득을 우리 모두의 권리인 참여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게 이 법의 취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본소득 공론화법”이 조속히 만들어져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새로운 길이 열리기를 희망한다.

기본소득이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개별적으로 정기적으로 현금으로 지급된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본소득으로 다양한 효과를 기대한다. 빈곤 퇴치와 사회 양극화 완화, 의미 있는 다양한 활동에 대한 자극, 생태적 전환 등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무엇보다 자연적으로 주어졌거나 모두가 이런저런 방식으로 기여해서 만들어진 공유부에 대해 모두가 가지고 있는 정당한 몫의 분배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기본소득을 권리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권리는 오늘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침해당하고 부정당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극심하게 겪고 있는 부동산 불평등이 대표적인 예이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유연화와 사영화 속에서 공공의 것(the public)과 공동의 것(the commons)이 강탈당하는 경험을 한 우리는, 디지털 자본주의와 플랫폼 자본주의의 발전 속에서 다시금 우리 모두가 만들어낸 부를 소수가 독점하는모습을 보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극심한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는 이런 발전의 부수 현상이 아니라, 그런 강탈 속에서 쌓아올린 바벨탑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새로운 신분제와 정치적 부족주의는 바벨탑이 이미 아래로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서로 소통되지 않은 무수한 언어가 난무하고 있으며, 그 언어의 공명판은 오직 자기 부족 안에만 있다.

이렇게 데모스(demos) 이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이는 이 ‘사회 아닌 사회’를 다시금 정치공동체로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공공성은 구성원의 동등성이 보장될 때에만 가능할 것이다. 기본소득은 모두의 것인 공유부에 대한 동등한 몫을 보장함으로써 동등자임을 확인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보장을 통해 동등자로 살아갈 수 있는 물질적 기초를 보장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기본소득을 다른 방식이 아니라 공론화라는 과정을 통해 성취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 공론화가 적절한 방식을 통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그 자체로 우리가 동등자로서 정치적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기본소득 공론화법”을 통과시키고 공론화 과정이 빨리 실행에 옮겨지기를 기대한다.

2020년 1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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