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3차 재난지원금은 모두에게 지급되어야 한다

여전히 코로나19 팬데믹의 끝이 보이지 않은 지금 우리는 “시간은 이성보다 더 많은 개종자를 만들어낸다”는 토머스 페인의 말을 이렇게 수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시간에 직면한 우리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바꾼다.

코로나19 팬데믹의 근본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생태계 파괴를 제외하더라도 이번 사태 속에서 우리는 최소한 두 가지 중요한 점을 경험하고 배우고 있다. 하나는 국가공동체가 그 구성원의 삶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K-방역도 여기에 속하지만 우리가 이를 더 크게 느낀 것은, 비록 가구별로 지급하긴 하지만 모두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때였다. ‘국가가 나에게 뭔가를 해준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는 사람들의 말처럼, 한국에서 이는 어쩌면 초유의 일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국가는 모름지기 그래야 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다른 하나는 이번 사태처럼 위험이 일반화된 경우 더 어려운 사람을 찾아내서 돕는 선별적 지원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보편적인 방식, 즉 기본소득 원칙에 따른 방식이 한 층 더 추가될 필요가 있다. 이때 효과는 단지 행정적 간편함 같은 기술적인 문제에 한정되는 게 아니라 그 구성원의 소속감, 구성원 사이의 연대성 등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측면까지 포함한다. 이런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어떤 것이 고양될 때 우리는 진정한 동등자로 구성된 민주적이고 공화적인 정치공동체를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통곡하며, 슬퍼하며,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재난의 한복판 속에서도 이 재난이 유토피아를 향한 열린 문일 수 있다는 레베카 솔닛의 역사적 통찰력을 받아들인다면 바로 이런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재난 속에서 아무것도 배우려 하지 않거나 완강하게 기성질서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은 1차 재난지원금과 경기도의 재난 기본소득이 준 교훈에도 불구하고 2차 재난지원금을 선별적으로 지급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그리고 코로나19의 3차 대유행 속에서 제기되고 있는 재난지원금 지급 여부를 또 다시 선별 지원의 틀로 가져가려 하고 있다. 게다가 여전히 나랏빚 운운하며 선별 지원마저 4~5조 원이라는 터무니없는 금액 속에서만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뿐이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그리고 정책 집행의 핵심에 있는 기획재정부 관리들이 어떤 복잡한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문제는 단순하다. 방역과 경제는 현재 반비례 관계에 있으며 이 속에서도 사람들의 삶을 살리는 길은 그 반비례 관계에 해당하는 만큼의 돈을 말 그대로 푸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 순환과 승수 효과를 따지건 앞서 말한 것처럼 공동체 구성원의 소속감과 연대감의 고양이라는 측면을 따지건 모두에게 지급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고 정당한 방법이다. 이것이 1차 재난지원금과 2차 지원금을 모두 겪은 우리가 내놓은 대답이며, 이는 다수 국민이 보편적인 지급을 지지하는 것으로 이미 표현한 바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3차 재난지원금은 충분한 금액이 정기적으로 모두에게 지급되어 최소한 앞으로 1년 이상 이어질 것이라 예상되는 위기에 대비하는 것이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 1년 동안 최소한 4번에 걸쳐 지급되는 게 필요하며, 한 번에 최소한 30만 원 이상이 지급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이때 모든 사람에는 일시 체류가 아닌 모든 외국인이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가 경제적 보장을 시민의 권리로 말하고 있지만 그 시민의 권리는 인간의 권리 위에 성립한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 지급하는 것이 공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여전한데, 이에 대한 해법은 이미 여러 사람이 제출한 바 있다. 재난지원금을 소득으로 합산하여 나중에 세금으로 환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방안이 조세 개혁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심각한 부동산 소유의 불평등을 비롯한 자산 불평등 그리고 소득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조세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었다. 과거의 위기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위기가 또 다른 불평등을 낳고 있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재난지원금뿐만 아니라 조세 개혁을 통한 사회 변화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일이 되었다.

정부와 관료들이 스스로를 국민의 공복이라고 생각한다면 재정 건전성 운운하면서 자신들만의 세계에 갇혀 있을 게 아니라 역사적 시간과 마주하고 모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마땅할 것이다. 이런 국민의 요구에 여전히 침묵한다면 오래 전 나사렛 사람이 말한 것처럼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민주주의는 모름지기 그런 것이며, 우리는 이번 재난 속에서 이를 새삼 발견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2020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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