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예비결과 발표는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모았던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이 끝나고 첫 번째 예비 결과가 지난 2월 8일에 발표되었다. 실험을 설계하고 주관한 Kela(핀란드 사회보험 공단)의 예비 결과 발표는 일단 두 가지로 요약된다. 기본소득 실험이 실험 1년차에 참여자의 고용 수준을 높이지 못했다는 것, 하지만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대조군의 사람들보다 더 행복해졌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보기에 따라 상반된 결과를 낳은 예비 결과를 놓고 당연히 입장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주장이 나오고 있고, 향후에도 이 예비 결과는 각자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논거로 사용될 것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둘 때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이번에 발표된 예비 결과뿐만 아니라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자체에 대해 논평하는 것을 통해 이를 적절하게 바라보는 틀을 세울 필요를 느낀다.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가?

1.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은 핀란드 정부가 전국적으로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2,000명을 무작위로 선발해서 2년 동안(2017년 1월 1일-2018년 12월 31일) 매달 560유로를 어떤 조건도 없이 지급하는 것이었다.

2. 이번 기본소득 실험이 핀란드 복지 체계의 개혁이라는 더 넓은 목표 하에 실시된 것이긴 하지만, 실업급여 수급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실험 자체의 목표는 노동 유인의 제고를 통한 실업 문제의 해결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3. 이런 제한적인 목표 때문에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특히 기본소득 지지자들에게 비판을 받았고, 실험 설계 주관 기관인 Kela는 좀 더 다양한 목표를 갖는, 좀 더 확대된 실험 설계안을 정부에 권고했다. 하지만 핀란드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가 알고 있는 설계안대로 실험을 실시했다.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예비 결과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1. 노동시장 성과와 관련하여 기본소득을 받은 집단과 실업급여를 받은 집단 간 유의미한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기본소득을 지급받은 집단에서 평균 고용일수와 창업을 통해 자영업에 종사한 대상의 비중이 실업급여를 지급받은 집단에 비해 높게 나타났지만, 통계적 차이가 확인되지 않았다.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의 고용성과가 실업급여 수급자에 비해 개선되지도 악화되지도 않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동안 기본소득이 노동유인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기본소득이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취업자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실험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럴 경우 고용에서 어떤 변화가 있을 수 있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실업과 고용의 문제는 개인들의 노동유인만으로 설명할 수 없고, 개인들의 기술, 숙련, 건강, 가족 관계와 사회적 관계 그리고 거시 경제적 상황까지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기본소득 자체가 고용 수준을 높일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이와 관련해서 매우 제한적인 대답만을 얻을 수 있다.

2. 여러 측면에서 행복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삶의 만족도도 더 높고, 스트레스를 덜 겪고, 타인에 대한 신뢰와 사회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더 높았으며, 건강 및 집중력 수준도 더 높았다. 여기에 더해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 사회적 쟁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도 더 크다고 한다.

앞서 말했듯이 데이터 조사에서는 고용 수준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었지만 일자리 전망에 대해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들이 대조군 사람들에 비해 더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3. 전화 설문 조사를 통해 알 수 있었던 것 가운데 하나는 기본소득을 받는 사람들이 대조군에 있는 사람들에 비해 기본소득에 대한 지지도가 높다는 것이다.

핀란드의 경우 2017년에 여론 조사의 종류에 따라 기본소득 지지도가 40퍼센트에서 80퍼센트까지 다양하게 나왔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질문의 구성 방식과 제시된 기본소득 모델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예비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한국에서 ‘복지 경험’이라는 말로 이야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본소득에 대한 직접적 경험이 기본소득에 대해 좀 더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한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1.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과 그 예비 결과는 다시금 기본소득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폭넓게 던지고 있다.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탄생한 이래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문제의식과 목표 하에 기본소득을 지지해 왔다는 것은 오늘날 잘 알려져 있다. 빈곤의 퇴치부터 오늘날 주목받고 있는 ‘일자리 없는 미래’에 대한 대응책까지 기본소득은 하나의 이름 아래 다양한 경향을 아우르고 있다.

이런 다양한 흐름 속에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기본소득이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자유를 실질적으로 증진하는 수단이며, 폭넓은 사회적, 생태적 변화를 일으키는 촉매가 된다고 말해 왔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고용 수준의 증진이라는 목표 하에 실업급여 수급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은 적절한 방향성을 갖지 못한, 매우 제한적인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2. 오늘날 특별히 강조해야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고용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사람들이 하는 다양한 일과 활동을 고용 노동의 잣대로 보아야 하는가이다.

이 질문은 이번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에서는 제기되지도 조사되지도 않은 것이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중요한 질문이다. 인간의 창의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는 한편 기술 변화로 인해 고용 노동은 축소될 전망인 반면에 인간들 상호 간의 돌봄은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오늘날, 인간의 삶의 의미를 고용 노동으로 축소하는 것은 실효성도 없고 정당성도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기본소득이 모두에게 일정한 물질적 기반을 제공하고, 이로써 삶의 불안을 줄여준다면 인간의 삶의 의미는 더욱 풍부해지고, 사회적 관계 또한 좀 더 긍정적이고 의미 있는 것으로 바뀔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3.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이 매우 제한적이긴 하지만, 예비 결과에서 나온 것처럼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였다고 한다면, 이는 기본소득이 삶의 불안을 줄이고 사람들이 자기 삶에 대한 주도성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정치적 관점을 갖고 있든 이에 반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의 실험은?

이전에도 기본소득 실험이 여럿 있었고, 현재 진행 중인 것도 있지만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이 주목받은 이유는 중앙정부가 전국적인 수준에서 실시했기 때문이며, 새로운 사회 정책을 증거에 기초해서 도출하고자 하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이 가진 제한성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 사회에서 실험은 (정치적 의도가 없이) 아무리 ‘과학적으로’ 설계하고 실시한다 해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처럼 인간의 자율성을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책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실험과 그 결과에 대해 무엇보다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게다가 기본소득이 ‘인간과 시민의 권리’라고 한다면, 그 권리는 실험할 수도 실험할 필요도 없다. 아무도 노예제 폐지를 실험하자고 하지 않았고, 아무도 참정권 부여를 실험하자고 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한 권리는 점진적이건 급진적이건 성취되어 왔을 뿐이다.

그럼에도 실험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이를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는 집단 지성의 힘을 발휘하는 계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앞에 놓인 과제를 해결해가는 정치적, 사회적 과정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도 그러한 과정의 하나로 보아야 할 것이다.

2019년 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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