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성서에 비추어본 기본소득

이영재(Ph.D., 전주화평교회/성경과설교연구원)

들어가는 말

기본소득의 사회정책에 대해서 교회가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많은 기독교 교인들이 궁금해 하고 있다. 우선 기본소득이 무엇인지를 이해한 다음에 그 정책이 성경의 말씀과 어떻게 부합하는지를 살펴보면 그 궁금증이 많이 해소될 것이다. 먼저 기본소득에 관련된 사회사상적 내용이 성경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먼저 창조신앙 속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할 수 있을 것이며 두 번째로는 구원신앙 속에서 그 연관성을 짚어 볼 수 있을 것이다.

1.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제4차산업혁명의 시대에 국가라는 단위의 정치적 공동체가 경제를 유지할 수 있기 위해서, 모든 사람에게 일정한 금액을 아무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지급함으로써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는 대안의 정책이 기본소득제이다. 기본소득에는 네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모든 국민에 대해서 기본소득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심사를 하지 않는다. 둘째, 모든 국민에게 차등 없이 일정한 금액을 동일하게 지급한다. 셋째, 아무 조건 없이 무조건 지급하되 그 반대급부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넷째, 국민이라면 개개인에게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직접 지급한다. 이상의 네 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비로소 “기본소득제”라고 부를 수 있다.
기본소득이 이와 같은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까닭은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경제적 대안으로서 국가가 그것을 시행하는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대량실업 사태가 예상되는 가운데 사회보장제의 일환으로서 시행되던 근로장려세제(earned income tax credit)나 기초생활보호제도(minimum income guarantee)는 기본소득제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전자는 일 하는 사람에게만 장려금을 주기 때문이며, 후자는 가난한 사람에게만 보호금을 주기 때문에 기본소득으로 간주될 수 없다. 더구나 이 두 가지 사회정책은 기본소득 보다 행정비용이 더 많이 드는 단점을 안고 있다. 기본소득은 온 국민에게 평가 없이 차등 없이 지급하기에 행정비용이 들지 않는 매우 날렵한 경제적 제안이다.
현물로 지급하는 방법이라 할지라도 위의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현물기본소득으로 간주할 수 있고, 또 무상급식, 의무교육, 무상대중교통, 무상통신, 마이너스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따위도 기본소득과 동일한 효과를 내기 때문에 기본소득의 한 종류로 인정할 수 있다.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의 권리이므로 부자들에게도 지급해야 한다. 보통선거권이 모든 사람에게 투표권을 주었고, 평등선거권이 모든 사람에게 한 표씩 허락하는 엄청난 진보를 이루었지만, 20세기 초엽만 해도 이러한 제도는 한낱 공상으로 치부될 뿐이었다. 지금은 이러한 선거권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기본소득권을 주장하면 공상가라고 비난을 받겠지만 조만간 제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함께 당면한 과제로 인식될 것이다. 인류 역사의 발전 방향을 되짚어 보면 19세기의 노예해방, 20세기의 보통선거권 보장에 이어서 다음 차례는 21세기의 기본소득권 보장이 당연하게 여겨질 것으로 전망된다.

2. 창조신앙으로 보는 기본소득제

창조신앙과 기본소득의 접점은 하나님께서 세계를 지으신 창조주라는 신앙고백에 있다(창1:1). 모든 자연재가 모든 사람이 관리해야 할 공공재임을 성경이 가르치고 있다(출19:5). 이에 토지문제와 천연자원의 소유에 관한 쟁점을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증언한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과 거기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이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다(시24:1~2).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모든 생물의 관리자로 삼으셨다. 사람의 사명은 모든 생명이 다 잘 살 수 있도록 환경을 관리하고 보살피는 데 있다(창1:28). 사람은 이러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식의주를 위한 경제생활을 누리도록 보장받고 태어났다(시65:9~13; 마6:25~31; 7:9~11). “주 하나님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땅에서 자라게 하시고”(창2:9).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어떠한 생명체도 굶어 죽거나 멸종하는 일이 없이 모두가 생육하고 번성해야 한다(창1:26~28). 이 점에서 기본소득은 하나님나라의 신앙사상과 잘 부합된다. 예수님께서도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고” 이 땅에 오셨다(요10:10).

3. 기본소득은 교회가 해야 할 선교이다.

기본소득의 정책이 하나님의 구원사에서 얼마나 적절한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를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세계에서는 본디 모든 생명이 저마다 활발하게 생육하며 번성하여야 마땅하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이 창조세계에서 사람은 본디 모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며(창1:28) 하나님의 동역자로서의 사람이 세계를 아름답게 가꾸며 유지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고 타락한 사람은 폭력의 존재로 둔갑하여(창4:8, 23) 도시국가를 건설함으로써(창4:17) 세계를 마구 파괴하였다(창6:11). 사회는 불평등하고 자유를 상실하였으며 전쟁과 폭력으로 어두워지고 말았다(창10:10; 11:1-9; 14:1-3). 이처럼 사람의 죄로 인하여 파괴된 세계를 다시 아름다운 상태로 회복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사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백성은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할 의무를 지고 있다. 성경은 약속한다. 주님의 명령을 지키면 마침내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어진다’(신15:4~5; 행4:34). 하나님의 뜻이 이러하므로 현재의 국가체제가 기본소득을 시행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나라의 지상적 모형인 교회는 기본소득을 신도의 공동체 안에서 최우선으로 실시하여야 마땅하다. 초대교회가 과부를 공궤하는 일에 많은 정성을 기울인 것은 단순히 자선행위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기본소득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행6:1). 우선 교회 공동체 안에서라도 가난한 자들이 없도록 교회가 말씀을 준행해야 마땅하다.
성경은 모든 물질의 사유권을 창조신앙의 기초 위에서 감사함으로써 누린다. 성경의 사유권은 하나님의 공공성이라는 전제 위에 허락된다.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나 자신의 소유를 하나님을 위하여 언제라도 기꺼이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 모든 물질은 창조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출19:5), “모든 물건은 다 주의 손에서 받은 것이니 모두 다 주의 것입니다”하고 고백하며 살아간다(대상29:14~16). 이러한 신앙고백으로 넉넉하게 사는 성도는 누구나 가난한 형제를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소유를 헌납하며 나눌 준비가 되어 있다.

4. 기본소득은 국가의 본질을 개혁한다.

성경이 제기하는 가장 긴급한 구원사의 문제는 국가의 폭력성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창12:10-18). 기본소득이 국가의 정책에 관련된 쟁점이기 때문에 국가의 폭력을 극복하는 중요한 정책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사명을 안고 잇는 교회가 기본소득을 먼저 시행해야 한다. 국가에 대한 대안으로서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교회의 선교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기본소득 정책이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매우 중요하다. 기본소득의 대안국가적 성격은 시내산 언약기에 잘 드러나있다(출19장~민10장).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탄생되었기 때문에 세속 국가가 휘두르는 폭력과 불평등과 차별과 억압을 극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따르는 가장 우선되는 과제였다. 그 과제는 계약법과 레위기와 민수기의 법문들에 잘 나타나 있다.
기독교 교회가 국가로 하여금 기본소득을 시행하도록 참여할 경우에 그 교회가 속해 있는 국가사회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또한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성경에서 기본소득에 관련된 신학이 확인하게 되면 교회가 국가를 아름다운 공동체로 개혁하기 위해서 기본소득을 통해서 어떻게 공헌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선교전략도 수립될 수 있을 것이다.
국가를 계급투쟁의 산물로 보는 마르크스주의는 무서운 계급투쟁의 아픔을 낳았다. 성경은 그러한 계급투쟁의 국가를 죄에 물든 세상이라고 본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인류는 폭력으로 약자를 억압하고 가난한 자들의 희생 위에 도시와 국가를 건설하였다(창4:17; 10:10). 국가가 죄 속에 빠져 있는 한 폭력의 기반을 버릴 수가 없다(창6:1~11). 슬프게도 모든 교회는 이 국가 안에 있으며 국가의 폭력 아래에 종속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기본소득제를 통하여 폭력으로서의 국가라는 본질을 변화시키려고 시도해야 한다. “너희 가운데 가난한 자가 없게 하여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 공동체 안에 적용하는 동시에 그 말씀의 외연을 더욱 넓혀서 국가사회 전반에 적용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폭력의 국가가 점차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사랑의 상태로 바뀌어 갈 것이다. 국민 성원이 누구나 기본소득을 보장받는다면 국가권력을 향한 계급의 갈등이 극복될 것이고 사회 내의 범죄도 줄어들 것이며 전쟁도 방지될 뿐만 아니라, 국가를 지배하는 상류사회의 역할도 달라질 것이다. 기본소득은 국가의 본질을 근본에서 뒤바꾸어 냄으로써 경쟁이 덜 치열한 상생의 공동체로 국가를 개혁할 수 있을 것이다.

5. 기본소득은 사람을 성숙하게 성장시킨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각성하는 사람은 성숙한 인격자이다(요1:14~16). 은혜를 아는 사람은 은혜를 갚는 일에도 정성을 기울인다. 모든 사람 위에 구원의 은혜가 나타났으니(딛2:11) 누구나 그 은혜에 감사하는 일은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죄에 사로잡힌 자들은 그 은혜를 외면하고 자신의 영광을 누리려고 이웃을 희생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중에서도 부름받은 성도는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이웃을 돌본다(마10:9).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기본소득이 교회의 한계를 넘어서 전 국가의 차원에서 얼마나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효과적인 방법인지를 금방 알아챈다. 바울은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이웃에게 베풀며 살았다(고후8:1~7). 가난한 사람도 기본소득을 받으면서 물질의 구애를 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 수 있다면 가난으로 인한 상처도 아물게 됩니다. 부자들도 가난한 자들의 기본소득에 공헌함으로써 빈자나 부자나 모두가 한 마음으로 서로 돕고 사랑하는 영성으로 삶을 향유하게 될 것입니다(고후9:1~15). 이로써 모든 인간이 아름다운 인격체로 성장할 수가 있습니다.

6. 기본소득은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한다

하나님의 형상 대로 창조된 사람은 누구나 소중한 존재로 인정받아야 한다(창1:26; 마10:29~31).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소중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신다. 모든 영혼은 주님의 것이다(겔18:4). 가나한 사람을 학대하거나 강제로 빼앗아서는 안 되고 고리채 이자로 돈놀이를 해서는 안 된다(겔18:12). 이러한 말씀에 순종하여 회개하고 가난한 자를 돌보는 사람은 그가 악인이었더라도 용서를 받고 의인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겔18:27).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누구나 차별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나가는 말

예수님의 가르침과 토라의 신학을 실천하는 것은 교회의 지상과제이다. 기본소득의 취지는 오래 동안 교회가 방기해 온 경제분야의 사회선교를 실천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아이템이다. 교회는 신앙의 공동체이므로 교회 자체 안에서나 교회가 속한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기본소득제를 선도하여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알맞은 조건을 지니고 있다. 교회 내에서 기본소득제를 위한 헌금을 정기적으로 바쳐서 기금화하는 한편, 기본소득위원회를 만들어서 교우들이 스스로 연구하면서 교회 내에서나 동네에서 기본소득대상자를 선발하여 일정 기간 실시하는 것이 좋겠다. 실시하는 동안 계속 기본소득의 좋은 점을 잘 채록하여 자료화하고 그 자료들을 국가나 지방자치제가 실시하도록 조례제정을 시도하고 권유하고 돕는 일을 교회가 나서서 실천하면 좋겠다. 교회가 노회가 총회 단위에서 확대해서 기본소득제를 실시할 수 있다면 국회와 중앙정부가 나서서 국가의 정책을 입안하도록 추동하는 큰 자극제가 될 것이다.

게시일: 2018년 8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