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본소득실험 쉼표프로젝트와 지역네트워크의 방향

정우주(기본소득전북네트워크 상임대표)

기본소득전북네트워크(이하 전북네트워크)는 2017년 2월 10일 창립총회를 통해 출범하였다. 출범 이후 전북네트워크 운영위원들의 가장 큰 고민은 ‘전북지역에 기본소득을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였다. 전북네트워크 운영위원 중에는 지역 시민사회에서 장기간 활동한 분도 없었고, 기본소득에 대해 강연을 할 만큼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분도 없었다. 운영위원 모두가 시민단체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데 능숙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지금 한국사회의 대안으로서 기본소득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기본소득을 알리고자 모인 사람들이었지만 어떤 활동을 펼쳐야 할지 막연했다. 지역에 기본소득을 알리겠다는 우리의 목표에 대한 열정만 가득했다.
그래서 전북네트워크의 운영위원들은 다른 지역네트워크의 활동들을 검토했다. 기본소득인천네트워크는 조례제정 운동을 하고 있었고, 기본소득대전네트워크는 기본소득실험인 띄어쓰기프로젝트를 하고 있었다. 전북네트워크 운영위원들은 할 수만 있다면 조례제정 운동보다는 기본소득실험이 지역 시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알리고 지역 시민사회와 행정기관에 전북네트워크를 알리기에도 효과적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전북네트워크는 3월부터 기본소득실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과도한 업무에 지친 이들에게 쉼표를, 취업준비생들의 불안한 마음에 쉼표를, 안전망 없이 위험한 환경에 노출된 이들에게 쉼표를”이라는 뜻을 담아 기본소득실험의 이름을 쉼표프로젝트라고 지었다. 실험의 재원이 문제였는데 전북네트워크의 시작부터 함께해 온 전주화평교회의 재정 지원으로 재원도 준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전북네트워크는 전북도민 중 4명에게 6개월간 50만 원씩 지급하는 기본소득실험인 ‘쉼표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전북네트워크는 2017년 5월부터 8월까지 기자회견과 길거리 캠페인, 온라인 캠페인으로 기본소득실험 홍보를 하였다. 그리고 본격적인 기본소득 실험은 8월 11일 1차 지급대상자 추첨식으로 시작해서 2018년 3월 4차 지급대상자 마지막 기본소득 지급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프로젝트 기간 동안 운영위원들은 지급대상자 관리, 시간표와 지출내용 정리, 인터뷰와 인터뷰 녹취록 작성으로 분주했다. 우리가 분주하게 노력했던 만큼 우리는 전북지역에 기본소득을 알리겠다는 목표에 도달했을까?

정확한 지표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전북네트워크는 쉼표프로젝트에 지원한 800여 명에게 기본소득을 확실하게 알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지역 신문과 지역 TV, 라디오를 통해 기본소득과 단체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기본소득 지급실험이라는 직관적인 프로젝트 덕분에 다양한 단체나 시민을 만났을 때 전북네트워크를 알리는 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프로젝트와 결과가 있으니 일부 지역 행정가나 지역 정치인도 우리 단체와 기본소득에 관심을 보였다.
반면 문제점이나 한계점도 명확했다. 실험 재원의 한계로 기본소득 지급대상자가 많지 않아서 유의미한 통계를 낼 수 없었다. 기본소득실험을 진행하고 분석하기에 단체 내부에 인적자원이 충분하지 않아서 위원들의 업무량이 많았고 이것은 프로젝트 후 조직이 지속해서 운동해나가는 데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종합해볼 때 갓 출범한 지역네트워크로서 얻는 것이 많았고 전북네트워크가 기본소득실험에 대한 운영 노하우를 갖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큰 자산이 되었다.

이제 전북네트워크는 쉼표프로젝트 이후 어떤 활동을 해나가야 할지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 지역 내 다른 단체들과의 네트워킹을 통해 지역에서 단체의 저변을 넓혀나가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크건 작건 구심력을 갖는 전북네트워크만의 운동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전북네트워크 운영위원들은 기본소득에 서사를 부여해줄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시민들이 기본소득을 조금 더 시민들의 삶에 밀착된 주제로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단체의 대표로서 다양한 자리를 찾아 시민들을 만나면서 경험적으로 알게 된 점은 아직 기본소득을 모르거나 오해하고 있는 시민들이 많다는 것과 시민들이 기본소득을 삶과는 무관한 거대한 주제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본소득은 먼 주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고 우리의 미래라는 것을 어떤 방법과 이야기로 풀어나갈 수 있을지 운영위원 및 회원들과 계속 고민하고 해결점을 찾아가 보려고 한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로봇이 온다’라는 길거리 행진을 보았다. 로봇들이 ‘재주는 로봇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받자’, ‘알파고도 좋아하는 기본소득’ 등의 메시지가 담긴 피켓을 들고 거리를 활보했다. 이 로봇들은 걸으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했다. 시민들은 이 로봇들에게 손을 흔들고 악수를 청했다. 물론 이 로봇들은 골판지로 만든 탈을 사람이 쓴 것이었다. 이들은 당시 선거유세 중이었던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로봇 탈을 쓰고 찾아가서 기본소득 지급 의향에 대해 질문을 하는 흥미로운 모습도 연출했다. ‘게으를 권리’라는 소모임(청년정치공동체 ‘너머’의 소모임)에서 진행했다는 이 길거리 행진은 유쾌하고 즐거워보였다. 로봇이 올 예정이니 기본소득을 달라는 구호가 로봇과 기본소득에 대해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지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로봇 길거리 행진을 접한 시민들은 기본소득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간단명료하게 전달받고, 기본소득을 좀 더 가까운 미래로 여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전북네트워크가 참고할 만한 좋은 방식으로 보였다.

전북네트워크의 몇몇 회원들은 쉼표프로젝트의 시즌 2를 언제 하는지 물어보신다. 어떤 회원은 쉼표프로젝트의 과정과 결과를 재미있게 지켜보셨다고 했다. 쉼표프로젝트와 같은 방식이 재원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면 시민들이 크라우드펀딩으로 함께 참여하는 모금 방안도 제안해주셨다. 이런 관심과 제안이 정말 감사할 뿐이다.
시민들이 기본소득을 잘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역네트워크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또 할 수 있을까? 아직 방향을 찾지 못했다. 전북네트워크는 쉼표프로젝트 이후 숨 고르기를 하는 중이다. 다른 지역의 기본소득네트워크들도 고민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함께 고민하고 연대하기를 바라본다.

게시일: 2018년 7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