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의 기본소득 실현의 가능성과 바람직성
서정희 (군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지방자치단체선거가 코앞이다. 선거라는 시기적 국면에서 기본소득 운동 세력이 선거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특히 이번 선거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자치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이기 때문에 기본소득 제도를 지방단위에서 실현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가능한지, 그리고 어떤 기본소득 제도를 어떻게 실현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가능한지에 대한 전략적 검토가 요구된다.
현재 세계적으로 기본소득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핀란드를 제외하면 기본소득 실험은 전국 단위보다 지방정부 단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 온타리오(Ontario) 주, 네덜란드 위트레흐트(Utrecht) 주, 나미비아의 오티베로-오미타라(Otivero-Onitara) 마을, 인도의 마디야 프라데시(Madhya Pradesh) 주, Y 컴비네이터의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 등이 그러한 예이다. 전국 단위에서 전면적인 사회보장 체계의 개편을 동반한 기본소득 실현보다 지방정부 단위에서 기본소득 실험이 진행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간주도의 기본소득 실험이 지역 단위에서 실험을 하는 이유는 예산상의 제약이라는 한계로 인해 소규모로 실험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제도 시행이 아닌 실험에서 공공부문 역시 지방정부 단위로 이루어지는 이유는 예산상의 제약보다는 오히려 기본소득 제도가 가지고 있는 혁명적 성격 때문일 것이다. 그 어떤 발달된 복지국가도 모든 시민에게 무조건적인 현금급여를 시행한 역사적 경험이 없고, 이를 전면에 내세운 적도 없다. 또한 전국 단위에서의 기본소득 실현은 기존 복지국가의 기반이었던 유급노동 중심성 테제를 폐기하거나 전면 수정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격렬한 정치적 반대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보다 작은 단위에서 선도적으로 실행된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그동안에도 전면적인 개편이 수반되는 제도 도입을 하는 경우에는 통상적으로 몇 개 지역에서 ‘시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정책을 시행하고, 그 시범사업의 결과를 평가한 후 전국 단위로 확장해서 복지제도를 시행한 역사가 있다. 그러므로 지방단위에서의 기본소득 실험이나 시행은 그간의 시범사업에 상응하는 역할을 담당해 줄 것이기 때문에 전국 단위에서의 기본소득 시행보다는 현실가능성이 높고, 사회적 혼란을 줄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바람직성이 높다고 할 것이다.
정치적 주체라는 측면에서도 전국 단위에서의 기본소득 시행보다 지방단위의 정치적 주체가 기본소득 시행을 주도하기에 보다 수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성남시 이재명 시장이 기초단위 지방자치단체의 장으로서 대선후보 및 경기도지사 후보까지 갈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선도적인 사회정책 아젠다(청년배당)를 자신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전환하여 정치상품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청년배당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중앙정부와의 마찰을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하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정책적 소신을 확고하게 밀어붙였고, 대중의 관심과 선호로 이어졌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지사 캐슬린 O. 윈(Kathleen O. Wynne)의 경우 재선 이후 기본소득 실험을 선도적으로 제시하고 시행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높은 지지도가 유지되고 있다. 2018년 연말에 진행될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재까지 자유당의 지지율은 보수당에 비해 높아 자유당이 온타리오 주정부 선거에서 다수당이 될 경우 캐슬린 O. 윈의 도지사 3선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점을 지방선거 후보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득한다면 후보들은 현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변혁적인 대안이자 참신한 공약으로 기본소득 시행을 부각시킴으로써 구태의연한 사회복지 공약을 제시하는 타 후보들과 차별화하는 전략을 채택할 가능성이 있다.
바람직성이라는 측면에서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지방정부 단위에서의 기본소득 시행은 전국적인 기본소득 시행을 가능하게 하는 주요 전략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지방의회가 중앙정부 차원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사회복지정책을 중앙정부와의 갈등을 빚어가면서 조례를 제정하여 제도를 시행하고, 결국 그 제도가 전국적으로 확산된 사례들이 존재한다. 1996년 광주광역시 동구의회의 “저소득주민 생계보호지원 조례안”이나 2006년 정선군의회의 “정선군 세자녀 이상 세대 양육비 등 지원에 관한 조례안” 등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지방의회가 국가 단위의 복지정책 이상으로 복지급여를 제공하는 정책을 시행하려고 할 때 지방자치단체장과 중앙정부는 지속적으로 반대를 제기해 왔다. 이러한 시도들은 대법원 소송까지 진행되었으나, 대법원은 여러 차례에 걸쳐 주민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조례안이 위법이 아니라고 판결하였고(광주광역시 동구청장 “조례안 재의결 무효확인소송”에 대해서는 대법원 1997. 4. 25. 선고 96추244 판결, 정선군 세자녀 이상 자녀 양육비 지원에 대한 조례에 대한 “지방의회 조례안 재의결 무효확인청구”에 대해서는 대법원 2006.10.12. 선고 2006추38 판결), 이러한 조례안의 내용은 다른 지역의 조례 제정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국가 단위의 정책에 반영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점을 상기한다면 기본소득 조례를 통한 지방정부 단위에서의 선도적인 정책 시행 전략은 기본소득을 국가 단위의 정책으로 확산시키는 데 있어 고려해봄직한 주요한 정치적 전략일 수 있다.
지방선거 공약으로서 제기할 수 있는 그리고 무조건성 강조 유형의 기본소득(안)은 청년기본소득과 농촌기본소득이 가장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청년기본소득은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무한 경쟁을 통해 질 낮은 일자리라 하더라도 취업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하도록 청년들을 내몰고 있는 기존 청년정책의 한계를 극복하고, 유급노동 종사여부 혹은 유급노동으로의 진출 의지 증명 여부와 관계없이 급여를 지급함으로써 현재의 유급노동 중심적인 복지체계에 균열을 발생시키는 데 중요한 기제가 될 수 있다. 모든 시민에게 무조건적인 충분한 수준의 기본소득 급여 제공이라는 기본소득 운동의 목표를 고려할 때 가장 대표적인 경제활동가능 인구층에게 근로조건부 급여가 아니라 근로를 조건으로 하지 않는 최초의 급여를 제공함으로써 기존 복지정책의 유급노동 중심성 테제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전략이 될 것이다. 또한 성남시의 청년배당 정책이 급여 충분성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낮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분기별 25만원, 연 100만원) 성남시 청년들의 청년배당에 대한 높은 지지도를 고려한다면 충분성이나 보편성 이상으로 무조건성 전략이 기본소득에 대한 우호적인 지지층을 끌어내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 공약은 농촌기본소득을 들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구조에서 농촌 지역의 주민들은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로 인해 농민의 수가 줄어들고 농촌 마을이 지속적으로 사라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 사회에서 농촌 인구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기존 정책들은 토지를 기준으로 집행되고 있어, 농촌 주민들의 실질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동시에 토지를 많이 소유하고 있는 농민과 토지 소유 없이 농사짓는 농민 간의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토지 면적 기준이 아닌 개인 단위의 기본소득 지급을 통해 농촌의 불평등 문제를 개선하고 실질적 삶의 질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최근 제기되고 있는 농민기본소득(박경철, 2016)의 경우, ‘누구를 농민으로 정의할 것인가’하는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농민기본소득의 급여 지급을 위해 누가 농민인가를 판별하는 행정절차가 요구되는데, 농민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실제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을 농민으로 볼 것인지, 몇 년 이상 농촌에 거주하면서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으로 볼 것인지 등의 농민 정의 문제와 농사를 실제로 짓고 있는지 확인을 위해 각 마을마다 공무원이 상주할 것인지, 아니면 농촌 지역의 주민들이 상호감시하게 할 것인지 등의 급여 수급권자 결정과 관련하여 합의가 쉽지 않은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농민기본소득안의 경우 수급자격 확정과 수급권자 확인 과정에서 많은 행정비용이 소요되고 새로운 사회적 갈등요인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다. 농민에 대한 분류의 어려움을 완화시키고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농촌 지역의 주민들에게 개별적인 현금급여를 지급하는 농촌기본소득이 바람직해 보인다. 농촌기본소득은 기준이 보다 명확하고 개인별 자격여부를 확인하는 절차가 별도로 필요 없으며, 무조건성 원칙에 보다 가까운 선택이다.
이 외에도 각 지역별로 특정 계층에 대한 욕구가 다를 수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청년이 없어서 노인기본소득을 더 요구할 수도 있고, 어떤 지역에서는 아동의 비율이 높아서 아동기본소득을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계층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각 지역별 특수성이 반영될 필요가 있다. 다만 계층별 변이가 크지 않다면 기본소득운동이라는 전체적인 그림 속에서 유급노동 중심성이라는 난제를 조금이라도 풀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청년기본소득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게시일: 2018년 5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