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본소득에 우호적이었던 여건들이 그 확대를 구속하는 여건이 되지 않으려면…
신종화(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은 2017년 대선을 거치면서 매우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논의되었고 이제는 과거와 같은 전면적인 거부를 표방하는 반론을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전적인 거부가 정치적으로 자신에게 불리한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는 이유가 클 것이다. 이 결과 정치권에서 기본소득의 찬반에 대한 논박이 잘 일지 않음으로 해서 역설적으로 기본소득의 이슈는 지금 정치적 아젠다로서의 역할이 작아진 듯한 느낌이다.
정치권에서 기본소득에 우호적인 분위기의 조성은 이재명 성남시장의 청년배당에 크게 기인하였다. 그러므로 이후 청년배당을 넘어 기본소득제의 확대가 손쉽게 이루어질 것인가의 문제는 청년배당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배경과 논리가 기본소득의 확대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청년배당의 성공요인을 생각해보면 1) 청년에 대한 최초의(?) 진지한 관심, 2) 일자리 감소와 실업률 상승 등 일자리 난에 대한 깊은 동감, 3) 경기가 매우 어려운 가운데 골목경제(상인 중소자영업)에 도움이 됨, 4) 박원순 시장의 청년수당과 대비되고 관심의 상승이 이루어짐, 5) 박근혜정부의 탄압과 승리(박근혜정부의 정책으로 수용), 6) 해외 기본소득 관련 언론 보도 등이 떠오른다. 이런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들이 관련되어 기본소득이라는 낯선 정책에 대한 거부감도 줄이고 필요성에 대한 공감도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 난에 대한 공감(이것은 나중에 4차 산업혁명이나 인공지능의 이슈가 대두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이고 이 고간을 겪는 것이 청년이라는 데 동조하면서 청년 일부(일자리를 찾으려 하지만 아직 못 찾은)가 아니라 청년 전체의 고난이라는 인식(그리고 선거에서 청년층 표의 영향력이 크다는)이 우세하여 청년수당이 아니라 청년배당이 승리한 것이라 여겨진다.
이 가운데 보수 언론에서는 무상=공짜, 무조건=기준 없음이라는 등식으로 무모하고 무책임다고 또 선심성, 시혜의 이미지로 즉흥적이고 준비 부족이라는 이미지로 부정적 색채를 덧씌우려 하고, 재원의 면에서 포퓰리즘이라 몰아붙이면서 더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저소득층 먼저, 더 시급한 곳 먼저 등의 구호를 내세우며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불순한 동기를 지닌 사람으로 기본소득 옹호자를 비판하였다. 그러함에도 청년배당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현실 그리고 저임금 일자리에 머물러 소득이 불안정한 미래 외에는 기대할 수 없는 현실에 대중이 동조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대중들의 이러한 인식은 이를 탄압하던 정부 정책도 유사 궤도로 선회하였다는 데서 더욱 강화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부분들을 생각하면 코뿔소의 코가 강력한 무기이지만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한 것처럼 이런 우호적인 여건들이 기본소득제의 확대에는 제약점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생긴다. 청년배당을 포함한 기본소득 논의가 부차적인 것으로만 그리고 부차적인 한에서만 우호적인 지지를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즉 일자리 창출과 취업이 일차적인 조치이고 청년배당은 일자리 난에 대한 이차적이고 보조적인 조치라는 인식 하에서 수용된 것이고 그래서 대중들의 일자리 창출(이를 위한 경기 회복과 경제성장)이 우선이고 기본소득은 부차적이라는 인식을 강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청년배당을 통해 기본소득 논의가 확산된 우리의 특수한 배경과 논리가 앞으로의 기본소득 운동을 구속할 것이다. 청년배당으로 촉발된 기본소득의 우호적 수용은 다른 전통적 사회복지제도보다 근로의욕이라는 측면에서 더 우월하다든지 또는 빈곤과 그 폐해에 대한 대책으로서 그리고 사회적 배제와 위험에 대한 대책으로서 더 낫다든지 하는 논리로 수용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일 이러한 논리를 앞세워 반론을 제기한다면 기본소득 정책은 대중들에게 낯선 것이 될 것이고 대중들을 새로 설득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길 것이다. 따라서 효율적인 대응은 기본소득이 단순히 이차적이고 부차적인 역할의 것이 아니라 실제로 유효수요의 확대를 통해 경기회복과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고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한다는 것을 시급히 보여주는 것이 될 것이다.
게시일: 2018년 5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