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사]

권문석이라는 주춧돌 위에 서 있다

— 6번째 권문석 추모제를 맞이하며

late-Kwon-Moonsuck

6년 전 돌연 그가 우리 곁을 떠나려 했을 때, 우리는 잠시 머뭇거리긴 했지만 그를 보내는 자리의 이름에 “사회운동가 권문석”이라고 썼다. 다른 어떤 이름보다 그것이 그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름이 우리로 하여금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넘어설 수 있게 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은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변화가 정상적인 사태로 인식된 이후 등장한 현상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바로 다수의 힘에 의해 이루어질 터였다. 이 속에서 혁명가 혹은 사회운동가라는 직업(occupation) 아닌 천직(vocation)을 선택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회운동을 선택한 사람들은 햄릿이 말한 것처럼 “시대가 탈구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사태를 제자리에 놓으려는 비판을 시도했으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었다.

권문석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학생운동가로서 성년의 삶을 시작한 그가 진보 정당의 활동가, 정책기획가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상황은 많이 변해 있었다. 가장 오래된 사회운동인 노동자 운동과 진보 정당은 포지티브한 전망을 내놓기는커녕 과거의 성취를 지켜내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게다가 페미니즘운동 등 새로운 운동, 생태적 위기에 맞서는 환경 쟁점의 부상 등으로 사회의 별자리는 복잡해졌고, 기존의 진보 운동은 여기에 즉자적인 대응만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때 “세계사적 사명을 가진 계급”의 노동자 운동은 정체성화되었고, 또 주변화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특정 부문의 운동이 약화되었다는 것에만 있지 않았다. 문제는 전반적인 변화를 추구할 좌표를 잃어버렸다는 것에 있었다. 세상의 별자리가 어긋나 있다는 인식이 사회운동의 출발 지점인데, 이제 사회운동의 별자리가 어긋나 있다는 것이 사회운동가들을 괴롭혔다. 이 번뇌 속에서 누군가는 천직을 직업으로 바꾸었지만, 누군가는 새로운 소명을 듣고자 했다.

새로운 소명을 듣는 일은 분명 목숨을 건 도약을 필요로 했다. 그것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일이긴 하지만 자유낙하는 아니었다. 그것은 적절한 착륙 지점에 도착하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게다가 허공에서 이루어져야 할 일이었기에 그 어떤 준거점도 주위에서 발견할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권문석이 이 일의 선두에 섰다고 미화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그가 그 누구보다 땅에 발딛고 서기를 원했고,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려 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우리가 권문석을 그 무엇보다 사회운동가로 부른 것은 이 때문이다. 과거에는 세상의 변화를 추구한 것이 사회운동가였다면, 우리 시대에는 그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하는 게 사회운동가의 운명이 되었다. 그것은 위기라는 말 뜻 그대로 익숙한 것과 결별하는 일이다.

사회운동가 권문석은 기본소득이라는 의제와 알바 노동이라는 형태에서 스스로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꿀 어떤 것을 찾아내려고 했다. 기본소득이 모두에게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사람들의 내적 힘을 형성하고, 이것이 다시 변화의 원동력이 되도록 만드는 장기적인 프로젝트라면, 알바 노동의 가시화는 변화하는 우리의 노동 현실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이들이 목소리를 내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가리키려는 시도였다. 이런 이유로 오늘의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권문석이라는 주춧돌 위에 서 있다.

시간이 흘러 그가 내세운 의제, 그가 개척하고자 한 활동이 조금씩이나 의미 있는 것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가 우리가 함께 있었다면, 단두대로 가면서 <두 도시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인 시드니 카턴이 했던 말을 반복했을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은 내가 지금껏 했던 어떤 일보다 훨씬 더 나은 일이라네.”

하지만 그가 했던 가장 나은 일은 끊임없이 익숙한 것도 결별하는 것, 낯선 것과 마주하는 일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를 사회운동가라 부르며, 그렇기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그런 그를 떠나보낸 자의 몫이 되리라.

2019년 5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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