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기후정의를 향한 기본소득

2022년 9월 24일 기후정의행진에 대한 논평

기후 변화가 기후 위기로 그리고 기후 재난으로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지금, 우리는 그래도 아직은 시간이 남아 있다는 희망으로 기후정의행진에 나선다. 오는 9월 24일 서울에서 “기후 위기를 초래한 현 체제에 맞서고, 다른 세계로의 전환을 향한 가치이자 방향타”인 기후정의를 내걸고, 우리 모두의 발걸음을 내딛고자 한다.

기후정의는 기후 위기가 불평등한 정치적, 경제적, 지역적, 사회적, 문화적 권력 관계에 의해 초래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 따라서 지금 나와 있는 녹색성장이나 탄소중립 정책은 미봉책일 뿐만 아니라 사실은 지금까지의 불평등한 체제를 재생산하는 일에 불과하다. 기후정의는 기후 위기에 가장 책임이 적은 사람과 지역이 기후 재난의 가장 큰 충격을 받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 이를 바로잡지 않는 어떤 대책이나 대안도 기후 부정의이거나 불가능하다. 한 마디로 기후정의는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는 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후정의가 사회 정의의 문제이고, 체제 전환의 지향이라고 한다면, 기후정의는 우리 모두의 목소리와 에너지가 모일 때만 가능할 것이다. 9월 24일 기후정의행진은 바로 이를 위한 또 하나의 출발이다. ‘9월 기후정의행동 조직위원회’로 함께하는 180여 개 단체 및 ‘추진위원’으로 함께할 개인들은 저마다의 목소리와 몸짓으로 기후정의와 체제 전환의 길에 나서고자 한다.

기후정의를 향한 목소리 가운데 하나인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오래전부터 사회적 전환과 생태적 전환이 하나의 과제이며, 이 속에서 기본소득이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은 공유부에 대해 모두가 가지고 있는 몫을 분배하는 것이기에 정당할 뿐만 아니라 불평등을 해소하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다. 공유부에 기초하고 있는 기본소득은 우리 모두의 것에 대한 감각을 강화하기에 모든 존재의 관계를 존중한다.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시장 노동과 관계없이 일정한 소득을 보장하기에 무분별하고 의미 없는 성장의 추구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기본소득은 기존의 불평등한 권력관계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물론 기본소득이 현금으로 지급되는 것이라는 점, 재원을 어떤 방식으로 마련하는가에 따라 앞서 말한 것과는 다른 효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 등의 쟁점이 있다. 특히 급진적인 ‘체제 전환’을 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회의와 거부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질문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체제 전환’이 무엇인가이다. 기후정의의 맥락에서 말하자면, 이윤이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고, 자연을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관계 속에 있는 어떤 것으로 바라보는 그런 체제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며 그 속에서 우리가 맺는 관계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지난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다양한 지향과 방식으로 체제를 전환하기 위해 노력했고, 또 체제 전환을 가로막는 힘들을 목격했다. 이 속에서 우리는 누렸던 승리와 환희보다 더 큰 패배와 좌절을 맛보기도 했다. 그러니 전환 자체에 회의를 가지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게다가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 약칭 TINA)라는 지독한 상황이 초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의 간계는 우리의 좌절이나 절망보다 더 큰 것이어서 체제 전환은 피할 수 없는 일, 우리가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되었다.

변화 앞에서 주저함을 표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곤 한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남아 있기를 원한다면,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합니다.” 수수께끼 같은 이 말은 이렇게 질문의 형식으로 바꾸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지키려는 것은 무엇인가, 지킬 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디까지 바꿀 수 있는가?

우리는 긴급한 과제인 기후 위기를 넘어서는 체제 전환을 이루기 위한 기후정의 행진에 나서면서 기본소득과 함께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바꾸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꾼 이후에 우리의 삶은 어떤 것인가, 거기서 기본소득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이의 존엄한 삶이며, 모든 존재가 합당한 가치를 누릴 수 있는 관계이다. 우리는 이를 가로막는 모든 권력관계를 바꾸기를 원한다. 우리는 과거의 체제 전환 시도가, 그 의도와 상관없이 또 다른 불평등한 관계를 재생산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앞에서 던진 질문은 또 다른 잿더미를 피하기 위해 우리가 우회할 수 없는 도전을 말한 것이다. 기본소득은 그저 생존할 수 있는 돈이 아니라 모두가 동등하게 그리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 앞에 놓인 기후정의라는 도전에 모두가 함께 책임지고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2022년 9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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