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효상 이사장의 새해 편지

2024년을 맞이하며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회원 여러분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루하루의 소중함 그리고 매일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느끼는 설렘을 생각하면 누군가 “나는 1월 1일이 싫다”라고 한 말이 이해가 됩니다. 그건 “정신에 울림이 없”는 데도 “한 해와 다음 해 사이에 단절이 있다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다”고 느끼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회원 여러분의 삶과 우리 네트워크의 활동이 12월 31일과 1월 1일을 기준으로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새해 인사를 나누면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것이 무망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쉽지 않았던 시간들을 돌아보고, 우리가 바라는 일이 바뀌지는 않았을지라도 이를 성취하기 위해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우리 뜻대로 돌아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끝이 어딜지 모를 정도로 타락한 인간사를 지켜보고 또 경험하게 될 줄은 저를 포함해 그 누구도 몰랐을 것입니다. 2023년은 그런 해였습니다. 가슴 아픈 일은 끝나지 않을 것 같고, 분노의 끝은 또 어디일지 모르는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또 회원 여러분과 함께 크고 작은 성취의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기본소득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이를 널리 알리고, 적절한 정책을 입안하는 일들을 우리는 꾸준히 해왔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월례 세미나, 계간 <기본소득>, 기본소득 상상 인터뷰 ‘파문’, 판동초 어린이 기본소득과 부산 청년기본소득 프로젝트에 관한 연구 등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22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를 무탈하게 진행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앞에 나서서 일을 해주신 분들만이 아니라 회원 여러분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2023년을 경과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처지를 깨닫기도 했습니다. 하나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상대적인 위치 변화입니다. 우리 네트워크가 한국 기본소득 운동의 전부였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기본소득이 현실정치적 의제가 되고,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기본소득 운동에서 우리 네트워크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역할을 재검토해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 네트워크가 회원 조직으로 변모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아니 세월이 흐르면서, 회원 조직으로서의 활동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일부 회원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우리 네트워크가 이제까지 많은 일들을 수행하고 여기까지 온 것은 물론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네트워크는 진보적인 시민운동 단체로서 회원들이 더 광범위하고 더 다양하게 참여할 수 있는 방식과 형태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모든 세대는 신과 등거리에 있다”라는 말처럼 2024년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과제를 제시합니다. 기본소득 의제뿐만 아니라 우리 민주주의와 사회 자체의 미래에 시금석이 될 수 있는 총선이 있습니다. 이제는 말 그대로 파격적인 노력으로 대처해야 할 기후변화가 있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단번에는 아닐지라도 우리의 삶을 여기저기서 바꿀 태세입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쟁점 가운데 하나인 불평등 문제가 나아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외에 무수히 많은 문제와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소득을 중요한 요소로 하는 사회적, 생태적 전환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지난 세기의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인 펠레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상대편이 보았을 때 그가 가장 두려웠던 때는 그라운드에서 가만히 있었을 때라고 합니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고 생각한 직후에 뭔가 대단한 플레이를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이 우리에게 그런 시간이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누구처럼 1월 1일을 그렇게 싫어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회원 여러분께 새로운 해가 그저 소중한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1월 2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
안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