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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공통감
이관형 / 반년간 《기본소득》 편집위원장
한나 아렌트는, 정신질환이 지성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공통감sensus communis; common sense’의 결여라고 본다. 공통감은 공동체의 존재를 전제하며 공동체를 통해서만 발휘되고 공동체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공동체 감각community sense’이라고도 한다.
그는 이 말을 칸트로부터 차용한다. 칸트는 인간에게는 5개의 감각 이외에 6번째 감각(육감)이 있으며 그것이 바로 공통감이라는 것이다. 공통감은 취미판단, 즉 ‘미를 판정하는 능력’과 결부된다. 미는 주관적 감정이지만 공통감이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자신이 느낀 아름다움을 전달·공유할 수가 있다.
아렌트는 취미판단이 주관적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전달할 수 있음에 주목한다. 그는 공통감을 취미판단이 아니라 정치판단에 적용한다. 미학을 정치학화한다. 공통감은 ‘역지사지’를 통해 ‘불편부당성’을 견지할 수 있도록 해주고 사태를 전체에서 조망할 수 있는 ‘확장된 사유방식’을 제공한다. 지적인 판단능력은 전 우주의 모든 지적 생명체에게 공통적일 것이지만 공통감은 이 땅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인간에게만 있다. 따라서 인간이 이룩한 문화에 기반한 감각, 문화적 감각이기도 하다.
아렌트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삶을 ‘정치적 삶’으로 본다. 정치적 삶이란 공동체에 참여하여 자기를 드러내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삶을 가리킨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능력 중에서, 정치판단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공통감을 중시한다.
공통감을 결여한 사람은 정치판단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우리는 지금 공통감을 결여한 엘리트의 광기가 어떻게 이 나라와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는지를 목도하고 있다. 그는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고 마침내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이 사회는 그를 칭찬했으며, 자기 자식들도 그가 나온 바로 그 학교 그 학과를 나와, 그가 9수 끝에 합격한 바로 그 시험을 통과하여 권력을 행사하는 바로 그 자리에 서기를 바라 마지 않았다. 거듭되는 인정과, 그 스펙 앞에 기꺼이 기가 죽는 사람들로부터 지금의 그가 탄생한다. 그는 역지사지를 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삶을 산다. 그는 늘 사람들보다 많은 말을 했지만 결코 제지받지 않았으며, 이런 경험의 누적을 통해 그는 자신이 언제나 옳다는 확신을 누적해왔다. 그는 교만과 독선의 맹목에 빠진다. 아렌트의 말대로라면 그는 환자다. 학벌주의와 능력주의가 만들어 낸 괴물이다.
피와 땀. 노고와 분투로 일궈온 삶의 기반과 자긍심이 무너져 내린다. 초현실인지 비현실인지 도대체 뭐가 뭔지 분간이 안 된다. “그래도 일상은 계속되(어야)겠지?” 계간에서 반년간으로 바뀐 이후 첫 번째 책이다. 기본소득의 5대 특징 중 하나인 보편성을 기획으로 다룬다. 복지, 동물권, 인공지능, 헌법과 관련하여 기본소득의 보편성 개념을 살펴본다. 문학 코너는 반년간으로 바뀌어도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낸다. 두 편의 짧은 소설과 두 편의 시가 마련된다. 이어 신진연구자의 박사학위 논문과 기본소득 관련 고전을 소개한다. 국내의 기본소득 연구 동향을 다루었고 해외동향 코너에는 2024년 BIEN대회 참관기를 수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