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글 |
공정담론에서 말하고 있지 않는 진실
백승호 / 계간 《기본소득》 편집위원장
공정 담론이 화두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진 상태에서 열심히 노력한 개인이 성공하거나, 정규직의 좋은 일자리를 가졌다면 그 결과는 정의로운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서 말하고 있지 않은 첫 번째 진실은 모두가 같은 선에서 출발하는 것이 가능한지의 문제다. 현재 세대의 출발선은 부모 세대의 결과적 불평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금수저는 환경이 좋은 조건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각종 공무원 시험이며, 대기업 공채에 합격할 확률이 높다. 이들은 안정적인 내부자 노동시장에 진입하게 된다. 반면에 흙수저는 좋지 못한 환경에서 태어나, 양질의 교육에서 배제되고, 생계형 아르바이트나 인턴 등을 거쳐 불안정한 외부자 노동시장에 진입할 확률이 높다.
이렇게 부모의 경제적 지위에서 오는 혜택을 물려받아서 공정한 과정을 거쳐 성공했다면 그것이 공정한 게임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물론 누구에게나 기회는 평등해야 하고, 과정은 공정해야 하며, 그 결과가 인정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출발선에서의 격차라는 구조적 불평등을 도외시한 공정한 과정과 결과의 불평등에 대한 인정 요구가 타당한지는 좀 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공정 담론에서 다루고 있지 않은 두 번째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공정의 결과로 얻어진 성과가 모두 자신의 노력으로만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섰고, 과정은 공정했다면 그 결과로서의 열매가 온전히 개인이나 기업의 몫이어야 할까? 답은 “아니오”다. 개인의 성과는 개인의 ‘노력’에 따라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집안 배경, 살아온 환경, 태어난 나라 등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 범주를 넘어서는 ‘환경적 요인’이 개인의 성과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은 상식이다. ‘운칠기삼’이라는 속담은 이러한 통념을 잘 설명해준다.
기본소득론에서는 이를 ‘공유부’ 개념으로 설명한다. 공유부는 개인이나 기업의 노력과 무관하게, 공유자산을 활용해 얻은 수익이다. 토지와 같은 자연적 공유자산, 지식과 같은 역사적 공유자산, 빅데이터와 같은 인공적 공유자산의 몫이 개인이나 기업이 벌어들인 소득에 녹아있다. 이러한 공유부를 모두 개인이나 기업의 노력으로만 간주하고 이들이 독점한다면 이 역시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모두의 몫은 모두에게 돌려주는 것이 정의에 부합한다. 기회의 불평등을 주장하는 공정성 담론에 결과의 불평등을 시정할 수 있는 공유부 배당에 대한 논의가 추가되어야 한다.
이번 호 이 계절의 이슈에서 강남훈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님은 지식 공유부에 대한 과세 방안으로 시민 소득세를, 오준호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비서관님은 논점 코너에서 데이터세의 쟁점을 다룬다. 그리고 이승철 서울대학교 교수님은 대안적 사회운동의 정당성을 판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바로 공유부 배당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화제의 인물에서도 제주도 공동자원 연구팀의 이재섭님에 대한 인터뷰를 통해 공유부 배당 기본소득의 의미를 살펴보고 있다.
이번 호 이 계절의 이슈에서는 기본소득과 노동을 주제로 다루었다. 라이더유니온의 박정훈 위원장님은 기본소득과 노동운동의 전략적 결합을 역설하였다. 최광은 박사님은 기본소득과 새로운 노동의 미래를 상상하기 위한 과제들을 제시해주고 있다. 문학 코너에는 도종환, 박준, 구병모, 박형서, 신경숙님께서 소중한 글을 보내주셨고, 동향 코너에서는 경기도 기본소득박람회, 농촌기본소득실험, 스톡턴시의 기본소득 실험이 소개되었다.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와 『이럿타로 경제에 눈뜨다』에 대해서 진형익님이, 『기본소득과 좌파』와 『기본소득과 주권화폐』에 대해서 안현효 교수님이 서평을 보내주셨다. 이 외에도 소중한 글들을 보내주신, 전우용, 어진수, 조현진, 김현탁, 조민서, 이다은님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도 슬픈 소식으로 마무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주 화평교회에서 기본소득을 선도적으로 실천해 오셨던 이영재 목사님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제 먼 발치에서라도 대한민국의 기본소득이 실현되는 날을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