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글 |
기본소득이 건네준 선물들
백승호 / 계간 《기본소득》 편집위원장
허시먼Hirshmann은 기본소득과 같은 새로운 제도들이 도입되려 할 때, 새로운 제도를 탐탁지 않게 보는 사람들이 언제나 세 가지 과도한 비판을 제기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첫째는 재정적 이유 등으로 도입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냉소, 둘째는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근거 없는 비난, 셋째는 사회를 유지하는 중요한 목표와 제도들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는 근거 없는 왜곡이 그것이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세 가지 전형적인 비난들의 폭풍우를 경험하고 있다. 이는 기본소득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기본소득에 대한 냉소, 비난, 왜곡은 그 허구성이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 이는 경기도 청년 기본소득, 긴급재난지원금, 어린이 기본소득 등과 같이 현실세계로 내려앉은 기본소득이 건네주고 있는 선물들 덕분이다. 이번 호 계간 《기본소득》에는 이러한 선물들이 많이 담겨있다.
우선 ‘화제의 인물’ 코너에 강환욱 선생님의 감동적인 선물 보따리가 펼쳐진다. 강환욱 선생님은 판동초등학교의 어린이 기본소득 실험을 이끌어오셨다. 기본소득은 판동초 어린이들에게 안정감, 자율성, 책임감을 선물로 주고 있었다. 어린이들에게 가능했던 기본소득이 준 선물이 어른들에게는 불가능할까? 또 한 분의 화재의 인물로 기본소득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셨던 신지혜 후보가 소개되었다. 양대정당 중심의 어려운 선거국도 속에서 4가지 기본소득을 담은 서울형 기본소득과 7가지 ‘기본 서울’ 공약으로 한국사회 미래 정치의 당당함을 신지혜 후보는 보여주었다.
‘문학’ 코너에서는 김인숙님의 ‘황제의 식탁’, 강화길님의 ‘휴가’, 신경숙님의 연재소설 ‘봉인된 시간 4회’, ‘동향’ 코너에서는 충북지역 안내 중학교의 기본소득 실험에서의 선물들을 확인할 수 있다. “기본소득은 용돈과 달라서 누군가에게 대접할 수 있었다”, “집에서도 아빠와 할머니에게 대접하고 돈을 사용하면서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기본소득이야말로 공감과 연대의 밑바탕이다”. 안내중 기본소득 실험은 짧은 실험이었지만 중학생들에게도 큰 선물이었다. 윤형중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정책위원님이 소개해주신 장고도의 어촌 기본소득, 경기도에서 실시 예정인 농촌기본소득 실험이 가져다줄 선물도 기대가 된다. ‘함께 만들어가는 기본소득’ 코너에서 고미숙 고전평론가님이 소개한 감이당의 청년펀드는 청년과 중년을 연결하는 ‘인생의 길벗’을 기본소득이 선물로 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호에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이 계절의 이슈’로 특별하게 주목했다. 지금도 매일 5.5명의 노동자들이 산재로 허망하게 세상을 등지고 있다. 우리가 그토록 무서워하고 있는 코로나 사망자수보다 많지만, 산재사망은 우리의 관심 밖에 있다. 생존 노동에 내몰릴 수 밖에 없는 이들에게 충분한 기본소득이 주어졌다면 죽음이 아닌 다른 선택이 가능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번 호부터는 ‘논점’, ‘함께 만들어가는 기본소득’, ‘기본소득의 새로운 지평’ 코너가 신설되었다. ‘논점’ 코너에서는 기본소득과 관련된 주요 논점들을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이번 호에서는 복지국가가 지향하는 사회권을 둘러싼 논점, 재정건전성론의 허구성, 지역화폐를 둘러싼 논쟁, 서울형 기본소득 제안을 다루고 있다.
‘함께 만들어가는 기본소득’ 코너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기본소득을 바라보는 시선들을 다채롭게 다루고 있다. 고미숙 고전평론가님은 중년들의 펀드가 청년들의 활동으로 순환되게 하는 세대간 연대모델인 감이당 청년펀드를 소개하면서, 기본소득이 노동에 올인하느라 하지 못했던 다양한 활동의 기초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계시다. 그리고 강석훈 목사님은 새로운 아이디어로서의 기본소득이 기존의 사회적 보호장치를 대신하는 수단이어서도 안 되며, 소비자본주의를 부추김으로써 생태를 파괴하는 수단이 되어서도 안되고, 모든 생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의 기초이어야 함을 담담하게 설명하신다.
‘기본소득의 새로운 지평’ 코너에서는 신진연구자들의 연구성과를 소개한다. 이번 호에서는 김주온 님의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 운동 연구, 진형익 님의 기본소득 도입가능성 연구가 소개되었다.
이번 호에는 슬픈 소식도 담겨 있다. 평생을 이 땅의 노동자와 민중을 위해 한 몸 바치신 고 백기완 선생님을 우리는 보내드려야 했다. 대학로를 쩌렁쩌렁 울리던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하다. 고인의 명목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