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글 |
다시 기본소득에
질문을 던진다
백승호 / 계간 《기본소득》 편집위원장
‘압축적 근대화’. 한국 사회의 발전을 설명하는 용어다. 경제도, 복지도 압축적으로 성장해왔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이 리스트에 기본소득도 포함되어야할 것 같다. 2009년 6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창립 이후 10여 년의 기본소득 운동. 소리 없는 아우성은 성남시 청년배당, 서울시 청년수당, 경기도 청년 기본소득으로 이어졌다, 전주 화평교회의 기본소득실험, 충북 보은 판동초등학교의 기본소득 실험 등 민간영역에서의 의미 있는 작은 실험들. 경기도 농민기본소득, 서초구 청년기본 소득 실험들. 그리고 2020년 5월 재난기본소득. ‘기본소득’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다양한 정책과 실험 소식들은 이제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기본소득 정당이 출범했고, 국민의 힘조차 정강정책 1호에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한계는 많지만 국회에서 발의된 기본소득 법안. 10년. 다시 갈 길도 멀고 넘어야 할 산도 높지만. 상전벽해라 해도 과장되지 않다.
그래서 지금이 중요하다. 다시. 기본소득에 질문을 던진다.
기본소득이 왜 정의로운가? 기본소득이 왜 필요한가? 모두가 기본소득을 이야기하는 시점에 우리가 지향해야하는 기본소득은 무엇인가? 1500도 쇳물이 끓는 용광로에 스러져가는 산재노동자들의 삶에 기본소득은 어떤 의미인가? 총알 배송이라는 구호 아래 야간노동, 새벽노동에 스러져간 청년 택배 노동자에게 기본소득은 어떤 의미인가?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온 돌봄의 공백 영역을 조용히 채우고 있는 여성들의 삶에 기본소득은 어떤 의미인가? 사회봉쇄 상황에서도 삶의 최일선 현장에서 필수적인 일들을 해내고 있는 필수 노동자들에게 기본소득은 어떤 의미인가?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 어르신께 기본소득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의 기본소득은 이런 수많은 질문들에 충분한 답을 가지고 있는가? 실질적 자유, 공화주의적 자유, 공유부 배당의 권리, 젠더평등, 협상력은 기본소득을 통해 우리의 삶에 녹아들어갈 수 있는가?
이제 저 멀리 상상 속 동화에나 존재할 것 같던 ‘기본소득’이 소리 소문 없이 우리 앞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다시. 어떤 기본소득을 우리가 실현해야할 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과 논의가 필요하다. 이번호 ‘기본소득과 나’에 글을 실어 주신 양다혜 선생님의 제목이 가슴에 와 닿는다. ‘나만의 해방이 아니라 수많은 우리들의 해방’을 위한 기본소득. 어느 누구의 지배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기본소득. 원래 모두의 것을 모두의 몫으로 돌리는기본소득. 올해 겨울. 이러한 기본소득들을 놓고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를 실현해보길 기대한다.
그리고 이번 호에는 늦었지만 김종철 선생님을 추모하는 장을 마련하였다. 고인의 큰 뜻을 기리기에 한 없이 부족하지만 고인이 만들고 싶어했던 세상을 깊이 되새기기 위함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몫은 고인이 꿈꾸어왔던 생태 – 기본소득 세상을 한발 더 앞당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