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글 |
권리와 욕구,
두 날개로 날아온
복지국가
백승호 / 계간 《기본소득》 편집위원장
코로나19로 인한 재난 상황은 한국 복지국가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임시일용직, 시간제 근로자, 플랫폼 노동자, 특수형태고용종사자, 영세자영업자, 실업자, 여성, 청년, 일하는 노인 등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형태의 불안정 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사회적 안전망에서 배제되어 생존의 위기에 직면하였다. 중산층 이상의 안정적인 지위에 있던 사람들의 공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은 대한민국 시민 모두에게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다. 일회성이었고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국가가 일차적인 소득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민들은 실감하였다.
동시에 긴급재난지원금은 미래 한국사회의 미래 복지국가를 어떻게 설계할지에 대한 치열한 논쟁에 불을 붙였다. 기본소득 관련 논쟁이 그것이다. 기본소득 논쟁이 긍정적으로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기본소득이 기존의 복지를 대체한다거나, 저소득층의 현금급여를 전체 시민에게 1/n로 나누는 기획이라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사실을 왜곡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재원을 낭비할 것이고, 소득재분배 효과도 없다는 근거 없는 주장 등이 무분별하게 개진되면서 다소 소모적인 논쟁도 있었다. 특히 기본소득이 예산 제약으로 불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은 ‘복지확대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논리로 활용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뺄셈이나 나눗셈이 아니고 덧셈이다. 기본소득은 기존의 사회안전망에 모든 시민들이 발 딛고 설 수 있는 튼튼한 마루 바닥을 더하는 것이고, 공유부 배당의 권리를 욕구 중심의 복지국가에 더하는 기획이다. 기존의 복지국가는 빈곤, 실업, 질병, 노령 등의 사회적 위험에서 발생하는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기획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기획으로 이어졌다. 복지국가의 역사 속에서 노동계급이 권력 자원을 동원하여 추구했던 것이 바로 권리로서의 복지국가 실현이었다.
복지국가는 욕구와 권리라는 두 가지 원리로 날아온 것이다. 욕구의 존재 여부에 대한 판단은 주로 자산조사와 사회보험료 기여 수준에 기초하며, 자유주의 및 보수주의 복지체제에서 강조되는 복지국가의 원리에 해당한다. 반면에 권리는 욕구와 무관하게 모든 시민에게 부여되며, 사회민주주의 복지체제에서 강조되는 복지국가의 원리에 해당한다.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복지체제는 시민들을 수급자와 납세자로 나누는 강한 이중화, 노동시장에서의 소득 계층 차이가 사회보험료 기여 및 급여 수준에도 반영되는 강한 계층화를 특징으로 한다. 반면에 욕구와 권리가 조화를 이룬 사민주의 복지체제는 높은 수준의 탈상품화와 낮은 수준의 계층화를 보여준다. 복지의 원리로서 욕구만을 강조하는 기본소득 비판론이 지향하는 세계는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결합된 강한 계층화 사회라 할 수 있다.
한국 복지국가는 욕구 중심 복지국가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는 강한 낙인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사회보험을 통해서 그대로 재생산된다. 사회적 연대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복지 수급자와 납세자 사이의 갈등 관계가 형성되어 복지예산의 크기를 키우는 데도 한계가 있다. 한국 복지국가의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그 방향은 해방적 기본소득의 실현이다. 이번 계간 《기본소득》 여름호에서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지향하는 해방적 기본소득이 무엇인지를 핵심적으로 다루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