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002 | 2019 가을

|머리글 |

이 폐허를,
그리고 ‘그 폐허 속의 우리’를
응시하라

류보선 / 계간 <기본소득> 편집위원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세상에 닻을 올린 지 올해로 10년이다. 흔히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물론 그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출범한 이후 지난 10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기본소득 운동의 확산세는 거침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있다. 10년 전만 해도 기본소득은 유쾌하기는 하나 전혀 현실성 없는 상상이었다. 아니 현실성이 너무 없어서 아무 부담 없이 농담처럼 받아들일 수 있었던 몽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달라져도 많이 달라졌다.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 운동은, 기본소득 운동이 꿈꾸는 바처럼 세상을 아직 바꾸지는 못했지만, 숨막히는 세상을 숨 쉬게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빠르게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10년 동안 고집스럽게 ‘기본소득이 온다’라고 외친 노력의 결과 기본소득은 우리 앞에 저만큼 성큼 다가와 있다.

지난 10년간 이루어진 기본소득 운동의 발전은,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면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내적 역량의 성숙과 실천의 결과 외에 또 다른 요인이 작동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10년간의 지구 전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큰 변화가 그것이다. 지난 10년간 지구 전체는 굳이 ‘파멸 전야’(노엄 촘스키) ‘임박한 파국’(슬라보예 지젝)이라는 진단을 빌지 않더라도 점점 더 극한 상황 혹은 한계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중 특히 부의 불평등 문제는 치명적이다. 아니 치명적인 부의 불평등 문제가 지구 전체를 ‘파멸 전야’로 몰아가고 있다고 해야 한다. 여기에 이미 도래한 제 4차 산업혁명은 지금 이대로 질주한다면 이미 심각한 부의 불평등 문제를 더욱더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심화시킬 것으로 예견되는 상황이다. 뿐인가. 오로지 이윤추구라는 자본주의적 가언명령은 지구 자체의 지속가능성마저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기후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지금 이대로라면 지구의 운명 전체는 말 그대로 위독한 상황이다. 이러한 극한 상황이 지구의 구성원들에게 인류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염원하게 했고 덕분에 기본소득 운동에 대한 관심도 폭발적으로 고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기본소득 운동 역사상 기본소득에 대한 공감대가 가장 견고해진 오늘날의 상황에 대해 우리가 마냥 반가워할 수 없는 사정도 여기에 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지난 10년 동안 기본소득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정 하나로 숨 가쁘게 달려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턴 열정과 더불어 보다 많은 것이 필요해 보인다. 현재의 지구적 상황에서, 그리고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기본소득 운동이 지니는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고 그만큼 현재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에 주어진 임무가 막중해진 까닭이다. 현재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앞에는 냉정하고도 치밀한 현실 분석과 구체적이면서도 보편적인 프로그램의 발명을 통해 기본소득을 현실화시켜야 하는 큰 과제가 놓여 있다.

현재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무엇보다 냉철한 자기응시를 해야 하는 것은 그러므로 단순히 올해가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창립 10주년을 맞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10년을 질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10년을 질주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가 더 막중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점검해야 한다. 우리가 정말로 미래적 징후까지 포함하여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증상들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있는 건지, 그리고 그 병증을 치유할 궁극의 처방으로 판단한 기본소득이 여전히 바람직한 처방인지, 궁극의 처방이라 하더라도 어떤 프로세스를 밟아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혹시 병행할 처치 수단은 없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기본소득 운동에 있어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위상과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에 관한 질문까지 모두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거기에 덧붙여 그간 10년 동안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걸어왔던 길에 대한 차가운 자기평가도 필요하다. 10년 동안 있었던 과잉과 과소를 냉철하게 분석하는 한편 그것들을 길항시켜 보다 높은 수준의 내적 역량을 갖출 때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진정으로 기본소득을 제도화, 현실화시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감이 있지만 현재 인류 전체는 결정적인 시기에 놓여 있고, 바로 그 때문에 기본소득 운동 역시 결정적인 시기를 경과하고 있다. 인류가 벼랑을 눈앞에 두고도 무작정 질주하는 이 결정적인 시기에 기본소득 운동이 바람직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는 많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되도록 시행착오를 줄여야 하고, 매 시기 마주할 갈림길에서 거의 매번 바람직한 선택들을 해야 한다. 냉철한 현실 분석과 더불어 그에 못지않은 자기응시가 필요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서두가 지나치게 길었다. 하지만 간단한 이야기였다. 이번 호의 화두가 ‘자기응시’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이번 호는 10주년을 맞은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지난날과 오늘날을 되짚어보는 것에 주로 초점을 맞췄고, 각각의 글이 그 취지에 맞게 밀도가 높다. 모두가 정독할 만한 글이며, 이번 호의 글을 정독하면 기본소득 운동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맥락적 이해에 이를 수 있다. 먼저 이번 호의 기획 좌담을 주목해주기 바란다. ‘BIKN 10년을 돌아보며’라는 제목으로 꾸려진 이 담론의 향연에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아니 한국에서의 기본소득 운동을 이끈 실질적인 주역들인 강남훈, 곽노완, 금민, 박선미, 백승호, 서정희, 안효상, 조성희 제씨가 모두 한 무대에 올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기원과 탄생 과정과 진화 과정, 그리고 미래의 방향까지가 있었던 데에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치열한 시행착오가 큰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시행착오를 처음부터 혹은 최근 들어, 지근거리에서 혹은 멀리서 지켜봐 준 이들의 차가운 응원과 뜨거운 비판이 결정적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분들이 이번에도 그 쉽지 않은 일을 한 번 더 해주었다. 유승희, 이기호, 장시정, 최광은 네 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계간 『기본소득』의 고정 코너들 역시 읽을거리가 풍부하다. 이번 호 [화제의 인물]에서는 7개의 지부 중 가장 역동적인 활동을 보이고 있는 기본소득전북네트워크의 정우주 대표를 초대했다. 오로지 ‘의사의 길’을 걷던 그가 세월호 사건과 기본소득과 문득 조우한 후 좌고우면, 좌충우돌하면서 기본소득 운동가로 접어드는 과정과 지역에서 기본소득 운동가로 사는 고뇌가 흥미롭게 펼쳐져 있다. [문학] 코너에는 정끝별 씨와 박상영 씨가 감탄을 넘어 감동을 자아내는 시와 에세이를 보내주었다. [현장스케치] 코너에서는 우선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박선미 사무국장이 올해 인도 하이데라바드에서 열린 제 19차 기본소득세계네트워크 대회의 풍경을 ‘돌봄’ ‘기본소득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의 목소리’라는 키워드로 스케치해주었고, [학술동향]에서는 젊은 신예 학자인 김지선, 고태은 씨가 기본소득과 젠더정의에 관한 논의들이 현재 어느 방향에서 어느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짚어주었다. 그리고 [해외동향」에서는 이건민 씨가 미국, 캐나다, 유럽, 인도 등에서 벌어지고 기본소득과 관련된 그야말로 최신의 동향을 세계 기본소득 운동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소개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번 호의 대미를 장식하는 두 글도 끝까지 읽어주길 바란다. [기본소득과 나]에는 올해 시행된 경기도 청년기본소득을 직접 경험한 이태현 씨가 청년기본소득을 경험하기 전, 후를 비교해가며 기본소득이 가져온 변화를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고, [친절한 교성 씨의 기본소득 QnA]에서는 다양한 유사제도들의 출몰하면서 그 경계가 애매해지고 그 참의미가 훼손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확한 의미의 기본소득’을 다시 정의하고 있다.

운 좋게도 이번 호에 실린 글들을 먼저 읽었다. 읽고 나서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다.

감히 말하건대, 미래는 벌써 우리 곁에 와 있고, 그 미래를 향한 우리의 또 다른 첫걸음도 이미 시작되었다.

** 이 글의 제목은 레베카 솔닛 지음, 정혜영 옮김, 『이 폐허를 응시하라』(도서출판 팬타그램, 2012년)에서 따왔다.

머리글

이 폐허를, 그리고 ‘그 폐허 속의 우리’를 응시하라  _류보선

이 계절의 이슈: 기본소득 되돌아보기

기획 1. 좌담: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10년의 역사 돌아보기
기획 2. 기본소득운동 10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에 바란다
_ 유승희(국회의원), 장시정(기본소득인천네트워크 운영위원), 최광은(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전 운영위원), 이기호(소설가)

화제의 인물 인터뷰 

[정우주 기본소득전북네트워크 대표]  중증의 한국 사회, 기본소득을 처방합니다  _인터뷰어 류보선

문학

[시] 가을장마  _정끝별
[꽁트] 최저시급의 일생  _박상영

류보선의 종횡무진 기본소득 2

웅크린 나눔의 꿈과 진화하는 적들, 그리고 기본소득이라는 ‘적정 정치경제학’(?)  _류보선

동향

[학술 동향] 젠더와 기본소득 논의 리뷰  _김지선, 고태은
[현장스케치] 인도에서 열린 2019년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 아주 주관적인 참관기  _박선미
[해외 동향] 기본소득 해외 동향  _이건민

특별기고

장애인 소득보장의 원칙과 구상, 그리고 장애인이 기본소득운동에 앞장서야 하는 이유  _김찬휘

기본소득과 나

단비처럼 찾아온 기본소득  _이태현

친절한 교성 씨의 기본소득 QnA

기본소득이란?  _김교성

Basic Income Magazine

| 발행일: 2019년 10월 20일
| 발행처: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 편집위원장: 백승호
| 편집위원: 김교성, 류보선, 서정희, 이관형
| 편집디자인: 사과나무
|기본소득: Online ISSN 2733-8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