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한국에서 처음으로 기본소득이 도입되다
김태호 (<시대> 발행인)
우여곡절
2018년 2월 28일, 국회에서 「아동수당법」이 통과되었다. 2018년 9월부터 시행하기로 된 이 법의 주요 내용은 6세 미만의 아동에게 매월 10만원의 아동수당을 지급하되 가구의 경제적 수준이 2인 이상 전체 가구의 100분의 90 수준 이하이어야 수급 자격이 있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약간의 예외는 있지만 대체로 볼 때 10% 안에 드는 부자를 제외한 가구에게 아동수당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이 법이 통과되던 때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2018년 7월부터 6세 미만 아동이 있는 모든 가구에 월 10만 원을 지급한다고 공약한 바 있었다.
아동수당에는 찬성하지만 선별하여 지급하겠다는 발상에는 반대하는 목소리는 법안을 협의하던 시절부터 있었다. 소득을 기준으로 선별 지급될 경우 사회 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참여연대)는 비판도 있었고, 그렇게 되면 보편적 사회수당으로서의 아동수당의 의미가 훼손될 것이며 선별하는 행정이 만만치 않을 것(‘내가만드는복지국가’)이라고도 했다.
많은 사람이 학교 무상 급식이 도입될 때의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급식을 모든 학생에게 무상으로 할 것이냐 아니면 경제적으로 넉넉한 학생에게는 유상으로 할 것이냐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자신의 처지가 어렵다는 것을 입증하는 절차를 밟도록 하면서 모멸감을 주면 안 된다는 논리와 갑부의 자식들에게까지 왜 거저 주느냐는 논리가 맞붙었다. 전면적 무상 급식에 반대하던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결국 이 문제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사퇴하게 되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조금씩 범위가 다르기는 하지만, 전면적 무상 급식은 지금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아동수당 제도가 처음 시행되는 2018년 9월을 기준으로 대상이 되는 아동이 243만 명이지만 2018년 6월부터 8월 29일까지의 신청자는 222만 명이었다. 8.4%의 대상자가 신청조차 하지 않은 것은 몰랐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수급권자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번거로웠기 때문일 수도 있고, 소득과 재산 등이 드러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뜻밖의 방식으로 해결됐다. 2019년 1월 15일, 국회에서 2018년의 「아동수당법」이 개정됐다. “경제적 수준”이라고 명시되어 있던 재산이나 소득에 따른 자격도 없어졌다. 게다가 연령 자격이 “6세 미만”에서 “7세 미만”으로 확대되었고, 액수는 그대로 “매월 10만원”이었다. 이 법은 얼마 후인 4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100% 지급에 반대했던 정당의 대표는 “갑자기 안 변하고 언제 변하냐”라는 말로 1년 전과의 태도 변화를 설명했다.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기본소득이 도입된 사건이었다.
부분 기본소득
“자격 심사 없이 모든 사람에게, 개인 단위로, 노동 요구 없이 무조건 전달되는 정기적인 현금 지급.” 이것이 현재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가 정의하는 기본소득이다. 이 정의에는 수급권자가 가구 단위가 아니라 개인 단위라는 ‘개별성’, 자격 심사 없이 모두에게 지급된다는 ‘보편성’, 수급의 대가로 노동이나 구직 활동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무조건성’, 한 번만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는 ‘정기성’, 마지막으로 ‘현금 지급’ 등의 원칙이 담겨 있다.
2019년 4월부터 시행될 아동수당에서는 “수급권자”가 “7세 미만”이므로 현실적으로는 그 “보호자”에게 수당이 지급될 것이지만, 이 아동수당은 위의 원칙과 정의에 비추어 볼 때 기본소득이라 할 수 있다. 드디어 한국에서 기본소득이 시행되는 것이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물론 “모두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을 원한다. 하지만 당장 그럴 수 없다고 한다면 가능한 수준에서 특정한 집단부터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고, 위의 다섯 가지 원칙이 지켜진 그러한 기본소득은 “부분 기본소득”이라 부른다. 따라서 2019년 4월 이후의 한국의 아동수당은 대한민국 최초의 부분 기본소득인 것이다.
어떤 집단을 부분 기본소득의 수급권자로 정할 것이냐, 말하자면 어떤 집단부터 부분 기본소득을 지급할 것이냐를 결정할 때의 기준은 위에서 말한 기본소득의 정의와 원칙들에 위배되면 안 될 것이다. 그 기준은 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생물학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연령과 성별이 있다. 그런데 성별에 따라 기본소득 수급권(또는 ‘금액’)에 차이가 생기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기에, 남는 것은 연령뿐이다.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모델을 수립할 때에도, 연령에 따라 금액의 차이를 두는 경우가 있다.
현금
아동수당 시행과 관련되어 경기도 성남시에서 벌어진 특별한 일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최초의 「아동수당법」이 통과는 되었으나 시행되지는 않은 시점인 2018년 7월에 은수미 경기도 성남시장은 ‘지역화폐와 연계한 만 6세 미만 아동 100%에게 지급되는 아동수당’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후보 시절의 공약이기도 한 내용이었다. 소득에 따라 수급권을 정하지 않고 모두에게 지급하겠다는 내용이 한 축이라라면, 다른 한 축은 아동수당을 지역 경제 활성화와 연계하겠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성남시에서는 법으로 정한 액수보다 1만 원을 더 주겠다고도 했다.
여기서 “지역화폐”라는 것은 성남에서만 통용되는 상품권을 말하는 것이고, 수당을 상품권으로 지급하는 것은 이재명 성남시장 시절부터 있어 온 일이다. “성남시 청년배당”이 그랬다. 3년 이상 성남시에 거주한 24세 주민에게 분기마다 125,000원 가치의 ‘성남사랑상품권’이 지급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본지(당시는 『월간 좌파』)의 다른 글(2016년 10월호에 실린 「청년과 희망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체단체의 힘겨루기」)에서도 다룬 바 있는데, 수급권자가 신분증을 들고 관청을 찾아 직접 상품권을 수령해야 하는 것과 그 상품권이 성남시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어서 요즘 청년들의 소비 패턴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시장 시절의 청년배당은 성남시만의 정책이었지만, 은수미 시장이 집행해야 하는 아동수당은 국회를 통과한 법률에 따라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것이었다. 다른 지역처럼 현금이 계좌로 이체되지 않자, 성남시의 아동수당 수급권자(의 보호자)들이 반발했다. “성남시 아동수당 지역화폐 지급 철회 요망”이라는 청와대 청원이 2018년 6월 27일부터 시작되었다. 나아가 “은수미 의원의 월급을 지역 상품권으로 지급하라”는 내용의 청원도 등장했다. (청원을 설명하는 글에서는 “시장”으로 설명되어 있지만 제목에는 “의원”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청원을 올린 사람이 매우 흥분된 상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저귀와 유아용품은 동네 가게보다 온라인 쇼핑몰이 더 싼데 왜 굳이 성남의 가게에서 사야 하냐는 항의가 담긴 청원이었다.
성남시는 꿋꿋했다. 2019년 1월, 성남시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10만원에 시 예산 2만원을 더한 아동수당을 지역 상품권으로 지급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현재 이를 시행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현금으로 지급되어야 한다. 지난해 말 경기도의회를 통과한 경기도의 청년배당이 과거 성남시의 청년배당이나 현재 성남시의 아동수당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을까?
기본소득인가 사회수당인가?
앞서 보았듯이,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같은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최초의 「아동수당법」에 반대했다. 한국에서 복지국가 건설을 목표로 활동하는 곳으로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가장 대표적일 것인데, 이 단체 역시 2018년 그 법이 통과될 즈음을 전후하여 수급 대상자 선별에 반대하며 “보편적” 아동수당의 실시를 주장했다. 이들은 “보편적 복지”를 강조한다. 그래서인지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앞서 말한 은수미 성남시장의 독특한 아동수당 시행 방침을 지지하며 「성남시의 선도적인 ‘보편적’ 아동수당 도입을 환영한다」(2018년 7월 5일)라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아동수당이 상품권으로 지급되는 것은 문제도 아닌 듯 언급이 없는 성명이었다. (이 성명서에 담긴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출신인 은수미 성남시장”이라는 호칭과 곧 이어 등장하는 “우리는 지방정부의 이런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라는 입장이 부디 관련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본지는 오래 전에 「가짜 기본소득과 진짜 기본소득운동」(『월간 좌파』 2017년 5월호)에서 이 단체에 대해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 글은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기본소득에 대한 오해(또는 곡해)를 확인하려 했고 둘 사이의 DNA 차이를 드러내려 했다.
“보편적 아동수당”이라 부르든 “부분 기본소득”이라 부르든, 2019년 4월부터 연령이라는 생물학적 자격 이외에 다른 자격을 심사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지급될 것인 아동수당은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사람이든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사람이든 모두 환영할 만한 일이다. 최근 논란이 된 서울 중구의 어르신수당 같은 노인수당 또는 노인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두 집단의 의견은 같을 것으로 보인다. 복지국가 지지 진영과 기본소득 지지 진영 사이에 차이가 드러난다면, 노동할 능력이 있는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도 사회(또는 국가)가 수당(또는 기본소득)을 보편적으로 지급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마주할 때일 것이다.
이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이상이 공동대표가 아동수당이 논란이던 2017년 말과 2018년 초에 발표한 글(「‘보편적’ 아동수당을 요구하는 이유」, 「보편적 아동수당 반대하는 한국당의 자가당착」)에서 “선별적 복지”와 구별되는 “보편적 복지”의 특징을 설명하는 곳에서 잘 나타나 있다.
보편적 복지는 생애 주기에 걸쳐 국민 누구라도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제도적으로 도와주는 것이다. 이는 자산 조사를 통해 가난한 일부 국민만을 선별하는 선별적 복지와 구분되는 개념이다. 구체적으로 보편적 복지는 국민 모두에게 일생에 걸쳐 소득과 사회서비스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말한다. 여기서 소득을 보장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런데 삶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각종 위험 때문에 불가피하게 소득이 단절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소득 단절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제도가 사회보험이다.
…… 산재보험 …… 고용보험 …… 질병보험 ……국민연금. …… 4대 사회보험
그런데 문제는 애초부터 일을 할 수 없는 조건에 처해 있는 사람들은 사회보험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가령, 아동이나 장애인 또는 노인이 여기에 속한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위한 공적 소득 보장 제도가 필요하게 된다. 바로 사회수당이다. 사회수당은 애초 근로소득을 얻기 어려운 일정한 특성을 공유한 사람들, 가령 아동, 장애인, 노인 등을 대상으로 정부가 보편주의 원칙에 따라 모두에게 매달 일정 금액을 지원하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는 기본소득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만 기본소득을 강력히 반대하는 논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당장 보편적 복지 지지자들과 협력하지 않고 기본소득으로 갈 길을 마련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400명의 청년에게 2년 동안 매달 50만 원을 지급하는 사업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하자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복지국가 지지자들의 입장은 아직 확인할 수 없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과거처럼 구직수당의 변형이 아닌 조건 없는 청년수당이기를 바라고 청년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기본소득으로 나아가는 전망이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발표했다([논평] 서울시의 이른바 ‘조건 없는 청년수당’에 대하여: 기본소득의 시각 ).
어쨌든 2019년 4월부터 한국에서 아동수당이라는 이름으로 부분 기본소득 또는 보편적 복지가 시행되는 것은 축하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