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018년 기본소득 연합학술대회 7세션 “농민기본소득”
이건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2018년 기본소득 연합학술대회 7세션의 주제어는 ‘농민기본소득’이다. 공익농민 기본소득제 실행모델을 제안하고(발표 1), 농민기본소득제의 추진 현황과 과제를 점검하는(발표 2) 순서로 진행되었다. 사회는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금민 소장이 맡았다.
발표 1. 농촌지역사회 재생을 위한 ‘공익농민 기본소득제’ 실행 모델 연구(정기석)
정기석 마을연구소 소장은 공익농민과 기본소득 개념을 결합하여 개발한 ‘공익농민 기본소득제’ 실행 모델을 제안하였다. 기본소득제 같은 혁신적인 정책을 단기에, 일시에, 혁명적으로 단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하에, 발표자는 점진적, 순차적 추진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구체적인 제안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단계에서 1안으로는 청장년 10만명에게 5년 이상 150만원씩 월급을 지급하는 ‘청년 공익영농요원제’로 시작한다. 아울러 1안과는 독립적으로, 또는 병행하는 2안으로 특정 지역단위(광역지자체 또는 기초지자체)에서 일종의 시범사업으로 시행할 수 있다.
2단계에서는 소득별, 연령별 특정집단을 대상으로 범주형 기본소득제 방식의 ‘기초생활연금제’를 도입한다. 1안으로 소득인정액 하위 30%의 약 90만명의 농민에게 월 50만원씩을 지급하는 ‘영세농 기초생활연금제’를 시행한다. 65세 이상의 농민에게 지급하는 ‘고령농 기초생활연금제’도 2안으로 함께 고려할 수 있다.
본격적인 ‘공익농민 기본소득제’는 3단계에서 도입한다. 국가 단위로 확장해 모든 농민을 수혜대상으로 포괄한다. 2013년말 기준으로 보면 약 3백만명의 농민에게 월 50만원씩 무조건적으로 지급할 때 소요되는 연간 예산은 18조원 수준인데, 이는 농림수산식품분야의 총지출 연간 예산액에 상당한다.
발표자는 연간 13조원 이상의 기존 농업•농촌 분야 예산의 재정지출 구조의 혁신 외에, 농어촌특별세 전용 및 증세, 사회복지세 신설, 자유무역협정 무역이득공유제(또는 농업파괴무역 부당이득금 환수제) 도입 등으로 필요한 재원을 충분히 조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발표 2. 농민기본소득제 추진 현황 및 과제(박경철)
충남연구원의 박경철 박사는 농민기본소득제의 추진 현황과 과제를 발표하였다. 아래는 발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농민기본소득제(농민수당제) 논의가 대두한 배경으로는 산업화, 민주화, 개방화 과정에서 농업, 농촌, 농민이 심각하게 소외되었음을 지목할 수 있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와 농민의 소득 보전을 위해 정부에서 실시한 농업직불제와 각종 보조금 사업은 농가 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켜 왔으며, 이제는 농민의 ‘생존권’ 차원에서도 농민기본소득제(농민수당제) 도입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다양한 종류의 직접지불제가 존재하지만 농가소득 가운데 직접지불제의 비중은 매우 낮은 실정이다. 이는 농가 평균 경작면적이 약 1.5헥타르로 작다는 점, 그리고 농업직불금 지급체계에서 중복수혜가 어렵다는 점에 기인한다. 2013년 기준 농가소득 및 농업소득 대비 직접지불금 비중은 각각 2.7%와 9.2%에 그쳐, 대략 30%와 70% 이상인 유럽연합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직불금 수령이 매우 양극화되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점이다. 농업직불금이 면적 단위로 지급되다 보니 영세소농에게는 매우 불리한 구조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16년 국회 국정감사에 제출한 농업직불금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체 150만명 직불금 수령자 중 9.6%(14만명)인 대농•기업농(재배면적 2헥타르 이상)의 농가당 평균 직불금은 350만원인 반면에 75.8%(114만명)를 차지하는 영세농가(재배면적 1헥타르 미만)의 농가당 평균 직불금은 28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위에서 제시한 현행 농업직불금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또한 농업•농촌의 다원적•공익적 가치(환경생태계의 보전, 문화와 전통의 보존, 지역사회 공동체의 형성, 식품안전성과 국민 생존권의 보장 등)에 대해 공평하게 보상하기 위하여 농민기본소득제를 실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발표자는 농민기본소득제의 구체적인 실행방안으로 농가단위 기본소득제, 개별 농민단위 기본소득제, 농촌주민 기본소득제를 검토하였다. 참고로 각 방안을 시행하기 위해 필요한 연간 예산만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농가단위 기본소득제의 경우, 가구당 월 5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위해서 소요되는 연간 예산은 6조 5,400억원이다. 개별 농민단위 기본소득제의 경우, 농업인에게 월 2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위해서 소요되는 연간 예산은 20~64세를 대상으로 할 때에는 3조 2,227억원, 2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할 때에는 5조 5,592억원 규모이다. 농촌주민 기본소득제의 경우, 지역소멸이 우려되는 한계마을(한계지역)을 대상으로 한 시범사업 형태로 우선 제안되는데, 선정된 10개면의 모든 주민에게 월 20만원을 지급하는 방안에서는 약 600억원, 100개면을 대상으로 할 경우에는 약 6,000억원이 소요된다(면당 인구를 약 2,500명으로 가정하였으며, 조사, 연구, 행정 등에 들어가는 추가비용은 포함하지 않은 수치이다).
박경철 박사는 2017년에 개편되어 시행 중인 충남농촌환경실천사업, 2017년 도입이 결정되고 2018년부터 실시되고 있는 강진군의 농가단위 농민수당 제도(연간 70만원이 지급되는데, 35만원은 통장으로 입금되고 35만원은 지역상품권 형태로 지급됨), 2018년 도입이 결정되고 2019년 실시를 앞둔 해남군의 전체 농가를 대상으로 한 농민수당 제도(해남군의 발표에 따르면, 2019년 농민수당 지급액은 연간 60만원 수준) 등을 소개하였다. 30여개가 넘는 기초지자체와 7개 광역지자체(전남, 전북, 충남, 충북, 경기, 경남, 제주)가 현재 농민기본소득제를 도입했거나 도입을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끝으로 박경철 박사는 농가, 농민에 대한 개념 정립과 관리체계 마련의 필요성, 농민기본소득(농민수당) 개념을 명확화할 필요성, 농민기본소득제 실현을 위한 민주적 논의 과정과 제도화의 필요성, 농민기본소득 실현을 위한 정책적 의지와 결단의 필요성 등을 과제로 제시하였다.
흥미로운 두 발표에 이어서, 농민기본소득과 농촌기본소득의 상대적 장단점, 농민과 농촌 거주인구의 규모, 대도시권 과밀 문제와 농촌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농민기본소득의 잠재력, 부농, 소농, 자영업자, 외지 출신 등 농촌지역 내 다양한 집단들의 발언권과 참여 면에서의 권력불평등 문제, 행정구역상 중소도시에 속하는 농촌지역을 정책대상에 포함할 것인지의 문제 등을 둘러싼 활발한 토론과 논평이 진행되었다.
세션의 막바지에서 정기석 소장은 자작시 “기본소득 찬가”를 멋지게 낭송하였으며, 참가자들의 큰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