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농어촌기본소득 아무나 수다회 (2026년 1월호)
feat.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한인정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
들어가며
농어촌기본소득이 전국 10개 군을 대상으로 시행되면서, 충북 옥천에서는 주민들과 함께 기본소득을 이야기하는 ‘옥천 농어촌기본소득 아무나 수다회’가 열렸습니다. 이번 수다회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농촌돌봄연구소, 지역문화활력소 (주)고래실이 함께 기획한 자리였습니다. 기본소득을 제도나 정책 차원에서만 논의하기보다, 돌봄과 지역의 일상, 문화와 관계의 현장에서 함께 살펴보고자 한 기획이었습니다.
이번 수다회는 월 15만 원, 2년간 지급되는 농어촌기본소득을 두고 주민들이 실제로 느끼는 변화와 질문을 자유롭게 나누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전문가나 패널을 두지 않고,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기본소득이 어떻게 설계되었는가보다,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의가 행정이나 정책의 언어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말과 고민 속에서 다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1. “크진 않지만, 분명히 다르다”: 기본소득의 생활 체감
수다회에서 가장 먼저 나온 이야기는 기본소득을 받은 이후의 생활 변화였습니다. 참여자들은 기본소득을 두고 “가계에 조금 보탬이 된다”, “마음이 아주 조금은 놓인다”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했습니다. 매달 지급되는 15만 원은 삶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금액은 아니었지만, 생활의 균열을 조금 완화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인식이 공유되었습니다.
한 참여자는 “큰돈은 아닌데, 병원비나 갑자기 나가는 돈 앞에서 숨을 한 번 돌릴 수는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참여자는 “이 돈이 있어서 뭔가를 더 사게 된다기보다는, 못 쓰게 될까 봐 걱정하던 마음이 조금 줄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기본소득이 소비를 늘리는 돈이라기보다, 불안을 낮추는 돈으로 체감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발화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설날에) 돈을 받긴 받는데요. 엄마한테 주면, 통장에 넣는다고 해요. 근데요. 사실 통장이 있는지나 모르겠어요”라는 말이 나왔고, 이에 대해 어른들 사이에서 웃음과 함께 공감이 이어졌습니다. 기본소득이 지급되었지만, 그 돈이 실제로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어린이 당사자가 알고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라는 점이 자연스럽게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2. 이 돈은 무엇인가: 기본소득의 성격을 둘러싼 질문
수다회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도 등장했습니다. “이 돈은 도대체 무엇이냐”는 물음이었습니다. 기본소득이 상호호혜성과 공동체를 향상시키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농촌에 일정한 금액을 투입해 소비와 자본 흐름이 얼마나 발생하는지를 시험하는 수단인지에 대한 고민이 제기되었습니다. 일부 참여자들은 “농촌에 돈을 풀어서 얼마나 자본이 도는지를 보려는 실험처럼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이게 농촌을 위한 정책인지, 아니면 데이터를 만들기 위한 정책인지 헷갈린다”는 발언도 이어졌습니다. 기본소득이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언어로만 설명될 때, 주민들의 삶은 수단으로만 취급될 수 있다는 우려가 공유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기본소득을 어떤 관점으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이 실험의 방향이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인식이 형성됐습니다. 기본소득 그 자체보다도, 기본소득이 어떤 정책과 함께 가는지, 그리고 그 정책을 누가 결정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지요. 기본소득이 삶의 필요와 결합되지 않을 경우, 숫자와 성과 중심의 정책 실험으로만 남을 수 있다는 점이 분명하게 공유되는 자리였습니다.
3. 강제 없는 결합, 자치의 돈에 대한 고민
이러한 논의는 자연스럽게 ‘강제’의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기본소득이 다른 정책이나 지역 과제와 결합하더라도, 그것이 위에서 정해진 방식으로 강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분명히 제기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공동체를 위해 쓰였다고 말해온 돈들이 과연 ‘내가 포함된 돈’, 다시 말해 자치의 돈이었는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참여자들은 “공동체를 위해 쓴다고 했지만, 정작 내가 그 결정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가”를 되짚었습니다. “좋은 일이라고는 하는데, 그게 누구 기준의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기본소득이 공동체를 강화한다는 명분 아래, 개인의 선택과 욕구가 지워져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공유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본소득이라는 단어가 기존의 공동체, 혹은 ‘공통체’라 불려온 자치의 주체 안에서 누구의 목소리를 전제하고, 또 누구의 목소리를 배제해왔는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 이주민의 경험이 공동체 논의에서 충분히 고려되어 왔는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었습니다. 또한 그동안 정책의 언어로는 잘 다뤄지지 않았던 취향과 삶의 감각에 대한 이야기들도 이어졌습니다. “기본소득으로 조금 더 우아한 삶을 살고 싶다”는 말은, 생존을 넘어 삶의 질과 존엄을 이야기하는 발화로 자리했습니다.
나가며
이 외에도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는데요. 옥천 농어촌기본소득 아무나 수다회는 하나의 결론을 내리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기본소득이 삶에 닿기 시작하면서 어떤 질문들이 생겨나는지를 함께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최근 ‘농촌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제도가 이야기되면서, 기본소득으로 ‘농촌을 살려야 한다’는 말도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경제라는 언어가 함께 호출되기도 합니다. 다음 수다회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조금 더 찬찬히 짚어보고자 합니다. 도대체 ‘살려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회적·경제라는 말은 어떤 삶의 조건을 전제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이곳에서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어떤 고민을 안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기본소득은 그러한 고민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혹은 어떤 질문을 더 만들어내는지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PS.
다음 옥천 농어촌기본소득 수다회는 2월 28일, 옥천제일교회(충북 옥천군 옥천읍 중앙로 20-9)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앞으로 이 수다회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와 농촌돌봄연구소가 함께 매달 기획하여 이어갈 계획입니다. 또한 3월에는 대덕구 용돈수당과 어린이기본소득을 비교하는 논의를 준비하고 있으며, 이 자리에서는 어린이 당사자들이 직접 이야기를 준비할 예정입니다. 어린이가 서는 자리와 말하는 위치가 어떤 힘을 만들어내는지, 그 ‘위치’ 자체가 갖는 의미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기본소득을 둘러싼 다양한 실천과 질문들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