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No.19 | 2025 상반기

| 펴내며 |

도바리와 퇴로 확보

이관형 / 반년간 《기본소득》 편집위원장

나이가 연세 반열에 오르니 ‘자고 일어났다’는 것이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중간에 깨서 할 일이 없으니, 하릴없는 전전반측(輾轉反側)이다. 전전반측 끝에 집어 드는 것은 ‘결국’ 핸드폰이다. 그날도 그랬다. 운 좋게 일찍 잠이 든다. 운 없게 그날을 넘기지 못하고 잠이 깬다. 핸드폰을 안 보려고 기를 썼는데, ‘결국’ 이기지 못하고 켠다. 비상계엄? 꿈이야, 생시야?

윤석열의 무슨 비상계엄 회고 인터뷰인 줄 알았다. TV를 켜고 21세기에 재현된, 익숙하지만 익숙할 수 없는 20세기에 대해 꿈이야 생시야를 거듭 되뇌었다. 생시로 확인된 순간 떠올린 말은 ‘도바리’였다. 나는 ‘수거 대상’이 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 그런데 왜 ‘도바리쳐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했을까?

아무튼 나 때는 말이야(Latte is Horse) “도바리가 대통령 빽보다 좋다”는 말이 있었다. 시국사건으로 경찰한테 잡힌 다음에 아무리 힘 있는 사람의 빽을 써봤자 도망(도바리)을 잘 쳐서 안 잡히는 것만 못하다는 의미였다.

계엄 이후 매주, 매일 크고 작은 반 계엄, 반 내란 시위가 벌어진다. ‘2016년 박근혜 퇴진 촛불시위 이후 채 십 년도 넘질 않았는데, 또 이런 일이.’ 그때도 ‘내가 이 나이에도 이 추위에 나와야 하냐?!’를 넋두리처럼 외쳤는데, 이번엔 말 그대로 기도 차지 않았다.

어떤 시위든 나가면 버릇, 고질병이 있다. ‘퇴로 확보’다. ‘가투’(가두시위) 때 시위 현장의 지형지물을 탐색하여 나중에 어디로 도망을 칠지 미리 알아놓는 것을 말한다. 시위 전에 퇴로를 내려주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현장 시위 상황은 가변적이어서 나름대로 준비를 해야 했다. 요즘은 시위의 양상과 성격이 변화해서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시위 현장에 나가면 나도 모르게 두리번거리게 된다.

불안하고 어두웠던 시절이었다. 인생의 푸른 봄날은 그렇게 갔다. 나의 미래에 대해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누군가 알려주었을 때, 불안하고 어두워도 잔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의 근본적 변화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젊음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푸름만큼이나 무모했고 미숙했다.

잔치가 끝나니 각자도생해야 하는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이후 적잖은 시간을 맑스가 말하는 자주적인(자기의지적인; freiwillig) 삶이 아니라 되는 대로(자연발생적으로; naturwüchsig) 살았다.

12월 3일은 푸른 날의 불안을 기억나게 했다. 그 기억은 내 안에 내면화되어 파블로프의 개와 같은, 조건반사를 이끌어냈다. 불안의 시간은 빠르게 지났다. 그리고 국민주권의 시대가 왔다. 말 그대로 다이내믹 대한민국이다.

12월 3일은 지나갔지만 매년 또 온다. 고유명사 ‘12.3’도 또 오지 말란 법은 없다. 세계적인 우경화 바람과 맞물리면서 뒷맛이 좋지만은 않다. 그래도 이 정부에 희망을 걸어 본다.

이번 호는 기획 특집으로 대담 “기본소득, 후퇴에서 가능성으로”를 싣는다. 미래가 보이지 않던 기본소득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해 보았다. 문학은 성혜령, 김동식의 짧은 소설, 이수명, 신용목의 시, 정용준의 산문을 실었다. 이건민이 카타리나 네베스라는 포르투갈 신진학자의 논문(들)을 소개한다. 서울대 일본연구소의 조관자 선생이 “삶의 흐름을 바꾸는 기본소득, 어떻게 가능할까?”를 보내 주신다. 국내외 연구동향과 관련하여 안효상 이사장이 이주희, 이승윤, 조문영 선생의 저술을 소개하며, 한인정 선생이 가이 스탠딩의 『시간 불평등』(안효상 역)에 대한 서평을 보낸다. 《녹색평론》을 이어가고 계신 김정현 선생이 ‘기본소득과 나’에 기고를 해주신다. 지난 호 ‘보편성’에 이어 기획 특집으로 나갈 예정이었던 ‘무조건성’을 사정상 다음 호로 순연한다. 다이어트가 시대의 화두라 할 만하다. 해서 다이어트된 반년간 기본소득을 내놓게 되었으니 혜량해 주시기 바란다.(ㅠㅠ)

펴내며

도바리와 퇴로 확보 _ 이관형    보기

기획 대담

기본소득, 후퇴에서 가능성으로 _ 이관형, 박구용, 안효상, 용혜인   보기

문학    보기

[소설] 우리의 기본 _ 성혜령   보기
[소설] 금수저의 아빠 _ 김동식   보기

[시] 소년
 _ 이수명   보기
[시] 놀이공원 _ 신용목   보기
[산문] 누구의 문제가 아닌 무엇의 문제 _ 정용준   보기

기본소득의 새로운 지평

“Acknowledging the Gift: How an Unconditional Basic Income Encourages Reciprocity” 내용 소개 _ 이건민   보기

함께 만들어 가는 기본소득

삶의 흐름을 바꾸는 기본소득, 어떻게 가능할까? _ 조관자   보기

동향    보기

[동향] 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 _ 안효상   보기
[동향] 그래, 한 번 해보자!  _ 팔맹이    보기

기본소득과 나

민주주의와 기본소득 _ 김정현    보기

| 발행일: 2025년 7월 25일
| 발행처: 사단법인 기본소득연구소,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 편집위원장: 이관형
| 편집위원: 김교성, 류보선, 백승호, 서정희, 윤형중, 이건민, 이지은, 한인정
| 편집디자인: 사과나무
| 기본소득: Online ISSN 2733-8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