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도사

홍세화 선생께,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obituary-banner_Sehwa-HONG_18-April-2024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막상 우리 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주변의 공기마저 무거워지는 느낌입니다.

선생의 떠나감을 슬퍼하고, 선생이 남기신 것을 그리워한다는 게 무엇일까요?

선생이 몸담고 있던 신문사에서 마지막으로 쓰셨다는 칼럼의 부제처럼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를 되뇌면 될까요? 아니면 선생을 유명하게 만든 ‘똘레랑스(관용)’를 가슴에 새기고 몸으로 실천하는 걸까요? 선생이 함께했던 모임인 ‘소박한 자유인’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한계를 감각하고 절제하면서도 뭔가를 애써서 하는 삶을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것일까요?

선생이 마지막까지 맡았던 장발장은행장처럼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배제당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을 잊지 않는 것일까요? 대의에 충실하고 관계의 책임을 지기 위해 “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일지라도 고뇌 속에서, 하지만 주저하지 않고 오르는 일일까요?

자유의 물질적 조건으로서 기본소득을 선생이 열렬히 지지하셨지만, 언제나 공부가 부족하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뭔가에 열심이면서도 겸손하게 살면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분장하지 않은 피에로처럼 온갖 잡기를, 승부욕이 있으면서도 과정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면서 가까운 벗들과 함께 하는 것일까요?

아마 이 모든 것이면서, 이 모든 게 아닐 수도 있고, 이 모든 것을 넘어서는 일이겠지요. 사실 선생의 떠나감을 슬퍼하고, 선생이 남기신 것을 그리워하기 위해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이 선생에게 가 닿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뒤로하고 또 유한한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끼리 말을 나누고 그럼으로써 선생이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언제나 선생이 수줍어하면서도 환한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광경의 섬망을 겪을 것입니다.

선생이 떠난 지금, 선생의 이름과 달리 세상은 평화롭지 않습니다. 선생의 바람과 달리 우리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는 소박하게 살고 있지 않습니다. 여전히 성장을 말할 뿐 모든 관계의 성숙을 애써 추구하지 않습니다. 똘레랑스는커녕 가진 자들은 자기 것을 지키기 바쁘며, 없는 자들도 자기보다 없는 사람들을 경원시합니다. 기본소득이 잠시 실현의 문턱 앞까지 가기도 했지만, 언제 그랬냐 싶게 한참 뒤로 물러난 느낌입니다. 총체적인 실패와 패배의 느낌이 만연하고 그렇기에 한편에서는 절망이 끝이 없어 보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분노가 갈 길을 잃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럴수록 선생이 추구했던 것, 선생이 간직했던 것이 떠오르는 것은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자신과 동료를 향한 말은 겸손하게 하고, 적을 향한 우리의 화살은 예리해야 합니다. 그것이 선생이 가슴 깊이 묻어두었지만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전사의 삶이겠지요. 그리고 그것이 작가로서의 삶일 것이고,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삶이겠지요.

영면을 빌면서 슬픔을 뒤로하고 다시 만날 날까지…

2024년 4월 18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

안효상

추신.

며칠 전에 잊고 있던 음악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위대한 예술가의 추억”이라는 부제가 붙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삼중주입니다. 부족한 인간이 위대한 예술가의 손을 빌려 소박하지만 위대한 사람의 삶을 추억하고자 합니다.

[차이콥스키 피아노 삼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