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획 “기본소득 아이디어의 역사”

기본소득이 낯설고 새로운 생각이 아니라 제법 오래된 역사가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은 두 가지 효과가 있는 듯합니다. 하나는 말 그대로 기본소득 아이디어에 ‘역사적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공적 지위를 얻을 가능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부상한 구체적 맥락을 검토하게 함으로써 이 아이디어가 진전하는 조건과 이를 가로막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NOTE. 2017년 8월부터 월간지 <시대>에 연재되고 있는 “기본소득 아이디어의 역사” 시리즈를 가져온 것입니다.

삼중 혁명

글쓴이: 안효상

PREVIEW

「삼중 혁명(Triple Revolution)」이라는 문서는 1964년 3월 22일 자로 미국의 존슨 대통령과 정부의 주요 인사들에게 보내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 여기에는 34명이 서명했는데, 아이디어 제공자인 미래학자 로버트 시어볼드(Robert Theobald), 저명한 학자인 군나르 뮈르달(Gunnar Myrdal)과 로버트 하일브로너(Robert Heilbroner)를 비롯해서 다수의 신좌파 활동가(톰 헤이든Tom Hayden, 토드 기틀린Todd Gitlin 등), 민주사회주의자(마이클 해링턴Michael Harrington, 어빙 하우Irving Howe 등), 흑인 운동가(제임스 보그스James Boggs, 베이야드 러스틴Bayard Rustin 등) 등이 포함된다.

195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사회는 몇 가지 주요한 변화를 목격하게 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민권운동이다. 주로 법적이고 제도적인 차별을 없애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민권운동은 다수의 흑인 대중과 일부 백인 지지자들을 동원하면서 미국 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이루어냈다. 이는 최소한 법적, 제도적으로 모든 시민이 동등하다는 원칙을 확립한 것이었으며, 1964년의 「민권법」과 1965년의 「투표권법」으로 봉헌되었다.

두 번째로 냉전의 약화 및 핵무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확산이있다. 1950년대 초반의 매카시 광풍이 지나간 후 핵군축과 평화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는 이러한 인식을 더욱 강화했다. 이는 한편으로 미소 간의 전쟁 불가능성을 확산시켰으며, 다른 한편으로 냉전에 기대고 있는 국내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전체 글은 아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