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8일 홍세화 선생 1주기

추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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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선생!

어디에 계십니까? 선생은 누구십니까?

홍세화 선생,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나신 지 벌써 1년이군요. 그리고 우리는 선생이 편히 쉬실 것이라 믿는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하지만 1년 전에도 그러했지만, 누군가의 노래를 빌리자면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라. 난 거기에 없다. 나는 잠들어 있지 않다”라고, 선생은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곤 이렇게 덧붙이시겠지요. “나는 무수한 바람이 되어…새들의 날개짓 속에 있고, 밤하늘 부드러운 별빛 되어” 있다고.

정말 그렇더군요. 지난 겨울과 봄 “희망의 목을 비트는 데 즐거움을 느끼”는 “마법사들이 들이닥쳐 세상을 잿빛으로 만들었”을 때,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몸을 무기로 들고 거리에 나갔을 때, 선생은 언제나 함께였습니다. 그곳에서 전사로서의 선생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물론 눈빛과 손은 단호했지만, 표정은 쑥스러워하셨지요.

강요된 오랜 망명 시절, 선생은 무장을 해제당한 전사였습니다. 그 대신 선생은 생각의 분투 속에서 말의 전사가 되었습니다. 톨레랑스(관용)로 처음 발화된 선생의 말은 배제된 사람들, 가장자리, 생각의 좌표와 결 그리고 공부를 거쳐 어른됨과 성숙으로 이어졌고, 미안함과 겸손으로 끝맺음했지요.

선생의 입과 손에서 나오는 말들은 사실 평범한 것이었습니다. 그 말들의 일상적 뜻을 알고 있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 말들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세상으로 퍼져나갔고, 사람들의 마음으로 파고들었습니다. 그리고 선생의 말들은 모자람도 넘침도 없었습니다. 우리 시대, 우리 사회에 딱 맞았다는 의미에서. 하지만 그보다는 말하는 사람의 행함과 됨됨이와 어울린다는 의미에서. 그러니 선생은 몸의 전사이자 말의 전사였습니다.

그러나 선생을 이렇게 그려내는 게 우리의 또 다른 거칢의 소치일까요? 선생은 그 무엇보다 소박한 자유인이었는데 말입니다. 선생은 그 무엇보다 가까운 사람들과 즐겁게 노는 것을 사랑했는데 말입니다. 아니면 은퇴한 산책자를 억지로 불러내려는 우리의 욕심일까요? 누구 말대로 죽은 자에게 빚지기 위한 산 자들의 억지일까요?

그래서 우리는 묻습니다. 선생은 누구십니까? 우리를 언제나 부끄럽게 만들고, 그럼에도 우리를 끊임없이 나아가게 만드는, 선생은 누구십니까? 우리를 때때로 고뇌에 빠뜨리고, 그럼에도 우리를 계속해서 살아가게 만드는, 선생은 누구십니까?

선생은 물론 여기에 답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 없기에. 설사 여기에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답을 찾으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수한 바람이기에 우리에게만 머물지 않고 흘러 다닐 것이기에. 하지만 우리가 조용한 아침에 깨어날 때,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존엄한 인간의 삶에 대해, 사랑하는 벗의 이야기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

안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