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의 첫 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 발표에 부쳐

2012년 12월 19일 민주통합당/국민연대의 대통령 후보였던 현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은 감옥에 있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3.6퍼센트 포인트 차이로 패배하던 날 영화 <레미제라블>이 개봉된 것은 지나고 보면 절묘한 우연이었다. 이명박 정권 시절을 암담하게 보낸 많은 사람들은 ‘정권 교체’를 위해 온힘을 다했고, 그런 만큼 그 패배의 무게도 너무 무거웠다.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그래도 버틸 수 있는 힘을 준 게 <레미제라블>과 ‘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였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2016년 겨울 광화문에서 다시 울려퍼진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우리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지만 이 영화에서 우리에게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도입부였다. 좌초한 배를 끌어올리는 죄수들의 말 그대로의 고통과 희망 없음의 희망 그리고 함께 부르는 ‘고개 숙여(Look down)’라는 노래. 물론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은 않았다. 공포와 절망 속에서도 간간이 고개를 든다. 그러면서 힘을 모아 배를 끈다. 그 배가 이후 어디로 출항할지 모르면서도…

어제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인 이재명 지사가 기본소득 공약을 발표했다. 그가 제시한 기본소득 공약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전국민에게 연간 100만 원, 청년에게는 연간 200만 원의 기본소득 지급, 재원은 기존 예산(세출 조정과 조세 증가분 포함), 토지세와 탄소세, 장기적으로 50만 원의 기본소득을 위한 공론화.’ 이걸 우리 식으로 말하면, 액수가 적게 느껴지지만 모두에게 지급하는 ‘부분 기본소득’을 도입 모델로 채택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우리는 기본소득이 현실의 문제가 되면서 어떤 도입 모델이 현실적이면서도 기본소득의 원칙에 부합하는지를 고민해왔다. 이때 일부 인구 집단에게 주는 ‘범주형 기본소득’도 보편적 사회수당이라는 기존 정책과 공명하는 측면이 있어서 정치적으로 쉽게 수용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는 문제를 우회하는 게 아니라 회피하는 것일 수 있다. 왜 모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하는가라는 문제 말이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왜 특정 집단에서 먼저 시작해야 하는가, 그 다음에는 어떤 집단으로 확대해야 할 것인가 등을 둘러싼 갈등이 벌어질텐데, 이는 기본소득 도입을 도리어 방해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어렵더라도 모두에게 지급하는 부분 기본소득에서 시작하는 것이 급진적이면서도 현실적이다.

도입 모델의 금액은 어떤 수준에서 결정되어도 논란거리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당연하게도 재원 마련 구상과 연관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연간 100만 원이 적다는 아쉬움보다 본격적인 재원 마련 계획, 증세를 뒤로 미룬 것이 더 큰 문제로 다가온다. 물론 기본소득위원회를 설치해서 기본소득의 확대와 증세에 관한 공론화를 시도하고, 이를 통해 차차기 정부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생각하는 좀 더 충분한 기본소득에 도달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차기 정부에서 기본소득 공론화를 위한 적절한 준거점을 제시하여, 논의가 미래를 향해 나가도록 할 의무가 있다.

이재명 후보가 준거점을 전혀 제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사람들이 기본소득의 “효능감”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떤 효능감인가이다. 당장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많은 금액이 아니기 때문에 보충적 소득일 것이며, 알래스카의 경우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너스로 여길 것이라는 점이다. 알래스카 주민들은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이 보너스를 기존의 소득에 더해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자신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정기적으로 들어올 때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계획하거나 계획하려 할 것이며, 이는 삶에서 매우 긍정적이고 중요한 경험일 수 있다. 다음으로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것은 성남시와 경기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지역과 소상공인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당장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고, 나아가 경기 순환에 도움을 되는 것을 넘어서서 사람들의 소비 유형을 바꿈으로써 장기적으로 좀 더 민주적이고 지역적인 경제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낮은 금액은 기본소득의 또 다른 효과를 경험하기에는 여전히 충분치 않다. 사람들이 고용노동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자율적이고 생태적일 수 있는 활동과 영역으로 옮겨가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논평은 이재명 후보가 기본소득을 왜 자신의 공약으로 채택했고, 기본소득으로 겨냥하는 게 무엇인지를 감안하면 과한 지적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제시한 기본소득 자체에 대해 찬반을 표시하는 것을 넘어, 그가 제시한 전환의 전망 자체에 대해 논의해야 하며, 그 속에서 기본소득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할 의무가 있다. 지금으로서는 기본소득이 그저 돈을 주는 단순한 정책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기존 사회 질서를 바꾸고 새로운 세계를 여는 커다란 잠재력이 있다는 점만 지적하기로 하자.

이재명 후보가 기본소득 공약을 발표하자, 기다렸다는듯이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정의당의 여영국 대표는 액수가 적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국민의 팍팍한 삶에 비하면” “한가한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반해 자신의 경제학 지식을 과도하게 확신하는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은 돈이 많이 든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벚꽃잎처럼 세금을 뿌리”는 것이라고 힐난한다. 얼마 전 복당한 같은 당의 홍준표 의원은 기본소득을 사회주의 및 배급제와 동일시함으로써 냉전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뿐만이 아니다. 같은 당에서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정세균 후보는 “가짜 푼돈 기본소득”이라고 하면서 “불공정, 불공평, 불필요한 3불 정책”이라고까지 혹평했다. 이런 공격은 계속될 것이라고 보인다.

이런 공격은 도리어 이재명 후보가 제한적인 수준에서나마 기본소득 공약을 발표했기 때문에 나온 긍정적 효과라 보인다. 사실 지금도 계속되고 있긴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경선 과정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을 본 것은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는 비난만 난무하지 후보들의 전망과 정책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간혹 전망과 정책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 제대로 분석하고 더 나은 정책을 내놓기 위한 토론이 아니라 그저 상대방을 비난하기 위한 수단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가 자신의 기본소득 공약을 제대로 내놓았기 때문에 다른 후보들도 이제는 각자의 전망과 정책을 제대로 내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럴 경우 제대로 된 의미에서 정치적, 정책적 논쟁이 벌어질 것이고, 우리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감정과 정동이 정치적 동원의 자원이 되는 게 분명해 보이는 시대에도 우리는 정치가 공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성의 승리는 이성적인 사람들의 승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 발표가 무엇보다 그런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얼마나 긴급해야 하는지를 토론하고, 여기서 기본소득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핵심적인 정책이라고 할 때 어떤 기본소득이 바람직한지를 함께 논의하는 자리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제 <레미제라블>의 죄수들이 힘겹게 끌어온 배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 배가 어디로, 얼마나 빨리 출항할지는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다.

2021년 7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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